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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 전투]]에서의 패배로 [[이자성]]이 이끄는 반란군은 북경으로 진격하였고, [[산해관]]에서 청군을 상대하던 [[오삼계]]는 그에게 투항한다. 이자성은 오삼계를 평왕(平王)으로 봉하고 북직례(北直隷) 일대를 관할하도록 했다. 오삼계는 이자성으로부터 병력과 물자를 충원 받아 청군의 남하를 저지하였고,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은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채 회군했다.
[[송금 전투]]에서의 패배로 [[이자성]]이 이끄는 반란군은 북경으로 진격하였고, [[산해관]]에서 청군을 상대하던 [[오삼계]]는 그에게 투항한다. 이자성은 오삼계를 평왕(平王)으로 봉하고 북직례(北直隷) 일대를 관할하도록 했다. 오삼계는 이자성으로부터 병력과 물자를 충원 받아 청군의 남하를 저지하였고,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은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채 회군했다.


오삼계가 청군을 견제하는 동안, 이자성은 북경 약탈을 금지하는 등 군율을 엄격히 하고 도성 내 민심을 다독이면서 무너진 사회 질서를 수습하는 한편, 사천을 장악한 [[장헌충]]과 강남 일대에 잔존한 명 부흥 세력을 회유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장헌충은 표면적으로 황위를 포기하고 서왕(西王)으로 봉해지면서도 사천 일대에 대한 통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명 부흥 세력의 경우 대세가 기울어졌다 판단한 [[융무제]] 등이 항복했으나, [[정성공]]이 이끄는 부흥군은 반순복명(反順復明)을 기치로 [[만력제]]의 손자인 [[영력제]]를 옹립하며 저항했다.
오삼계가 청군을 견제하는 동안, 이자성은 북경 약탈을 금지하는 등 군율을 엄격히 하고 도성 내 민심을 다독이면서 무너진 사회 질서를 수습하는 한편, 사천을 장악한 [[장헌충]]과 강남 일대에 잔존한 명 부흥 세력을 회유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장헌충은 표면적으로 황위를 포기하고 서왕(西王)으로 봉해지면서도 사천 일대에 대한 통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명 부흥 세력의 경우 대세가 기울어졌다 판단한 [[융무제]] 등이 항복했으나, [[정성공]]이 이끄는 부흥군은 반순복명(反順復明)을 기치로 [[만력제]]의 손자인 [[영력제]]를 옹립하며 저항했다.


입관에 실패한 채 [[묵던]]([[성경성]])으로 귀환한 도르곤에 대해 황위를 두고 정쟁을 벌였던 [[아이신기오로 호오거]]는 그를 질책하고 회군의 책임을 물어 삭탈관직할 것을 촉구했다. 청 내부에서 입지가 좁아진 도르곤은 자신이 직접 이끄는 정백기, 동생 [[아이신기오로 도도]]가 이끄는 양백기를 동원해 호오거가 이끄는 부대를 공격하며 난을 일으켰다.([[도르곤의 난]]) 기습적인 공격에 호오거는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 채 패주해 [[더르기 허천]]([[동경성]])으로 피신했다.
입관에 실패한 채 [[묵던]]([[성경성]])으로 귀환한 도르곤에 대해 황위를 두고 정쟁을 벌였던 [[아이신기오로 호오거]]는 그를 질책하고 회군의 책임을 물어 삭탈관직할 것을 촉구했다. 청 내부에서 입지가 좁아진 도르곤은 자신이 직접 이끄는 정백기, 동생 [[아이신기오로 도도]]가 이끄는 양백기를 동원해 호오거가 이끄는 부대를 공격하며 난을 일으켰다.([[도르곤의 난]]) 기습적인 공격에 호오거는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 채 패주해 [[더르기 허천]]([[동경성]])으로 피신했다.

2025년 7월 14일 (월) 18:23 판

송금 전투에서의 패배로 이자성이 이끄는 반란군은 북경으로 진격하였고, 산해관에서 청군을 상대하던 오삼계는 그에게 투항한다. 이자성은 오삼계를 평왕(平王)으로 봉하고 북직례(北直隷) 일대를 관할하도록 했다. 오삼계는 이자성으로부터 병력과 물자를 충원 받아 청군의 남하를 저지하였고,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은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채 회군했다.

오삼계가 청군을 견제하는 동안, 이자성은 북경 약탈을 금지하는 등 군율을 엄격히 하고 도성 내 민심을 다독이면서 무너진 사회 질서를 수습하는 한편, 사천을 장악한 장헌충과 강남 일대에 잔존한 명 부흥 세력을 회유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장헌충은 표면적으로 황위를 포기하고 서왕(西王)으로 봉해지면서도 사천 일대에 대한 통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명 부흥 세력의 경우 대세가 기울어졌다 판단한 융무제 등이 항복했으나, 정성공이 이끄는 부흥군은 반순복명(反順復明)을 기치로 만력제의 손자인 영력제를 옹립하며 저항했다.

입관에 실패한 채 묵던(성경성)으로 귀환한 도르곤에 대해 황위를 두고 정쟁을 벌였던 아이신기오로 호오거는 그를 질책하고 회군의 책임을 물어 삭탈관직할 것을 촉구했다. 청 내부에서 입지가 좁아진 도르곤은 자신이 직접 이끄는 정백기, 동생 아이신기오로 도도가 이끄는 양백기를 동원해 호오거가 이끄는 부대를 공격하며 난을 일으켰다.(도르곤의 난) 기습적인 공격에 호오거는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 채 패주해 더르기 허천(동경성)으로 피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