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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황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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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국가 및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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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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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집단안보기구 회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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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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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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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필리핀 러시아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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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터키 아르헨티나 태국
유럽연합
부여황제국
扶餘皇帝國 | ᠪᡠᡥᡠ ᡥᡡᠸᠠᠩᡩᡳ ᡤᡠᡵᡠᠨ
Empire of Korea
언어별 명칭
영어 Empire of Korea
만주어 ᠪᡠᡥᡠ ᡥᡡᠸᠠᠩᡩᡳ ᡤᡠᡵᡠᠨ
Puhu Huangdi Gurun
푸후 황디 구룬
일본어 扶餘皇帝國
ふよ こうてい-こく
Fuyo kōtei-koku
후요코데코쿠
중국어 扶餘皇帝國
ㄈㄨˊ ㄩˊ ㄏㄨㄤˊ ㄉㄧˋ ㄍㄨㄛˊ
Fúyú Huángdìguó
푸유 황디궈
몽골어 ᠰᠣᠯᠤᠩᠭᠤᠰ ᠬᠠᠭᠠᠨ ᠤᠶᠯᠤᠰ
Pyuhu Khaan Ulus
설렁거스 카안 울루스
위구르어 امبراطورية كوريا
Ambiraturiat kuria
암비라투리아트 쿠리아
러시아어 Империя Пуё / Корея
Imperiya Puyo / Koreya
임페리야 푸요 / 코레아
필리핀어 Imperyo ng Buyeo
임페료 넝 버요
베트남어 Đế chế Hàn Quốc
데쳬한꾸옥
황실 문장
국기 정부 문장
弘益人間 (1813~1917)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라
六王國協華皇帝國 (1917~ )
여섯 왕국의 화합으로 빛나는 황제국
상징물
국가 임금님의 치세
국조 봉황
국수 백두산 호랑이
국화 국화
역사
건국 1813년 7월 20일
칭제건원 1870년 5월 17일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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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천경특별시 (天京特別市)
북위 37° 33′ 36″ 동경 126° 59′ 24″
최대도시 동경현급시 (東京縣及市)
북위 35° 41′ 22″ 동경 139° 41′ 30″
면적 1,867,195km2 | 세계 15위
접경국 몽강국
중국
러시아
몽골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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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억 1,043만 7,000명 | 세계 4위
인구 밀도 166.25명/km2
민족 구성 만주계 32.1%
일본계 25.0%
조선계 24.1%
한화계 6.6%
기타 12.2%
출산율 1.55명 (2021년)
기대수명 80세 (2021년)
공용어 조선어
국민어 조선어, 중국어, 만주어, 일본어
지역어 몽골어, 러시아어, 대만어, 아이누어, 제주어, 류큐어, 객가어, 여진어
공용문자 조선글, 한자
종교 국교 없음 (정교 분리, 사실상 제국신도)
분포 불교 36.2%
유교 15.6%
도교 11.4%
민간신앙 5.5%
기독교 2.1%
기타 1.6%
무종교 27.6%
군대 부여 황제군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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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후국 대청국
대조선국
일본국
유구왕국
대만국
북이국
1급 행정구역 관구
2급 행정구역 도, 도급시
3급 행정구역 특별시, 현, 현급시
4급 행정구역 구, 시, 군
5급 행정구역 동, 읍, 정, 촌
6급 행정구역 면, 리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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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신정적 전제군주제, 이원집정부제, 군사 정부, 양원제, 일당우위정당제, 봉건제, 전체주의, 제국주의, 군국주의
민주주의 지수 3.20점 | 권위주의
(163개국중 126위, 2021년)
국성 부여 황실[1]
황제 (국가 원수) 융정제
태정령막군
(정부 수반)
홍선규
정부
수반
각료의장 공석 (홍선규 대행)
귀족원장 정섭진
평민원장 안경희
사법원장 김한철
입법부 입법원
집권 여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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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국가사회주의혼합 경제
GDP
(PPP)
$25조 6,731억 3,990만 | 세계 1위
1인당 $82,700 | 세계 5위
GDP
(명목)
$20조 5,509만 2,940억 | 세계 2위
1인당 $66,200 | 세계 9위
수출
입액
수출 $2조 1,016억 6,800만
수입 $1조 9,500억 2,300만
외환보유액 $4조 3,600억 2,200만
신용 등급 무디스 A1
S&P A+
Fitch A+
통화 화폐 부여 원
ISO 4217 BYW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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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량형 SI단위
통행 방향 우측통행
연호 융정(隆貞)
시간대 GMT+08:00~12:00 (BST)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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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가입 1952년
ccTLD
.by, .kr
국가 코드
392, BY, BYO, KOR
위치

