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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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국 국장2.png
임나
임나국
任那國
국가 황제행진곡 (한국어: 皇帝行進曲)
국목 오동나무
표어 임나영광 황실번영
임나국 지도.png
임나국의 행정구역
수도 성산현 (북위 35° 12′ 31″ 동경 128° 40′ 46″)
최대도시 동래현 (북위 35° 10′ 46″ 동경 129° 04′ 32″)
면적 13,270.3‬km2
역사 - 1598년 5월 22일 일본령 임나국
- 1742년 6월 4일 일본-임나 독립전쟁
- 1902년 9월 3일 일제강점기
-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
- 1949년 6월 1일 독립
- 1974년 5월 12일 민주화

인문 환경


인구 전체 인구 7,324,894 (2018)
민족 구성 임나인 63.2%, 한국인 20.2%, 일본인 11.2%, 기타 5.4%(2019)
인구 밀도 551,97 (2018)
출산율 1.44명 (2017)
출생 인구 147,211명(2018)
기대 수명 79.3세(2020)
성비 51.9 : 48.1 (남초)
공용어 한국어
국민어 한국어, 일본어
지역어 제주어
공용 문자 한글, 한자
문해율 97.3%(2020)
종교 무종교 42.1%
신토 40.2%
불교 11.2%
기타 6.5%(2018)
군대 임나국방군
세부
군대
육군 임나국 육군
해군 임나국 해군
공군 임나국 공군

하위 행정구역


행정
구역
8구 사천구, 임례구, 성산구, 동래구, 울주구, 금성구, 수성구, 제주구
39현 39개 현

정치


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총리직선제, 단일제, 대의민주제, 성문헌법
입법부 임나국 입법원
민주주의 지수 9.03 (완전 민주주의)
국가
원수
임나국 황제 인덕황제
국무총리 김영춘
정부
요인
제1부총리 김부겸
제2부총리 김의겸
국회의장 박맹우
대법원장 김문석
헌재소장 문형배
여당 민솔당 워터마크.png

경제


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명목
GDP
전체 GDP $310,216,585,794‬
1인당 GDP $42,351
GDP
(PPP)
전체 GDP $446,320,441,208
1인당 GDP $60,932
수출
입액
수출 $422,203,323
수입 $324,329,041
신용등급 무디스 A1
S&P A+
Fitch A
화폐 공식화폐 임나국 환 (YNH)
국가
예산
1년 세입 $112,090,232
1년 세출 $143,923,452
통계
자료
경제성장률 2.2%
물가상승률 6.4%
실업률 4.5%

코드와 단위


ccTLD .YN
국가 코드 YMN
국제 전화 코드 032
단위 법정연호 임나황제력, 서력기원
도량형 SI 단위
날짜형식 yyyy-mm-dd
운전석
(통행방향)
오른쪽 (좌측통행)

임나국(한국어: 任那國, 영어: State of Yimna)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북으로는 대한민국을, 남으로는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에 접해있으며, 남해와 동해를 접하고 있다.

임나국의 영토는 임나국 본토와 그 부속도서로 되어있지만 대마도는 현재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다. 수도는 임나국 황거가 위치한 성산현이며 최대 도시는 동래현이다. 면적은 대한민국의 1/8정도 되는 13,270km2이다. 인구는 약 700만명으로 한반도 인구의 10% 가량을 차지한다.

1592년 임진전쟁의 종전 이후 일본에 의해 설치된 일본의 속국 임나국이 도요토미-도쿠가와 가문 전쟁을 틈타 독립을 선언했고 일본과 3차례의 전쟁을 거친 후에 독립하였다. 이후 일본에 의해 합병되어 약 40년간 일본의 식민지였다가, 1945년 조선과 함께 독립되었다.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종전 이후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이 철수하였고 왕실이 복원되었으며, 1974년 5.12 민주선언을 통해 현재와 같은 민주주의 체제가 설립되었다.

정치 체제로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총리직선제를 시행하는 등 대통령제와 비슷한 면도 많이 갖추고 있다. 국가 원수는 황제이지만 실질적인 국가 원수는 국무총리다. 경제적으로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국민소득을 가진 국가중 하나이며, 무역업이 발전해 '동북아의 싱가포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국가 상징

국호

임나국의 국호는 임나국(任那國) 그 자체이다. 영어로는 State of Yimna, 혹은 Empire of Yimna라고 번역되는데 정부는 원의미를 살려 State of Yimna를 공식 표기로 인정하고 있다. 줄여서는 임나라고 한다. 옛 이름을 따 가야라고도 한다.

