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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개성공 이왕
大韓 開城公 李汪
본명
이왕
종족
인류 사피엔스 계열
국적
대한제국 (이전)
대한-일본 이중제국
성별
남성
가족관계
고조 광무황제 이환 (조부)
대한 대친왕 이휴 (부친)
시게코 황녀 (아내)
순종 융희황제 이척 (장남)
양원공 이운 (차남)
양안공주 이한주 (장녀)
생년월일
1868년 2월 22일 ~ 1917년 8월 29일
출생지
대한제국 한성부 대친왕 사저
직위
대한제국 대공작
소속
대한제국 황실
서훈
대훈위금척대수장

대훈위서성대수장
대훈위이화대수장
대훈위국화장경식
대훈위국화대수장

능력
미래예지에 가까운 직감
특이사항
제 1차 세계대전 생존자
상태
사망

개요

대한제국의 추존 대원왕이자 대한-일본 이중제국의 국부. 융희황제 이척의 친부이다.

한일 이중제국의 전쟁영웅이자 심판의 날 때 전사한 유일한 동양 황족이다.

생애

1868년 2월 22일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 광무황제의 차남인 대친왕의 첫 아들로 출생하였다. 당시 황제의 첫 손자였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두뇌와 조상 이성계의 무력을 이어받아 문무를 겸비한 완전무결한 인물이었으며 잘생긴 외모로 '얼짱 대공'이라고 불렸다.

1892년 한성으로 유학을 온 시게코 내친왕을 맞이하였으며 당시 시게코 내친왕의 아름다운 외모에 반하였다. 내친왕 또한 그의 잘생긴 외모와 상냥한 인품에 반하였으며 둘은 금세 연인으로 발전하였다. 1893년 양국의 동의 하에 혼인이 이루어졌으며 1년 후 1894년 장남인 이척이 태어났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대한-일본 이중제국이 중립을 지킴에 따라 한반도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1915년 중화제국의 동맹국 참전과 영국의 참전 압박 등으로 인하여 이중제국이 참전, 황족 대표 인사로써 유럽 전선 총사령관으로 파견되었다. 세계대전에서 솜 전투, 베르됭 공방전 등에서 참전해 뛰어난 전술로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 하는 등 영웅적인 행보를 보여주어서 영국, 프랑스 등으로부터 여러개의 훈장을 받았다. 동맹국 측에서는 '동양에서 온 악마', '칭기스 칸의 후예' 등으로 불려졌다.

대전쟁 당시 유럽에서의 참상을 기록한 '참전록' 이라는 일기가 이중제국의 국보 겸 베스트셀러로 지정되었다.

1917년 8월 26일 황제부인에게 편지를 남긴 후 3일 뒤, 파리에서 참상에 휩쓸려 향년 50세로 생을 마감한다.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루어졌으며 유해는 평소 본인이 말한 화장 처리되어 제국 곳곳에 안장되었다.

그의 사후 이중제국에서의 반독 감정이 거세졌으며 역설적으로 제국의 통합이 한층 더 강화되었다.

능력

최근 학계에서 그의 전술에 대한 광신적인 확신에 대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현재 나온 결론으로는 그는 미래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는 '직감' 또는 '미래예지'를 갖고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1919년 전후 참상이 동양에서 점차 회복되어 갈 때 그의 위업을 기리는 단체인 '개성공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일명 '개사모'의 조사에서 시작되었다. 개사모는 그의 기이할 정도의 승리를 조사하기 위해 20~30년대에 걸쳐 같이 참전했던 전우들과 살아남은 몇몇 제국의 부관들에게 취재를 하였다. 처음에는 그의 행동이 기행으로 여겨졌으나 점점 조사하는 와중에 말이 안되는 증언이 몇개 나오기 시작하였다. "적군이 분명히 여기 있을 것이니 이를 우회하여 가라" 가 그 대표적인 말이었다. 이는 처음 부임된 전장에서 부관들에게 다음날 시행할 전투를 대비하여 하는 말이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말이 딱 맞았다.

개사모는 이러한 그의 행동에 혼란스러워 하였으나 개사모의 일원이자 개성공의 아들인 양원공이 "개성공이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 을 언급하면서 연구가 진척되었다. 이후 현재에 이르러서는 어떠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게 정설로 널리 퍼졌다.

여담

  • 애처가였다. 당시 황족 남성이라면 보통 들였던 첩을 일절 들이지 않았으며 금슬 또한 좋았다.
  • 손자인 대한-일본 이중제국 황태자 이강이 그를 매우 닮았다.
  • 딸 양안공주가 아니메 인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