개요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전제군주제 황제국이다.

상세

국가 원수인 황제융정제이고, 정부 수반인 태정령막군홍선규이다. 수도는 천경특별시(舊 한양)이고 최대 도시는 동경현급시이다.

만주, 조선반도, 일본열도, 유구열도, 북해도, 살합린섬 그리고 대만섬을 주요한 영토로 두고 있다. 청나라, 조선, 일본, 대만, 유구, 북이라는 6개의 왕국이 연합하여 형성된 황제국으로, 6개국 제후왕 위에 부여 황제가 존재하는 봉건제 국가이다. 봉건제 국가로서 각 국가의 권한을 존중하나 도량형, 행정구역 단위, 언어 등 여러가지 요소들을 하나로 통일하였을뿐더러 헌법상 황제가 이들 국가의 권한보다 위에 있다고 사료되므로 사실상 단일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인구는 3억 1천만명 가량으로, 미국 다음으로 많으며 세계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이다. 경제 규모는 명목 GDP 20조 달러로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경제 강대국이다. 정치적으로는 신정적 전제군주제와 군사독재정을 표방하고 있으며, 일종의 샤머니즘적인 종교인 제국 신도를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서 삼고 있다.

UN을 비롯한 각종 국가 기구에 가입되어있으며 그중 UN에서는 미국, 러시아, 영국과 함께 상임이사국의 지위에 있다. 2010년대 이후로는 미국과 함께 양강 구도를 이루며 신냉전의 핵심 국가로 분류된다.

상징

국호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존재했다고 추정되는 고대의 만주 국가 부여(扶餘)에서 이름을 따왔지만 정치적으로는 별 상관이 없으며, 그보다는 민족적인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여라는 국호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 사슴을 뜻하는 만주어 '푸후(puhu)'와 어원상 관련이 있다는 설
  • 평야를 의미하는 한국어 '벌'의 고어형에서 왔다는 설
  • 쌀을 의미하는 만주어 ‘버러’에서 왔다는 설
  • '불'이 어원일 거라는 설. 여기에 왕족의 성씨가 해씨인 것과 연관지어 태양 숭배나 불 숭배와 관련된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부여가 멸망하면서 부여는 그 일대 지방을 의미하는 용어로밖에 사용되지 않았지만, 1813년 개국 이후 국명을 부여국으로 바꾸면서 부활하였다. 만주와 조선반도를 모두 포괄한다는 의미에서 상징적인 이름을 지은 것이다. 이후 1870년 칭제건원으로 이름이 부여황제국으로 바뀌었다.

한자 약칭으로는 주로 (餘)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줄여서는 여(餘)라고 한다. 해외에서는 Buyeo라고 조선어 이름을 읽은 표기법이 사용되나, 실질적으로는 Korea라는 이름이 더 대중적이다. 이는 옛 왕조 '고려'에서 따온 이름이다.

제국 제2의 언어인 만주어로는 ᠪᡠᡥᡠ ᡥᡡᠸᠠᠩᡩᡳ ᡤᡠᡵᡠᠨ(부후 황디 구룬)이라고 읽으며 일본어로는 扶餘皇帝國(후요고테고쿠), 중국어 및 대만어로는 扶餘皇帝國(푸유황디궈), 러시아어로는 Империя Пуё(엠페리야 푸요)라고 읽는다.

