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디움 폭동

(3·26 혁명에서 넘어옴)
파일:Flag of Polisdium, 2009-2011.png
폴리스디움의 국기

UVS 최대의 흑역사.

폴리스디움 폭동(-暴動, Polisdiumic Riot)은 2009년 3월 26일, 한국가상사회 내부에서 대통령 리프쿤과 그를 지지하는 인사들이 전임 대통령 이서빈과 그의 측근 인사들을 영구탈퇴 조치한 뒤, 한국가상사회의 kgsa 카페를 점거, 폴리스디움 코리아로 국명을 변경한 사건이다.

주동자들은 대통령에서 물러난 이서빈이 카페 운영에 대하여 리프쿤 대통령에게 지나친 간섭을 한다는 것과, 이서빈이 운영하던 에스엔그룹의 독과점을 근거로 이서빈 및 에스엔 측근 인사들을 모두 탈퇴 조치 시켰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 주동자들도 이서빈과 어느정도 친목 관계에 있었거나 아예 에스엔그룹과 경제적 협력 관계에 있던 기업의 운영자들이었던 경우가 많아서, 현재는 그저 권력 싸움의 일부로 취급당하고 있다. (..)

명칭

최초에는 명칭이 정립되지 않아 다양한 명칭들이 쓰였다. 폴리스디움을 비롯한 주동 세력 측에서는 3·26 혁명(三·二六革命) 혹은 폴리스디움 혁명(-革命, Polisdiumic Revolution)이라고 칭하였다. 한국가상사회 측은 최초에는 3·26 정변(三·二六革命) 혹은 3·26 사태(-事態), 이후에는 폴리스디움 반란(-反亂) 등으로 불렀다. 절충적인 관점에서는 폴리스디움 사태(-事態, The state of affairs in Polisdium (Korean Virtual Society)[1])라고 부른다.

중립성 유지를 위해, 해당 링크들로도 전부 이 항목으로 넘어올수 있게 처리되어있다.

경과

한국가상사회의 역사

배경

2009년 초, 한국가상사회에서 리프쿤 정부가 출범하였다. 당시 한국가상사회는 UVS의 회원국이었으며 2009년 1월 5일에는 상임이사국 지위를 획득하였다. 당시 한국가상사회를 이끌던 현식과 유민, 리프쿤, 양현석 등은 서로 호형호제를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으며 이들이 운영하던 기업들도 자본 상 유기적인 관계로 이어져 있었다. 이를 "범 에스엔 계열"이라고 칭한다. 지금와서 돌아보면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이 때 한국가상방송카페 출신의 트윈스타가 UVS를 거쳐 한국가상사회로 가입하였다. 버스 동호인 출신이었던 트윈스타는 송정버스를 모체로 하는 SJ그룹(송정그룹)을 설립하였는데, 양현석의 회고에 의하면 트윈스타는 SJ그룹이 다른 기업에 비해 크기가 작았던 것에 불만을 품었던 것으로 보인다.[2]

한국가상사회 정부는 트윈스타가 버스 동호인으로서 도로 교통 운용에 경험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여 그를 국토해양부 장관으로 임명한다. 국토해양부 장관으로서 트윈스타가 어떤 일을 했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지워버려서 당연한 거지만 트윈스타는 SJ그룹보다 훨씬 큰 S&그룹(에스엔그룹)에 불만을 품고 있었으며, "어떻게 S&이 삼성급이 되었느냐"며 뒷담화를 통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 때 유민을 비롯한 몇몇 유저들이 트윈스타와 말을 트며 친목을 쌓고 있었기에 "S&그룹은 노동자들에게 헐값의 월급을 주고 부려먹기 때문"이라는 말을 퍼뜨리는 등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2][3] 이윽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리프쿤도 이러한 부정적 여론에 경도되어, 트윈스타를 중심으로 범 에스엔 계열을 전복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2] 사건 약 1주일 전, 리프쿤 대통령은 에스엔 산하의 ST버스(현 진성교통) 사장 양현석에게 "한국가상사회의 변화를 이루어보려 하니 동참하라"며 접근하였으나 창업자 현식과의 의리를 저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거절하였다고 한다. 양현석 본인은 당시 개인 사정으로 인하여 바빴기 때문에 한국가상사회의 상황을 확인하지 못하였고, 그래서 이러한 리프쿤의 움직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밝혔다.[2]


폭동과 그 직후

폭동 발발 이후 UVS 인사들의 반응
폴리스디움 지지 중립 / 입장 미표명 한국가상사회 지지
덱즌
빅토리
트윈스타
쥬니
페리윙즈
사탕 (4.1 이후)
이나가키 사키 (당시 사무총장) 구상(하늘)[4]
박소리
박재훈
양현석
이서빈
사탕 (4.1 이전)

당시 이해관계를 구성하고 있던 사람들의 반응은 아래와 같다.

