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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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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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나라 대한제국 대한제국
시청소재지 평양광역시 유경구 유경대로 351 (장수왕동[1])
시장 박윤조 (3선, 국민의당[2])
인구
인구 2,592,110 명 (2016년)
지리
기후 Dwa
상징
시목 버드나무

반만 년 역사의 땅, 대동강을 품은 평양

 
— 민선 6기 시정의 캐치프레이즈.

평양광역시 (平壤廣域市)는 대한제국광역시 중 하나이다. 1950년부터 1991년까지 조선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3]의 명목·실질적 수도였다. 1991년 통일 이후 직할시로 분류되었으나, 1995년 광역시로 재편되었다.

개요

명칭

고려 시대에는 서쪽의 서울이라는 뜻의 서경 (西京)이라고 불렸으며, 조선 시대에는 버드나무가 많이 자란다고 하여 유경 (柳京, 류경)이라고도 불리었다. 서경구, 유경구, 유경대로, 소백유경호텔의 과거 이름인 '류경 호텔'이 그 흔적이다.

지리

역사

평양광역시 행정구역 변천사
대한제국 서경부
(大韓帝國 西京府, 1902년)
에마뉘엘 제국 평안남도 평양시
(平安南道 平壤市, 1910년)
대한제국 평양부
(大韓帝國 平壤府)
대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평양직할시
(平安南道 平壤市, 1950년)
대한제국 평양광역시
(大韓帝國 平壤廣域市, 1991년)

지금은 박여러 나라의 수도와 중요 도시로서 자리매김해왔다. 고조선, 그 중에서도 위만조선의 왕검성이 평양에 자리하였다. 위만조선이 한나라에게 멸망당한 이후 한사군의 낙랑군이 설치되었으나, 낙랑군은 고구려에 의해 격퇴되었다.[4] 장수왕 재위 때부터 고구려의 두소 (수도)로서 발달하였으며, 평원왕 대에는 오늘날 평양성으로 익히 알려져 있는 "장안성"으로 수도를 다시 천도한다. 고구려 멸망 이후 한동안 몰락했으나, 고려 시대에 왕건이 호족 견제를 목표로 평양 땅에 "서경" 중건을 계획하면서 다시 발달한다. 한때 서경은 독립적인 지위를 가진 수도로서 서경을 중심으로 한 정치 세력까지 발달했으나, 이들은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이 실패하면서 서경과 함께 몰락한다. 몽골의 지배 때 동경부가 설치되었다가, 고려 땅으로 환원된 뒤 공민왕대에는 평양부로 개편된다.

조선 시대에는 평양부로서 북부 지방 최대 도시로 성장하였으며,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의 평안감사가 평양에 주재하면서 평양부윤(=평양시장)을 겸하며 위세를 떨쳤다. 이후 대한제국에서도 평양부를 서경부로 개칭하고 풍경궁을 건립하며 제2의 수도로 육성코자 했으나, 에마뉘엘 제국의 식민지화로 수포로 돌아갔다. 1950년, 김일성과 소비에트당의 반란으로 시작된 한국 전쟁으로 평양 시가지가 크게 초토화되면서 대부분의 역사적 문화재가 소실되었으며, 이후 대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 '평양직할시'로서 사회주의식 개발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정을 거치며 통일된 이후에는 "박제도시"[5]라는 자조섞인 한탄을 들었을 정도로 쇠락한 상태였으나, 귀향민 출신의 박윤조 시장이 3선을 하면서 대대적인 개발과 문화재 복원을 거치며 부흥 중이다.

행정구역

구도심 지역인 본평양과 나머지 북평양, 서평양, 동평양 지역으로 나뉜다.

본평양

구 중구역, 보통강구역, 평천구역을 통합한 행정구역이다. 평양광역시청, 국립평양도서관, 보통문 (보통문동), 풍경궁 (대한제국 황실 이궁), 국립평양대학교 의학대학 (평양대학교 병원) 등이 위치하고 있다. 노년층들과 귀향민들이 많이 살고 있어, 자유한국당사회노동당의 지지율이 엇비슷하게 나온다.
구 만경대구역. 대한소비에트역사관 (구 만경대), 평양월드컵경기장, 평양가톨릭대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서쪽의 대동군과의 경계 지역은 농촌과 전원주택 지대가 혼재되어 있는데, 산수지구가 개발되면 변모할 것이다. 고평동은 낙랑구 서부와 연담화되어 있어 (고평대교) 공업지대와 평양물류대단지가 발달해있다.
구 대동강구역, 동대원구역, 선교구역. 양각도능라도 또한 대동강구 관할이다.[6] 국립동평양극장, 평양교육대학교, 평양종합운동장 (능라도), 평양헤링턴엠버서더호텔 (양각도, 구 양각도국제호텔) 등이 있다. 앞서 열거한 랜드마크들을 제외하면 구도심 지역답게 주택과 공장들이 혼재해있는 지역이 많으며, 강변 지역을 시작으로 아파트 대단지로 열심히 재개발되는 중이다.

