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신공)

Communist 1968, 2020 - 2022 | CC-0
일본의 주요 선거
[ 펼치기 · 접기 ]
종류 최근선거 다음선거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21회
2022년 7월 10일
21회
2025년 7월 28일
[ 역대 선거 펼치기 · 접기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10회 · 11회 · 12회 · 13회 · 14회 · 15회 · 16회 · 17회 · 18회 · 19회 · 20회 · 2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48회
2021년 10월 31일
49회
2025년 이전
[ 역대 선거 펼치기 · 접기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10회 · 11회 · 12회 · 13회 · 14회 · 15회 · 16회 · 17회 · 18회 · 19회 · 20회 · 21회 · 22회 · 23회 · 24회 · 25회 · 26회 · 27회 · 28회 · 29회 · 30회 · 31회 · 32회 · 33회 · 34회 · 35회 · 36회 · 37회 · 38회 · 39회 · 40회 · 41회 · 42회 · 43회 · 44회 · 45회 · 46회 · 47회 · 48회
재보궐 선거 2022년 중반기
2022년 7월 10일
2022년 하반기
2022년 10월 23일
통일지방선거 19회
2019년 4월 7일
20회
2023년 4월
[ 역대 선거 펼치기 · 접기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10회 · 11회 · 12회 · 13회 · 14회 · 15회 · 16회 · 17회 · 18회 · 19회 · 20회
제3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第39回衆議院総選挙
1991년 6월 15일
38회 중원선
(세대 교대 총선)
1995년 6월 17일
39회 중원선
(소선거구제 총선)
1997년 8월 23일
40회 중원선
(혁신 주도 총선)
투표율 79.3% ▼ 1.8%p
선거 결과

신생 231석 (35.5%)
(41.4%) 269석 자민
정당 지역구 비례 총합 비율
자유민주당 233석 36석 269석 41.4%
신생당 194석 37석 231석 35.5%
일본사회당 72석 11석 83석 12.8%
신사회당 40석 11석 51석 7.9%
일본공산당 2석 5석 7석 1.1%
자유연합 1석 0석 1석 0.2%
무소속 8석 - 8석 1.2%

개요

1995년 6월 17일 치뤄진 일본의 중의원 의원 총선거.

중선거구제가 폐지되고 처음으로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선거였다. 호소카와 총리는 소선거구 도입으로 인한 의원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종전까지 589 의석이었던 국회 의석을 650석으로 크게 늘렸으며 이 정원 수는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배경

소선거구 도입

사회당 분당 사태

무라야마 도미이치의 위원장 취임 이후 당내 좌파 파벌에 대한 축출 및 "사민자유주의"를 기치로 한 우경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도이 다카코 전 총리를 따르는 좌익 계열 의원 상당수가 사회당을 탈당하면서 사회당 분당 사태가 터지고 만다. 이들은 신사회당을 창당했고, 기존에 사회당을 지지하던 공무원 노조 등 몇몇 조직들의 지원까지 받아내었다. 신사회당은 사회당의 지지율과 비등하거나 심지어는 그것을 넘어서는 기록을 내며 사회당을 대체할 새로운 혁신 정당으로서의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선거 결과

소선거구제 도입의 결과 선거구가 대폭 늘어나 신생당 측에서도 큰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고베 대지진 등의 사건에서 호소카와 내각이 무능한 대처를 보이며 지지를 일부 상실한데다가 신생당 후보들이 자민당 후보에게 근소한 표차이로 패배하며 비례대표에서 1위를 기록했음에도 결국 제2당의 지위를 차지하며 사실상 패배했다. 그나마 비례에서 1당을 한 덕택에 자유민주당 측에서도 호소카와의 총리 연임을 동의했지만 이전까지 각외협력으로만 참여했던 자유민주당이 연립여당의 지위로 올라서도 부총리직까지 하시모토 류타로 총재가 차지하며 호소카와 총리의 위신에는 큰 금이 갔다.

일본사회당은 완패했다. 비례대표에서는 신사회당에게도 밀리며 비례 4위의 성적을 기록했고 대다수 선거구에서 패배해 창당 이후 최악의 성적인 83석이라는 의석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위원장에게도 책임의 화살이 쏟아졌으나, 이미 1995년 이후 예정된 참패였기에 의외로 무라야마의 사임을 원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위원장은 사퇴를 하는 대신 당내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