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다이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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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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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적 러다이트주의
권위주의적 러다이트주의
인물/단체
새질서회
이론
사건
정당
국가
(미승인국, 반정부 단체 포함)
붕괴된 국가
(미승인국, 반정부 단체 포함)
상징 · 표어

개요

카트만두 폭동(2035 Kathmandu Riots)는 2035년 네팔 카트만두의 군주주의자들에 의해 일어난 폭동이다. 이 폭동으로 후에 네팔에 통제기술주의 왕정이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사건의 진행

배경

네팔 정부의 지진 대응 실패

시위 1개월 전, 네팔에서는 20년 만에 또 한번의 대지진이 발생하여 수도 카트만두 역시 크나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매우 미숙하였다. 시위 당일까지도 카트만두 이곳저곳은 폐허가 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을 정도였다.

이런 정부의 대처는 쿠데타 당시의 라오스의 사례와 같이, 대규모 러다이티즘 시위를 야기하게 된다.

경찰의 과잉진압

300년 동안 왕국을 유지하던 네팔이 2008년 급작스럽게 공화국이 됨에 따라, 왕정복고를 주장하는 군주주의자들은 간혹 수도 카트만두에서 대형 시위를 벌이곤 했다. 이 시위에서 종종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이 발생하였는데, 가끔가다 부상자만 발생하던 이전의 시위와 달리 2035년 2월 11일의 시위에서는 14세 소녀가 경찰의 과잉진압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분노한 시민들은 왕정의 부활과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를 외치며 거리로 달려 들었고, 총기까지 사용하는 과격 시위를 펼쳤다.

러다이트주의자들의 개입

놀랍게도 시위자들에게 총을 쥐여준 이들은 러다이트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강력한 지도자가 네팔 내의 기술 발전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러다이티즘 정권을 세우기를 원했는데, 이는 러다이트주의자들이 군주주의자들과 연합하여 왕정 러다이티즘 정권을 세우기로 약속하는 계기가 된다. 네팔 내의 공화주의자인 공산주의자들은 끊임없는 네팔 공산당의 분열과 정치적 혼란에 지지를 잃게 된 참이었다.

네팔 대통령은 이 사실을 접하게 된 후 즉시 자국 내 러다이트주의자들을 잡아 들였지만, 시위는 카트만두 전체로 번져 나갔고, 결국 대통령은 2년 내에 입헌군주제를 도입하고, 러다이티즘 정당을 합법화기로 약속하였다.

결과

2년 뒤인 2037년, 네팔 연방 민주 공화국은 약속대로 네팔 왕국으로 회귀하였고, 그로부터 3년 뒤 실시된 선거에서 러다이트주의 정당인 네팔 단결당이 승리하면서 2040년, 네팔은 네팔 사가르마타 왕국으로 국호를 고쳤다.

이렇게 네팔에는 러다이트주의 왕정이라는 기괴한 정치 구조가 생겨났는데, 이는 곧 강력한 지도자가 나라의 기술 유입을 엄격히 통제하는 통제기술주의의 시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