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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는 자신이 역성 혁명으로 조선 왕조를 몰아내고 자신이 왕위에 오른 만큼 역성혁명이나 조선 왕실의 근본이 담겨진 지역을 매우 경계하였다. 따라서 고려 왕조와 조선 왕조 초기의 예를 이어 받아 "종사를 이을 후손에 대한 조상의 강직한 명령문 12조"를 발표하였는데, 그 중 대표적인 내용이 "한강 이북은 전조의 기운으로 인해 불결하니 종사를 받드는 자는 필히 천도한 새 수도인 한강 이남에 머물러라(1조)"와 "전조 왕들의 본관인 전주는 왕을 받들지 않는 무리들이니 백년세월이 지나도록 이들을 결코 관직에 들이지 마라(2조)"이다.
태조는 자신이 역성 혁명으로 조선 왕조를 몰아내고 자신이 왕위에 오른 만큼 역성혁명이나 조선 왕실의 근본이 담겨진 지역을 매우 경계하였다. 따라서 고려 왕조와 조선 왕조 초기의 예를 이어 받아 "종사를 이을 후손에 대한 조상의 강직한 명령문 12조"를 발표하였는데, 그 중 대표적인 내용이 "한강 이북은 전조의 기운으로 인해 불결하니 종사를 받드는 자는 필히 천도한 새 수도인 한강 이남에 머물러라(1조)"와 "전조 왕들의 본관인 전주는 왕을 받들지 않는 무리들이니 백년세월이 지나도록 이들을 결코 관직에 들이지 마라(2조)"이다.
대연국은 건국 이래 조선 왕조의 전통을 타파하기 위해 유교 사상 주도의 국가통치를 억압하였으며, 조선 이전의 통일 왕조인 고려 왕조의 승불 통치를 숭상하였다. 따라서 대연국은 현재에도 불교를 믿는 신자들이 많다.


==왕실(영월 엄씨)==
==왕실(영월 엄씨)==

2021년 7월 26일 (월) 10:4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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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연 국장 초본.png
대연국
大蓮國
대한국가연방의 의장국
파일:대연국기 초본.png 파일:대연 국장 초본.png
국기 국장
대한대연군왕천세
암흑 속에서 피어난 연꽃 대한광명을 비추리
상징
국가 대연 국왕 찬가
국조
봉황
국목
소나무
국화
연꽃
국수
어룡(圄龍)
위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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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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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서울
최대 도시
서울
면적
12,538.2km2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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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19, 832, 680명
출산율
2.54명
평균 수명
75세
기대 수명
82세
공용어
한국어
종교
국교
불교
분포
불교 55.64%, 기타 44.36%
군대
대연국군(大蓮國軍)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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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시
남한경(南韓京)[1]
광역시
한성, 인천, 안양, 개경
4도(都)
경기좌도, 경기북도, 경기남도, 경기우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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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준입헌군주정, 의원내각제, 단원제, 단일국가
국가 원수 (국왕 겸 대한 국가 연방 최고 의장)
금상 국왕 전하 엄희서(嚴熙曙)
정부
요인
국무수상대신
김상철(金常徹)
귀족의회 의장
경상현(瓊想炫)
국민의회 의장
양성운(楊晟雲)
궁무성 장관
박강문(朴康文)
여당
국왕을 향한 충성당
연립 여당
백성민주당
신임과 보완
대연 보수주의당
원내 야당
대연 사회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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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명목)
전체 GDP
$711,933,713,960
1인당 GDP
$35,897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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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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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가입
유엔 가입국
ccTLD
.dy
국가 코드
DY, DAY, DYN
전화 코드
+82
파일:대연 국장 초본.png


