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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마천루의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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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여진
海西女真
[[파일:|]]
국기
2395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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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국 2395년
  • 건주여진에게 정복당함 2435년
  • 재독립 2436년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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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창춘
최대 도시
창춘, 지린
주요 도시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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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류 문화
지린
소수 문화
언어
종교
국교
아이신기오로 숭배
소수 종교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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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체제
만주 부족제
지도자 (한)
완안 안초라고

개요

해서여진은 창춘을 도읍으로 하는 부서진 마천루의 국가이다.

역사

완안 찰로아는 매춘부였다. 조실부모한 천애고아였기에 그녀가 진짜로 완안 가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만주족 이주민이던 그녀는 슬하에 세 아들, 흘석탄, 실보니, 알만과 딸 아리호를 두었는데, 모두 아버지의 이름을 알 수 없었다. 2346년, 그녀가 마흔 셋이 되던 해에 지독한 독감이 돌았고 이때 그녀 또한 독감에 걸려 요절하였다. 언뜻 보기에 별 특별해보이지 않던 일가는, 곧 만주 전체에서 가장 이름을 떨치게 될 예정이었다. 그녀의 첫째 아들 흘석탄은 한량이었다. 그는 늘 술을 끼고 살았고 주먹 쓰기를 좋아하였다. 그녀의 어머니가 암으로 앓아누운 후 잠시간은 술도 끊고 성실하게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으나, 그녀의 어머니가 사망한지 1년만에 처음으로 동생 실보니와 함께 술집에 들렀다. 그는 그 술집에서 외상값을 두고 주인과 시비가 붙은 그는 실수로 주인을 때려죽이게 되었고, 그와 동생은 부리나케 도망쳤다. 그 뒤로 흘석탄은 계속 한량으로 살다가 2년 뒤 하얼빈 거리에서 동사한 채 발견되었다. 한편, 실보니는 한량 생활을 청산하기로 마음을 잡고 만주 최대의 도시, 창춘으로 떠나, 그곳에서 용병단에 고용되어 자리를 잡았다. 태생적으로 건장했던 그는 몇년 만에 자신만의 무리를 꾸릴 정도로 성장했고, 곧 창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재력가이자 싸움꾼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알만과 아리호는 고향인 지린에 머물렀다. 알만은 장성한 형들과 달리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했고, 다들 그가 스무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걱정과는 달리 스무 살을 넘기기는 했으나, 몸 쓰는 일은 할 수가 없어 잡일로 연명했다. 당시 지린은 격동의 시대였다. 온갖 군벌들과 용병들이 난립했고 그들은 사람들을 갈취하고 약탈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아리호가 인근에서 가장 잘나가는 군벌이던 장 올답의 애첩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동생의 주선으로 장올답의 재정을 담당하는 직책을 얻어쓰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식쟁이들의 재정이 으레 그렇듯 숫자만 세면 되는, 별거 아닌 직책이었지만, 알만은 어려서부터 허약했던 탓에 친우들보단 고대의 책들을 즐겨 읽었던 것이 빛을 발했다. 알만은 뛰어난 장사수완을 발휘해 재정을 몇배로 불리는 한편, 그 유능함을 인정받아 점점 인사, 외교 등 여러 중책을 떠맞게 되었다. 대부분의 싸움꾼들의 최후와 마찬가지로, 장올답이 싸움에서 얻은 부상이 악화되어 몸져누웠을 때, 알만이 그를 대리하여 섭정직을 맏게 되었다. 그 뒤로 장올답, 아니 알만의 군벌은 지린 전역을 장악하고 주변 지역들을 정복하기 시작했으며, 2373년 장올답이 승하했을 때 사실상의 지린의 주인이던 알만은 자신의 아들, 열 네살의 완안 백부를 지린의 주인으로 세웠다. 지린 일대의 주인이자 만주 최대의 군벌이 된 알만은 곧 창춘의 영주가 된 실보니와 만나게 되었다. 알만과 실보니는 20년만에 만났다는 기쁨과 그 만남이 경쟁자로써의 만남이라는 당혹감 두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어색한 재회를 했다. 그들은 한동안 이런 어색한 동맹관계를 유지했다. 머리 좋은 알만이 먼저 제안을 건넸다. 실보니는 수많은 첩을 뒀음에도 자식은 딸인 날연액림 하나 뿐이었는데, 창춘의 후계자를 자신의 아들 백부로 정하는 대신 당장은 자신이 실보니의 봉신으로 들어가겠다는 제안이었다. 자신이 전 만주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로 만들어주겠다는 제안에 솔깃했던 실보니는 바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문제는 2375년 실보니가 아주 늦은 쌍둥이아들을 낳으면서 발생했다. 위흔과 정주였다. 이 계약은 파기되지도 그렇다고 찬성되지도 않는 껄끄러운 상황으로 유지되었고, 2388년 62세의 나이로 실보니가 승하하자 알만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알만은 독약을 보내 위흔과 정주를 암살하려 했다. 정주는 죽었으나 쌍둥이 형이던 위흔은 영리하게 실수로 약을 쏟은 척 했고, 암살자가 당황하는 사이 재빠르게 도망쳐 멀리 서쪽의 몽골 부락으로 투항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알만은 백부와 날연액림을 결혼시키고 백부를 강제로 지린과 창춘의 영주의 자리에 올렸다. 알만은 2420년까지 천수를 누리다가 90살의 나이로 자연사했다.

