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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미국 총선
1866년 1월 24일
25대 총선
투표율 97.3% ▲ 16.9%p
선거 결과

자유 291석 (83.1%)
(15.1%) 53석 보수
정당 지역구 비율
자유당 291석 83.1%
보수당 53석 15.1%
중앙당 2석 0.6%
무소속 4석 1.2%

개요

1866년 치뤄진 미국의 서민원 의원 선거. 에이브러햄 링컨 전시 내각의 해체로 인해 보수당 내 의원들의 요구로 치뤄진 조기 총선거이다.

선거 결과 전쟁 영웅인 링컨을 내세운 자유당이 전체 의석의 80% 이상을 휩쓰는 초압승을 거두었고 이는 단일 정당이 얻은 가장 높은 의석률로 현재까지 기록되고 있다.

과정

총 350곳의 지역구에서 단순다수 투표로 치뤄진 선거였으며 5달러[1] 이상을 세금으로 납부한 남성 백인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다. 1868년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4년 뒤의 총선부터는 유색인종의 투표권 역시 인정되었으므로 이 선거는 2022년 현재까지 인종별 차별 투표권이 부여된 마지막 선거로 분류된다.

제2차 미영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안전한 남부 지역으로 피신해있던 귀족 및 부유층 대다수가 귀향함에 따라, 전쟁 통에 몇몇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1864년 미국 총선과 달리 대다수의 유권자들이 투표하여 투표율은 이전 선거에 비해 17%p가량 오른 97%를 기록하였다.

결과

자유당의 압승, 보수당의 참패로 요약할 수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을 내세운 자유당은 전체 선거구의 84% 가량인 291석을 휩쓸며 압도적으로 승리한 반면, 보수당은 겨우 50여석 대의 의석을 건지는데에 그쳤다. 그마저도 대부분 보수당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캐롤라이나주를 위시한 남부 지역의 의석이었으며 남부에서도 자유당은 평균 40% 이상의 득표율을 얻으며 크게 선전했다.

보수당은 이미 대중적인 지지를 잃은 고루한 인물인 제퍼슨 데이비스를 총리 후보로 내세우면서 민중 대다수는 물론 부유층과 귀족들의 신망마저 잃은 상태였고 이는 자연스럽게 제퍼슨 데이비스와 대비되게 정직하고 진보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링컨의 자유당이 압승하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영향

1866년 미국 총선의 결과는 이른바 "66년 체제"라고 불리는 정치 구도를 만들어내, 미국의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정치 개혁을 이끌어나가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보수당의 여러 귀족적인 의원들이 낙선해 중앙 정계에서 밀려나고, 대신 선거를 통해 당선된 여러 초선 소장파 의원들이 흑인 피선거권, 여성 참정권, 아메리카 원주민 보호법, 노동자 참정권 등 당대로서는 거의 혁명적이었던 법안들을 여럿 통과시켜 미국 사회는 급격한 진보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 리처드 2세가 승하하고 조지 2세가 황제로 재위해 "조지 2세 체제"라고 하기도 하고, 아예 1865년 왕국이었던 미국에서 제국이 선포되었다는 점을 들어 "신제국 체제"라고 하기도 한다.

이때 당선된 자유당의 여러 진보파 의원들을 자유당 급진파라고 부른다. 이들은 기성 자유당 의원들과 달리 더욱 자유주의적이었으며 진보적이었다. 이들은 경제적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자유방임주의자 파벌과, 사회 개혁을 더 내세운 혁신파 파벌로 쪼개졌는데, 1900년대 이후 후자가 시어도어 루스벨트 총리의 힘을 얻고 자유당의 권력을 장악함에 따라 우리가 아는 현대자유주의 성향의 자유당이 탄생하게 된다.

반대로 보수당은 귀족주의적인 의원들이 수없이 낙선한 까닭에 방황을 거듭했으며, 1900년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내각 당시 쫓겨난 자유당의 일부 시장 자유주의자들을 흡수할때까지 특별한 정치적인 성향을 가지지 못한채 자유당의 반대파당으로서만 존속하게 되었다.


  1. 인플레이션을 감안하였을 때 현재의 112달러(한화 약 14만원) 상당이다. 이는 당시 미국 뉴욕 노동자의 3주일치 임금에 맞먹는 거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