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영황제 이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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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일 (목) 23:29 판


대한국 대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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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제6대 황제
광영황제 | 廣映皇帝
본명
이곤 (李衮)
출생
1964년 5월 17일
출생지
대한국 한성부
국적
대한국
재위기간
대한국 황태손
1998년 8월 28일 ~ 1999년 1월 28일 (5개월)
대한 제6대 황제
1999년 1월 28일 ~ 재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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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전주 이씨
가족관계
광종 평황제 이휼 (조부)
효현태자 이헌 (부친)
헌의명황후 김선경 (모친)
완친왕 이현 (동생)
한성군 이민 (조카)
연호
광영廣映

개요

광영황제 이곤 (廣映皇帝 李袞)은 대한의 6대 황제이다. 한국 역사상 최연소 군주로 즉위[1]하였다. 공식 칭호는 대한국 대황제[2]이고, 보통은 황제 폐하황상 폐하 등으로 불린다.

2017년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젊은 국가원수이다.

생애

생애 초기

1995년 1월 4일 대한 6대 황제, 광영황제 이곤은 광종 헌문제 이휼의 황태자 이헌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대한에 1964년 이후 최초로 태어난 남자 황손이라 많은 관심을 받고 태어났다. 황자가 출생하자 시골지역에서는 현수막을 거는 등의 소소한 사건이 있었으며 많은 이들은 황실에 적손이 태어난 것을 축하하였다. 황태자 부부도 첫 아이를 애지중지하면서 사랑을 담아 키우는 등 그는 전 대한의 아이돌이라고 부를만 하였다. 1년 후 동생인 완친왕 이현이 태어났음에도 그의 인기는 여전하였다.

그러나 1998년 황태자 부부가 대한항공 801편 추락사고로 급사하게 되면서 그는 논란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황제의 유일한 아들인 황태자가 죽으니 남은 황제의 남자 후손은 두 황손 뿐이었던 것이다. 날이 갈 수록 쇠약해지는 황제의 건강 때문에 후계자의 자리가 중요한 참이었는데 적자이자 확고한 후계자인 황태자가 죽으니 황실과 국가가 혼란스러워졌다.

의회에서는 황태자의 장남인 이곤을 황태손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주장과 황제의 큰조카 정연군 이형주를 황제의 양자로 해서 황태자로 임명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뉘었다. 두 주장 다 어느정도 일리가 있어[3] 한때 큰 논쟁거리가 있었으나 정연군의 완고한 거절과 황제의 손자사랑, 그리고 황손파와 정연군파를 타협시킬 수 있을 '섭정체제'를 꾸려나가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이렇게 그는 기억조차 나지 않을 까마득한 어린 시절부터 많은 사건에 휘말렸다.

즉위

우여곡절 끝에 1999년 조부인 헌문제가 사망하자 연호를 광영으로 하여 즉위하였다. 예전에 의회와 황실 내에서 합의한대로 5촌 당숙 정연군 이형주를 황제대리로, 두 고모들인 온양공주와 안양공주를 내명부 섭정으로 하였다. 나이가 어려 딱딱하기 그지없는 즉위식이 우려되었으나 바른 모습으로 잘 견뎌내면서 칭찬과 동정의 눈길을 받았다.

부모 모두 어릴 적 변을 당해 주변 친척들에게 많이 의존하였다. 특히 고모 온양공주와 태후 유씨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였다고 한다. 고모들의 개방적인 교육을 받고 자라서 권위주의적이라기 보다는 자유롭고 또래 아이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였고, 그러면서도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어다.

2002년 황립 이화소학교에 입학, 2008년에는 이화중학교에 입학, 2011년에는 이화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소학교 시절부터 훌륭한 성적을 받았으며 여러 아이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었다고 한다. 한일월드컵에서 큰고모 온양공주의 품에 안겨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포착되었기도 했다. 장성하면서 부모를 닮아 빼어난 외모로 한창 PC통신이 늘어나면서 '팬카페'라는 것이 만들어져 그곳에 직접 인증글을 남겼었기도 했다.