대연국은 동아시아 한반도 중부에 자리잡은 준입헌군주정[2] 국가이다. 수도는 서울 왕경(王京)이며 면적은 12,538.2km2 이고 인구는 2021년 기준 17,832,684명이다. 인구의 대부분은 서울이나 경기도의 주요 도시에 거주중이다. 대연국은 조선 정조 사후 조선에서 세도 정치가 시행되던 1806년 국부이자 태조(太祖) 엄영구(嚴瀛救)가 조선 왕조에 분노한 백성들의 따름을 받아 역성혁명을 일으켜 세운 국가이다. 1808년 태조 즉위 이래 고려ㆍ조선에 이어 한반도를 지배하는 통일 왕조였으나, 일본 제국의 대연 강점기 이후 해외에 세워진 수많은 임시 정부와 더불어 국왕이 직접 독립 운동을 펼친 대연국 임시 정부가 해방 이후 각 지역에 주권을 보장하되 대연국 국왕을 국가 원수로 받들기로 협의하면서 대연국은 대한 국가 연방의 최고 의장국을 맡게 되었다.

역사

1806년 순조 6년, 정조가 사망하고 들어선 조선 왕조의 세도 정치는 백성들에게 최악의 시기였다. 1800년부터 6년간 세도 외척 가문의 그릇된 정치로 인해 농업 생산량이 감소하고 관리들은 법을 어겨 백성들의 고혈을 짜길 밥먹듯 했다. 6년이 지나 백성들은 참지 못할 정도가 되었고 결국 전국적으로 대규모 민란을 일으켰다. 그 주축에는 이전부터 백성들과 지속적으로 투쟁을 결의했던, 영월 엄씨 가문의 태조(太祖) 엄영구(嚴瀛救)가 있었다. 엄영구는 양반이었지만 아버지 대부터 주요 세도가를 적대하였고, 이로 인해 반역자로 억울하게 몰려 처형당했다. 더불어 자신도 양반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엄영구는 자신을 따르는 수십만명의 백성을 이끌고 한성을 무력으로 점령했다. 이 가운데에서 왕에 가까운 근왕파나 세도가의 군대를 제외한 조선의 모든 관리와 백성들은 엄영구와 그 세력이 지나가자 자발적으로 머리를 숙이고 절하며, 그를 고통받는 백성들을 구할 구국영웅으로 칭송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태조 엄영구는 결국 무력을 통해 창덕궁에서 조선 순조의 항복을 받았고, 조선의 어보를 넘겨받은 다음 순조를 폐위시켜 조선의 새 국왕으로 즉위했다. 반란이 터진지 2년만인 1808년 6월 16일의 일이었다.

곧이어 망조가 된 조선 왕조의 창덕궁에서 즉위한 대연 태조는 순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전조의 왕실은 부패했고 그 외척이 자기 입맛대로 나라를 좀먹고 있는 실정이니, 수많은 백성들이 굶어 죽었고 나라의 질서는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에서 신이 역성 혁명으로 하여금 새 나라를 세워 대순 황제폐하의 하늘과 같은 은혜에 입조하고자 하오니, 천지에 광명을 널리 비추시는 대순 황제 폐하께서 너그러우신 황덕을 내려주시어, 신을 한인(韓人)의 새 나라의 왕으로 하여금 책봉하시며 폐하의 황덕에 입조케 해 주시기를 청하옵나이다."라고 말했다.

순나라의 황제는 사신을 받고 이에 흡족해하며 태조를 "조선국왕"에 책봉시켰다. 순 황제는 이 사실을 보고받으며 "조선의 옛 왕들은 역성 혁명으로 망해버렸구나. 오호라! 저들이 우리의 길을 이어 받아 새로운 임금을 받드는구나. 대순국에 기쁜 일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리하여 태조는 왕위에 오르고 1년 뒤인 1809년 3월에 국명을 대연국(大蓮國)으로 정했고 수도를 한강 이남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현재의 왕경 일대는 현실에서 노량진이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태조는 1809년 6월, 그동안 바쁜 정무로 인해 방문하지 못했던 본관 영월에 마침내 거둥하여 엄문 종친들에게 잔치를 베풀었고, 5대조와 그 부인들에 대해 묘호와 시호를 추존하며 왕릉으로써 예를 다해 양식에 따라 묘를 정비할 것을 명했다.

