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팍스 브리타니카 세계관의 역사에 대해 다룬 문서이다.

나폴레옹 전쟁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영국, 프로이센, 이탈리아 등은 프랑스 혁명의 확산을 막기 위해 프랑스 혁명 전쟁을 선포했다. 기나긴 전쟁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등장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프로이센, 이탈리아를 꺾으면서 프랑스 내에서 압도적인 신임을 얻었다. 영국은 나폴레옹을 막기 위해 애썼으나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기록적으로 참패해 사실상 해군이 몰살당하고, 호레이쇼 넬슨을 비롯한 군 수뇌부가 거의 다 사망했다. 트라팔가르 해전에서의 승리 이후 프랑스는 브리튼섬에 상륙하였으며, 영국군은 연전연패를 기록하여 사실상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전하였다. 영국의 정부와 왕실은 더이상 국체를 보존하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런던을 버리고 신대륙으로의 천도를 결정하였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나폴레옹은 이후 러시아와 평화 조약을 맺고, 프랑스 중심의 패권 시대를 열었다.

산업혁명

18세기 후반 제임스 와트에 의해 개발된 증기 기관은 산업혁명을 불러일으켰다. 증기를 이용하여 효율적인 석탄 채굴이 가능해졌고, 1820년대에는 증기 기관차가 처음으로 사용화되어 물려 혁명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은 영토가 넓고 자원이 풍부했던 영국 신대륙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1840년대에는 효율적인 기계가 대다수 발명되어 기존에 수공업으로 느리게 진행되던 일들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행되었다. 당연히 공급이 폭증하였고 이에 따라 가격도 폭발적으로 낮아지면서 수요도 폭발했다. 수요가 폭발하면서 공장 노동자수도 들어났으며, 뉴욕, 파리, 베를린 등 세계의 주요 대도시들은 인구가 폭증하며 산업화 시대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급속한 산업화는 빈부격차의 극대화를 불러왔다. 대다수의 노동자들의 16시간 노동을 하며 최저 수준의 임금을 받는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의 인권 침해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 와중에 등장한 사회-경제학자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은 여러 노동자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들불 번지듯이 퍼져나갔고, 노동조합과 같은 노동자 인권을 위한 단체들이 등장하였다.

세계 전쟁

프로이센은 나폴레옹 전쟁 당시 패배하며 그 영향력이 극도로 줄었지만, 1840년대 공업화를 통해 재기하였다. 1850년대 독일은 프랑스를 제치고 유럽 내에서 가장 강력한 공업 국가로 떠올랐고 주요 도시마다 노동자로 넘쳐났다. 1870년대, 철혈수상 비스마르크는 북독일연방을 통해 독일을 통일하고 자만과 나태에 빠져있던 프랑스 제국을 침공하여 항복을 받아내었다. 이후 유럽 패권의 주도자는 프랑스 제국에서 독일로 넘어갔다.

이 시기 산업혁명을 통해 패전의 상처를 씻고 다시 패권국으로 부상한 영국은 아프리카와 동아시아를 식민지화하며 그 영향력을 확대해갔다. 특히나 1870년대 청나라와 영국의 전쟁은 독일과 프랑스에게 신대륙 세력에 대한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1900년대 초반 독일제국은 영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청나라와 연합했고 10년 뒤에는 숙적인 프랑스와 이해 관계가 맞아 일시적으로 영국을 견제하기 위한 동맹을 체결하였다. 한편 독일과 경쟁하던 러시아와 일본 등은 영국과 연합하였다.

1915년, 영국의 상선이 의문의 사고를 당해 침몰하자 영국 정부는 이를 독일의 공격으로 간주하고 독일, 청나라, 프랑스 동맹에 선전포고했다. 이를 세계 전쟁이라고 부른다. 세계 전쟁에서 우세를 잡은 것은 영국 진영으로, 1917년 청나라를 항복시키고 청나라 황제로부터 천자의 옥새를 건내받았으며, 1918년에는 북아프리카를 전부 차지함과 동시에 이탈리아 남부에 상륙하였다. 그러나 지속되는 전쟁과 1919년 이후 독가스 살포로 인한 영국의 부진은 영국, 러시아, 일본 국민에게 부담감을 안겨주었다. 1919년 12월 러시아 내에서 혁명이 일어나며 왕정이 폐지되자 영국 정부는 이에 대해 위기 의식을 느끼고, 마찬가지로 과도하게 국력을 소모하였던 독일 및 프랑스와 휴전 협정을 체결하였다.

세계 전쟁 이후 영국은 중화제국을 선포함과 동시에 칭제건원하며 브리타니아 제국으로 재출범했다.