북평양

구 형제산구역. 형제산이 있는 것에서 유래하여 소비에트와 무관하므로 지명이 존치되었다. 안주역 방향과 평성역 방향 노선이 갈라지는 서평양역이 소재해있다. 서평양역을 중심으로 하는 업무지구를 제외하면 거의 단독주택 단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서포동은 손꼽히는 부촌 지역이다.
구 순안구역. 원래 순안군이었으나 순안국제공항 개항 이후 평양시로 편입되었다. 애초에 순안공항 외에는 별 볼일이 없는데다 순안공항이 평양국제공항에 기능을 이양하고 폐쇄될 예정이어서, 2019년 이후에는 평양광역시에서 제외될 예정이나 주민들의 반발이 매우 큰 상황.

서평양

평양에서 가장 젊은 곳. 낙랑신도시 개발과 숭실대학교 평양캠퍼스, 평양과학기술대학교, 유경대학교 낙랑캠퍼스 등의 대학가로 인해 20대, 30대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며, 평양고속버스터미널 ( 대동강역), 평양판 여의도로 육성되고 있는 두루섬이 이 곳에 자리하고 있다.[7] 대동강변 일대에는 서경구, 남포광역시 대안구와 함께 대동강공업단지평양테크밸리가 조성되어 있어, 많은 기업들이 유치되어 있다. 인구수가 50만에 육박하여 분구 떡밥이 돌고 있는데, 자치구 신설을 위해서는 의정원에서 법률을 개정해야해서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일단 선거구는 2개이며 현재의 인구 증가세대로라면 다음 총선에서는 '병' 선거구 설치도 어렵지 않아보인다.

경제와 산업

교통

도로 교통

철도 교통

도시철도

도시철도 1~5호선과 트램,경의선 등등이 절찬리에 운영 중이다.
1호선:
2호선:
3호선:
4호선:
5호선:
경의선:
트램 1호선:
트램 2호선:

항공 교통

대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당시에는 순안국제공항이 평양과 대한 소비에트의 관문 역할을 해왔으나, 도시 발전과 맞물려 2009년 평안남도 평원군 서안면 인공섬에 평양국제공항이 개항하면서 그 기능을 이양하고 2019년까지 폐쇄될 예정이다. 현재 1개 활주로는 철거되었다.

정치

평양광역시 개표 결과
정당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사회노동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후보 문재인 홍준표 김선동[8]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득표율 19.1%
유경구 31.2% 34.6% 17.0% 20.6%
모란봉구 41.3%
형제산구 40.8%
대동강구 42.6%
서경구 43.0%
순안구 38.2%
용성구 39.2%
은정구
삼석구
사동구
승호구
낙랑구 54.3% 10.1% 7.2% 10.8%
역포구
강남군

김일성 신화의 소멸을 짐작해볼 수 있는 곳.

조선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이하 '소비에트')의 수도로서, 조선로동당 (조선노동당) 핵심 요원을 비롯한 소비에트 기득권층이 모여사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통일 직후까지만 해도 조선로동당의 급조된 후신 정당인 사회노동당의 텃밭으로서 대한제국 제14대 의정위원 선거 (1992년)와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1995년)에서 사회노동당 후보들에게 압도적인 몰표를 주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귀향민[9]과, 평양 개발에 따른 이남 출신 이주민들의 증가로 이남 출신 정당들도 꾸준히 득표수를 늘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까지 사회노동당에 대한 평양시민들의 지지율은 압도적이었다. 문민내각이 김일성과 전두환, 노태우를 구속 재판해 파문이 일었던 대한제국 제15대 의정위원 선거 (1996년)에서는 김일성과 그 일가의 부정부패가 만천하에 폭로되었음에도 불구, 일명 '김일성 특검'에 의해 연좌제처럼 덩달아 재산을 몰수당할 것이라는 기득권층들의 불안심리를 사회노동당이 십분 자극하여, 귀향민이 많은 대동강구를 제외한 (신한국당 이영표 의원 당선) 평양시내 전 의석을 사회노동당이 석권하였고,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1998년)에서도 사회노동당 김만철 (조선노동당 제2당비서 출신) 후보가 다른 후보들을 압도적인 표차로 (87,231표) 누르고 당선되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는 정치 지형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신도시 개발과 세대의 자연스러운 교체로, 김일성이나 소비에트와 접점이 없는 젊은 인구들이 증가하고, 평양 인구의 물갈이가 지속되면서 표심이 달라진 것. 이러한 양상은 국민의 내각 (김대중 내각)이 의욕차게 추진한 평성신도시의 배후 지구인 용성구·은정구·삼석구나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낙랑지구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사회노동당과의 정면 대결로 이 지역의 두 의석을 석권한 것을 시작으로, 2004년 대한제국 제17대 의정위원 선거에서는 사회노동당이 기권을 선언하며 발을 뺐던 대한제국 황실 폐지안 결의에서 사회노동당까지 덩달아 역풍을 맞으며 열린우리당이 3개 의석을 제외한 전 선거구에서 승리했다.[10] 그러나 5개 선거구의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형에 처하자, 실망한 시민들이 표심을 바꾸면서 2006년 재보궐선거에서 사회노동당과 한나라당이 대부분의 의석을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2007년 대한제국 제17대 총리대신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평양 구도심 개발" 공약을 걸어 43% (1위)의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사회노동당에서 이명박 지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11]

