휜튼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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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498년 8월 반마법 시위에서 시작된 시민 혁명. 왕정 철폐를 목표로 한 서대륙 최초의 혁명이다.

배경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던 5세기 말, 마법사 계층의 특권화와 비마법사 노동자들의 차별이 겹치면서 노동자들의 불만은 쌓여갔다. 그러던 중 498년 7월 28일에 루들피크 외곽의 한 소도시에서 진행 중이던 마법 실험의 실패로 인해 민간인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다. 대규모 실험이었기에 그 피해는 상당했고 그 피해자 대부분은 비마법사 노동자였다. 이 사건으로 쌓여있던 노동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그들은 실험 중단을 요구하며 시의회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전개

처음에는 대규모 마법 실험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작은 노동자 집단의 시위에 불과했다. 해당 사고의 피해자 중에는 귀족이나 마법사 또한 있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일부 마법사들 또한 시위에 참여해 마법 실험 중단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8월 1일, 시위대는 루들피크 시의회 바로 앞까지 도달했고 군대와 대치하고 있었다. 군대의 시위대 진압 및 해산 과정에서 한 시민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소식은 휜튼 전역으로 빠르게 퍼졌고 전 휜튼이 들고 일어섰다.
휜튼 전역에서 수많은 군중이 봉기를 일으켰으며 반마법 성향의 사상가들과 정치 세력이 집결해 시위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현 국왕 루이센 2세[1]의 퇴위와 마법사들의 특권 제한 및 조세 개혁을 주장했다.

약 1주일 간의 대치 후에 정부는 시위대에게 삼부회 소집을 제안했다. 지난 30년간 열리지 않았던 삼부회를 정부가 직접 요청한 것에 시위에 모인 군중 뿐만 아니라 전 휜튼 국민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시위대와 마법사 단체[2]는 정부의 제안을 수용했고 그리하여 8월 10일 왕국 정부와 마법사, 노동자로 이루어진 삼부회가 열렸다.[3]

공개 회의로 진행된 이 삼부회는 루들피크 시의회에서 열렸으며 헌법 제정 및 조세 제도 개편을 이끌어냈다. 8월 10일부터 12일, 15일, 17일 총 4번의 삼부회가 열렸고 8월 17일, 루이센 2세는 휜튼 왕국 헌법을 제정을 공표하였다.

결과

공화정 수립에는 실패했지만 헌법 제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으며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비교적 평화롭게 전환이 이루어졌다. 헌법 제정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권리가 법으로 보장받게 되었으며, 조세 제도 또한 개편 및 통일이 이루어 졌다.

해당 헌법에는 휜튼이 입헌군주국임을 명시하면서 국왕 또한 헌법을 초월해 존재할 수 없다는 내용이 1조에 들어갔다. 공식적인 권한이 없던 의회 또한 헌법에서 인정하는 공식 정치 기구로써 자리잡게 되었다. 하지만 단 며칠만에 헌법을 완벽하게 만들 수 없었기에 왕국 정부는 주기적으로 삼부회[4]를 열어 헌법을 수정해나가겠다 약속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498년과 499년에 작황 불황으로 기근이 발생하고 499년 말부터 500년 말까지 약 1년간 역병이 돌면서 왕국 정부는 삼부회 소집을 계속해서 미루게 되었다. 애초에 당시 휜튼은 경제적으로 매우 위태롭던 상황이었고 정치적으로도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결국 이 불완전한 혁명은 루들피크 파업휜튼 내전으로 이어진다.

기타

연표


관련 문서


  1. 루이센 2세는 보통 현명하고 강한 인물로 평가되지만, 친마법 성향이 강해서 당시 반마법 주의자들에게 그리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었다.
  2. 사고가 난 해당 실험에 참여했던 마법사들을 중심으로 모인 마법사 단체
  3. 이는 휜튼 역사에서 노동자 계급이 공식적으로 정치에 참여한 첫 사례이다.
  4. 헌법 제정 이후는 의회가 공식 명칭이지만, 당시 의회는 이전 삼부회를 그대로 계승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삼부회와 의회라는 표현이 공식 문서에서조차 혼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