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전국 - 배경

한혁성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1월 18일 (화) 04:2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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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6공은 20대 대통령 의 취임 이후부터 눈에 띄게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내·외부적으로 수많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다. 대통령의 참모들과 국회의원은 최소한의 판단력도 갖추지 못한 채 정책을 시행했으며 권력은 그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결국, 제6공 최후의 5년은 무능한 정치인들과 이를 지지하는 국민, 지지하지 않는 국민 간의 정쟁이 잠시도 쉬지 않고 이어졌으며, 이 5년간 대한민국 정부는 사태를 개선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보여주지 못하였다.

대외 요건도 좋지 않았는데, 5년 전 발생한 모종의 전염병으로 연월 감염자가 1만 명 이상 발생하고, 점차 경제적 생산력이 감소하였다. 전염병을 피해 한국으로 이주하려는 탈북민들의 빈번한 침입으로 안보 위협도 계속 높아지는 추세였다. 대한민국이 아직 건재할 때도 북한의 탈북민이나 간첩이 군의 경계망을 뚫고 잠입해 들어오는 일이 일어났으며 중국, 일본, 미국의 정치인들은 이미 한국을 포기하고 그곳의 국민도 반한 감정을 갖게 된 지 오래였다. 안보를 지키기 위해선 더 많은 군대를 최전방에 배치해야 했지만 이미 저출산과 국민 갈등, 무능한 정치인, 모종의 전염병으로 몰락해 버린 한국은 그럴 돈도 인력도 부족했다. 결국은 예비군, 공익 요원, 남성 대부분과 여성 등 사람이란 사람은 모두 징집해 병력으로 사용하는 가장 쉬운 길은 택했다.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 로마제국, 후한과 마찬가지로 결국 대한민국 역시 이 군인 출신 장교들의 쿠데타로 엄청난 재앙을 겪게 된다.

이런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 2033년 2월, 강제 징집된 군인 출신의 장교였던 장민서가 반란에 가담한 장교들과 군인을 이끌고 정부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홍준일은 뛰어난 조직력과 상상력을 갖춘 인물이었으며 의지할 곳이 없었던 국민에게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울 방법을 설파하며 사로잡았다. 동년 9월이 되자 전국에서 군경과 쿠데타군의 충돌이 본격화되었다. 2034년 3월에는 진압을 명받은 모든 병사가 쿠데타 편에 가담하여 대한민국 제6공화국은 결국 무너졌다.

장민서의 쿠데타 성공 이후 대부분의 군대는 장민서 정권의 휘하에 들어갔지만, 쿠데타 시점에서 장민서가 이끄는 계엄군은 한국의 중심 도시들만 장악했을 뿐이었고, 지방엔 아직 대한민국 정부를 지지하는 군벌과 장민서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 세력들이 상당했다. 따라서 장민서 정권이 대한민국 전역을 통제하려고 하자, 반 쿠데타 진영과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내전이 발발한다.

대한민국 정부를 지지하는 군벌은 대한민국 제7공화국을, 반 장민서 세력은 대구 공화국을 수립하고, 기타 군벌과 국민도 내가 최고가 되겠다며 들고 일어나는 등 각 세력은 군웅할거에 들어갔다. 여기에 갈등, 갈등, 갈등 등의 봉기 세력까지 겹치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직이 치고받았다. 또 중국과 미국이 특정 세력을 계속 지원했고, 장민서는 측근의 반대에도 정권 수립을 강행키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