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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9일 (목) 10:06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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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50년, 홍콩 지역 시장 |
광동성(중국어: 广东省) 또는 난징 일중정주조약 체결 이후의 통칭인 광동 위탁통치령(중국어: 广东委托统治领)은 중화민국 제1 공화국의 성급 행정구역이자 대일본제국의 위탁통치령이다.
역사
설명 |
출처 |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화계(중국어:华系) 장교 다카하시 유키치는 내화일체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군부에서 엄선된 인재였다. 제국의회로부터 출정을 승인받은 그는 국민당과 접촉하여 광동의 실질적인 통제권을 인수받았다. 초기에는 광동 내에서의 정세 파악에 집중하며 실질적인 작업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는 이 같은 작업을 통해 내지 본토 방위대에서 난처해진 자신의 입장을 개간하고 방위대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하려고 했다. 그러나 곧 그의 과거가 발목을 잡았다. 다카하시는 이전 방위대 직위에서 직속 부관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실과, 비인가 공작을 여러 차례 주도한 사실이 발각되면서, 국내 언론에 의해 이 사건들이 보도되어 큰 파문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결국 다카하시는 다른 직위로 강제 배정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
직후 그의 참모인 스기야마 무로치가 총감의 자리를 이어받았고, 내화일체 계획은 그의 정권에서 재개되었다.
정치
참고
비고(Obsidian)
1947년 1월 1일 일본에 할양되었으나, 중화민국이 실제 행정권과 관리를 이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