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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華民國 | Republic of Chin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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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 국장 | ||||||||||||||||||||||||||||||||
三民主義 吾黨所宗 삼민주의 오당소종 | |||||||||||||||||||||||||||||||||
상징 | |||||||||||||||||||||||||||||||||
국가 | 삼민주의가 [1] | ||||||||||||||||||||||||||||||||
매화 | |||||||||||||||||||||||||||||||||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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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코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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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코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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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중화민국은 중국 대륙에 존재하는 공화국이자 권위주의 국가이다. 현재 세계GDP 순위 4위, 아시아에서는 2위를 기록 중이다. 국제 통용 명칭은 중국(中國).
대동아공영권 치하에서의 농업 식민지 시기와 호국군 전쟁 및 제노사이드, 또한 내전까지 겪고 대륙이 북북 찢어져 더이상 예전의 강성함은 찾아볼수 없게 되었고, 1989년의 공영권 붕괴 후에도 여전히 일본의 영향력 아래 신음하고 있다.
상세
동아시아의 전통적 강국이었던 중국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였다.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서구 열강에게 지속적으로 밀렸던 중국은 강대국에서 침탈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1894년 청일전쟁마저도 패전하면서, 이제는 동아시아 내에서도 패권을 잃게 되는 지경에 이르고 아시아의 최강국 지위를 일본에 내주었다. 더해서 일본이 조선 병합, 만주 침탈 등으로 이어가며 중국을 지속적으로 침략해가기 시작했다.
1937년 지나사변이 시작되고 장제스가 이끌던 국민당 정권은 상하이와 난징, 1938년 10월 우한까지 단기간에 함락당하고 충칭까지 쫓겨났다. 그러나 일본은 국민당 정권의 항일전쟁이 계속되고 마땅히 단기간 내에 중국 대륙을 쳐낼 방도가 없자 내부 분열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때 일본에 선택된 것이 바로 반장파의 거두 왕징웨이였다.
1940년 난징에서 환도식을 거행하고 왕징웨이가 주석에 오르면서 이 정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초반에는 국민당 정권과 다수 중국인에 의해 괴뢰정권 취급을 받았고, 1941년 대동아전쟁(태평양 전쟁)이 개전하자 1942년 중국 대표 자격으로 미영에 대한 선전포고까지 감행했다. 1944년 왕징웨이는 죽었고 천궁보가 집권했다.
1947년 충칭 전투를 끝으로 국민정부가 멸망, 대륙 전역이 일본군에 점령되자 사실상 국민당 정권을 완전히 대체한 중국의 신정부가 됐다. 이후 1947년 10월 도쿄 조약을 맺어 산동성 할양, 군벌 독립수비대의 창설 등을 비롯해 21개조의 조항을 수용하고 대동아공영권에 가맹하였다. 이때부터 중국은 명목상 독립국이지만 사실상 일본에 의해 장악되었다.
1951년 천궁보가 건강 문제로 사임한뒤 가오쭝우가 집권했다. 그러나 중국은 일본의 공업화에 발맞춰 공영권의 곡창지대로 불릴 정도로 농업육성이 이루어졌고, 1950년대에 강력한 농업국가로서 성장해 일본을 오히려 중국 농산물에 의존하게 하기도 했다. 1960년대 가오쭝우의 주도로 오대개혁운동을 실시해 현대화를 노리나 일본의 방해와 1966년 호국군 전쟁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일본은 잔혹한 폭격으로 수천만 중국 공민을 학살하고 고엽제로 농지를 황폐화 시켜 대기근을 벌였으며, 호국군 협조를 명목으로 몰살을 벌이는 등 지옥이 펼쳐진다. 또한 중국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상하이를 점령하고, 3개의 정무위원회로 중국을 찢어놓고는 군정 통치를 벌였다. 이는 중국에 있어 암흑의 20년이라 불리는 시기였다.(중국 군정시대) 거기에 서북방면국과 산서군벌을 아예 독립국인 신강국, 산서국으로 분할시켰다.
1988년에 인도네시아에서 반정부 군대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그 영향을 받아 20년에 걸친 무자비한 일본 통치에 대해 중국 민중의 불만은 폭발하기 시작하였다. 1989년 이러한 와중에 계속해서 친일적 입장을 취한 츠하오톈은 국민당 내 보수파들의 일본에 대한 실망감을 나타낸 장쩌민의 강력한 시위에 시달릴수밖에 없었고, 결국 실각하게 되었다. 장쩌민은 조속한 개헌 및 공영권의 탈퇴, 무장제한 해제 등을 목표로 국민에게 공약했다.