어려서 즉위한 완안 백부는 명목상으로는 국왕이었으나, 국정 대부분을 아버지인 완안 알만이 좌지우지했기에 온전한 국왕으로써의 권력을 누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실보니가 사망하고 자신이 지린과 창춘을 손에넣게 되자, 완안 백부의 마음속에서 야심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완안 백부는 2395년 아버지가 잔병치레로 앓아누운 사이, 몰래 북방의 유목민들과 접촉하였다. 위수, 푸위 등 만주의 북방지역은 문명이 발달한 남부와 달리 반농반목 체제가 유지되고 있었다. 완안 백부는 위수 지역의 애신 핵자와 푸위 지역의 울린다 사로와 접촉하기로 했다. 둘은 모두 그 지역의 젊고 야심만만한 신흥 강자들이었다. 완안 백부는 자신을 도와준다면 그 대가로 그들에게 군사를 지원해주겠다는 밀약을 맺었다. 완안 백부는 자신의 친위대와 유목민 부대가 아버지의 친위부대를 기습하고 아버지를 유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처음에 완안 백부의 계획은 순조로워 보였다. 아버지의 친위부대를 섬멸하지는 못했지만 대부분 뿔뿔이 도망쳤고, 아버지를 사로잡아 가두기까지 했던 것이다. 완안 백부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상대방의 신의가 생각보다 가벼웠다는 것과 봉신들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봉신들은 완안 알만을 신뢰했던 것이지 완안 백부를 신뢰하던 것이 아니었으며, 특히나 외세를 끌어들여 쿠데타를 했다는 사실은 완안 백부에게 더욱더 불리하게 작용했다. 결국 이 사건은 탈출한 완안 알만이 자신의 친위대와 봉신 부대들을 설득하고 애신 핵자와 울린다 사로를 역으로 포섭하여 쿠데타를 제압하며 마무리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완안 백부는 군소 백작으로 좌천되어야만 했으며, 완안 알만은 왕위를 백부의 동생 완안 사로에게 넘겨주었다. 또한, 북부의 반농반목 지역 대부분이 완안 가문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완안 사로는 이에 따라 자신들이 해서 여진을 계승하는 해서 왕국임을 천명하게 되었다. 완안 알만은 자기 대에서의 국가 경영에는 유능했을지 몰라도, 완안 백부의 사례에 겁을 집어먹은 그는 완안 사로에게 제왕학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2420년 알만이 쓰려졌을 때 완안 사로가 본격적으로 국가 경영을 맡게 되자, 오십대의 완안 사로는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굴었다. 완안 사로의 애첩 회란 실새리가 완안 알만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다. 회란 실새리는 교활한 여자였다. 그녀는 주타이 족장 회란 오걸매의 딸로, 완안 사로에게 권력이 넘어오자마자 사로를 구슬려 자신 마음대로 주무르고자 했다. 이 덕에 실새리의 남동생이자 오걸매에게 영토를 상속받은 회란 쇄올로가 큰 힘을 얻게 되었다. 이렇게 나라가 외척에게 시달리고 그들이 제 잇속만 챙기기 시작하자 과거 알만 치하하에 영광스럽던 해서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2435년 건주여진에게 침략당했을 때 해서여진의 군대는 무력하게 당할 수 밖에 없었고 완안 사로는 건주 여진의 국왕에게 살해당했다.

완안 사로의 아들 완안 안처라고는 어릴적부터 여러 사람들에 의해 휘둘리는 아버지를 안타깝게 여겼다. 완안 안초라고는 아버지가 타인들에게 휘둘리는 이유를 아버지가 지나치게 겁 많고 우유부단한 성격에 있다고 보았고, 자신은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일념 하에 여러 학문을 익히고 무예를 연마해왔다. 이러한 면에서 보이다시피, 안초라고는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으며, 차라리 할아버지인 알만을 닮았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 말 그대로, 안초라고는 아버지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던 알만을 증오하면서도 그를 닮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처럼 각종 권모술수를 익히는 한편 호의를 가진 척 상대를 조종하는 화술을 익히던 것이 그 예시였다. 2435년 자신의 아버지 완안 사로가 건주여진과의 전쟁 도중 사망하자, 그의 능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안초라고는 건주여진에게 충성할 것 처럼 위장하여 해서여진의 국력을 최대한 보존하는 한편, 뒤로는 칼을 갈았다. 복수의 기회는 얼마 안가 찾아왔고, 건주여진이 얄루에게 참패하자 안초라고는 즉시 독립전쟁을 벌여 해서여진을 재건하고자 했다. 해서여진의 주인이 된 안초라고는, 아버지를 조종하다 아버지가 죽자 곧바로 건주여진에게 딸랑거리던 주타이의 회란 가문에 놀랍게도 그 어떤 보복도 가하지 않았다. 회란 오걸매가 의문사하고 그 영토의 분할에 안초라고가 깊게 관여했다는 사실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안초라고 치하 하에 해서여진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새롭게 떠오르는 서부의 고를로스 칸국은 굉장히 큰 위협요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