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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미합중국(米合衆国, United States of America) 또는 미국(米国, America)은 북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해 있는 공화국이다. 현재 세계 1위의 GDP를 가졌고, 1인당 GDP는 일본의 1.7배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이다.
상세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패배를 겪고, 미국은 큰 정치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격변이 찾아왔다. 조지프 케네디에 이어 대통령 직을 계승한 트루먼은 취임 당시 추축국을 무찌를 수 있다는 그의 호언장담을 했지만 결과는 패전 뿐이었다. 그가 이끌던 민주당의 인기는 그야말로 추락하였다.
그렇다고 라이벌인 공화당 또한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다. 공화당 출신인 후버 대통령의 실책과 공화당도 민주당의 고립주의에 동조하며 자유 진영을 돕지 않았기에 그들도 패전의 책임을 회피할 순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48년 대선에선 양당제의 틀에서 벗어난 다른 후보들이 대선에 참여하였고 총 5인의 후보가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충격적이게도 5인의 후보 모두 과반을 점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투표는 하원으로 넘어갔고 하원은 공화당의 토마스 듀이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대선은 결국 기성 정치권인 공화당의 승리로 끝났지만 미국의 정치구도는 이전과 다르게 변화를 맞이하였다. 1947년 헨리 A. 월레스와 글렌 테일러는 사민주의자와 진보진영을 규합해 국민 진보 전선을 결성하였고, 전쟁영웅인 조지 S.패튼은 민주당의 탈당파와 극우파, 강경 매파들을 모아서 1951년 애국당을 창당하였다.
이러한 와중 린든 B. 존슨의 주도 하에 공화당이 민주당에 합당을 제안해 기성 양당이 공화민주당(RD)으로 재탄생하였다. 이후 인기없는 듀이를 대신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방어전에서 분투하여 명성을 얻은 아이젠하워가 공화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섰고, 애국당의 패튼과 국가진보전선의 글렌 테일러와 대선레이스를 치룬 끝에 대선에선 압승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공화민주당의 독주에 분노한 애국당과 국민진보전선은 일단 체급을 키워야한다는 생각하에 여타 극단적인 이념을 지닌 군소정당과 인물(파시스트, 공산주의자등)들을 끌어들이며 합당을 하였고 서로 양극단의 이념이 뒤섞인 프랑켄슈타인 정당을 만들어내고야 마는데 이것이 공화민주당의 새 라이벌인 국민진보당(NPP)이다.
이들은 진보적인 색채와 동시에 주적인 독일과 일본에 대한 강경한 적개심을 들어내며 이들에 대한 보복과 옛 영토의 수복등 애국심을 강조하며 인기를 얻고자 하였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양당제는 기존의 민주 - 공화 양당제에서 공화민주 - 국민진보 양당제로 변화하였다. 대체로 공화민주당이 우세한 모습을 보였다. 60년대의 민권법을 두고 벌어진 난장판을 비롯해, 패전 이후의 미국은 여러모로 안정되지가 못했다.
이러한 혼란에도 불구하고 냉전이 독일과 일본이 차례로 붕괴하며 미국의 승리로 끝나자, 미국은 멍에를 벗고 세계의 패권국으로 일어설수 있었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 1위의 초강대국이 되어 있다. 2024년 현재는 강경 포퓰리즘 우익, 고립주의를 내세우는 NPP의 도널드 트럼프와 RD의 조 바이든의 대선 대결이 예정되어 있다.
상징
국기
![]() 성조기 The Star-Spangled Banne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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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 공식 국기 |
비율 | 5:3 |
미국의 국기의 별은 49개의 주를 상징하고, 붉은 선은 13개의 식민지, 즉 미국의 창립 주들을 상징한다.
한자 문화권에선 성조기(星條旗)라고 쓰이는 반면, 미국에서의 호칭은 다소 애매하다. 공식 명칭은 Flag of the U.A이며, 오히려 성조기의 영문 명칭인, The Star-Spangled Banner는 별칭으로 간혹 쓰이지만 미국의 국가(國歌)와의 혼동 방지를 위해 쓰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언론등에선 'Stars and Stripes' 혹은 'Old Glory'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국장
국가
국화
정치
행정부
대통령
의회
상원
하원
경제
군사
문화
외교
미일관계
일본은 요약하자면 미국의 100년 숙적이다. 이건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인 이야기. 역사적으로 처음엔 가치도 없는 섬나라라 중국에 집중한다고 놔둔 동양 약소국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게 오히려 일본의 운신의 폭을 넓혀 아시아에서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해 중국의 것들[1]을 차례차례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동양 유일의 제국주의 열강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그럼에도 미국은 일본을 큰 위협으로는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이용하기로 하여 일러전쟁에서의 암묵적 지원 및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조선 병합을 묵인해주었다.
본격적인 양국간의 대립은 제1차 세계대전 후 1918년 일본의 호전적인 시베리아 개입이었다. 이 당시 미일관계는 아예 틀어져서 이후로 우호적으로 지낸 적이 지금까지도 없다. 1922년의 런던 해군 군축조약에서 일본을 가상 적국으로 상정한 데서 잘 드러났다. 이 갈등은 1930년대 일본이 중국 진출을 시작하며 절정에 달하여 1941년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고 이제 전쟁까지 하는 적대국 사이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때까지도 일본을 만만히 보던 미국은 진주만 공습에서의 태쳥양함대 궤멸 및 남방작전, 미드웨이 해전까지 정신도 못차리고 일본에게 맞기 바빴다. 하지만 1943년부터 산업력 격차에 따라 함대를 재건하고 일본을 밀어붙이며 역시 미국은 미국이라 생각되던 찰나, 1945년 4월의 이오지마의 악몽은 미국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패배였으며 7월 독일 폭격기의 하와이 원자폭탄 투하로 패전을 맞이하는 운명이 되었다. 미국은 일본에게 패배했고 이는 엄청난 치욕으로 알려졌다. 이 이후로 미국에선 일본 공포증(Japan Fovia)가 생기면서 반일을 넘어 혐일적 정서에까지 이르는 계기가 된다. 더군다나 일본도 귀축영미, 귀축미제 운운하며 전 국민을 반미투사로 개조했기에 양국간 국민감정은 태평양 전쟁을 시작으로 나락으로 쳐박히게 된다.
미독관계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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