국가


임금님의 치세
[ 가사 보기 ]
임금님의 치세의 평안함을 이루는 덕치
폐하가 통치하는 땅에서 상서로움이 빛난다네.
황제국과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시는 보배를 지니신 현인신의
크나큰 위업의 장엄이 바다같이 펼쳐져
성상 폐하의 강인함으로 사방을 사랑과 자비로 보살피신다네.
하늘이 내려준 만 가지 환희의 위상이 중앙에 솟았네.
황제국 십방, 모든 땅에 즐거움과 기쁨이 새로이 퍼지리.
황도와 세간의 훌륭한 덕이 성행하고
어명이 십방에 퍼지어 황제 폐하에 복종하는 신민의 행복에 기여하기를
황제국의 법도와 질서의 선상 태양에서
쏟아지는 상서로운 영광과 광명의 위력으로
제국의 영토가 평화롭듯이 성상 황제 폐하의 옥체가 평안하시기를

19세기 말, 공식적인 국가가 없던 부여가 독일인 음악가 프란츠 에케르트에게 국가 작곡을 의뢰하여 만들어졌다. 공식적으로 국가로 받아들여진건 1960년의 일로 그 이전에는 법적으로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황실 찬가로서 사실상의 국가 취급을 받았고, 이후 1960년 국가에 대한 법령을 통해 공식 국가로 지정된 것이다.

1970년대 베트남 내전 당시 국민적인 군부 지지율이 상승함에 따라, 애국행진곡이나 바다에 가면과 같은 군가가 제2의 국가로 지정되어야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황제가 이를 거부하였다.

국기

태극기

1867년 제작된 국기로, 당시 황제였던 광종이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1960년 국기에 대한 법령을 통한 법정 국기가 되었다. 구성은 건곤감이를 사방에 배치하고 중앙에 음양 무늬를 넣은 모습이다.

공식 색상은 빨간색(#E6223A), 남색(#0C426E)으로 1998년 지정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빨간색, 하늘색, 남색, 주황색 등 여러가지 색깔들이 마구잡이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중앙정부 차원에서 정보화 시대를 개막하여 헥스코드로 바로 잡은 것이다.

지리

크게 보았을 때 대만섬, 일본 열도, 조선반도, 만주 그리고 기타 부속 도서로 이루어져있다. 인구는 각 지역에 고르게 퍼져있으나, 일본 열도와 조선반도, 대만섬의 인구 밀도가 가장 높고 만주 지역은 북위로 갈 수록 인구가 적어진다. 태평양 일대에 식민지로 보유하고 있는 몇몇 섬이 있으며 이곳에 약 100만명의 적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한편 인구밀도로만 따지면 대만섬이 가장 높은데, 대만섬의 인구는 약 2,600만명이다. 50여년에 걸친 중국 내전을 피해 이주해온 한화계 주민들이 다수이다.

최대 도시는 동경현급시로 광역권 인구는 4,000만명에 이른다. 수도인 천경특별시의 광역권 인구는 2,500만으로 그 뒤를 이으며 3위 규모의 광역권인 장춘현급시 광역권의 인구는 2,200만이다.

대만, 유구 등의 지역은 아열대기후에, 조선반도와 일본열도 대부분은 온대기후에, 조선반도 북부와 홋카이도, 만주는 냉대기후에 속하여 지역별로 다양한 기후가 나타난다. 일본이나 조선반도 지역은 온대기후에 속하여 연중 사계절이 뚜렷히 나타난다.

