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신질서의 황혼 세계관의 동아시아의 등장국가 및 세력 일람.
주요국
대일본제국

武士道とは死ぬことと見つけたり
무사도란 것은 죽는 것이다.
천황: 나루히토
내각총리대신: 기시다 후미오
집권 정당/이념: 자유민주당 / 보수주의, 준군국주의
다음 선거: 2024년 10월 / 다당제
인구: 약 2억 2768만명
대일본제국엔 해가 지는 법이 없었고, 적어도 아직 해가 지지 않았습니다. 지구상의 나라 중 5번째로 많은 단일 인구를 거느리고 있는 대일본제국은 세계에서 2번째의 군사, 산업 기지, 그리고 해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승전과 하와이 식민지로 대표되는 태평양의 소유로, 일본은 유럽과 중국에 뒤처지고 폐쇄된 국가에서 바다와 육지의 지배자로 변모했습니다. 하지만 전후로 계속해서 복잡해지는 행정과 경제는 제국을 악화시켰고, 쇼와 말년의 아시아 민중의 분노는 제국의 신질서의 황혼을 이끌었습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일본은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20년의 자유가 있었지만, 아시아인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한 일본 국민은 계속해서 제국이 이상을 이어가고 이제는 자비가 아닌 "지배"를 배신자들에게 행할 것을 강력히 원했으며, 정치는 이에 답했습니다. 제국은 국민적 요구와 국제적 외교 사이에서 조절하고, 가장 좋은 방향을 이끌어야만 합니다. 모든 것이 실패할 경우, 이 제국은 파멸의 길로 들어설수 있습니다. |
일본제국은 일본 열도, 조선, 대만을 크게 하여 하와이, 태평양 제도, 중국의 하이난섬과 칭다오, 웨이하이, 블라디보스토크를 통치하는 세계 제2의 대국이다. 이 외에도 만주국과 광동국, 몽골을 아직도 사실상의 식민지로서 경영하고 있으며 중국을 묶어두우 아시아 역내의 강력한 패권을 수호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예고된 승리 이래로 일본은 번영을 맞이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 일본의 지배를 흔들려는 움직임이 보였으나, 일본은 동남아인과 중국인의 모든 저항을 분쇄한 채로 70년대 제국의 전성기를 꽃피웠다. 그러나 이것을 부순 80년대의 연쇄적인 아시아 혁명은 일본인에게 있어 맛본 적이 없던 패배를 조금이나바 보게 했고 초강대국의 패권을 내려놓게 했다. 이때 국민적 반발을 의식해 대정익찬회가 무너졌고 제한적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최대 도시는 도쿄로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 명예를 받았다.
정치적으로는 우경화의 경향이 강하다. 일단 승전을 했기도 했고, 비록 90년대에 일본이 이끌던 대동아공영권의 식민 체제가 무너졌음에도 냉전 기간동안 과실을 누렸고 그 과실이 지금까지도 일본의 경제를 지탱하기에 군국주의, 전체주의, 집단주의의 잔재가 매우 짙게 깔려있다.
아시아주의 역시 상당히 심한 편이다. 이 사상은 일본식 중화사상 버전이라고 할수 있는데, 간단히 말해서 일본인이 우월하기 때문에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가 결집하면 서구를 압도하고 붕괴시킬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본 극우세력의 레퍼토리도 현실처럼 타민족 비하보다는 타 아시아 인종에 대한 선민의식으로 점철되어있다. 다만 중국인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혐오와 멸시를 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일본우월주의 및 국가주의에 기반한 아시아주의 성행에서도 알수 있듯 서구에 대한 반감은 상당히 팽배하다. 친미 성향을 보일 경우 비국민 취급하는 모습의 잔재가 지금도 남아있는 상황이며 언어 역시 외래어가 거의 쓰이지 않는 모습으로 변화했다.
1997년 이후로는 미국과 적대 관계를 청산했다고는 하나 엄연히 태평양에서 양대 해군력을 가진 잠재적 적성국으로 있으며, 양국은 2018년엔 무역 전쟁을 벌였던바도 있다.
일본은 90년대 경제적 침체를 겪은 후 늦에서 나오지 못했다. 2010년대 들어 다시금 군국주의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으며, 프랑스를 침공한 독일이나 아직도 파시즘인 이탈리아보다는 낫지만 점점 상태가 악화 중이다. 기시다 총리가 물러터졌다는 이유로 인기를 잃었고 2024년에 총리가 바뀔 예정이다. 전직 장수 총리이자 세이와 정책연구회의 아베 신조, 지공회의 이시바 시게루, 그리고 고노 다로가 각축할 전망.