국기

자주기
임나국 국기.png
지위
공식 국기
제정 시기
임나 제1제국 (1754년 6월 2일)
임나 제2제국 (1878년 12월 13일)
임나 지하정부 (1912년 5월 1일)
임나 민주왕정 (1985년 1월 1일)
근거 법령
법률 제15833호 <국기법>
고안자
광명황제 덕종
제작자
민화령

국가

황제행진곡
임나국 국가.png
지위
공식 국가
제정 시기
임나 제1제국 (1754년 6월 2일)
근거 법령
법률 제15322호 <국기법>
작곡가
김호철
원곡
현대중공업 노동조합가

스페인의 국가인 <Marcha Real>처럼 가사는 없다. 원곡은 현중노조가이다.

역사

임진전쟁 직후

임진전쟁에서 조선-일본간 평화조약이 맺어진 이후, 조약에 따라서 경상도 일부 지역이 일본에게 일본령 임나국이라는 이름으로 할양되었다. 일본령 임나국은 1598년 5월 22일 건국되었고, 류구 스미요시(竜宮住吉)가 1대 국왕으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갓 탄생한 한국-일본계 국가에서 민족간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폭동까지 일어나는 신세가 되었다. 또한 스미요시 내각이 주도한 인두세와 농지부가세 등이 농민들의 반발을 일으켰다. 결국 류구 스미요시는 폭동 진압에 실패하여 일본으로 도망쳤고, 1600년 5월 3일 농민군대 대장 전학수가 이끄는 임나봉기군이 임나국을 점령하게 된다. 전학수는 일본령 임나국을 조선에 양도한다고 선언했으나 곧바로 일본이 선전포고하면서 조선에서 발을때며 홀로 남게 되었고, 15년동안의 1차 전쟁을 겪게 되었다.

제1,2,3차 임나-일본 전쟁

임나국과 일본의 전쟁을 일컫는 말로 임일전쟁이라고 줄여부르기도 한다. 1600년부터 1617년까지를 1차 임일전쟁으로, 1630년부터 1636년까지를 2차 임일전쟁으로, 그리고 1740년부터 1742년까지를 3차 임일전쟁으로 분류한다. 전쟁 결과 임나국이 승리하여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였다.

제1차 임일전쟁은 1600년부터 1617년까지 17년간 이어졌다. 전쟁 극초반에는 막강한 화력을 앞세운 일본군이 우세하였으나, 조선의 간접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던 임나국이 유리한 지형을 이용해 일본군에 어느정도 방어하는 것에 성공했다. 대마도가 일본에게 넘어갔으나, 일본 내에서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망 등 내부적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임나국과 일본군은 평화협정을 체결했고 대마도를 제외한 다른 영토는 독립을 보장받았다.

제2차 임일전쟁은 철저하게 게릴라전의 형국으로 전개되었다. 일본군은 초반 기세를 앞세워 임나국 전역을 점령하는데에 성공했으나 험준한 산지를 이용한 임나국 게릴라에 의해 큰 피해를 봤고, 전쟁이 6년동안 이어져 장기화되었다. 또한 동래부 등에서의 봉기 시도 등 임나국을 점령해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 하에 일본군이 철수하여 임나국이 다시 한번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1636년 전쟁에서 승리한 임나국은 본격적인 안정 체제와 국제 무역항으로서의 입지를 넓혔다. 1655년 광성황제 태종의 지시로 서양과의 무역항을 열었고 네덜란드를 비롯한 서양 여러 나라와 교역하여 조선보다 더 빠른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또한 내부적으로도 조세 제도를 개혁하고 전쟁 피해를 수습하는 등 여러 노력을 가한 결과, 1700년대에는 사실상 경제가 조선에 맞먹는 수준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또 1720년대에는 전근대적인 농본국가에서 탈피하여 상공업 국가로서 발전할 수 있었다.

