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슬란드의 역사

에쒸비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1월 30일 (일) 23:44 판

상위문서:프리슬란드

프리-판크라티온

신대륙 북부에 인류가 정착하기 시작한 시기는 -34000년으로 추정된다.

구대륙 동부인 오플란 북부로부터 빙하기로 인해 낮아진 해수면으로 건너온 북방인이 프리슬란드 최초의 인간이다. 북방인은 수렵과 채집 중심으로 생활하며, 뗀석기를 사용하는 구석기 수준의 기술을 갖췄다. 북방인들은 대륙 북부와 서부를 시작으로 신대륙 각지로 퍼져나갔다. -20000년 전부터는 신대륙에 자생하는 일부 동식물을 가축화/작물화하면서 농업과 목축을 시작했고, 강을 중심으로 원시적 정착지가 형성되었다.

-4000년 부터는 헤스페로스벨트 북부로부터 해로를 통해 해양인이 유입되었다. 해양인은 석기시대였던 신대륙 북부 원주민인 북방인과 달리, 청동기를 비롯한 금속 제련 기술을 갖춘 상태였다. 해양인은 금속기를 활용해 북방인을 정복하거나, 북방인과 동화하면서 신대륙 동부를 중심으로 사회를 형성했다. 금속기 기술을 갖춘 해양인과 그에 동화된 북방인은 서부로 유입되었고, 금속기 도입이 늦었던 서부의 북방인들은 대부분 해양인 출신들에게 복속당하고 만다.

해양인들이 지배층, 북방인들이 피지배층으로 구성된 계급사회가 신대륙 북부 각지에 형성되었으며, 대륙 중부에는 해양인들에게 땅을 뺏기거나, 농경지에 부적합한 곳에 이주하게 된 북방인들이 유목민족화되었다.

신대륙 북부에 문명이 자리잡은 것은 -1000년 부터였다. 당시 프리슬란드 문명권은 크게 동부의 도시국가, 서부의 왕조, 중부 대평원의 유목부족으로 구성되었다. 그 중에서도 동부는 좁은 의미의 동부인 동북부와 해안과 맞닿은 동남부로 나뉜다.

동부 도시국가들은 공통적으로 토지를 보유한 시민과 토지가 없는 농민으로 나뉘었다. 농민은 시민의 토지에서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었고, 시민은 보유한 토지를 기반삼아 농민을 지배하는 지주였다. 시민들은 서로를 견제했고, 다른 시민을 압도하는 대지주의 출현을 경계했다. 그 결과 시민들 사이에서는 토론과 투표로 의사를 결정하는 공화정이 주류 체제로 자리잡았다.

동부 여러 지역에서 이러한 도시국가가 난립했고, -800년 부터 세워진 판크라티온도 그 중 하나였다.

고대 판크라티온

과두정

판크라티온은 본래 자신만의 땅을 가지려는 개척자, 도시를 떠난 농민, 도망노예, 떠돌이 유랑민, 몰락시민 등이 모여사는 정착지였다. 판크라티온 지역은 크게 3개의 언덕과 중앙 구릉으로 구성된 지형이었다. 거주민들은 맹수의 침입과 노예사냥꾼, 다른 도시의 침략 같은 외부 위협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3개의 언덕에 망루를 세우고, 언덕 사이를 성벽으로 연결했다. 그리고 언덕 안쪽 구릉지에 거주지를 건설해 도시를 형성했다.

판크라티온은 다른 도시국가들처럼 시민들의 투표와 토론으로 주요 안건을 결정했다. 그러나 판크라티온은 시민의 선정 기준이 다른 도시들과 차이가 있었다. 다른 도시국가들에선 토지 보유자가 시민의 자격이었던 것과 달리, 판크라티온에선 판크라티온의 주민이냐 아니냐가 시민의 선정 기준이었다.

토지가 없음에도 시민이 될 수 있다는 점은 판크라티온의 이점이었다. 이는 다수의 피지배층들에게 매력적이었고, 판크라티온으로의 이주가 잦아졌다.

귀족정

참주정

판크라티온 분단기

신성 판크라티온

참주령 판크라티온

식민지 시대

프리슬란드 결성전쟁

프리슬란드 자유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