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보호협약

Citainic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7월 27일 (일) 09:0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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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보호협약
Accord Commun de Protection



  • 상세

파리 코뮌으로 전 유럽에서 사회주의 열풍이 불 당시, 혈식병 감염자들에 대한 전문적인 조사 및 치료, 혈식학을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당시 기성 열강 국가에 대한 집단적 저항 체제에 대한 열망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지식인들과 3인의 베르세르크에 의해 창설된 단체이다. 이들은 베르세르크와 인간은 상호 파괴적 존재가 아닌 공존 가능한 존재임을 전제로 하며, 자유주의·연대·급진 평등을 추구한다. 자유지상주의, 급진 평등주의, 아나키즘, 반권위주의 성향을 띈다. 설립 이후 러시아 적군파, 스페인 국제여단, 프랑스 레지스탕스, 의열단과 같은 세력을 지원 한 탓에 현재까지 많은 국가와 단체 의해 탄압 받고 있다. 그러나 구성원 대다수는 혈마학 능력을 모유한 베르세르크인 덕에 소수의 인원에도 불구하고, 다른 혈식학 세력에 밀리지 않는 무력을 보유 중이다.


  • 역사

파리 코뮌의 여파로 유럽 전역에 사회주의 및 민주주의 사상이 확산되며, 억압받는 계층과 소수 집단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었다. 이 시기, 혈식병 감염자와 베르세르크는 여전히 광포한 괴물로 간주되었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비윤리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체계적 탄압을 받았다. 특히 프랑스 제3공화국은 '정화령'을 선포, 감염자들의 신분을 기록하고 집중 감시하였으며, 이들을 대상으로 한 비밀 실험과 대규모 학살을 통해 혈식병 관련 기록을 말살하려는 시도를 감행했다.

이에 맞서기 위해 1871년, 파리에서는 사회주의 운동가, 의료인, 과학자, 그리고 신분을 은폐한 베르세르크들이 연합하여 비밀 조직, 공동보호협약을 창설했다. 이 단체는 인간과 베르세르크의 공존을 지향하며, 감염자에 대한 보호와 혈식병 치료 연구를 핵심 목표로 설정했다. 설립 초기,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혈식학에 대한 기초 이론이 정립되고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각종 혈식 약제 및 실험용 무기들이 개발되고 있었다. 공동보호협약은 베르세르크들의 지원을 받아 파리 일대의 혈식학 관련 자료를 비밀리에 수집하고, 독자적인 치료법 연구를 본격화했다.

그러나 1914년 8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가운데, 독일 제국의 국책 혈식학 기관인 '제국혈식학학회'가 벨기에 민간인을 대상으로 혈식 무기를 시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공동보호협약은 긴급 회의를 소집하였고, 성전기사단, 제국혈식학학회, 영국의 왕립 국교 기사단, 오스트리아의 황금 기사단 등 유럽 내 주요 혈식학 단체들을 ‘비윤리적 혈식 폭력 세력’으로 규정, 전면적인 무력 투쟁을 선언한다. 이로써 제5차 혈악 대전이 발발하였으며, 이는 근대 시기에 베르세르크 및 감염자와 인간 사이에서 발생한 가장 조직적이고 전면적인 충돌로 기록된다.

전쟁 이후, 공동보호협약은 탄압이 심해져 본거지인 파리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지자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이전하였으며, 러시아 혁명 이후 혼란한 유라시아 각지에 지부를 설치해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는 반제국주의 정서를 내세우는 다양한 민족주의-비밀 결사 단체들과 접촉하여 협력 관계를 구축했으며, 이 과정에서 베르세르크 출신의 감염자가 의열단에 합류하여 항일 투쟁에 참여한 기록도 남아 있다.


  • 창립자 3인

앙투안 샤를
 
샤를로테
 
그리모르 드 라 카스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