이스라엘 공화국
הרפובליקה הישראלית | République Israélienne
국기 국장
עצמאות, חופש, רפובליקה יהודית
Indépendance, Liberté, République juive
독립, 자유, 유대인 공화국
상징
국가 הַתִּקְוָה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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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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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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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베르 셰바
최대 도시
헤브론
면적
587,041km²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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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15,042,140명
밀도
25.62명/km²명/km2
인종
유대인 61.5%
마다가스카르인 25.3%
프랑스인 11.4%
기타 1.8%
출산율
1.72명
평균 수명
40세
기대 수명
79세
공용어
프랑스어, 히브리어
지역어
말라가시어
공용 문자
라틴 문자, 히브리 문자
종교
국교
유대교
분포
유대교 57.3%
기독교 10.5%
토착 종교 4.3%
기타 3.3%
무종교 24.6%
군대
이스라엘 국방군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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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
16개
73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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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민주제, 공화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대의민주제, 성문헌법
민주주의 지수
5.25 (혼합된 체제)
국가 원수 (대통령)
이삭 오펜바흐
정부
요인
총리
마르셍 가이다마크
최고법원장
조지프 다르몽
의회원장
소냐 드뤼케르
국방원장
로베르 레자
여당
유대민족인민당
연립 여당
시오니스트 동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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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GDP
(PPP)
전체 GDP
$601,685,600,000
1인당 GDP
$40,000
GDP
(명목)
전체 GDP
$442,238,916,000
1인당 GDP
$29,400
무역
수입
$1,184,001,531
수출
$1,169,382,100
신용 등급
무디스 A1
S&P A+
Fitch A
화폐
공식 화폐
이스라엘 프랑
ISO 4217
IFR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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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GMT+03:00
도량형
SI 단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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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교현황
대한민국 수교 : 1973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교 : 1990년
UN 가입
1975년
주한대사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 11
ccTLD
.il
국가 코드
IL, ISR, 421
전화 코드
+53
여행 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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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여행주의보
전지역 (코로나19)

개요

아프리카마다가스카르섬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상세

수도는 베르 셰바이고 최대 도시는 헤브론이다. 면적 587,041km²에 인구 15,042,140명이며, 마다가스카르 섬에 위치한 섬나라이다. 인구의 대부분을 유대인이 차지한다. 그 외에 마다가스카르 원주민과 프랑스 인들도 40% 가량이 살고 있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나라중 가장 백인의 비율이 높은 국가인데 국민의 68% 가량이 백인이다. 27% 가량은 말라가시인이다. 말라가시인들은 오스트로네시아계라서 황인에 더 가깝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프리카 국가중 가장 흑인의 비율이 낮은 국가이기도 하다.

본래는 마다가스카르 원주민들이 살던 프랑스 제국의 식민지였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유대인 약 300만명이 사망하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정부는 시온주의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유대인 공화국 건국을 추진하였다. 1946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팔레스타인 영토에 제1차 이스라엘 정부가 세워졌지만,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함에 따라 1949년 갈곳이 없어진 유대인들을 프랑스가 마다가스카르 식민지에 마다가스카르 유대인 자치령을 건국하였다. 이후 유대인들이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정착해가고 팔레스타인 지역의 독립으로 점차 구 이스라엘 영토로의 이주가 어려워짐에 따라, 유대인들의 국민투표를 거쳐 1973년 6월 유대인들의 공화국이 마다가스카르에 건국되었다.

현재 이스라엘은 아프리카 국가중 남아프리카 연방나이지리아 다음으로 경제 규모가 큰 나라이며, 또한 아프리카 내에서는 프랑스령 알제리 다음으로 국민 소득이 높은 국가이다. 또한 베르 셰바 국립공과대학교, 모셰 다얀 군사대학교를 비롯한 세계 수준의 대학교들이 위치해있어 교육적으로도 매우 발전했으며 세계에서 16번째로 단독 기술로 우주 진출에 성공하기도 했을 정도로 과학적으로 부강한 나라이다.

이스라엘은 프랑스 제국과 친밀한 관계에 있으며 전반적으로 친유럽 계통인 제3세계 국가로 분류된다. 현재 이스라엘은 UN과 프랑스어 국제기구를 비롯한 각종 국제 기구에 가입되어있고 북대서양 방위조약에 옵저버로 참가하고 있다.

