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일러



개요

트레일러는 북련 내에서 험지용 대형 디젤 트럭들을 운전하는 장거리 트럭 운전사들을 의미한다. 철도도, 항공기나 헬리콥터도, 도로망도 닿을 수 없는 고립 지대가 태반인 북련에서 이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많은 지역의 물류와 경제를 책임지고 있다.

설명

트레일러 등장의 배경

북련은 지리적 위치로 인해 강추위는 물론이고 봄과 가을 사이에 급격한 기압 변화로 인한 대량의 우기가 있으며, 이는 습기를 머금은 흙이 진창으로 변하는 라스푸티차[1] 현상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초여름에는 온난화로 인해 온도가 영상 이상으로 상승하는 이례적인 폭염이 계속되면서, 진창 아래의 영구 동토층이 녹아내리며 이러한 현상이 훨씬 심화된다. 북련은 국토 중 80% 이상이 영구 동토 및 반동토 지역이기 때문에, 여름철의 융해 현상은 국토 전역의 도로와 철도 모두에게 심각한 손상을 입힌다. 도로는 갈라지고 침하되며, 철도는 뒤틀리거나 궤간이 벌어져 운행이 중단되기 일쑤다. 융해된 동토와 진창이 섞인 지역은 무한 궤도 차량도 쉽게 돌파할 수 없다.

이로 인해 교통 인프라를 단순히 유지 보수하는데만 북련 교통철도국 연간 예산의 평균 78.2%가 소모되고, 이는 전 세계의 교통 행정 기관 중에서는 가장 높은 비중이며, 이러한 막대한 예산 지출의 결과도 완전하지 못해 사계절 내내 통행 가능한 포장 도로 구간은 국도 L32와 L33의 약 500km에 불과하다. 이외의 도로들은 관리를 받더라도 연간 두 세 차례의 구간 폐쇄가 발생하고, 도로봉쇄선 이북의 도로들은 이러한 유지 보수 대상에서조차 아예 제외 및 폐로되어, 지도 상으로만 존재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때문에 북련의 국토 물류 분포는 고르지 못하다. 그럼에도 북련의 경제는 에너지 자원과 그 물류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북부의 동토 아래에는 막대한 양의 유전과 광상, 천연가스 및 메탄수화물이 매장되어 있으며 이는 북련 경제의 유일한 성장 동력이자 강력한 외교 협상의 수단이다. 또한 역설적으로 동토의 융해를 일으킨 온난화는 이러한 자원들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그들에게 제공한 셈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북련의 자원 정제 및 가공 능력은 현저히 떨어져 대부분의 가공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이로 인해 북련의 에너지 자급률은 작년보다 2.7%나 상승하였음에도 2050년 현재 12.7%에 불과하며, 매년 전체 예산의 470%에 달하는 잠재 수익은 이런 상황 속에서 그림의 떡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에 빠져 있다.

일반적인 도심형 물류 트럭, 탱크로리들은 포장 도로가 아니라면 제대로 힘을 내지 못하고 무력하게 시동이 꺼지거나 땅바닥에 처박히기 일쑤였다. 그러나 에너지 자원을 비롯한 북련 내의 각종 물류 수요는 포장 도로가 존재하는 도심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트럭들이 진창을 억지로라도 통과하려면 화물 적재량을 줄여야 했는데, 이를 수십 차례 반복할 바에는 항공 수송이 더 경제적일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북련의 항공 수송 인프라가 열악하지 않은 것도 아니거니와, 전국에 화물 공항을 신설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트레일러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하여 북련의 경제를 뒷받침 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트레일러'이다.

트레일러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40년 TNAA 체결 이후 대규모 군축이 이루어졌을 때이다. 군수대대와 예비 부대가 대량으로 해체되면서 ZiDK-605, URAL Matian 등의 대형 군용 수송차량들이 민간 시장에 대량으로 유입됐기 때문이다.

군축 조치는 퇴역 차량 뿐 아니라 많은 실업자를 양산했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구해야 했던 퇴역 군인들이 집중한 것이 바로 군용 수송 차량들이었다. 민간에 유통되는 군용 차량들은 법제 상 군 경력이 있는 인원이 구입 우선권을 가졌기 때문에 이들이 이를 선점하였고, 이는 자연스럽게 민간 물류계로의 진입으로 이어졌다.

2040년대 초반, 북부와 중부에 이르는 도로망이 사실상 붕괴 수준에 이르면서 기존 도로 수송망은 마비되었고, 대체 수단을 찾던 자원부와 기업들이 트레일러들을 대거 고용하기 시작하면서 두 지역 간의 전체 물동량의 25% 이상을 담당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전국적으로 트레일러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2043년 AFTOU가 출범하였다.