  • 양현석: 처음부터 리프쿤의 정변 요청을 거절.
  • 틀:나라자료 신진국유민: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한국가상사회 카페에 접속하려고 하니 탈퇴되었다는 공지를 받았다고 한다. 직후 UVS 네이버 카페 채팅에 접속하여 사태를 확인하였으며,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이냐며 반발하였다. 트윈스타와 현식 사이에서 갈등하던 중 "폴리스디움이냐, 한가사냐,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폴리스디움 폭도 측의 요구에 폴리스디움을 선택하였다. 이후 제일 적극적으로 한가사를 디스하였다. 인터에게 통수쟁이라고 욕먹을만 하다
  • 이나가키 사키: 폴리스디움을 지지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자세한 것은 불명이다. 그러나 이후의 행적을 봤을 때 지지로 선회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선 중립으로 처리.

2009년 3월 26일, 대통령 리프쿤과 국토해양부 장관 트윈스타, 대법원장 쥬니의 주도 하에 대다수의 회원이 강제 탈퇴 당하였으며, 법전과 게시물을 대량으로 삭제하여 법전과 역사가 모두 소실되었다.[2]27일에는 UVS에서 임시 회의를 통하여 한국가상사회를 상임이사국에서 제명하였으며, 가상사회 카페로 도메인을 옮긴 한국가상사회 임시정부는 UVS 탈퇴를 선언하였다. 이후 한달 여간 폭도들이 점령한 http://cafe.naver.com/kgsa 도메인이 한국가상사회라는 카페명을 독점하여 "가상사회"라는 임시 닉네임을 사용하였다가, 4월 25일경 "폴리스디움 코리아"[5]로 이름을 바꾸면서 한국가상사회라는 카페명을 임시정부가 되찾아간다.

그러나 다수의 회원들이 영문도 모르고 탈퇴당하며 활동을 끊은데다가 폭동 당시 게시물을 대량으로 삭제하며 에스엔을 비롯한 기존 기업들이 사업 기반을 모두 상실하면서 활동 재개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이에 하늘눈물로 호소합니다 라는 글을 쓰며 UVS 재가입을 청원하였으나 니즈군을 비롯한 UVS 회원들은 엄근진하게 이를 대놓고 거부하는 반응을 보였으며 유민 등은 현식(이서빈)을 조롱하고 폴리스디움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반론을 제기하며 이를 묵살하였다. [6] 2010년 2월 6일에서야 박재훈의 주도 하에 재건운영위원회가 수립되었다.

재건 시도

재건운영위원회 설립 소식을 접한 트윈스타는 당시 가상사회 도메인 카페에 유민이 부매니저 권한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이용, 유민과 함께 네이트온 원격 제어 기능을 이용하여 회원 전체를 탈퇴시킨 후 자진탈퇴하며 테러를 시도하였다. 한편으로 페리윙즈의 여러 세컨 아이디를 파견하여 한국가상사회 내부에서의 정세를 트윈스타에게 보고하였다고 전해진다.[2] 한국가상사회도 이를 포착하고 제재를 시도하였으나 아이디가 너무 많았던 관계로(...) 손 대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2011년 5월 21일, 한국가상사회 임시정부는 가상국제연합의 전신인 대민련에 가입하였다. 동시에 정성현의 천거로 상임이사국 지위를 획득한다.[7] UVS가 이를 두고 대민련에 항의하자 가입을 취소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였으나, 정성현의 설득으로 가입을 속행한다.[8] 이듬해에는 리프쿤, 빅토리, 문한구, 아즈마 등의 가상국가 이탈로 사양길에 접어든 UVSUVN과 통합한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한다. 당시 UVS의 운영자였던 운영지원국장 사탕(전 유민)은 쥬니와 함께 몰락하는 UVS를 뒤늦게나마 수습하기 위하여 평화주의 노선을 표방, 국제사범에 대한 해제를 선포하였으나 이서빈 (전 현식) 정부 측은 "그것은 우리와 상관없다"며 유보하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북크로센 전쟁 이후 양 연합의 통합은 가시화되기 시작했고 사탕을 시작으로 쥬니도 사과문을 올리며 폴리스디움 폭동 사태에 대한 사죄를 표명하였다. 한국가상사회는 이에 화답하여 사탕에게 전 대통령에 준하는 예우를 보장하면서 UVS-UVN 통합은 가속화되었다.

UVS-UVN 통합 최종 단계였던 2013년 초, 토끼(전 사탕)의 주도로 "십대시절의흑역사규명위원회"가 출범하였다. 위원회는 고심 끝에 양쪽이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조정안을 제시하였으며 한가사 측도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였으나, UVS의 실권을 쥐고 있던 것은 강경파였던 트윈스타였고 그는 UVS의 해체와 함께 모든 글들을 삭제하며 잠적하였다. 이로서 일련의 사건은 불완전하게 끝났다.

반응

가상국제연합회

회원국, 그것도 상임이사국 안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하여 가상국제연합회는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였다. 폴리스디움계의 주도로 재판이 열렸고, 가상국제연합회를 장악하고 있던 인사들이 폴리스디움계였던 만큼 한국가상사회 잔류파는 모두 추방당했다. 이후 가상국제연합회의 폴리스디움계는 지속적으로 한가사계를 비난하는 한편 "현식만세연합"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조롱하였다. 특히 초반에 우왕좌왕하다 폴리스디움계로 들어간 사탕은 자신의 아이디를 트윈스타에게 제공하여 한국가상사회 구 도메인 (kgsa) 카페의 게시물을 지우고 회원을 탈퇴시키기까지 하며 어그로를 끌었다.