2013년에 있던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어 그 '한성대학'에 당당하게 입학하였다. 2014년에 정식으로 입학을 하였고, 성년이 되면서 섭정체제를 슬슬 끝내도 되지 않느냐는 말이 나왔지만 직접 '대학에서 더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며 지금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 하였다.

2015년 완친왕가 창설사건 당시에 유연한 대처를 하여 황실 체면이 심하게 추락하는 것은 막았으며 망나니 동생에게 조금이나마 자물쇠를 채워놓았다.

2017년 지금 한성대학교 3학년 학생으로 재학중이면서 황제의 업무를 점차 늘려가고 있다. 앞으로 섭정체제가 끝날 것을 대비하면서 대한의 황제로서의 책무를 다해나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평가

긍정적 평가

섭정에 대한 신임

인기있는 얼굴마담

부정적 평가

황실에 대한 과보호

개인

가족

인간관계

가족 관계

부친 효정태자 이헌이 급사하자 동생 완친왕과 함께 자라 형제간의 우애가 되게 좋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함께하여 가히 서로의 반쪽이라고 할 수 있을 지경. 물론 완친왕가 창설사건때 잠시 사이가 서먹해진 적도 있었으나 2017년 신년행사에 같이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보아 사이가 어느정도 돌아온 것으로 보이고, 최근에는 조카 완친왕 이민과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기도 하는 등 완전히 회복된 것 같다. 완친왕비 김씨와도 그럭저럭 잘 지내는 듯.

고모 온양공주와 안양공주의 자녀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 사실상 두 공주가 황제의 어머니 역할을 대신하여 이종사촌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듯 하다. 가끔 황궁에 그들을 초대하여 회포를 나눈다고도 한다. 신년에 진행한 "<짐에게 어쭤보너라>"에서 가장 사이가 좋은 사촌은 온양공주의 2남인 홍세준과 2녀인 홍세희라고 답하였다.

5촌 당숙인 정연군 이형주와는 황위를 두고 논쟁이 오갔던 것과는 다르게 사이가 가깝다고 한다. 정연군의 외동아들인 상영군이 안타까운 결정으로 생을 마감한 이후에 개인의 명의로 매년 참배를 가는 것과 정연군이 종종 황제를 위해 사재로 음식이나 선물을 주는 등, 서로의 친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교우 관계

황제폐하께서는 그 나이대와 크게 다르지는 않으셨습니다.

 
— 이화고등학교 동창생.[4]

조모 태후 유씨와 고모 온양공주와 안양공주는 부모없이 자랄 황제가 교우관계와 학창시절만이라도 즐거운 추억을 쌓았으면 해서 황실 내에 있는 교육기관이 아닌 일반교육기관[5]에 유치원부터 고교까지 쭉 다녔다. 모든 학년에서 우수한 성적과 좋은 수업태도를 보였다고 하였으며 같은 반 급우들과도 잘 어울려 종종 시간이 비면 같이 놀러다니기도 하였다.[6]

동창들의 증언과 그와 대화한 여러 이들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같은 나이 대의 학생들과 두루두루 어울렸다고 한다. 또래 남학생들이 하는 것처럼 몇몇 장난을 치기도 하였으나 그 직위에 걸맞게 사려깊고 내심 다른 이들을 존중하는 것이 드러났다고. 그래서 학급회장을 맡지 않은 적이 드물다고 한다.

그래도 항상 황족, 그 중에서도 지고한 황제라는 직위에 얽매여 친구들과 언제거나 밖으로 나돌아다닐 수 없다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많이 어울린 동창이 말하길, "나도 너희들이랑 항상 pc방도 가고 학교도 째보고 한번 신나게 놀아보고 싶다.." 라고 한 적이 있었다고도 한다. [7]

대학교 OT를 비롯한 여러 행사들에서도 일반인들과 잘 어울리며 그의 성향인 탈권위주의적, 친서민적을 여실히 들어내고 있다. 같은 학과 학생의 증언에 따르면 "OT때부터 너무 싹싹하고 재밌는 분이여서 황제가 아니라 같은 친구로 대했다"고 한다. 가끔 한성대학교의 명물인 분수대 앞에서 산책을 즐긴다고 하며 이때 말을 걸면 웃는 얼굴로 받아준다고 한다.