이러한 트레일러들은 단일 대형 기업보다는 수많은 소기업들과 개인 사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상당수는 TNAA 체결 이후 군축으로 전역하면서 민간에 유입된 퇴역 군인들로, 이들의 비율은 지역에 따라 20%에서 40%를 상회하기도 한다.

실상

AFTOU에 대한 트레일러들의 가입률은 전체 트레일러 중 고작 8.4%에 불과하다. 심지어 나머지 다수는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매우 저조한데, 우선 법적으로 가입 의무가 없는데다가 정부의 관련 법안은 번번이 기업들의 로비와 정치적 연줄로 좌초되기 일쑤였던 점, 또 AFTOU의 만성 재정난으로 회비의 변동이 잦고 과도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 등이 원인으로 뽑힌다.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이 속한 산업의 구조적 문제다. 대부분이 1회성 계약과 임시 고용에 의존하고 있으며, 때문에 수입은 일정하지 않고 불안정한데 계약 기준은 투명하지 않은 경우가 잦다. 또 긴급 물자라는 등의 명목 하에 예정보다 더 많은 화물을 강제로 싣는 경우도 흔한데, 장거리 및 위험 지대의 물류를 도맡는 이들의 특성 상 과적은 순간의 실수로 트레일러의 목숨을 앗아가기 십상이다.

더욱이나 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상당히 박하다. 북부와 일부 산간 지역 도시들에서는 자원 운송 뿐 아니라 생필품의 공급과 외부와의 연결을 위한 유일한 창구의 역할을 수행하므로 인식이 좋지만, 중부에서부터 남부 지역으로 내려갈수록 트레일러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닥 좋지만은 않다. 당장 포장 도로의 2차선 이상을 차지하는 육중한 크기로 교통 체증을 일으키는데다가 부품이 탈거되어 사고와 오염을 일으킨다며 기피 당하는 신세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북련의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기반이나 다름없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북부에서 채굴된 자원은 트레일러를 통해 중부의 정제소로 운반되고, 이는 다시 남부의 항만과 소비지로 연결된다. 이 사이클 중 하나라도 끊기게 된다면, 북련의 경제는 회생할 수 없을 정도의 혼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위험성

트레일러의 왕복 거리와 시간은 상상을 초월해서 짧아야 3주에서 길면 2달에 이를 정도이다. 혹한, 불확실한 경로와 보급, 그리고 극단적인 환경 조건 덕분인데, 운행 노선은 정규 도로망에는 포함되지도 않고 만일 포함되어 있어도 지도에 기록된 채 방치된 상태거나 계절별로 상황이 시시각각 변해버리는 비포장 도로인 경우가 대다수인데다가, 일부는 완전히 결빙된 강 위를 경로로 삼기까지 한다.

이러한 길 위에서 마주하는 가장 큰 위협은 추위로 인한 동사, 즉 얼어 죽는 것이다. 강설 후 기온이 급락한 경우, 차량의 배터리가 방전된 경우, 혹은 히터가 고장난 경우 추위는 당장 사람을 집어 삼키고도 남는다. 일부 지역은 새벽에 영하 40도에 달하는 강추위가 몰아치다가 오후 중에서는 영상 5도에 이르는 살인적인 일교차로 곰팡이나 고장을 일으키기 십상인지라, 운전자들은 아예 엔진과 히터가 개별로 작동하도록 개조하거나 엔진을 24시간 내내 유지해야만 한다.

사소한 고장들도 죽음으로 이어지기 쉽다. 본인이 몇 분 안에 수습할 수 있는 경우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트레일러가 다니는 길들은 수십 킬로미터, 혹은 수백 킬로미터 반경에 소방서나 병원, 정비소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나 극지에서는 통신도 잘 통하지 않기에 정비소에서 몇 분 안에 고칠 문제로도 꼼짝없이 눈밭에 고립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트레일러들이 아날로그 무전기를 사용하여 도로와 인근 지역, 그리고 자신의 상황을 공유한다. 그러나 이를 통해 긴급 구조를 요청하더라도 도움을 받는다는 보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주변에 누가 있는지가 생명을 가르는 셈이다.

특히 결빙된 강을 경로로 이용하다가 얇아진 얼음이 깨지거나 침하된 도로 기반이 갑작스럽게 꺼지는 경우, 대형 트럭은 순식간에 침몰하거나 전복되고 만다. 사고 시 차량 중량은 대부분 50톤을 넘기 때문에 일반 정비 차량은 꿈도 꾸지 못하고, 군용 구난전차를 끌고 와도 가능할까 말까다. 그러나 어떻게든 군대와 연락하여 구난차를 불러도 도착과 수습까지는 하루 이틀은 기본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습 불능으로 끝나거나 수색 자체를 실패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트레일러 사고의 결과는 대부분 사망이다.

  1. 슬랴카치 / слякот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