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 왕국 ROUTE TO '76

에스피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7월 2일 (수) 16:05 판
이 문서는 현재 공사 중입니다.

이 문서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본문에 다소 난잡하거나 생략된 부분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 주요국 목록 ]
[ 설정 목록 ]
[ 그 외 ]

프로이센 왕국
Königreich Preußen | Kingdom of Prussia
국기 국장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Gott mit uns[1]
(1921-1936)

본토 | 식민지 | 구성국
1921년 1월 18일~1936년 7월 30일
(15년 6개월 12일)
내전 이전 재통일 이후
독일 제국 대독일국
상징
국가
그대에게 승리의 왕관을
역사
[ 펼치기 · 접기 ]
1921년 1월 1일 스파르타쿠스단 총궐기
1921년 1월 18일 제국 붕괴
1922년 8월 11일 바이마르 헌법 제정
1922년 11월 11일 세계대전 종전
1923년 11월 8일 독일 연방 출범
1933년 1월 30일 아돌프 히틀러 총리 취임
1935년 3월 7일 민족 통일 전쟁 개전
1936년 7월 30일 독일 재통일, 대독일국 수립
지리
[ 펼치기 · 접기 ]
위치
중부유럽
수도
베를린
영토
프로이센 왕국(1921~1936)
면적
257,493km²(1933)
인문환경
[ 펼치기 · 접기 ]
인구
32,283,102명 (1933년)
민족
게르만족
언어
공용어
독일어
지역어
폴란드어, 러시아어, 네덜란드어, 덴마크어
공용문자
로마자
국교
개신교(사실상 국교), 카톨릭[2]
군대
프로이센 왕국군
정치
[ 펼치기 · 접기 ]
정치 체제
준입헌군주제 · 최상급육군지휘체제 · 과두정(1921~1922)
→ 입헌군주제 · 의원내각제(1922~1933)
→입헌군주제 · 일당독재(1933~1936)
국가 원수
카이저[3]
역대 카이저
빌헬름 2세(1921~1936)
정부수반
제국수상 → 총리 → 호국경
행정부
내각[4]
입법부
왕국의회
주요 국가수상
필리프 샤이데만
빌헬름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헤르만 뮐러
하인리히 브뤼닝
파울 폰 힌덴부르크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프란츠 폰 파펜
아돌프 히틀러
경제
[ 펼치기 · 접기 ]
통화
파피어마르크 → 라이히스마르크

개요

"독일이 착안해야 할 것은 프로이센의 자유주의가 아니라 군비인 것입니다. 지금의 대문제는 언론이나 다수결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철과 피(血), 곧 병기(兵器)와 병력에 의해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 '1862년 연설' 中

프로이센 왕국(독일어: Königreich Preußen 쾨니히라이히 프로이센)은 1921년에 수립하여 1936년까지 존속한 독일의 왕국이다.

내전으로 인해 빌헬름 2세독일 제국이 붕괴한 상황에서 발터 폰 뤼트비츠아우구스트 폰 마켄젠이 제정의 심장인 프로이센 왕국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1921년 1월 18일 의사당 발코니에서 선포했다.[5] 그러나 참담한 세계대전의 결과와 갑작스럽게 세워진 민주주의 체제는 존속 기간 내내 체제 내부로부터의 위협에 시달렸고, 결국 엘리트주의와 왕정을 혐오하는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이 집권하면서 해체되었다.

상징

정치

역대 선거

한계

역사

행정구역

군사

각주

  1. 예수의 탄생을 예지하는 마태오 복음 1장 23절에서 유래한 문구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Siehe, Die Jungfrau wird empfangen / und einen Sohn gebären / und sie werden ihm den Namen Immanuel geben, / das heißt übersetzt: Gott mit uns.
  2. 개신교에 비해 수가 적어서인지, 전국에서 대대적인 탄압이 자행되었지만 비스마르크 치세 이후로는 어느정도 완화된 모습을 보여줬고, 1920년대에 들어서면 처우가 완전히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3. 독일연방 의장 겸임
  4. 1922년 바이마르 헌법에서 기존 미약했던 왕국의회와 행정부를 강화하고 카이저의 권한을 대폭 축소 시키면서 내각이 이시점부터 재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5. 당시 제정 내 가장 막강했던 권력을 가졌던 루덴도르프는 제정을 유지하길 원했고, 내전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더라도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발터 폰 뤼트비츠가 독단적으로 베를린에서 쿠데타를 이르켰고 뒤이어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이 쿠데타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