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크:역사 기원전 300년 경 투스에서 일어났던 왕국의 내란. 7개 가문 중 2개 가문이 직접적으로 튜터러스 왕가에 반기를 들어 내란이 일어났다. 왕가는 이를 철저히 진압하며 중앙집권적인 왕정 시대를 알렸고, 마드와 바르튼 가문에 속해있던 귀족은 3대를 멸했다. 그들 중 일부는 황족과 결연을 맺거나 다른 가문과 결혼을 한 이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장인과 그 도제들이 흡수되듯 그들 역시도 아주 특별한 경우에는 그들을 용서했다.

마드-바르튼의 참변 이후 로스 가문은 왕국의 안정에 전력을 다하지 않고 방관했다며 황실에게 비난받았고, 참변의 결과를 본 로스 가문은 가문의 영지를 황실에게 조공하는 이례적인 모습으로 문제를 벗어났다. 이것이 황실관할령이며 여전히 이곳에는 로스 가문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황실이 비록 투스의 왕이김 하지만 모든 가문응 통제하고 다스리기엔 당연히 영지가 부족했던 탓에 이런 새 직속영지는 큰 도움이 되었고, 로스 가문에 대한 비난은 최고 신하라는 이명으로 뒤바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