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신공)

Communist 1968, 2020 - 2022 | C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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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第41回衆議院総選挙
1997년 8월 23일
40회 중원선
(혁신 주도 총선)
1999년 11월 27일
41회 중원선
(세기 종식 총선)
2003년 11월 22일
42회 중원선
(시대 개막 총선)
투표율 80.3% ▲ 0.2%p
선거 결과

사회 341석 (52.5%)
(40.5%) 263석 자민·공명
정당 지역구 비례 총합 비율
일본사회당 297석 44석 341석 52.5%
자유민주당
공명당
195석 39석 263석 40.5%
23석 6석
신사회당 18석 5석 23석 3.5%
자유당 9석 2석 11석 1.7%
일본 공산당 3석 4석 7석 1.1%
남방의당 1석 0석 1석 0.2%
무소속 4석 - 4석 0.6%

개요

1999년 11월 27일 치뤄진 일본의 중의원 의원 총선거. 1999년을 단 1개월 남기고 치뤄졌기 때문에 "세기 종식 총선"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배경

신생당-자유민주당 합당

하토야마 유키오 신생당 대표는 1999년 연초 오부치 게이조 자유민주당 총재와 회동을 가졌으며 신생당과 자유민주당의 재합당 의사를 타진하였다. 1991년 제1차 자유민주당 분당 사태 이후 8년만의 재결합이었다.

그러나 여론은 싸늘했는데 이럴거면 왜 탈당을 했냐는 의견과, 사실상 정부 주도의 개혁에 반대하기 위한 야합이 아니냐는 압도적이었고 신생당 내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이 대두됨에 따라 상당수의 의원이 사회당으로 당적을 옮긴 상태였다.

오자와 이치로의 연정 파기

자유민주당의 과반 미달성으로 인해 자유당사회당이 극적으로 연합하여 출범한 내각이긴 하였으나 처음부터 내각은 삐걱였다. 우선 각외협력 관계에 있는 신사회당을 어찌 어찌 합치더라도 과반인 325석을 단 3석 넘긴 의석을 확보한데 그친데다가 자민당 내 실세였다가 권력 투쟁으로 밀려나 신당을 창당한 오자와 부총리와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의 정치적 견해는 크고도 넓었다.

더군다나 신사회당은 극좌파적인 투쟁 방식을 고수하면서 자유당은 물론 사회당 내 보수파들의 심기까지 건드렸고 단일 법안에서도 사사건건 충돌하며 사실상 무라야마 내각은 코마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와중에 신사회당이 자유당-사회당 연립내각이 주도한 PKO법 추진에 완강한 반대 의사를 드러내자 결국 오자와 이치로 부총리는 혁신 계열과의 연정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1999년 가을 내각을 전격 탈퇴하고 만다.

하지만 오자와의 연정 탈퇴는 개혁 입법 발목 잡기로 해석되어 여론이 사회당에게 유리하게 흘러간데다가, 오자와의 연정 탈퇴 직후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사퇴 의사를 밝히던 도중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며 동정 여론이 일었다. 사회당은 에다 사부로 총리의 아들인 에다 사쓰키 의원을 내세워 "개혁 지속론"을 내세운다.

선거 결과

사회당의 승리, 보수 세력의 참패라고 풀이할 수 있다. 자유민주당과 공명당은 합쳐서 263석에 그치며 패배한 반면 사회당은 341석을 얻으며 단독 과반을 달성했다. 신사회당 역시 유탄을 맞아 의석수가 감소하였으므로 신임 에다 사쓰키 총리는 극좌, 보수 세력의 "발목 잡기"에 눈치를 보지 않고 무리 없이 자신의 리버럴-자유주의적 개혁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오자와 이치로의 자유당은 의석수 확보를 위해 전력을 다했으나 지역구에서 달랑 9명이 당선되는데 그치며 대참패하였다. 결국 이로 인해 오자와 이치로는 오랜 기간동안 중책을 단 하나도 맡지 못하며 아웃사이드에서 겉도는 그저 그런 중진 의원의 지위에 만족하는데 그쳐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