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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스칸 반도 일대에서 살아가던 선주민은 그 이름을 딴 스칸족이었다. 그러나 스칸족의 발원 자체는 정확하지 않다. 스칸족은 문명 이전까지 아잔 계열 스칸족과 바리퀴스(Bariqüs) 계열 스칸족, 랑크 계열 스칸족, 서롬묄(W. Rommöle) 계열 스칸족, 동롬묄(E. Rommöle) 계열 스칸족으로 분화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민족 주도로 | 기원전 스칸 반도 일대에서 살아가던 선주민은 그 이름을 딴 스칸족이었다. 그러나 스칸족의 발원 자체는 정확하지 않다. 스칸족은 문명 이전까지 아잔 계열 스칸족과 바리퀴스(Bariqüs) 계열 스칸족, 랑크 계열 스칸족, 서롬묄(W. Rommöle) 계열 스칸족, 동롬묄(E. Rommöle) 계열 스칸족으로 분화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민족 주도로 문자를 사용한다던가 뚜렷한 문명을 세우거나 하지는 않았다. | ||
그러던 중 문명을 세워 전체 스칸족 민족 계열에서 통틀어 가장 먼저 세워진 나라는 청동기 시대의 '''키포토스(QipoŒs)'''였다. 키포토스는 스칸족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국가로, 위프 1세(Üfe I)의 국가로 알려져 있다. 키포토스는 비스히 강 주변을 유역으로 농경을 시작하며 성장해왔다. 그리고 이들 국가는 아잔족에게 공격당해 멸망할 때까지 많은 스칸족 문화유산을 남겼고, 이는 현재 고고학과 사학적 가치를 충분히 갖는 유산들로 현재도 꾸준하게 발굴되고 있다. 키포토스는 바리퀴스족이 중심이 되었으며, 이 국가의 전성기 때의 왕 노리보오스 3세(Noriv'ós III)는 바리퀴스족 내부를 정비하고 확장 전쟁을 펼쳐나갔다. 그러나 노리보오스 3세가 갑자기 병으로 죽고 나라에서 내전이 일어나 왕정이 폐지되고 귀족정이 시행되는 등 혼란이 있었다. 이후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왕정을 부활시킨 파톤스 대왕의 손자 노리보오스 5세(Noriv'ós V)때에 이르러 기원전 410년, 세력을 급격히 키운 아잔족의 공격을 받았고 멸망하였다. 침입자 입장이었던 아잔족은 동맹 관계인 롬묄과 함께 각각 '''이크로(Ékcro)'''와 ''' | 그러던 중 문명을 세워 전체 스칸족 민족 계열에서 통틀어 가장 먼저 세워진 나라는 청동기 시대의 '''키포토스(QipoŒs)'''였다. 키포토스는 스칸족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국가로, 위프 1세(Üfe I)의 국가로 알려져 있다. 키포토스는 비스히 강 주변을 유역으로 농경을 시작하며 성장해왔다. 그리고 이들 국가는 아잔족에게 공격당해 멸망할 때까지 많은 스칸족 문화유산을 남겼고, 이는 현재 고고학과 사학적 가치를 충분히 갖는 유산들로 현재도 꾸준하게 발굴되고 있다. 키포토스는 바리퀴스족이 중심이 되었으며, 이 국가의 전성기 때의 왕 노리보오스 3세(Noriv'ós III)는 바리퀴스족 내부를 정비하고 확장 전쟁을 펼쳐나갔다. 그러나 노리보오스 3세가 갑자기 병으로 죽고 나라에서 내전이 일어나 왕정이 폐지되고 귀족정이 시행되는 등 혼란이 있었다. 이후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왕정을 부활시킨 파톤스 대왕의 손자 노리보오스 5세(Noriv'ós V)때에 이르러 기원전 410년, 세력을 급격히 키운 아잔족의 공격을 받았고 멸망하였다. 침입자 입장이었던 아잔족은 동맹 관계인 롬묄과 함께 각각 '''이크로(Ékcro)'''와 '''롬묄 왕국'''을 세우게 된다. 당시 대부분의 바리퀴스족은 이크로에서 상민층을 맡게 되었다. 이크로는 척작한 자연 환경과 외교 중심 정치 등 국가 특성상 상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신분으로서는 천민 바로 위 등급이었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부와 함께 일부는 권세를 누리기도 했고, 이는 바리퀴스족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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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30일 (수) 13:40 기준 최신판
개요
랑크의 역사를 다루는 문서.