상징

국호

이스라엘의 국호
히브리어 הרפובליקה הישראלית
프랑스어 République Israélienne
영어 Republic of Israel
한국어 이스라엘 공화국
아랍어 جمهورية اسرائيل
러시아어 Республика Израиль
독일어 Republik Israel
스페인어 República De Israel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느님과 (함께) 싸우다' 혹은 '하느님은 강하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야고보가 하느님과 씨름을 하였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야고보는 지나가던 어떤 사람과 밤새도록 씨름을 하였는데 날이 밝자 "너는 하느님과 겨루어냈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긴 사람이다. 그러니 다시는 너를 야고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여라." 하고 말하며 야고보를 축복했다고 한다. 그 후 이스라엘은 야고보의 새 이름이자, 그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그 외에도 "유다국" "이색렬국"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지만 현재에는 그냥 이스라엘이라고 더 많이 불린다.

국호는 건국 이후 몇차례 변경되었는데, 1949년 처음 건국되었을때는 "프랑스령 유대인 자치국"이었지만 이후 독립 국가로 완전히 독립하면서 "이스라엘국"이 되었다. 1984년 개헌을 통해 국명을 "이스라엘 공화국"으로 바꿔 현재에 이른다.

현재 이스라엘 정부는 프랑스어와 히브리어만을 공용어로 인정하므로 말라가시어 국명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말라가시 민족주의자들은 전반적으로 "Repoblikan'i Israely"이라고 부르는 편이다.

국기

이스라엘의 국기
지위 공식 국기
채택일 1973년 6월 20일
비율 1:2

파랑 (#002654), 빨강 (#CE1127), 하양 (#ffffff)로 이뤄진 국기를 사용하고 있다. 중앙에는 유대 민족을 상징하는 다윗의 별이 새겨져 있는 모습이다. 건국 직후에 지정되어 현재까지 바뀌지 않고 있는 국기이다. 공식 명칭은 없고 그냥 이스라엘기라고 줄여서 부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색깔이 프랑스 제국의 국기 색과 완전히 일치해서 말이 좀 있긴 했다. 심지어 이 국기를 프랑스 외무부에서 디자인했다는 터무니 없는 루머도 나돌았지만 1990년대 프랑스 외무부에서 공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그런 루머가 나돌 정도로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국기이기도 해서, 일부 과격 유대 민족주의자들은 색 배치를 하양-파랑-하양-파랑-하양으로 개편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몇몇 좌파 정당들과 소수민족 쟁점 정당들은 다윗의 별만이 배치된 것에 불만을 품으며, 말라가시 민족을 상징하는 문양도 함께 넣을 것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들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역사

1945년 이전

마다가스카르는 1883년까지 이렇다할 제국 열강의 지배를 받지 않은 독립된 섬으로 수십개의 부족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1883년 프랑스 제국은 보불전쟁 패전 이후 적극적인 식민지 확대를 통한 경제 회복을 내걸고 아프리카 각지를 정복하였는데, 이때 마다가스카르섬 역시 프랑스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1883년 5월 1일, 프랑스는 마다가스카르섬에 상륙해 각개 부족들을 격파하거나 회유하는 등의 방식으로 마다가스카르 섬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를 프랑스-마다가스카르 전쟁이라고 한다.

1883년 이후 정부 체제가 자주 바뀌었다. 1883년부터 1890년까지는 프랑스 제국의 직할령이었지만, 1890년부터 1919년까지는 다시 마다가스카르 제국으로 명목상의 독립국이 되었다. 그러나 1919년 1차 대전이 끝난 직후 다시 프랑스 본토의 일부로 복속되었다가 대공황으로 인해 1932년 최종적으로 프랑스령 마다가스카르라는 직할 영토로 개편되어 1949년까지 존속했다.

1945년~1949년 : 마다가스카르 유대인 자치령 건국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전쟁은 1944년 프랑스-영국 동맹군의 베를린 점령으로 끝이 났지만 전쟁의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중에서도 300만명 가량이 강제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분노는 더욱 컸다. 유대인들은 기존 극히 일부의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만 거론되었던 시온주의 사상에 심취되어갔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지역의 유대인들은 서방 강대국들에게 유대인들만의 민족 국가 건국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미국은 물론 소련의 유대인까지 거들면서 점점 규모가 커졌다.

처음에는 영국이 이들을 위해 팔레스타인 영토에 유대인 민족 국가를 세워주려고 했고, 1946년 팔레스타인 영토에 첫 이스라엘 정부가 세워지면서 유대인 민족국가가 세워지나 싶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들의 반대로 인하여 곧바로 내전이 일어났고 이는 아랍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전쟁으로 번졌다. 1947년까지의 전쟁 끝에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이 패배했고, 다비드 벤구리온 등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이 사망하면서 유대인 민족 진영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결국 영국은 이 문제를 프랑스 제국에게 떠넘겼고 프랑스 제국은 독일의 유대인 마다가스카르 강제 이주 정책에 어느정도의 영향을 받아 마다가스카르 섬에 유대인 자치령을 건국하기로 결정했다. 당연히 모세 다얀을 비롯한 각계 유대인 주요 인사들은 반대하였으나 프랑스의 꾸준한 설득을 통해 1949년 마다가스카르 유대인 자치령이 건국되었다.