조선 시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영월 고을은 한때 조선 왕조가 중요시했던 이씨들의 본관 전주처럼 주목받기 시작했다. 전주 성문에 붙어 있는 풍ㆍ패는 모두 내려졌고 영월 성의 문을 신축하여 북대문과 남대문에 풍ㆍ패가 새로이 올려졌다. 영월은 새로운 풍패지향이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연국의 시작이었다.

태조는 자신이 역성 혁명으로 조선 왕조를 몰아내고 자신이 왕위에 오른 만큼 역성혁명이나 조선 왕실의 근본이 담겨진 지역을 매우 경계하였다. 따라서 고려 왕조와 조선 왕조 초기의 예를 이어 받아 "종사를 이을 후손에 대한 조상의 강직한 명령문 12조"를 발표하였는데, 그 중 대표적인 내용이 "한강 이북은 전조의 기운으로 인해 불결하니 종사를 받드는 자는 필히 천도한 새 수도인 한강 이남에 머물러라(1조)"와 "전조 왕들의 본관인 전주는 왕을 받들지 않는 무리들이니 백년세월이 지나도록 이들을 결코 관직에 들이지 마라(2조)"이다.

대연국은 건국 이래 조선 왕조의 전통을 타파하기 위해 유교 사상 주도의 국가통치를 억압하였으며, 조선 이전의 통일 왕조인 고려 왕조의 승불 통치를 숭상하였다. 따라서 대연국은 현재에도 불교를 믿는 신자들이 많다.

왕실(영월 엄씨)

대연국의 국성은 당나라에서 악사로 파견되었다가 본국에서 정변이 일어나자 돌아가지 않고 신라에 정착한 영월 엄씨[3]이다. 시조인 엄임의(嚴林義)는 고려조에서 호부원외랑(戶部 員外郞)을 지내고 내성군(奈城郡)에 추봉되었으며, 이후 영월을 식읍으로 하사받으면서 엄씨들은 영월에서 세계를 이어왔다.

대연국 왕실은 기본적으로 국왕[4]과 왕비[5], 왕의 첫째 아들 왕세자, 이외 자녀 왕자(대군, 군) 및 왕녀(공주, 궁주)로 구성되어 있다. 대연국은 건국 이래 고려와 조선의 영향을 받아 남자가 왕위를 이어야만 했지만 현대에 들어 후손이 귀해지면서, 1980년대 이후 여성의 왕위 계승도 인정되었다. 현재 국왕인 엄희서(2001~) 역시 현직 대연국 태상왕인 정명왕(正銘王) 엄양운(1973~, 재위: 1992~2020)과 정원왕후(淨援王后, 1976~2001) 강씨 슬하의 왕녀로, 대연 최초 및 신라 진성여왕 이래 1,134년만의 여왕이다.

정치

준입헌군주정 국가인 대연국에서 국무수상대신(총리)의 권력은 있지만, 분명 연방에 대해 국왕을 보좌하는 대신(大臣)으로서의 비중이 높게 인식되고 있다. 이는 바로 통일 시대의 영의정 및 그 후신 국무경 때문인데, 이 시절 영의정과 국무경이 절대 권력을 소유한 국왕을 순전히 보좌하고, 국왕이 내린 명령을 아래에 전하는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명목상 준입헌군주정이라고 하지만, 왕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권력은 태국과도 같을 정도이다.

경제

사회

외교

  1. 노량진 일대.
  2. 역사적인 프로이센 왕국의 정치 체제에서 통치체제의 영감을 받았다.
  3. 국내 엄씨는 영월 단본이다.
  4. 사후에는 대왕.
  5. 사후에는 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