정계와의 관계

이인제 총리

기본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총리대신과 그의 말을 따르는 입헌군주제의 군주라는 입장에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45년 대한제국이 패전한 이후 황실이 직접 국정에 개입하는 것이 원천차단되어 조금이라도 정치적인 발언을 할 수가 없다.

최근에는 SNS계정에 정부 고관들과 회식하는 사진이 올라오기도 하였다.

여담

  • SNS 개인계정[8]에 대학생활이나 조카 사진, 가족과의 만남 등 일상생활을 올리면서 국민들과 교류를 많이 하고 있다.
  • 개인적으로 "폐하"라는 칭호로 부르는 것보다 다른 것으로 불러줬으면 한다 하였다. "폐하"는 너무 딱딱하게 들린다고.
  •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요거트 아이스크림.[9]
  • 탕수육은 부먹 찍먹 나누는 것보다 주는 사람이 정해주면 그걸로 먹는다고 하였다.
  • 잘생긴 외모로 역대 황제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황제라고 불리기도 한다. 부모 모두다 훈훈한 탓인지 동생 완친왕 또한 잘생겼다.
  • 개인 팬카페 '광영천지'에서 직접 인증글을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10]
  • 의외로 여자 관련 문제에서 아직까지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황제라서 그런지 접근하는 여자도,[11] 먼저 접근하지도 않는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결혼이 급하지 않기도 하고[12] 또한 스스로가 정략결혼보다는 자유연애를 추구하기도 해서 그렇다.[13]
  • zl존2곤이라는 메이플스토리•스타크래프트 유저, 한성부600평집오우너 라는 League of Legend 유저[14]가 대황제라는 풍문이 있다.


  1. 그 단종이 10살에 즉위하였고 태조왕과 진흥왕이 7살에 즉위를 한 반면, 광영황제는 만 4살에 황제의 위에 올랐다.
  2. 제6대
  3. "황태자 전하의 자녀 분이 버젓이 살아계시는데 정연군 각하를 올리는 것은 이치와 황실전범에도 맞지 않는다" 와 "황손인 이곤을 옹립하면 그가 황제로의 책무를 성년이 될 때까지 다 할 수 없을 것인데 어쩔 터인가?" 라는 것이다.
  4. SBS 보도, <"황제가 아니라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이화고 동창들이 말하는 광영제 폐하>
  5. 사실 민간이라고 해도 황실 명의의 '이화재단'에서 설립한 이화 초중고를 나왔다.
  6. 당연히도 사복경찰과 익문사 요원이 주변에서 모르게 경호하였다.
  7. 이 발언이 유명해지자 한 기자가 직접 물어보았다. 물론 웃으면서 아무말 없이 넘어갔다.
  8. @kremp_gonyi
  9. 민트초코 논쟁에 관해서는 노코맨트 하겠다고 한다.
  10. SBS 보도, <"여기가 제 팬카페인가요?" 자신의 팬카페에 직접 인증을 하신 폐하>
  11. 혹시나 교제하는 것이 드러나면 엄청나게 깐깐하고 복잡한 황실의 안주인이 되는 것이 거의 기정사실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12. 완친왕과 그의 아들 한성군이 있어 황통 자체는 유지될 수 있기 때문
  13. 최근에는 한성대학교 17학번 후배 신혜림과 대학에서 은근 엮이고 있다는 에타 글이 올라오기도 하나, 워낙 대학교 수강 이외에 활동이 잘 없어 별 화점이 없다.
  14. 티어는 다이아. 그래서 Dc인사이드 등지에서는 금강군주라는 별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