사회노동당에서 구 소비에트계가 무너지고 급진 NL계가 당권을 잡은 뒤에 열린 2008년 대한제국 제18대 의정위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구북한 지역 양보 정책에 힘입어 사회노동당이 유경구와 낙랑구를 제외한 전 의석을 탈환하는데 성공하였다. 2012년 총선에서는 문풍의 힘을 등에 업은 민주통합당과 접전을 펼쳤다.

2016년 제20대 의정위원 선거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분열 분위기를 타고 사회노동당이 압승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구도심 지역인 유경구에서는 후보 난립 속에 새누리당 안경흠 의원이 승리하고, 신도심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에게 의석을 내주며 불과 5개 의석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이 중 순안구 의석은 사회노동당 리종찬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형에 처하면서 상실했다.

2017년 제19대 총리대신 선거를 앞두고, 무소속 박윤조 시장과 더민주의 이원석 (모란봉구)이 손학규를 따라 안철수 지지를 선언하며 국민의당에 입당하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바른정당으로 분열된 상태에서 치러진 2017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는 순안구 선거구에 정민교 바른정당 당협위원장이 당선되며 국민의당바른정당이 최초로 대동강 이북 지역에 진출하게 되었다.

한편으로 사회노동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양쪽에서 눈치만 보는 모습을 보여주며 비난을 받았고, 그 결과 제19대 총리대신 선거에서는 전 지역에서 문재인 후보가 평균 45% 득표율로 1위를 거두고[12], 사회노동당-민중연합당 단일화 후보인 김선동 후보는 안철수 후보의 뒤를 이은 19%밖에 얻지 못하며 사회노동당의 지지 기반이 사실상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의정위원

대한제국 평양광역시 제20대 의정위원
유경구 모란봉구 형제산구 대동강구 서경구 순안구
안상흠 이원석 리이준 김완우 양윤환 정민교
용성구·은정구·삼석구 갑 용성구·은정구·삼석구 을 사동구·승호구 낙랑구 갑 낙랑구 을 역포구·강남군
소석찬 가경구 권표섭 윤호원 박종학 정영창


각 자치구별 역대 의원에 대해서는 각 자치구 항목의 정치 단락을 참조할 것.

문화

각주

  1. 1991년 이전에는 "중구역 해방산동".
  2. 대한제국 제19대 총리대신 선거를 앞둔 2017년 3월 22일, 안철수 지지를 선언하면서 국민의당 입당.
  3. 1921년 ~ 1950년, 1979년 ~ 1991년까지는 대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4. 낙랑구 (구 낙랑구역)가 이 낙랑군의 유적지가 발굴된데서 유래했다.
  5. 박윤조 시장이 2006년 처음 시장이 되었을 당시 미개발 지역들을 보며 한탄하면서 한 말로 알려져 있다.
  6. 두루섬 지역을 낙랑구로 넘긴 반대급부로 본평양 지역에 넘긴 것으로 보인다.
  7. 정확히는 역포구, 대동강구와의 접경지역에 있다.
  8. 민중연합당과 단일화.
  9. 한국 전쟁과 소비에트 지배로 인해 이남에 정착한 이북 출신 국민들 중, 통일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을 가리킨다. 초기에는 환향민이라고 불렀으나 "환향녀"를 연상케하는 어감 때문에 귀향민, 복향민 등으로 바꿔부르고 있다.
  10. 나머지 3개 선거구에서도 30~40%대의 득표율을 보이며 선전하였다.
  11. 17대 총선에서 북한 지역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어 사회노동당을 존폐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열린우리당 출신이 많은 대통합민주신당은 사회노동당에게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독자적 후보를 내기에는 패배가 확실해보였기 때문에 전략적 지지를 한 것으로 보인다.
  12. 낙랑구에서는 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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