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스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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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스터프
Cue Kaino Cresterf
1502년 - 현재
크레스터프 국기
표어 Suowern En Kaino En Arin
(신과 국왕과 우리)
수도 클로비네
최대 도시 클로비네
크레스터프 왕국 선포 1502년
하강 서약 1556년
인문 환경
인구 전체 인구 --명
민족 구성 크레스터프인 99.2%
기타 0.8%
인구 밀도 약 --명/km²
공용어 크레스터프어
기타 언어
종교 크레스터프 정교회 79.7%
기타 20.3%
군대 크레스터프군
세부 군대 육군 크레스터프 국방군
해군 없음
공군 크레스터프 비행 전단
기타군 왕실 근위군
행정구역
행정
구역
8개 주
관할시 24개 관할시
방위시 108개 방위시
부속령 52개 부속령
총괄시 1개 총괄시
정치
정치 체제 입헌 군주제
국가
원수
국왕 아르벨 3세(Arbell III)
총리 모리위 쿠벨(Moliy Qbel)
여당 부동당(Liz Veg)
경제
경제 체제 국가개입주의 시장경제
명목
GDP
전체 GDP 861억 8288만₭, 710억 4522만ℳ
1인당 GDP 1,046₭, 862ℳ
화폐 공식 화폐 코렐 (₭)
통계
자료
경제성장률 6.3%[1]

개요

크레스터프(크레스터프어: Cue Kaino Cresterf 퀘 카이노 케레스테르프)는 헤스페로스벨트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서쪽으로 게파르트, 북쪽으로 공화국 연맹과 접한다.
수도는 황금과 물의 도시로 불리는 클로비네이며, 그 밖에 로프닛 등의 도시가 위치해 있다.
크레스터프는 국토 대부분이 고산 지대로서 전체적으로 기온이 낮아 일반적인 헤스페로스벨트의 국가들 보다 평균 기온이 낮다.
1672년 크레스터프 군사정보부 총 인구 결산에 의하면 1672년 기준 약 8,230만 명의 국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국민 전부가 인간이며, 공용어는 크레스터프어이다.
일반적으로 국민들의 제노포비아 성향이 강하며, 외교적으로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기본적으로 중립을 표방하는 몇 안되는 국가로서, 자국과 자국민의 보호 및 방위를 우선시한다.

인문 환경

역사

Nowelstor Dendit Siz Cresterf'
크레스터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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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크레스터프가 위치한 아베아(크레스터프어: Abea) 산맥에서는 농사를 짓기가 힘들어 일찍이 과거 크레스터프인들은 현재의 공화국 연맹이 위치한 산맥 위쪽의 평야에 터를 잡고 석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며 문명을 꽃 피웠다.
이렇게 생긴 고대 문명들을 태양을 안은 문명(크레스터프어: Souv Komen소페 코멘)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소페 코멘들은 이후 동방에서 건너온 이민족들의 이동을 피하여 아베아 산맥으로 이동했고, 이후 170년, 각 코멘들의 보전 및 방위를 위하여 연맹을 결성하였다.
이렇게 결성된 연맹을 소페 연맹(크레스터프어: Souv Unin소페 우닌)이라고 하며 크레스터프 사학계에서는 이 시기부터 크레스터프의 중세 시대로 보고있다.
소페 연맹 시기 크레스터프인들은 아베아 산맥을 통과하는 이닉스(크레스터프어: Inics) 강에 자리를 잡고는 강을 통하여 남부의 평야와 교류하며 교역, 약탈 등으로 문명을 발전 시켜 왔다.
이 시기 이닉스 강의 상류에 위치한 클로비네는 황금과 물의 도시로 불리며 그 명성을 드높였고, 오늘날 크레스터프의 주요 산업 중 하나인 은행업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
이후 한동안 평화를 유지하던 소페 연맹이었으나, 이닉스 강 지류에 위치한 소왕국인 케레아(크레스터프어: Crea)의 영주였던 아이노 코스티아(Aino Kostia)는 243년, 주변 지역을 복속시켜 나가며 정복 전쟁을 시작했고, 결국 아베아 산맥의 봉우리 중 하나인 데네스티(크레스터프어: Denest)에서 주변 영주들의 항복을 받아내면서 크레스터프 왕국의 건국을 천명하였다. 이때, 케레아의 통일 전쟁 및 이후에 이어지는 전쟁을 합쳐 크레아 전쟁이라 부른다.
이후 코스티아 1세(크레스터프어: Kostia I)라는 왕호로 왕위에 오른 아이노 코스티아는 데네스티의 만년설과 밤하늘의 모습을 나타낸 깃발을 주로 사용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크레스터프 왕국의 국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코스티아 왕조의 치세에서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가던 크레스터프였으나, 1075년, 코스티아 왕조의 대가 끊기게 되면서 사제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노바페른 공의회(크레스터프어: Nowavrn Kounsel노바페른 코운셀)가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노바페른 공의회는 크레스터프 정교회의 교리를 따라 신정을 펼쳤고, 이에 따라 강압적인 통치와 보이지 않는 성직자들의 부패가 만연한 사회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프론트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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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통계국 1671년 경제성장률 조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