대공황

전후 브리타니아 제국은 전쟁 특수를 누리면서, 군수물품을 비롯한 각종 물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면서 호황을 누렸다. 유럽의 폐허를 복구하는데 영국에서 생산된 물품들이 사용되면서 전후 10년간 영국은 전례없던 경제의 최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유럽의 폐허가 복구되어나가자 자연스럽게 영국제 물품의 수요는 떨어질 수 밖에 없었는데 줄어든 수요량을 공급량이 맞춰주지 못하며 초과 공급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현상은 1932년 영국발 대공황을 불러일으켰다. 영국발 대공황은 영국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의 경제들을 모두 초토화시켰다. 영국은 식민지 블록경제와 뉴딜 정책을 통하여 대공황을 극복해나갔고, 신생 국가 소련은 국가 주도의 공업화로 대공황을 해결했지만 유럽과 일본은 치명타를 맞고 경제 파탄에 이르렀다. 유럽과 일본에서의 경제 공황은 정치적 극단파의 등장을 야기했다. 유럽은 1935년 이탈리아 공산화를 시작으로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주요 국가들의 공산화되는 과정을 겪었고, 일본은 군부의 폭주로 인하여 민주정이 종식되고 전체주의 군사정이 수립되었다.

브리타니아 제국-일본 전쟁

일본 군부의 폭주는 중국과 태평양 일대의 식민지를 접수하고 있던 영국의 심기를 건들기 충분하였다. 영국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석유 수출 금지령을 내렸다. 영국에서 석유의 70%를 수입하고 있던 일본제국에게 이는 사실상의 사형 선고였다. 일본제국은 1942년, 석유 금지령을 철폐하고 패권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브리타니아 제국의 식민지였던 중화제국을 공격하였다.

초반에는 아시아내 패권을 쥐고 있던 일본제국이 영국군을 태평양 내 섬에서 몰아내고 난징까지 진격하며 승승장구하였다. 그러나 일본에 비해 훨씬 물자적으로 우위에 있던 영국은 1943년 재반격을 통해 중국 관내에서 일본을 몰아내고, 일본에 의해 점령되었던 섬들을 수복하였으며 더 나아가 오키나와, 조선, 대만 등의 영토도 점령했다. 결정적으로 1944년~1945년 진행된 영국의 일본 상륙작전으로 인해 일본은 경제적, 외교적, 정치적으로 영국과 전쟁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고, 일본이 1945년 영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포하며 영일전쟁은 종료되었다.

브리타니아 제국-일본 전쟁을 통해 브리타니아 제국은 일본, 대한국, 탐라, 류큐 등을 식민화하며, 동아시아의 패권을 완벽하게 장악하였다.

냉전

1930년대 공업화 정책으로 대공황을 극복하고 신흥 강대국으로 부상한 소련은 1940년대 공산화된 유럽의 주요 국가들을 포섭하면서 새로운 패권국으로 올라섰다. 제국주의 체제의 종식을 목표로 하고 있던 소련은 1950년대 브리타니아 제국의 식민지 독립 운동을 지원하였다. 이는 영국에게 있어서 큰 위협이었던만큼 영국은 소련을 반민주주의 독재 체제라고 공격하며 양국간의 체제 경쟁이 시작되었다. 1960년대, 소련의 지원을 받은 인도차이나 독립군이 들고 일어섰을때 영국이 잔혹한 진압을 실시해 국내외 큰 파장을 일으켰다. 군사적으로 영국이 승리하긴 하였으나 사회주의의 부상은 영국에게 있어 구체제의 존속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리하여 영국 민주당 내각을 중심으로 높은 수준의 자치권과 인종차별적 입법 철폐, 사회 진보 정책 등이 이뤄진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

데탕트

지속된 냉전 속에서 영국이 경제적 우위를 점하였으므로 현실적으로 사회주의 세력이 영국에 대항하기 어렵다는 여론이 존재했다. 이와중에 개혁파 니기타 흐루쇼프가 축출되며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유럽권 사회주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소련의 사회주의 노선에 반대하고 영국과 손을 잡는 현실적인 대외 정책이 이뤄졌다. 이로 인하여 1960년대 말까지 치열하였던 영국과 소련의 냉전은 영국-유럽-소련의 삼파전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유럽의 현실 외교 노선 역시 한계가 컸다. 기존 경제-정치 체제의 개혁이 미비하였으므로 1980년대 들어 국민들은 영국과 친하게 지낼바에 아예 민주주의로의 이양을 추구하자면서 반정부 시위를 일으켰다. 1990년대 대혁명을 통해 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차례로 무너짐에 따라 데탕트 체제 역시 끝나고 포스트 냉전 체제가 시작되었다.

신냉전 체제

1990년대 소련과 그 동맹국들은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으로 개혁개방을 추구했다. 비슷한 시기 유럽 역시 개혁개방을 시도하나 실패하여 결국 민주화 혁명 끝에 공산주의 블록이 차례 차례 붕괴하였다. 이때 소련은 공산주의 우방을 돕는다는 것을 이유로 유럽 침공을 감행하여 공산주의 붕괴 속에서 혼란스러웠던 유럽을 전부 흡수했다.

소련의 유럽 흡수는 1970년대 이후 영향력이 실추된 소련의 영향력을 재복구시켰으며, 영국에게는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영국의 우위 속에서 소련이 유럽 합병을 통하여 영향력을 회복한 것은, 조용한 혁명 이후 해빙 분위기를 맞고 있던 영국의 사회를 다시 경직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