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st 1968, 2020 - 2022 | CC-0 |
일본의 주요 선거 |
---|
[ 펼치기 · 접기 ] |
제3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第38回衆議院総選挙 | |||||||||
---|---|---|---|---|---|---|---|---|---|
| |||||||||
투표율 | 81.1% ▲ 6.0%p | ||||||||
선거 결과 | |||||||||
▼
| |||||||||
자민 215석 (36.5%) (37.0%) 218석 신생
| |||||||||
정당 | 지역구 | 비례 | 총합 | 비율 | |||||
신생당 | 180석 | 38석 | 218석 | 37.0% | |||||
자유민주당 | 182석 | 33석 | 215석 | 36.5% | |||||
일본사회당 | 75석 | 20석 | 95석 | 16.1% | |||||
신당 사키가케 | 28석 | 6석 | 34석 | 5.8% | |||||
일본공산당 | 7석 | 3석 | 10석 | 1.6% | |||||
무소속 | 17석 | - | 17석 | 2.9% |
개요
1991년 6월 15일 치뤄진 일본의 중의원 의원 총선거.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민주당, 사회당이 아닌 정당이 집권한 결과를 가져온 선거이다. 연립여당으로 자유민주당이 참여하긴 하였으나 각외협력이었고 이후 1997년까지 정계는 철저히 신생당을 중심으로 흘러갔다.
과정
리쿠르트 사건
이 사건으로 포스트 다케시타라고 불리는 아베 신타로, 미야자와 기이치, 우노 소스케 등 자민당 내 중진들이 대부분 차기 총재선 출마를 포기했으며 다케시타 총재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대장대신이었던 하시모토 류타로가 다케시타를 대신해 총리 후보로 나서게 되었으나 후술할 분당 사태가 벌어지며 자민당 내에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의견이 거세졌다.
제1차 자유민주당 분당 사태
리쿠르트 사건 당시 자민당의 미흡한 대처에 실망한 호소카와 모리히로, 하토야마 유키오 등 젊은 소장파 의원들이 자민당을 탈당해 공명당 소속 의원들과 함께 신생 중도보수 야당인 신생당을 창당한 사건을 의미한다. 자민당 내에서는 조직도 인망도 없는 정치인들의 야합이라며 비난했으나 선거를 3주일 앞두고 나온 여론조사에서 신생당이 자유민주당을 앞지르고 창가학회 역시 적극적으로 신생당을 지지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사회당을 지지하고 있었으나 사회당 내란 사태로 사회당을 떠나게 된 진보 무당층 유권자들도 신생당으로 결집하며 점차 대세는 신생당으로 기울게 되었다.
결과
사회당은 전후 처음으로 100석 미만의 의석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으며 당 해체의 얘기까지 나올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