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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관의 모든 인물, 사건, 단체, 국가는 가상이며 현실의 어떠한 인물이나 단체도 찬양하거나 비하할 의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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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대한민국 총통 선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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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한민국의 세 번째 총통 선거. 1958년 8월 5일에 치루어졌다.
전개
3선 개헌의 여파로 야권통합이 추진되어 자유당이 결성되었다. 원래는 야당들 중 근로민주당이 의석 수가 가장 많고 세력도 가장 커서 근민당이 야권통합을 주도하려 했으나 김언봉 간첩 사건로 인해 통합의 주도권은 한국민주당과 조선민주당이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조선민주당 출신 온건 우파 조만식이 통합야당 자유당의 후보로 선출되었다.
민주국민당에서는 현직 2선 총통 이승만이 대선 후보로 나왔다.
후보별 표어
후보 | 표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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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기호 1번) 민주국민당 |
이제는 안정입니다 |
조만식(기호 2번) 자유당 |
3선 저지! 개헌 심판! |
결과
득표순위 | 기호 | 이름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비고 |
---|---|---|---|---|---|---|
1 | 1 | 이승만 | 민주국민당 | 7,363,140 | 53.3% | 당선 |
2 | 2 | 조만식 | 자유당 | 6,422,752 | 46.5% | |
총투표수 | 13,814,522 | |||||
투표율 | 88.9% |
이승만이 3선에 성공하였다. 다만 이전 대선에 비해서 득표율이 크게 떨어졌다.
경상북도와 평안남북도, 전라남북도, 그리고 서울에서는 조만식이 앞섰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이승만이 앞섰다.
분석
이승만의 득표율이 그가 치는 다른 모든 선거 때보다 낮게 나왔는데, 3선에 대한 거부감이 국민들 컸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