일본의 보수 정계는 다시금 군국주의와 천황제 파시즘에 주목했다. 출산율 하락, 양극화 등 가면 갈수록 커져가는 제국 내의 사회적 문제는 과거 공영권 왕관의 보석이었던 중국을 다시금 굴복시킴으로서 한 번에 해결될수도 있다. 군부는 이를 기회로 보고 있으며, 아마 세이와의 아베는 군부의 강력한 후원자일 것이다. 일본은 중국을 될수 있다면 "평화로운" 방식으로 굴복시키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전쟁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2억8천만 "일본 신민"은 새로운 제국의 전략에서 조국의 훌륭한 방패가 될 것이다.
반도
일본의 반도 영토. 인구는 약 8,000만명이다. 1910년까지는 독자적인 나라를 구성하였으나 이후엔 일본에 강제 병합되었으며,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승전했으므로 독립하지 못하고 현재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은 조선에서도 징병을 실시하였고 내선일체를 주장하며 조선인들을 전장에 보냈다. 이에 따라 조선 총독은 1946년부턴 문관으로 전환되었다. 또 1946년 소학교와 중학교 과정 11년의 의무교육이 이루어졌다. 동화정책은 한층 강화되어 창씨개명이 패시브가 되었고 일본어의 보급도 빠르게 이루어졌다.
1952년 내외일체 조치에 따라 기타가라후토, 다이완과 함께 내지가 되었고 보통선거권이 부여되게 되었으며 도가 폐지되고 도도부현 제도를 실시하게 되었다. 이후 냉전 시대엔 일본의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조센 역시 게이조, 후산, 헤이조, 간코 등 주요도시의 성장과 토지개혁 등 사회적으로 일신되게 되었다. 경제성장에 따라 점차로 반도에서 일본에 대한 반발심은 하락하기 시작하였고 1960년대만 되어도 서서히 일본화가 진행되었다.
현재는 반도인들은 사실상 일본인으로 완전히 동화되었다. 조선어 화자는 개마고원 등지의 오지 중에서도 오지까지 들어가야만 찾아볼수 있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현재 반도 내에서 대체로 조선계:일본계:일선혼혈의 비중은 7:1.5:1.5 정도를 나타내고 있다.
1952년 이래로 반도인은 완전히 일본 국민으로서 모든 정치적 권리를 누릴수 있게 됐다. 다만 사회적으로는 2등 시민 취급하거나 토인이라고 비하하는 풍조가 있으나 현재의 젊은 세대들은 구분이나 차별이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 반도 출신의 총리도 80년대 이후 2명이 나올 정도이다.
상당한 규모의 역사 왜곡과 국민 세뇌가 이뤄졌다. 단군이 곧 스사노오이며, 조선은 중국에 의해 갈라졌던 일본 민족의 분파였다는 일선동조론 및 동조동근론, 만선사관, 임나일본부설 역시 진실, 조선의 당파성론과 타율성론, 정체성론도 정설로서 받아들여지는 중. 삼국시대는 만선사관으로 조선사에서 빠지는 고구려를 대신해 야마토 정권을 넣었으며, 한일합방은 "동서통일"이다. 만선사관에 따라 고구려와 발해는 만주의 역사고, 신라-고려-조선과 이후 다이호 율령 이후 일본이 존재하던 시기(701-1910)는 "동서국시대"라고 부른다.[1] "서국"인 조선이 "만주 세력"(여진)을 격파하며 북쪽으로 확장해 최종적으로 일본의 강역을 확정했다는 논리. 이러한 사상은 몽골침략에 대해서도 드러나는데 일본의 서국 고려가 30년이나 항전하며 버틴 끝에 일본의 수호신이 감동하여 카미카제를 일으켜 열도 본토로의 침공을 저지하게 된 역사로 묘사된다.
여담으로, 조선사의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일본식으로 창씨개명 당했다. 이순신이 리노이에 무쿠게오미가 된 식.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7년 충칭 함락 때 같이 산화하였고 이후엔 반도의 영유권을 명목상이나마 주장하는 망명정부 등의 조직된 단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만
일본의 남방 영토. 인구는 2천만명, 최대 도시는 다이호쿠부.
반도와는 달리 독자적인 역사나 문명을 가진 적이 없었던만큼 소수의 원주민들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일본에 동화되어있는 편이다. 다이완에서는 중국어는 사어이고 대만어 역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창씨개명은 원래 허가제로서 무분별하게 하지 못하게 했으나 1948년 2차 창씨개명 때 대만인들도 강제로 창씨개명된다.
대체로 반도의 사이슈(제주도), 열도의 오키나와와 함께 일본의 3대 해양 관광지로 꼽힌다. 그러나 세이슈나 오키나와와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압도적인 정경을 자랑하는지라 서양인들도 매년 수백만 명이 방문하는 관광업도 다이완 섬의 주요 예산 수급처이다.