고대
기원전 스칸 반도 일대에서 살아가던 선주민은 그 이름을 딴 스칸족이었다. 그러나 스칸족의 발원 자체는 정확하지 않다. 스칸족은 문명 이전까지 아잔 계열 스칸족과 바리퀴스(Bariqüs) 계열 스칸족, 랑크 계열 스칸족, 서롬묄(W. Rommöle) 계열 스칸족, 동롬묄(E. Rommöle) 계열 스칸족으로 분화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민족 주도로 문자를 사용한다던가 뚜렷한 문명을 세우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문명을 세워 전체 스칸족 민족 계열에서 통틀어 가장 먼저 세워진 나라는 청동기 시대의 키포토스(QipoŒs)였다. 키포토스는 스칸족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국가로, 위프 1세(Üfe I)의 국가로 알려져 있다. 키포토스는 비스히 강 주변을 유역으로 농경을 시작하며 성장해왔다. 그리고 이들 국가는 아잔족에게 공격당해 멸망할 때까지 많은 스칸족 문화유산을 남겼고, 이는 현재 고고학과 사학적 가치를 충분히 갖는 유산들로 현재도 꾸준하게 발굴되고 있다. 키포토스는 바리퀴스족이 중심이 되었으며, 이 국가의 전성기 때의 왕 노리보오스 3세(Noriv'ós III)는 바리퀴스족 내부를 정비하고 확장 전쟁을 펼쳐나갔다. 그러나 노리보오스 3세가 갑자기 병으로 죽고 나라에서 내전이 일어나 왕정이 폐지되고 귀족정이 시행되는 등 혼란이 있었다. 이후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왕정을 부활시킨 파톤스 대왕의 손자 노리보오스 5세(Noriv'ós V)때에 이르러 기원전 410년, 세력을 급격히 키운 아잔족의 공격을 받았고 멸망하였다. 침입자 입장이었던 아잔족은 동맹 관계인 롬묄과 함께 각각 이크로(Ékcro)와 롬묄 왕국을 세우게 된다. 당시 대부분의 바리퀴스족은 이크로에서 상민층을 맡게 되었다. 이크로는 척작한 자연 환경과 외교 중심 정치 등 국가 특성상 상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신분으로서는 천민 바로 위 등급이었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부와 함께 일부는 권세를 누리기도 했고, 이는 바리퀴스족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중세
이크로는 처음엔 왕정을 본땄지만 사스키울벤 대제(Sas'kiulben)에 이르러 칭제 후 크리안 제국(Crian Réhitz̀)을 설립 후 레벤히 7세(Lebenhĭ VII)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구르트(Gurt)족의 침략과 전염병으로 국가 자체가 소멸하게 된 결과로 터뷰 12세(Tervű XII)때 장렬하게 멸망한다. 이는 구르트(Gurt)족의 침략과 전염병으로 국가 자체가 소멸하게 된 결과이다. 하지만 이후 아잔족은 롬묄에 흡수되나 싶었지만 이후 718년에 나라를 하나 세우는데, 그것이 바로 아잔 제국이다.
네로아 시대
한편 롬묄은, 크타그리스(Ctagrīs) 대왕 사후 동서로 나뉘어, 동롬묄은 포제스(Pozes)로 이름을 바꾸어 지속해왔고, 서롬묄은 네로아 6세(Neroa VI)때에 유럽 중세 시대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으며, 스칸 특유의 봉건 역시 유럽 봉건제의 영향을 받아 네로아 7세(Neroa VII)때 왕권이 추락하고 봉건제가 시작되면서, 이 이후로 스칸 중세가 시작된다. 서유럽에서 고대는 로마가 멸망하면서 끝났다. 스칸에서는 한 나라가 아니라 네로아 시대로 구분하기도 한다. 본격적으로 제후(Pepozìn)들이 활동한다기도 하는데, 서유럽과 다른 점은 제후의 위계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이때의 제후 위계질서는 현재까지도 정비되어 내려오게 된다. 당시 서롬묄에서 포제스는 공국의 지위에 있었다. 서롬묄 왕 파이타닌 1세(Pâtanin I)가 포제스 대공 뵈프모 5세(Böfèmo V)에게 대공의 칭호를 주었던 이유이다. 당시 뵈프모 5세는 공의 직위 수여를 받아들였다. 처음 포제스의 중앙 집권적인 정치의 성립이 어려워지자, 백성 통합과 왕권(공권) 강화를 위해 서롬묄의 파이타닌 1세의 대관식을 수락한 것으로 보인다.
공작 – 후작 – 백작 – 자작 – 남작으로 이어지는 봉건제는 봉건사회를 더욱 굳건하게 했지만, 딱히 왕권에 위협을 주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선 서롬묄은 408년, 이민족들의 침입과 내분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졌고, 데모족(Demo Frectū)의 침략으로 수도 뢰비네(Löbi’ne)가 함락당하고 델타익스 3세(Deltaećs III)가 항복하며 끝이났고, 그 후 뢰비네 지방은 데모족이 차지하며 한동안 수복하지 못한 땅이 되었다. 포제스 공국은 포제스 백국으로 데모족에 의해 강등된 후, 더 지속되다가 아잔 제국에게 멸망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