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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15일 (화) 02:4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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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부흥기란 제3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2051년 부터 24세기 초반까지의 예술, 과학, 인문 전분야에서의 인류의 발전과 문화 부흥 운동을 일컫는 말이다.
부흥기는 크게 전기, 중기, 후기로 나뉜다. 전기 부흥기는 흔히들 생각하는 문화 부흥 운동 보다는 전후 재건 운동에 가까웠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회재건을 위해 집단에 헌신할 것을 강조 받는 시대였으며, 예술과 인문을 비롯한 '문화'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소규모의 문화유산 복원과 문화 부흥 운동이 진행되었으나, 이마저도 프로파간다적 성향을 크게 띄었다. 대신 우주 경쟁과 달 개척으로 대표되는 과학 기술의 재건과 발전이 중점적으로 이루어졌다.
흔히들 생각하는 부흥기는 중기 부흥기부터 시작된다. 냉전 분위기가 완화되고 사회가 재건되며 생활 수준이 향상되자 본격적인 문화 부흥 운동이 시작됐다. 국가 주도로 문화 유산의 복원 및 소실된 예술품의 모조품 제작이 권장되었으며, 민간 주도로 대중 문화의 부흥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 주목해볼만 한 것으론, 반문화 운동이 전방위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2차 연방주의 운동으로 이어졌다.
후기 부흥기는 21세기 초반의 대중문화를 경도하며, 그것을 따르는 복고주의가 크게 유행하였다. 특히나 우주개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각 개척지와 지구 사이에 '누가 더 지구다운가?'로 경쟁이 과열되기도 하였다. 이로하여금 각 지역마다 해석이 갈리면서 21세기 초반의 사회문화에 대한 연구가 촉진되었다. 학계에서는 암흑시대의 극단적으로 부족한 정보량과, 오히려 문헌오염을 역이용하는 기존 학계의 태도를 비판하며 기존의 산발적으로 이루어진 암흑시대의 연구와 검증이 집약적으로 이루어졌다.
역사적 배경
2027년 부터 2051년까지 장장 24년 간 지속된 암흑 시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로 여겨진다. 대침공과 9년의 겨울,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전란이 지속됐고, 이 일련의 과정에서 촉발된 기후변화와 전세계적인 기근은 기존 사회 체계를 붕괴 시켰다. 단편적으로만 봐도 대침공에서만 당시 85억 명이던 세계 인구가 25억으로 감소했고, 9년의 겨울과 3차 세계대전에서 20억 명, 또는 그 미만까지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당대 사회가 받은 충격은 총력전 개전 당시의 그것을 상회하는 것이었다. 수십년 간 지속된 평화가 한순간에 무너진 것은 물론이고, 그 주체는 다름 아닌 외계의 존재들이었다. 대침공 이후의 여러 낙관적 풍토들이 무색하게도 곧바로 9년의 겨울이 찾아왔고 1차 연방주의 운동이 실패하며 '전인류의 통일정부'는 무산되었다. 이 충격의 반동은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3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잿더미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전쟁은 끝났지만 만성적인 식량 부족은 여전했으며 한번 망가진 자연은 도통 재건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사실상 이즈음에 이르러서 문화란 거의 말살되다 싶이 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살아남기 위해 투쟁해야하는 시대는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정치체제든지 전체주의적 요소를 크든 적든 띄게 되었고, 집단에게 무조건적으로 충성하는 것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러한 헌신과 노력 덕에 인류 문명은 빠른 속도로 재건되었으나, 오히려 사회는 크게 후퇴하였다.
더불어 대침공 기간 동안 소실된 문화유산과 예술품들의 숫자는 가늠하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한점이라도 안전한 곳으로 대피 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막을 수 있는 재앙이 아니었으므로 대부분은 불길 속에 타올랐다. 대침공이 끝난 이후에도 9년의 겨울로 인한 난세가 지속되었으므로 살아남은 것들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으며, 3차 세계대전에서 '불의의 사고로' 파괴된 것들의 숫자도 어마어마했다.
인류사의 거장들이 남기고 간 발자취 마저 지워지는 상황 속에서 이 시기의 문헌 자료라고 남아있을 턱이 없었다. 암흑시대와 그 전후의 기록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살아남기도 힘든 시대였으니만큼 애초에 '기록 자체를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풍토는 그나마 9년의 겨울 시기 부터 완화되지만 물론 이마저도 대침공 기간에 비하여 상대적이었으니만큼, 여전히 문헌이 소실되고, 처음부터 기록되지 않는 경우는 허다했다.
재앙적으로 끝난 외계와의 접촉, 그로 인해 촉발된 사회의 붕괴와 기나긴 난세는 물론 인류 사회에게 전례가 없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보다도 '이러한 전례가 없는 상황을 겪었음에도' 1차 연방주의 운동이 실패하며 전인류의 통일정부가 무산되고, 다시 한번 같은 인류끼리 총부리를 겨눴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러한 충격은 수십년 간 사회 전반에 짙게깔린 비관론과 종말론의 거름이 되었으며, 이는 부흥기 특유의 예술 양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배경은 자연스레 21세기 초반을 유토피아적 사회로 여기고, 그 시대를 경도하며 지향점으로 삼기엔 충분했다. 부흥기라는 개념이 각 단락마다 그 분위기가 상이함에도, 공통점을 꼽을 수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21세기 초를 모티브로 삼고, 그 사회를 재건하며, 그 사회를 따라하는 것, 궁극적으로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사람들의 꿈으로 여겨졌다.
비판
소위 '부흥기'의 정의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학계에서 진행되었다. 전기 부흥기는 중기, 후기 부흥기와 같은 시대 구분으로 묶기에는 서로 너무 상이하고, 중기 부흥기와 후기 부흥기마저 그 차이가 심하다. 단편적으로 비교해봤을 때, 대침공과 9년의 겨울, 3차 세계대전이라는 암흑시대를 겪은 2000년대생과 초기 우주개척시대를 겪은 2300년대생을 같은 시대로 묶는 건 지나친 비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