가상국제연합회가 사양길에 들어서자, 사탕 등이 입장을 선회하여 적극적으로 폴리스디움 폭동과 조롱 행위에 대한 사죄에 나서며 사태를 수습하고자 하였으나, 트윈스타 등 강경 세력이 이에 반대해 게시물을 지우고 페리윙즈에게 지시를 내려 가상국제연합지배하려 했던 것이 밝혀지면서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다만 사탕 개인은 용서를 구한 것을 참작한 이서빈 정부로부터 국빈(國賓)으로서 전직 대통령에 준하는 예우를 약속받게 된다.

대한민주주의연합

한국가상사회가 2011년 대한민주주의연합에 가입하면서 이 사건이 다시 재조명되었다. 가상국제연합회와 척을 지고 있었던 신성대한제국과 대한민주주의연합의 인사들은 폴리스디움 폭동과 가상국제연합의 대응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UVS-UVN 통합이 추진되고, UVS계 페리윙즈가 통합 가상국제연합 사무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이 문제는 수면으로 사그라드는듯 하였으나, 페리윙즈의 'UVS 첩자' 발언 이후 이서빈 등의 주도로 폴리스디움 사태가 다시 언급되며 희화화되기도 하였다.

그 외 소수의견

  • rupert2005는 2009년 7월 폴리스디움 코리아에 신청했던 자신의 가상 버스 노선이 비현실성을 이유로 반려되자 자신 또한 폴리스디움 폭동의 피해자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시기 자체가 달라서 무시당했다. (..) 지금도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초창기에는 상반된 평가를 갖고 있었으나 주동자 인사들이 가상국가를 그만두며 스스로를 해명할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었고, 기껏 kgsa 도메인 카페를 점거해서 세웠던 폴리스디움 코리아도 화력 부족으로 결국 숨 쉬는 것조차 알 수 없는 상태[9]가 되었다. 이에 따라 이 사건을 두고 다른 관점을 갖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이후 주동 세력에 참여하였던 토끼는 전향을 선언한 뒤 UVS의 운영권자로서 이서빈 등 당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며 앞장서서 이 사건을 폭동으로 앞장서서 재평가하기까지 했다. 대한민국의 5.18 민주화운동이 제5공화국 당시에는 사태 내지 폭동으로 치부되다가 정권이 바뀌고 진실이 밝혀진 후에는 민주화운동으로 재확인, 재평가된 것과는 상반된 상황. 권력자들이 권력을 갖고 싶어서 들고 일어난 하극상(혹은 친위 쿠데타)이라는 점에서, 군사반란으로 일어난 '내란 정부'에 맞서서 시민들이 일어난 5.18의 안티테제다.

폴리스디움 출신 유저들이 운영권을 갖고 있던 UVS가 네이버 가상국가의 헤게모니를 갖고 있던 당시에는, 이서빈의 권력욕에 의한 독재 시도와 에스엔그룹의 시장 독과점이 낳은 결과이며, 한가사의 소위 '민중'들의 승리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폴리스디움 코리아는 멸망하였고, UVS-UVN 통합 과정에서 한가사가 "폴리스디움 폭동과 그에 따른 UVS의 조치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면서 재평가 논란이 점화되었고, 현재는 폭동 내지는 친위 쿠데타로 굳어졌다. 주동자들의 취지로 보나 당시 상황과 과정으로 보나 혁명이라고 하기는 어려웠고, 무엇보다도 폴리스디움 코리아의 단명(短命)으로 말미암아 사실상 실패했기 때문에 폭동이라고 분류되는 것. 만일 성공해서 폴리스디움 코리아가 현재까지 한가사를 밀어내고 합법 정부 지위를 갖고 있었더라면 이러한 재평가는 어려웠을 것이다.[10]

여담

각주

  1. 직역하면 "폴리스디움(한국가상사회) 안의 상황".
  2. 2.0 2.1 2.2 2.3 2.4 2.5 3.26 정변부터 현재까지의 상황 정리, 양현석, 2013-02-20
  3. 우습게도 이러한 뒷담화에 휩쓸린 유민을 비롯한 이들도 S&그룹을 포함한 범 에스엔 계열의 핵심 인사 중 한 명이었다.
  4. <눈물로 호소합니다>로 유명한 사람.
  5. 이후 가상대한민국 전자정부로 이름을 바꾸었다.
  6. 이와는 별개로 하늘의 글이 깨알같이 재미있는 문체로 인해 유행화되어 몇년 동안 패러디되었다. 안습..
  7. [1] 대민련 카페, 2011-05-21
  8. [한국가상사회 전권대사 이서빈입니다-], 대민련 카페, 2011-05-23
  9. 해당 카페 도메인은 회원만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과연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다.
  10. 아주 좋게 보아 정변 내지는 혁명, 일반적으로는 반란 혹은 내전으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같이 보기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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