중화민국

白日依山盡
黃河入海流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밝은 해는 산 너머로 지고
황하는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눈 들어 천 리를 바라보려
다시 누각을 한 층 더 올라가네
주석: 시진핑
행정원장: 후춘화
집권 정당/이념: 국민당 / 파시즘, 민족주의
다음 선거: 2027년 / 일당제
인구: 약 10억 8000만명
동방의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대지, 중국이 존재한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중국의 역사는 그 무한한 가능성의 땅을 지배하기 위한 역사였습니다. 수천년 동안, 중화의 전사들은 수 많은 왕들과 황제들의 가슴 속에 야망 또는 공포를 불어넣었습니다. 중화 민족에게 패권은 필연이었습니다. 19세기, 잔혹한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서 갈갈이 찢긴 중국의 모습에서 중국의 전성기는 끝났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같은 동방의 소국 일본에게도 패배하고, 중국은 한없는 추락의 길을 향할 뿐이었습니다. 가장 결정적으로, 중일전쟁은 10년간 수천만의 중국인의 목숨울 앗아갔으며, 1947년 충칭에서 마지막 중화민족의 독립 정권인 국민정부는 최후를 맞았고, 천궁보의 난징 정권은 이를 대체했습니다. 1980년대에 있었던 일본 제국주의의 몰락은 분명히 중국에게 기회로 다가왔지만, 중국은 일본의 위협을 떨쳐낼 용기가 없었고 아직도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일본의 영향 하에 있습니다. 이제 2세기 전의 일이 되어버린 중국의 전성기가 다시 올지는, 시간만이 알 것입니다. |
중국대륙에 위치한 국가이자 현 동아시아 제2의 국가. 과거 장제스의 국민정권을 "대체"했기 때문에 정부의 적통은 중일전쟁 당시 1940년에 세워진 왕징웨이 정권이 시작이며, 1980년대까지는 일본의 괴뢰국이었다. 이후 1989년 개혁파의 관료 장쩌민이 집권하게 되면서 일본의 내정 간섭을 철수시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광동국이나 만주국 등을 되찾지 못했으며 칭다오, 하이난 등 일본의 대륙 식민지도 여전히 건재함은 물론이고 호국군 사태를 기점으로 중국에서 분할당한 산서국이나 신강국 등 몇 중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포위와 견제에 둘러싸인 상태로 사실상 일본을 상대로 굴종하기에 바쁜 한계를 안고 있는 정부이다.
수도는 난징, 최대도시는 상하이이다. 상하이 도시는 일본 식민제국의 걸작으로서 중국의 보석 역할을 하며, 현재도 일본의 영향력이 강력하게 남아 있다. 경제적으로 기술력이 참담한 중국의 산업에는 아직도 일본이 깊게 연관되어 있으며, 가까운 시일 내의 중국의 기술 독립은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또한 재중 일본인은 상하이, 톈진 등 대도시에 조계지를 이루고 상류층의 삶을 누린다.
중국은 국민당 일당독재 체제하에서 정치가 돌아간다. 입법원은 절대적으로 국민당의 우위에 있고 국민당은 중국의 현재 고난의 최대 원인인 일본을 애써 무시한 채 중국인이 단결하면 잘 살수 있다는 무의미한 상투적 외침을 반복할 뿐이다.
하지만 2013년 집권한 시진핑은 한층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시진핑은 중국인의 빈곤을 해결하고 교육을 진흥해 중국 근대화의 초석을 다지겠다는 포부를 보였으며, 겉으로는 일본과 친선하면서도 속으로 칼을 갈고 있다. 분명히 시진핑의 개혁안은 성공적이었으며 중국에서의 아사자는 근 10년간 명백하게 줄었다. 시진핑은 이제 중국의 진정할 독립을 누리고 있다. 일본이 다시금 군국주의에 빠져 중국으로 침공해 온다면, 분명히 중국인은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광동국
대만주제국
기타
대몽고국
산서국

주석: 푸천
집권 정당/이념: 염계군벌 / 국수주의, 전제주의
다음 선거: 선거 없음
인구: 약
일본이 호국군 전쟁 이후 중화민국의 독립수비대이던 산시성 진수행정공서를 중국에서 떼내고 세운 국가. 1968년 정식 수립됐고 초대 주석에는 푸쭤이가 올랐었다. 1974년 푸쭤이가 죽자 아들 푸헝[1]이 직을 고스란히 승계하여 1997년까지 통치하면서 사실상 푸씨 왕국이나 다름없다. 당연히 인권이나 생활 수준도 중국보다도 낮다. 헌법도 없고 사실상 군벌국가/세습왕조로서 굴러간다.
수도는 타이위안. 현임 주석은 푸쭤이의 손자이자 24세에 산서 권좌에 올라 현재까지 집권 중인 푸헝의 차남 푸천[2].
신강국
티베트 왕국
동투르키스탄 공화국
- ↑ 다만 실질적으로 일본의 "본토"는 열도라는 전제는 깔고 가며 서국, 즉 신라-고려-조선은 일본의 분파였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