1740년부터 1742년까지 2년간 제3차 임일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강한 국력을 토대로 일본군에 맞서 확실히 우위의 양상을 보여줬고, 결국 2년만에 다시 평화협상을 치뤄 일본에게 보상을 받아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구법파의 정권 장악과 국정농단

1782년 임학서의 난을 계기로 임학서의 개혁안을 받아들여야한다는 좌파세력 신법파와 받아들이지 말아야한다는 우파세력 구법파가 충돌하였다. 신법파는 백성들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나 1788년 구법파의 쿠데타로 인해 무너지고, 1790년 구법파가 조정을 장악하게 되었다. 조정을 장악한 구법파는 조선과의 교류 일체 중단과 서양 문물 수용 거부를 내걸었으며, 이로 인해 백성들의 반발이 극에 달하자 다시 1799년 구법파가 신구법파와 보수구법파로 나뉘어 붕당을 형성하였다.

결국 통상을 허용하자는 신구법파가 승리하여 신구법파의 안항주가 영의정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1833년 다시 보수구법파가 신구법파를 뒤엎고 정권을 찬탈하였고, 구법파의 세도 정치와 조세 개혁의 정체가 이뤄졌다. 결국 구법파의 수장이었던 안성용이 권력을 사유화하였고 신구법파를 모두 처형하는 만행을 저지르게 되었다. 이후 1875년까지 보수구법파의 초우위 체제가 만들어졌다.

안성용은 사실상 왕권을 무력화하고 국정농단을 자행해 국왕의 분노를 사 능지형을 당했으나, 그의 영향으로 조정은 보수구법파가 언제나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는 임나국의 멸망을 초래하였다.

일제강점기

1875년 일본군의 거제도 포격 사건을 계기로 임나국 내에서 일본에 대한 경계 의식이 나오고 있었지만 보수구법파는 이에 반발하여 일본과의 전쟁을 해야한다는 황당한 대안을 내놓았다. 결국 분노한 명성황제 고종에 의해 보수구법파는 모두 숙청당하고 전제군주 체제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고, 1884년 무단으로 영도를 점령한 일본군은 임나국과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였다. 군소국가였던 임나국은 조선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조선 역시 일본 눈치를 봐 아무 대처를 하지 않음으로서 1895년 영도 제2차 조약으로 사실상 임나국은 일본의 영토가 되었다.

명성황제 고종은 끝까지 저항하며 전제군주 체제를 지키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지식인 계층에서도 반발을 사며 1902년 강제 퇴위 당하였고, 1902년 임나국은 멸망해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게 되었다.

1912년 일본군의 식민지배를 피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임나국 망명정부가 세워졌으며, 허정을 중심으로 임나국 지하정부도 세워지게 되었다. 임나국 지하정부는 1930년 성산에서 대봉기를 일으켰다가 일본 정부에 의해 대토벌을 당해 사실상 멸망하였으며, 임나국 망명정부 역시 미국 정부의 탄압으로 인해 무너져가던 상황이었다. 이 틈을 타 일본은 조선과 마찬가지인 문화통치 정책을 펼쳐 임나국을 사실상 일본화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2차대전으로 인해 미국이 임나 망명정부를 지원하게 되었고 2차대전에서 일본이 패배함에 따라 임나 망명정부가 임나국의 임시 정부 세력으로 집권하게 되었다.

1949년 임나국 임시의회는 만장일치로 이최응을 국무총리로 선출하였으며 황실 후손인 박선을 황제로 추대하였다. 이최응은 종친가였던 관계로 3개월만에 허정에게 정권을 물려주었고, 1대 총선에서 장택상이 총리로 선출되게 되었다. 1962년까지는 허정과 장택상을 필두로한 망명정부파 인사들이 번갈아가며 집권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막 독립한 임나국은 대한민국에서 넘어오는 난민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경제가 무너졌고 이에 따라 불만감이 증폭되었다.

군사정권

박정희 장군은 1962년 6월 4일 긴급군사정을 선포하고 구정부 인사들을 모두 체포하여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스스로 국무총리 직에 올랐으며, 이후 총선에서도 근소하게 망명정부파 인사들이 창당했던 민주당을 꺾고 이겨 민주적인 방법으로 총리로 취임하였다. 박정희 총리는 개헌을 통해 총리 3연임제도와 총리직선제를 도입하였다.

