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벡터 스킨 사용을 권장합니다.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 |||||||||||||||||||||||||||||||||||||||||||||||||||||||||||||||||||||||||||||||||||||||||||
| |||||||||||||||||||||||||||||||||||||||||||||||||||||||||||||||||||||||||||||||||||||||||||
| |||||||||||||||||||||||||||||||||||||||||||||||||||||||||||||||||||||||||||||||||||||||||||
|
제13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第十三代 大韓民國 國會議員 選擧)는 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였다. 1988년 4월 26일 화요일에 실시하였고 총 299명을 선출하였다. 각 지역구에서 1구 1인의 국회의원을 뽑는 소선거구제와 정당 득표를 산출하여 전국구 의원을 선출하는 비례대표제가 시행된 선거였다.
선거 정보
- 총유권자수 : 26,198,205명
- 대통령 : 문익환 (무소속)
- 의석정수 : 299석 (지역구 250석 + 전국구 49석)
- 선거제도 : 소선거구제 + 비례대표제
- 투표일 : 1988년 4월 26일
선거 결과
-
지역구 1위 정당
-
비례대표 1위 정당
지역구
지역 | 민주정의당 | 신한민주당 | 평화민주당 | 한국국민당 | 무소속 | 합계 |
---|---|---|---|---|---|---|
서울 | 13 | 17 | 13 | 1 | 3 | 47 |
인천 | 4 | 2 | 2 | 8 | ||
경기 | 17 | 8 | 2 | 2 | 31 | |
강원 | 13 | 2 | 15 | |||
충북 | 3 | 1 | 6 | 10 | ||
충남 | 4 | 1 | 15 | 20 | ||
광주 | 6 | 6 | ||||
전북 | 1 | 15 | 16 | |||
전남 | 20 | 20 | ||||
대구 | 7 | 2 | 9 | |||
경북 | 21 | 2 | 1 | 24 | ||
부산 | 2 | 13 | 2 | 17 | ||
경남 | 9 | 13 | 2 | 24 | ||
제주 | 1 | 2 | 3 | |||
총합 | 94 | 58 | 59 | 26 | 13 | 250 |
정당 득표율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당선인 | 비고 |
---|---|---|---|---|
민주정의당 | 8,318,960 | 37.4% | 19 | |
신한민주당 | 5,649,775 | 25.4% | 13 | |
평화민주당 | 4,915,749 | 22.1% | 11 | |
한국국민당 | 2,713,671 | 12.2% | 6 | |
기타 | 645,053 | 2.9% | - |
총리 지명 투표
총리 후보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비고 |
---|---|---|---|---|
노태우 | 민주정의당 | 221표 | 73.9% | 당선 |
김영삼 | 신한민주당 | 사퇴 | ||
김대중 | 평화민주당 | 72표 | 24.1% | 낙선 |
김종필 | 한국국민당 | 사퇴 | ||
무효표 | 6표 | - |
반응
민주정의당
총 299석에서 113석밖에 얻지 못하여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되며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이다. 예상된 패배였으나, 예상 이상으로 패하여 노태우 총재에 대한 책임 여론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상 이상의 패배를 당한 민주정의당은 신한민주당, 한국국민당과 연대하여 노태우를 총리로 선출하는 3당 야합을 주도한다.
평화민주당
호남과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구 59석을 얻음에 따라 사실상 이번 선거의 승리자라는 평가이다. 비록 3당 야합으로 인해 총리 지명에서는 소외되었으나, 민주 진영의 주도자로서 그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
신한민주당
김영삼 총재는 선거 직전 자신을 민주진영의 적임자라고 주장하며 압도적 득표를 몰아줄 것을 촉구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12석만을 추가적으로 확보하는데 그치면서 상당히 부진하였다. 특히 지역구에서는 평화민주당에 이은 제2야당의 지위에 만족해야했다.
이 결과는 신한민주당이 노태우의 3당 야합에 참여하는데 큰 영향을 주게 된다.
한국국민당
한국 국민당은 선거 전 호서 지역의 맹주였던 김종필을 총재로 추대하여 박정희 정신의 계승을 주장했고, 예상대로 충청 지역을 휩쓸면서 제3야당으로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