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바니아

토메이토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10월 5일 (목) 19:28 판 (새 문서: {{namucat-dark2|센트럼 연방/지역}} {{PC 열람 권장|dark}} {{목차 숨김}} <div style="background:#000000;border:2px solid #fff; padding:10px; margin:20px auto;box-shadow:0...)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현재 접속하신 문서에서 모바일 열람이 감지되었습니다.
PC에서의 열람을 권장합니다.
유토바니아 연방
Yotovania Federation



시작점과 종착점
이스카야 전통의 강국이던 유토바니아도 어둠을 피해가기는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대침체로 경제에 큰 타격을 입고 그 후유증이 가시기도 전에 헬리아와의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었으며, 평화와 화합은 무너졌습니다.
당하고만 있을 순 없습니다. 그들은 총을 들어야 했습니다.
결국 유토바니아는 이 대륙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 될 운명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1.개요

유토바니아 연방은 이스카야 유토바니아에 위치한 대통령제, 연방제 국가이다. 17개 주, 1개 특별구로 나뉘어진다. 수도는 노긴스크로 북쪽으로 베체니크볼란시아가 접견하며 동쪽으로는 볼리티아에메키아가 접견한다.

단체안보보장기구(OSC)의 의장국이다.

2.역사

탈냉전기

유토바니아는 냉전기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스카야 국가들 중 가장 빠른 1947년부터 소련과 수교를 시작했고, 미국과도 비슷한 시기에 수교를 시작했다. 유토바니아는 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국가로서 이스카야 최초의 국가인 유프리나 왕국의 후손이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 준수한 발전 속도를 유지하여 정치, 경제적 기반이 탄탄하였다. 1990년, 소련의 요청으로 유토바니아는 현재 환율로 16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소련에 지원하였고, 인도주의적 지원 등을 합치면 그 액수는 20억 달러에 이르렀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분리된 러시아는 아직 남은 13억 3천만 달러에 이르는 빚을 변상할 능력이 전혀 없었고, 러시아는 유토바니아의 즉각적인 배상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그 액수에 맞는 군사 장비를 공여하여 빚을 대신한다는 노긴스크 협정을 체결하였다. 유토바니아는 아멜리아의 국가들과 같이 즉각적인 발전에 수없이 많은 예산을 투입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제안을 수락하였고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국군 병력을 보충하고 자국산 무기를 생산하기 위해 이 물건들을 활용했다.[1] 러시아는 당시 소련의 붕괴로 생산이 중단된 T-80 전차를 비롯한 주력 전차와 무기, 대전차 및 대공 미사일, 심지어 주력 전투기까지 상당한 수의 장비를 유토바니아에 공여했다. 그들은 공여 받은 장비들을 연구하고 제 입맛대로 개조해서 써먹거나 아예 기술을 활용해 신형 장비를 생산하여 배치했고 당시 부족했던 군 병력을 크게 보충했을 뿐 아니라 미국의 최신예를 장비를 대거 들여온 헬리아와 비슷한 군사력을 보유할 수 있었다.

유토바니아는 기본적인 기반이 탄탄했기 때문에 첨단 산업에 투자하기 적합했다. 그들은 첨단 산업을 위한 공업 단지를 따라 지정하여 첨단 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였다. 자원이 풍부하지는 않았지만, 베체니크에 수많은 자국 기업들과 우호적인 관계의 볼리티아에서 수많은 광물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였기에 걱정이 없었다. 9/11 테러 이후로는 국제정전유지협정군에 치안 및 평화 유지라는 명목으로 일부 부대를 파견해 미군과 합동 작전을 펼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헬리아가 급격히 세를 불리고 이들의 정찰기가 유토바니아 섬 일대에 침입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이에 동요한 유토바니아는 2005년 니케프와 노카이아란, 유토바니아, 볼리티아로 군사 안보 조약 기구인 단체안보보장기구(OSC)를 창설했다.