박정희 총리는 강력한 리더십과 체계적인 경제 정책으로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켜, 한때 지지율이 80%를 넘나들정도로 인기를 얻었었다. 그러나 임일 식민협상으로 인해 지지를 잃었고 항의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모습을 보이며 독재자의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결국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박정희 총리는 총리 3선이 어렵다고 판단해 스스로 총리직을 사임하고 정권을 민정으로 이양하겠다는 5.12 선언을 발표했다. 그해 12월의 총선에서 김영삼이 이끄는 신민주당이 압승함에 따라, 김영삼이 총리로 취임하게 되었다.

민주화와 현재

김영삼 총리 이후 차례로 김헌규, 이기택, 정주영, 허태열 총리가 집권하였다. 허태열 총리 집권기 동안 경제적 침체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이내 경제 위기를 수습하고 더욱 무역 국가로서 발전하였다. 또한 노무현 총리가 50.4%의 지지율로 당선되어 최초의 수평적 정권 교체가 일어나는 등 민주적으로도 발전하였다.

노무현 총리는 낮은 지지율로 인해 물러났고, 이명박이 2차례 총리를 지냈다. 이후 이명박 총리 재임동안 부총리를 지낸 안대희가 총리를 지내다가 김영춘이 총리에 당선됨에 따라 정권교체가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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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국 역대 황제
1대 2대 3대 4대 5대
태조 박휘곤
선종 박흠
광종 박선
성종 박순
덕종 박도
6대 7대 8대 9대 10대
대종 박신
명종 박정
태종 박덕
세종 박주
인종 박고
11대 폐지
(일제시대)
12대 13대 14대
고종 박덕광
수종 박선
민종 박훈
박진

임나국의 왕실은 제1차 임일전쟁 직후 명장이었던 박휘곤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세워졌다는 점에서 송나라의 왕실과 비슷하며, 또 황제라는 명칭을 썼다는 점에서 자주성을 드러낸다. 1619년부터 현재까지 총 14명의 왕이 즉위했으며, 1902년부터 1945년까지는 일제시대였기 때문에 황제 대신 총독이 국가 원수였다. 광복 이후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황손인 박선이 왕으로 추대되었다. 현재 황제는 인덕황제 박진이다.

1602년부터 2020년까지 43년간을 제외하면 언제나 왕실이 존속했으므로 무려 375년간이나 왕조가 지속되어져온 것이 된다. 평균 제위 기간은 26년 가량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은데 그것은 과거 수많은 왕들이 30년 이상 제위하며 장수하였기 때문이다.

임나국의 황제는 국가원수이지만 일본과 마찬가지로 권력은 없는 상징적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나 형식적으로라도 의회 해산권을 가지고 있고 또 황제의 생일은 공휴일이며, 전국민의 존경을 받기에 권력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의 국가 원수는 국무총리이지만 국무총리는 황제에게 임명권을 받고, 또 의전 서열에서도 밀린다.

정치

국무총리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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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국 역대 국무총리대신
1대 2대 3대 4대 5대
황헌군 (이최응)
허정
장택상
허정
이효상
6대 7대 8대 9대 10대
박정희
박정희
박정희
김영삼
김영삼
11대 12대 13대 14대 15대
김헌규
이기택
이기택
정주영
허태열
16대 17대 18대 19대 20대
노무현
이명박
이명박
안대희
김영춘
임나국 역대 국무총리대신
대수 사진 이름 정당 임기 부총리 대수 사진 이름 정당 임기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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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최응
무소속
1949 - 1951
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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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규
국민당
1983 - 1987
박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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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
국민당
1951 - 1955
장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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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택
국민당
1987 - 1991
서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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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택상
국민당
1956 - 1958
이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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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택
국민당
1991 - 1995
정필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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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
국민당
1958 - 1961
백낙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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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 ju yeong.png
정주영
국민당
1995 - 1999
박태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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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국민당
1961 - 1962
김주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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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열
국민당
1999 - 2003
김용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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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자유국민당
1962 - 1967
김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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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h Moo Hyeon.png
노무현
민주진보당
2003 - 2007
한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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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자유국민당
1967 - 1971
김종필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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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국민당
2007 - 2011
이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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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자유국민당
1971 - 1975
차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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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국민당
2011 - 2015
임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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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국민당
1975 - 1979
이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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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희
국민당
2015 - 2019
원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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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국민당
1979 - 1983
김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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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춘
민솔당
2019 - 2023
김부겸

