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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국 협화원
台和國協和院
태화국 협화원 협의장내 모습.
태화국 협화원 협의장내 모습.
당직자
당수 현태왕 정연 (1925 ~ 1929)
고태왕 정예 (1929 ~ 1941)
선태왕 정유원 (1941 ~ 1945)
의장 이세환 (1925 ~ 1931)
정석운 (1931 ~ 1933)
대유희 (1933 ~ 1935)
유영현 (1935 ~ 1941)
서훤 (1941 ~ 1945)
역사
창당 1925년 6월
예하 부문
중앙당사 현경

태화국 협화원(일본어: 台和國 協和院)은 위태화국 시기 결성되었던 자치, 정치 조직으로서 태화왕국협화원, 태화협원 또는 줄여서 협화원으로 불린다. 명목상의 원수(院首)는 위태화국 시기의 재위한 역대 태화국 국왕들이며, 중앙 당사는 현경에 위치하였다.

결성 및 성격

위태화국 건립후 결성된 자치주민조직이 연원이며, 1925년 6월 3일에 태화국 국무원 회의장에서 결성식을 갖추고 출범하였다. 협화원은 태화국 전역의 거주하는 전 인민을 통솔하고 관리하기 위한 다인종적 통합기구였으며, 당시 태화국이 내놓은 건국 정신을 실천할 거의 유일적 사상을 통한 교화적, 정치적 실천민중단체로, 태화관방공사의 지원과 지도를 받고 설치되었다. 이때문에 협화원은 난립하던 당시의 정당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실권을 보유했던 정치적 조직체였으나, 당시에는 정당으로서 인정되지 아니했다. 그럼에도 사실상 정당으로서의 취급을 인정받으면서 현재 학계에서도 정당으로 분류되고 있는 조직이기도 하다.

아래는 협화원에서 내걸은 강령이며, 이는 당시 태화국 국무원에서도 실천할 교리 이자 통치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 1. 건국정신에 대한 선양(宣揚)
  • 2. 만민협화의 실현
  • 3. 인민생활의 증진
  • 4. 선덕달정(宣德達情)의 성화
  • 5. 인민충원의 완비

조직

본부 기구는 태왕(台王)인 태화국 국왕들이 명예원수를 맡았으며, 태화국 총무국의 국장이 고문직을, 국무총리대신이 의장직을 맡는 등 관제 조직으로서의 성격을 띄고 있었다. 이중에서 태화인을 포함하여, 조선인과 타이완인을 비롯해 류큐인과 중국인까지 폭넓게 참여하는 범국민적 단체로서 존속하였고, 이때문에 태화국의 정치에 많은 관여를 시도했다.

특히 협화원은 정부 조직에 대응되는 중앙 기구와 지방 조직을 갖추었고 형식적이기는 하나 의결 기관으로서 각 지방과 지역 별로 지방협회가 설치되고, 최고 의결기관인 협화원 본부는 사실상의 국회 역할을 대행하였다.

활동

태화국 협화원은 태화 총독부 시기부터 활동한 밀정 조직인 태화 협조회를 흡수하여 항일 세력에 대한 귀순 공작 및 밀정 활동을 관장했다. 또한, 향토연대제를 실시하여 전체 지역 주민을 하나의 연대조직으로 묶어서, 치안에 대한 연대책임을 지웠다. 이로 인해 가족이나 이웃 사이에 고발이 횡행하게 되었고, 지역 사회에 혼란을 야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집단부락 건설도 주요 활동 중 하나였다. 오지의 작은 마을이나 단독 가옥을 철거시키고 주민들을 평야 지대나 도시 빈촌으로 강제 이주시켜 감시가 용이한 집단부락으로 재편성하는 사업을 추진하였고 이로인해 소작농과 도시 빈민층이 증가하고 위생적 문제가 대두되었다.

태화국 협화원의 성립과 활동으로 인해 태화 지역의 항일 활동은 크게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고, 나아가 현재까지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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