그렇게 장쩌민이 중국의 지도력을 장악하고 일본을 압박하던 1989년 12월, 일본의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는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의 자결권을 인정한다는 선언을 발표하고 대동아공영권 붕괴가 이루어지면서 중국은 공영권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때 화북 정무위원회는 대세를 거스를수 없었고, 북경에서 난징 중앙정부로의 행정권 평화적 이양이 성사되었다. 하지만 운남을 비롯한 서남지방의 서남 정무위원회는 난징에 반기를 들고 운남지방의 독립국인 운남국[3]을 획책했다.
장쩌민은 1990년 민국 79년 개헌을 단행해 민중의 지지를 얻었고, 운남의 주민들도 중화의 통일을 원했기에 운남정권이 민심도 얻지 못한 바 운남을 제압할수 있었다. 그러나 이 통일은 광동, 하이난, 대만, 만주, 산서, 마가, 그리고 일본 치하 칭다오 및 웨이하이 등이 배제된 반쪽짜리 통일이었고, 중화민족의 강역은 명나라 시절보다도 더욱 쪼그라들었다. 그나마 막 무장제한이 풀린 저열한 질의 중국 군대로는 운남까지 뚫는데만 3년이 걸려 1993년에 되어서야 (일본에게 독립당하거나 할양된 지역들을 제외하고)통일을 완수했다.
통일 직후 중국은 기반이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나라였다. 거기다 일본의 전방위적인 포위와 압박은 중국이 공영권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졌음에도 여전히 욱일의 영향력 하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할 뿐이었다.
상징
국호
국호는 중화민국(中華民國)이며, 영어 명칭은 "Republic of China"를 사용한다. 대외적 약칭은 중국(中國). 영어는 China다.
화(華)라는 명칭도 중국인들이 스스로를 가리킬 때 많이 사용하는 명칭이다. 이는 현재 국호에도 있는 중화(中華)라는 단어로도 연결된다. 이는 일본에서 "중국"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거부하며 중국을 중립적으로 부를 때도 자주 쓰인다. 대표적으로 일본과 중국의 관계를 일본에서 일화관계(日華関係)로 칭한다.
일본은 과거에는 지나(支那), 또는 지나민국(支那民國)라는 비하적 의미가 담긴 단어를 쓰다가 1940년 왕징웨이 환도식 이후에는 일본과 중국 관계는 일화관계, 그리고 중국을 칭할때는 중국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았던지 중화민국(中華民國, ちゅうかみんこく)라고 풀네임을 부르고 있다. 지나는 속된 말로 쓰는 대중적 명칭. 중국인은 정부 공식적으로는 그냥 중국인이라고 하지만, 역시 대중적으로는 지나인이라고 더 많이 쓴다. 창녀라는 의미의 욕설로서 시나온나(支那女)라는 말이 있다. 중국을 정복지로 보는 일부 우익과 군대의 경우는 대륙(大陸)이라고도 칭한다.
국기
중화민국의 법정 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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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청천백일만지홍기 (青天白日滿地紅旗) |
비율 | 5:3 |
구성 색 | 파란색 (#000095) 하얀색 (#FFFFFF) |
중국의 법정 국기는 청천백일만지홍기 (青天白日滿地紅旗)이다. 이 깃발의 기원은 중국 국민당의 당기이다.
아시아 혁명 이후 1993년 최종적으로 중국을 통일시킨 장쩌민이 배너를 떼고 다시 원조 청천백일만지홍기를 국기로 지정했다.
국가
三民主義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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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의 국가는 <삼민주의가>이다. 쑨원에 의해 작사작곡되었다.
지리
지방
자연
인구
행정구역
성(省)
직할시(直轄市)
현(縣)
진(鎮)
향(鄉)
특별행정구
정치
주석
![]() 중화민국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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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주석은 제3대 시진핑이 맡고 있다. 1989년에 집권한 장쩌민이 1989년부터 2008년까지 내리 주석을 지냈으며, 이후 2008년에 후진타오에 직을 물려줬다. 하지만 시진핑의 압박으로 5년만에 후진타오가 시진핑에게 직을 물려줬다. 그리고 2013년부터 시진핑이 다시금 독재 체제를 구축한 상태이다.
중국 총통은 사실상 중국에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른다. 선출 방식은 국민대회에서 간선제로 선출한다. 국민대회를 중국 인민이 뽑기 때문에 나름 민주적이라고도 볼수 있으나 문제는 국민대회의 출마 가능 정당이 국민당 뿐이라는 것.
임기는 5년이고 무한정 중임이 가능하다.
부주석
행정원장
입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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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기 중화민국 입법원 원내 구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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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입법원은 1950년 천궁보 시대에 창립되었고 중화민국 헌법에 따라 중국의 의회 역할을 하며, 단원제로 구성된다. 중국 총선은 인도 총선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선거이다. 그러나 중국 국민당 외에 관제 정당밖에 존재하지않으므로 사실상의 찬반투표에 불과하다.