대침체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으로 골머리를 썩히고 있던 와중, 서브프라임 대출에서 비롯된 문제로 수많은 은행들이 도산하기 시작하자 미국을 시작으로 국가적 경제 위기가 전세계를 뒤덮으며 대침체가 시작된다. 유토바니아의 국가들은 그나마 해외 의존적인 경제 형태를 지니지 않은 편인지라 그 영향은 덜 받을 수 있었지만 그것이 대침체를 피해갔다는 것은 아니었다. 유토바니아는 자국의 대형 은행이 도산하고 첨단 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어 운영에 차질이 생기면서 경제가 휘청였다. 다른 국가에 비하면 적은 수이지만 1만에서 1만 5천 정도의 실업자가 발생하고 주요 방위 산업체와 운송 기업들도 타격을 입으면서 러시아와의 군사 사업도 잠시 중단되고 말았다. 유토바니아는 급히 외화 등을 이용해 경제를 수습하려고 했지만 대침체의 특성 상 그것도 어려운 일... 유토바니아는 정부 예산을 감축하여 일단 실업자들에 대해 지원을 시작하면서 급한 불은 끌 수 있었다.

혼란기

그러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뿌린 물이 사실은 기름이었던 모양이다. 국제 교역망이 복구되면서 러시아와의 군사 사업은 다시 시작되었고 실업자들에게 다시 직장을 찾아주는데는 성공했지만 정부 예산을 감축한 것이 문제였다. 2015년 예산 감축으로 인해 월급이 줄어들자 이에 불만을 품은 정부 공무원들이 총파업을 시작해 전보다 더 많은 월급과 휴식 시간 보장을 요구했다. 유토바니아는 도저히 이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고, 들어준다고 해도 극히 일부 말곤 실시할 수 없었다. 유토바니아의 정부 관련 업무가 파업 기간인 3주 간 완벽히 마비되었고, 대침체로 인한 후유증이 다시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버렸다.

이스카야 사태

2018년, 헬리아가 일방적으로 외교 단절을 선언하면서 두 국가 사이의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OSC 소속국들 역시 비슷한 통보를 받았다. 유토바니아는 헬리아의 일방적인 외교에 당황했지만 이에 대한 대응으로 공군과 해군 병력을 헬리아 인근 해상에 집중 시켜 무력 시위를 벌였다. 이와중에 헬리아는 대함 미사일을 통해 유토바니아의 함선을 격침하는 사건을 벌이면서 정말로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이로 인해 서로의 관계는 완전히 냉각되었고 두 국가는 각자 ETZMTO를 통해 비공식적인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유토바니아는 이런 상황에서 헬리아를 견제하고자 니케프에 대한 대규모 군수 지원을 준비하고 전쟁시의 물자 부족에 대비하고 전쟁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자 ETZ를 통해 베체니크를 손에 넣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내부 폭로가 나와 모든 기밀이 사방팔방에 알려지는 일이 벌어지면서 상당히 곤란한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헬리아의 방해 공작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으나 당장에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확실했기에 그들은 러시아와 협조해 T-90 등의 기술을 공여 받고 급한데로 러시아의 개인 장비를 수입해 전방 부대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3.사회

그나마 안정적인 사회

유토바니아는 상당히 안정된 사회 기반을 지니고 있었기에, 대침체와 국가 공무가 멈추는 등 혼란한 상황이 있었음에도 아예 난장판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 약간의 혼란이 있었으며 현재 그 상황이 완전히 안정적이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이스카야 내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정상적인 복지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OSC 국가들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돈을 많이 때려 넣기는 했지만 뭐...

나름 우수한 치안

폐쇄회로텔레비전(CCTV)를 주요 도시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상대인 헬리아가 아예 난장판이 나고 민간군사기업과 일반 기업들이 치안을 관리하는 일이 났지만 유토바니아는 경찰 병력이 기업의 개입 없이 치안을 자율적으로 관리한다. 총기 허가로 인한 문제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그만큼 경찰들도 중무장하고 시민들도 대부분 권총 하나 정도는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려할 부분이 아니다. 가로등에는 제대로 불이 들어오고 밤 거리도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다.

  1. 당시 유토바니아는 유프리나 왕국 시절의 내전으로 인해 자국의 법으로 군사 보유 수준을 제한하고 있었으나, 그 수치가 너무 극단적이라 제대로 된 군 병력을 보유하지 못할 정도였다. 거기에 장비의 연식 역시나 크게 제한하여 군사의 발전이 느렸다. 아멜리아의 급속 발달과 노카이아란의 괴뢰국화를 지켜본 유토바니아는 1988년 군사 보유 및 장비 연식을 제한하는 군사법을 폐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