1949년~1973년 : 유대인 자치령 시절

1949년, 유대인 자치령이 건국되었고 1972년 12월까지 약 23년간 프랑스의 통치령으로 남는다는 마르세유 조약이 채결되었다. 조약에 따라 23년간 유대인 자치령은 프랑스의 식민지로서 대우받았지만 실제 대우는 그보다 격이 더 높았다.

1949년부터 1953년까지 초대 총독으로 프랑스 사회당의 3선 의원 출신 레옹 라즈망이 재임하였으며, 1953년부터 유대인 자치령은 특별 법에 의하여 자치 의회를 구성하고 총독을 직접 선출할 권리를 갖게 되었다. 제2대 총독으로는 레옹 라즈망이 총 52.5%를 득표해 재선에 성공했고 여당은 유대인 민족연합이 되었다. 당연하지만 말라가시인들의 참정권은 제한되었다.

유대인들은 아무것도 없는 열대 우림 속에 내다던져진것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다행히 당시 재적하던 페터 뇌이쉬르센 총리의 뇌이쉬르센 독트린으로 프랑스 식민지들에 대한 절대적인 경제적 보호와 인권 개선이 선포되어 유대인 자치령은 프랑스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뤘다. 그 외에도 미국, 영국 등의 유대인 부호들이 이스라엘에 아낌 없는 지원을 해줘 1949년까지만해도 불과 1,200불에 불과했던 국민소득이 1960년에는 5,500불로 5배 가까이 증가했다.

1964년에는 헤브론 세계 박람회를 개최했고 올림픽에 월드컵 개최권도 따낼번했지만 2번 모두 아쉽게 실패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프랑스령 세네갈과 더불어 프랑스 식민지중에서도 가장 빠른 경제적 성장을 보이는 국가로 주목을 받았다. 정치적으로는 유대인 민족연합이스라엘 인민혁명당이 합쳐져서 창당된 유대민족인민당 중심의 일당우위제로 정치적 안정을 이뤘다.

한편으로 1968년 68 혁명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 본토 전체의 정치가 들썩였던것처럼 유대인 자치령 내부에서도 말라가시 민족해방전선이 폭동을 일으켜 일부 도시를 점거하기는 했으나 오히려 온건파 말라가시인들에게도 반감을 얻어 결과적으로 혁명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 폭동의 영향으로 유대인 자치령 내부에서 말라가시인에 대한 차별 문제가 불거지면서 1970년에는 말라가시인들에 대한 부분적 참정권이 인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인종차별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고 1972년 마지막 자치의회 선거에서 말라가시인 인권을 주장하던 좌파 정당들이 전체 의석 150석중 64석을 차지하며 71석을 얻은 유대인민족인민당을 위협하기도 했다.

1973년~1984년 : 제1공화국

1973년, 이스라엘-프랑스간 협정이 끝남에 따라 유대인 자치령은 이스라엘로 독립하게 되었다. 독립국명은 이스라엘국이었고 제5대 총독이었던 아이작 이슈타마크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1973년부터 1984년까지를 제1공화국이라고 부르며 이 당시에는 이스라엘이 대통령제 국가이던 시절이었다. 또한 강경한 수위의 반공 독재 정책을 추구해, 프랑스 공산당의 후계 정당으로 창당된 이스라엘 연합공산당이 불법정당화되고, 온건한 자유주의 정당들의 활동 역시 제한되었다. 이로 인한 반정부시위가 산발적으로 일어났으나 이스라엘 정부는 이를 일부 말라가시인들의 폭동으로 규정하며 민주주의를 억눌렀다. 이 때문이 이 시기 이스라엘은 갓 태어난 신생 정부를 지원해주던 프랑스 당국으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하였다.

아이작 이슈타마크가 1974년 퇴임한 가운데, 앙리 오스테르메이에유대민족인민당 소속으로 94.2%의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상대당 후보는 5.8% 득표에 그쳤다.

1984년~1987년 : 1984년 이스라엘 민족해방운동과 혼란기

1987년~2000년 : 제2공화국

2000년~현재 : 제3공화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여담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