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독동맹(韓獨同盟)
Deutsches-Koreanische Allianz

개요

대한제국독일 제국이 맺은 동맹. 독일은 아시아에서 영국 및 일본,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고, 대한제국은 자국의 세력 확대에 큰 도움을 준 동맹으로 18년간 지속되었다.

배경

19세기 말 러시아 제국은 만주로 세력을 넓혀오고 있었다. 러시아는 베이징 조약으로 청나라에게서 연해주를 따내고 이어 만주에 15만 대군을 파견하여 만주를 군사적 점령을 시도했다. 또한, 요동 반도에서 다롄과 뤼순항 및 동청철도를 건설하여 실질적으로 남하하고 있었다.

한편 일본 제국은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적인 체제가 들어서고, 대륙 진출과 국력 배양을 근거로 정한론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조선 또한 정미개혁광무개혁을 거치며 근대 국가로 발돋움한 상태인데다, 조선도 한반도 내의 국력이 차고 넘쳐 만주로 진출을 꾀하려는 제국주의 사상이 대두되던 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정한론을 내세워 조선에 군사적 진출을 시도하면 자국의 손해도 막심할 터였으니, 조선의 견제와 든든한 우군의 목적으로 동맹이 필요했다.

영국은 당시 러시아와 아시아 전역에서 그레이트 게임을 치루고 있어서 러시아의 팽창을 저지하려 했다. 이전에 러시아가 지중해로 진출하려고 하자 영국은 오스만 제국과 동맹을 맺어 진출을 저지하는 데에 성공한 적이 있다. 따라서 러시아의 만주에 진출하려는 욕심을 알아챈 영국은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견제를 위해 일본과 동맹을 맺게 된다[1].

한편 영일동맹이 맺어질 무렵, 대한제국은 한반도 내 포화된 시장과 자원, 물자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북진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대한은 만주 점령을 시작으로 중국 대륙까지 진출하려는 야심이 있었다. 대한제국이 한청전쟁의 승리로 한반도에서 중화사상을 제거하는 데 성공하고 남만주를 얻었지만, 만주에 영향을 미치려 하는 또 다른 세력인 러시아의 도전을 받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당장 러시아 주도하의 삼국간섭으로 인해 대한은 한청전쟁의 전리품인 남만주를 내뱉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은 자국을 지지할 열강과의 동맹을 절감한다.

독일 제국은 극동에 소극적이었지만, 전국의 추이와 열강 동향의 변화에 따라 극동에 진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1892년 한청전쟁이 끝나고 대한제국이 북쪽으론 러시아, 남동쪽으론 배후에 영국이 있는 일본의 견제(삼국간섭)를 받는다. 당시 유럽의 정세는 독일의 산업적, 군사적 성장으로 영국과의 대립구도가 명확하게 드러나던 시점이었다. 러시아와도 러불 동맹으로 급격하게 사이가 나빠지던 상황에서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개념으로 대한과 동맹을 맺는다[2].

  1. 러시아와 더 가까운 대한제국과 동맹을 맺을 수도 있었지만, 영국은 극동에서 자국의 세력 확장에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는 존재를 대한으로 생각했고, 대한제국과 동맹을 맺을 경우 극동에 자국의 영향이 아닌 대한제국의 영향이 미칠 것을 우려했다. 러시아 또한 대한제국을 경계하고 있었다. 이에 영국은 자국에 위협적인 동맹을 러시아의 전면에 두는 것보단 러시아와 일본을 이용해서 양면으로 대한의 영향력을 극동에서 축출하는 전략을 구상한다. 따라서 대한을 통해 대륙 진출을 꾀하는 일본과 동맹을 맺은 것이다.
  2. 독일은 극동의 신흥 열강인 대한을 동맹국으로 두면서, 자국의 극동 진출을 용이하게 만들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