임나국은 총리직선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10명 이상의 국회의원을 가진 원내정당들의 지도자가 직접선거를 통해 총리로 선출된다. 따라서 이론상 소수당의 대표가 총리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이때에는 소수정부가 출범하며, 다른 의원내각제 국가와는 달리 연정을 통해 의회 다수당을 결성할 필요는 없다. 이렇기 때문에 총리 선출 과정만 놓고 보면 사실상 대통령제 국가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법

정당과 의회

임나국 국장.png | 임나국의 원내정당
지위
정당
이념
스펙트럼
당수
의석수
여당
민솔당 로고.png
민솔당
民主松木黨
사회자유주의
진보주의
중도 - 중도좌파 김영춘
75 / 180 (42%)
야당
국민당 로고.png
국민당
國民黨
보수주의
사회보수주의
중도우파 - 우익 박형준
83 / 180 (46%)
민주노동당 로고2.png
민주노동당
民主盧動黨
민주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중도좌파 - 좌익 박원순
12 / 180 (7%)
자유국민당 로고.png
자유국민당
自由國民黨
권위보수주의
신보수주의
우익 - 극우 최경환
4 / 180 (2%)
임나공산당 로고.png
임나공산당
任那共産黨
유럽공산주의
좌익민족주의
좌익 손석형
2 / 180 (1%)
기타 무소속 : 박맹우(의장,국민당), 강길부, 김도읍, 김두관
4 / 180 (2%)

한때에는 보수정당인 국민당이 일당 독주 체제를 이어갔지만 노무현이 총리에 당선된 이후에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솔당과 보수주의 성향의 국민당의 양당제 체제로 바뀌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제3당으로 진입하기도 했으며, 그 외에도 임나공산당, 자유국민당 등의 군소정당이 있다. 원외정당으로는 임나 공산주의혁명당, 민중민주당, 불교연합당 등의 정당이 있지만 의회에 진입할만큼의 표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의회는 총 180석으로 구성되며, 그중 122명은 한 지역구에서 한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지역구 의원으로, 58명은 전국에서 정당 비례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전국구 의원으로 구성된다. 비례 배분 방식은 동트 방식(D'hondt method)으로 배분되며 봉쇄조항은 3%이다.

내각

임나국 정부.png
임나국 국무총리대신 및 국무위원
정부 모토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
국무총리대신
김영춘
제1부총리 및 기획재정부장관 제2부총리 및 사회기획부장관
김부겸 김의겸
내각관방장관 총무부장관 법무부장관 외무부장관
안도현 추미애 문재인 배영애
후생부장관 농림부장관 경제부장관 국토부장관
민홍철 문성혁 김현수 오중기
환경부장관 방위부장관 부흥부장관 기술부장관
조명래 정경두 전재수 유영민

내각은 임나국의 총리가 조직한다. 임나국의 총리는 내각의 수반으로서 내각의 구성원을 임명하고 해임할 권한을 가진다.

총리 밑에는 제1부총리와 제2부총리가 있으며 제1부총리는 기재부장관을, 제2부총리는 사회부장관을 맡는다. 제1부총리가 제2부총리보다 승계 순위가 높지만 권한은 엇비슷하다.

상임위

임나국 국장2.png
임나국 상임위원회 (상원) | 常任委員會
상임위원회 의장
김형곤
국무총리 부총리
김영춘 김부겸 김의겸
여당 총무 여당 사무총장 제1야당 총재 제2야당 총재
조경태 문재인 박형준 박원순
대법관 국회의장 헌재소장
양형수 김문석 박맹우 문형배
사법 부분 재정 부분 교육 부분 외교 부분
문재인 박남현 고승덕 문대림
행정 부분 문화 부분 교육 부분 보건 부분
원희룡 안도현 김해영 위성곤
전국경제인연합회 민주노총 임나투자협회 임나금융협회
김무성 여영국 김병욱 오철승

행정구역

임나국 국장.png | 임나국의 행정구역
임나국 행정구역.png
성산구 임례구 동래구 사천구
성산현, 북창원현, 진해현, 김해현, 거제현 창녕현, 함안현, 의령현 영도현, 사상현, 동래현, 해운대현 고성현, 서창원현, 통영현, 진주현, 삼천포현, 사천현, 남해현, 진양현
울주구 수성구 금성구 제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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