이 국민당은 1919년부터 1940년까지 있었던 국민당과는 사실상 다른 조직이다. 물론 국민당이 1919년 출범을 내세우고 있기는 하지만, 1925년 쑨원이 죽은 이후 1940년 환도식 이전까지는 장제스가 유일한 국민당을 이끌었다. 오늘날 국민당의 관점으로서는 1925년 쑨원의 사망까지는 같지만, 1925-1940년의 장제스의 지도체제는 인정하나 이후에 "무의미한 항일과 공산당과의 충격적 합작"을 이어가는 그가 탄핵당하고 1940년에 왕징웨이가 국민당의 지도권을 차지하면서 이 시점에서 장제스는 국민당에서 제명됐다는 해석을 한다. 1940-1947년 충칭의 장제스 국민당은 물론 국민당을 참칭한 군벌 세력이었다고 본다. 그렇게 해서 1947년, 충칭정권의 처참한 패망 이후 구 국민당을 물리적으로 "대체"해버린 것이 바로 현재의 국민당(신 국민당)인 것이다.
일본이 물러간 뒤에도 이 해석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기에 현재도 국민당 대회에서는 쑨원과 왕징웨이를 양 당부(党父)로 취급하며 당 대회에도 항상 두 사람의 사진이 걸린다. 이는 친일파 및 보수파 파벌이 일본과의 마찰을 피했기 때문.
국민당 내부적으로 파벌이 존재한다. 크게 3개이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 나아가서는 아태 공영기구로의 합류와 중일동맹을 주장하는 친일파(親日派), 이들의 수장은 후춘화이다. 세 파벌 중 가장 지지도 못 받고 세력도 대단치 않지만, 중국에 영향력을 유지하려 하는 일본으로부터 지속적인 스폰을 받고 있다.
현 주석 시진핑이 속한 보수파(保守派)는 중일관계이든 공영기구이든 큰 관심이 없고 이익만 취하려 한다. 현재는 일본과의 친선이 이익이 되므로 일본과 가깝다. 중국의 독립을 따내 장쩌민 전 주석도 반일파라고 보기는 여러웠고 여기 속했다.
반면 리커창이 수장인 개혁파(改革派)는 강력한 반일 성향을 가졌고, 아직도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중국에 탄식하고 있다. 이들은 단기적으로 일본과의 관계에서 대등한 상태를 만들고, 나아가서는 실지를 찾기 위한 일본과의 전쟁까지도 염두에 둔다. 대체로, 이들은 국공합작 시의 공산당 세력과도 관련이 깊다. 후진타오 전 주석이 여기 속했다.
국민대회
군사
중국의 군대는 중화민국 국군(中華民國國軍)이다. 중국군은 육군 병력 약 165만 명의 규모로 아시아 제2의 육군력을 지녔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해군력은 배수량 기준으로도 일본의 10%에 불과하며 질적 차이는 더욱 현격해 일본 해군과 비하면 사실상 전무할 정도로 미약하고 공군력 또한 일본에 비해 터무니없이 모자라 실질적인 국방력이 일본보다 크게 밀린다.
하지만 적어도 세계적으로 군사강국에 위치하고, 동아시아 2위의 국방력임은 명확한 수준.
경제
명목 기준 경제력 순위 | ||||
---|---|---|---|---|
순위 | 국가 | GDP | ||
1 | ![]() |
미합중국 | 22,571,373 | |
2 | 대일본제국 | 19,422,821 | ||
3 | ![]() |
대게르만국 | 15,330,750 | |
4 | ![]() |
중화민국 | 8,562,599 | |
5 | ![]() |
이탈리아 제국 | 6,738,954 | |
6 | 자유 인도 | 5,127,011 | ||
7 | ![]() |
영국 | 3,173,451 | |
8 | ![]() |
광동국 | 3,060,374 | |
9 | 대만주제국 | 2,841,278 | ||
10 | ![]() |
이베리아 연방 | 2,362,981 | |
11 | ![]() |
브라질 | 2,343,439 | |
12 | ![]() |
캐나다 | 2,214,796 | |
13 | ![]() |
멕시코 | 2,041,628 | |
14 | ![]() |
프랑스국 | 1,913,316 | |
15 | 호주 공화국 | 1,802,006 | ||
16 | ![]() |
터키 | 1,647,149 | |
17 | ![]() |
인도네시아 | 1,402,590 | |
18 | ![]() |
타이 공화국 | 1,163,619 | |
19 | ![]() |
루슬란트 연방공화국 | 1,134,553 | |
20 | ![]() |
사우디아라비아 | 1,100,706 | |
21 | ![]() |
스위스 | 942,265 | |
22 | ![]() |
러시아 국민국 | 858,716 |
사회
민족
중국의 민족은 한족으로 부른다. 주류 민족인 한족 이외에는 광서성의 좡족, 윈난성의 후이족 정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