시간대

부여 표준 시간대(BST)를 사용중에 있으며, BST는 GMT(그리니치 표준시)+08:00에서 +12:00이다. 시간대는 행정구역상의 관구, 즉 구성국별로 나누도록 되어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판도

부여라는 국명의 기원이 된 고대 국가 부여는 만주 지역에 위치한 국가였으나, 신라의 고구려 침략 과정 도중 결국 만주 지역을 잃고 대동강 이남으로 영역이 축소되었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전반기를 거치면서 압록강-두만강 자연 국경을 확립하였다. 1813년 개국 당시에도 이 판도가 유지되었다.

이후 황제국을 선포함과 동시에 적극적인 패권 확장에 나서서 만주, 일본, 대만 등 인근 지역을 전부 복속하였다. 1940년대 이후로는 중국 내전으로 인하여 혼란에 휩쌓인 중국과, 독소내전 처리로 정신이 없던 소련의 상황을 기회로 삼아 몽골과 몽강, 동투르키스탄, 티베트 지역을 영유권으로 삼았다. 본래 황하강 북부까지 자국 영토로 하려다가, 국제 사회의 반발[2]로 인하여 괴뢰국을 설치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196~70년대에는 필리핀 등의 식민지가 독립함에 따라 영토가 조금 줄어들었으나, 독립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를 원만히 조정하면서 이들을 자국의 동맹국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1990년 소련 붕괴 이후 투바 지역의 독립을 지원하면서 자국의 괴뢰국으로 삼았고, 러시아 등 구 공산권 국가들과 동남아 국가들을 포섭하여 극동집단안보기구를 창설하였다.

최근에는 아랍 지역으로의 패권 확장을 추구하고 있으나 미국과 이해 관계가 충돌하여 어려운 모양이다. 이란, 시리아는 비교적 부여에 가까운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는 미국 정부에 가까운 스텐스를 취한다.

구성국


부여의 구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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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국
(1917~ )
대조선국
(1813~ )
일본국
(1910~ )
유구왕국
(1878~ )
대만국
(1893~ )
북이국
(1900~ )

청나라, 조선, 일본, 대만, 유구, 북이로 이뤄져있다.

1813년 개국과 동시에 조선이 구성국으로 편입되었으며, 이후 1878년 유구왕국을 복속시키고 신종 황제가 소씨 왕조에게 부여국 왕작의 작위를 내림으로서 유구가 부여의 구성국으로 편입되었다. 1893년 대만, 1900년 북이를 복속시킨 후, 1910년 경술 여일 합병조약으로 일본을 제후국으로 삼았으며, 최종적으로 1917년 만주 지역으로 내몰린 청나라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청나라를 제후국화하여 현재의 판도를 완성하였다.

대만, 북이는 말이 제후국이었지 1920년대까지만하더라도 황제가 국왕직을 겸하고 총독을 내보내는 사실상의 식민지였다. 그러나 1922년, 세종 황제의 명으로 대만에 정성공의 후예중 하나였던 정주룡이 왕작으로 봉해지고, 3년 후에는 북이 지역을 정벌하는데 큰 공을 세운 공작 가현초가 북이왕작에 봉해짐에 따라 6개 왕국이 각기 다른 제후왕을 섬기게 되었다.

1940년대 세종 황제는 자국의 주요 은퇴 장성중 한명을 필리핀의 왕작으로 봉하고, 부여령 필리핀을 해체한 후 비율빈국을 형성하는 것도 고려하였지만,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무산되었고 이후 필리핀이 독립하면서 없는 계획이 되었다.

해외 식민지


부여의 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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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식민지
필리핀 뉴기니 사할린[1] 팔라우[2]
현 식민지
피지 태평양 제도
1. 1949년 행정구역 개편을 통하여 살합림현으로 내지에 편입.
2. 1970년 자치법 개정으로 부여령 태평양 제도에서 분리. 이후 1982년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

부여는 제국주의 열강중 늦게 경쟁에 뛰어들었으므로, 타국에 비하여 식민지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1898년 스페인 왕국령인 필리핀 도독령전쟁을 선포하여 필리핀을 부여령 필리핀으로 삼았다. 인도차이나 반도 진출 역시 시도하였으나, 프랑스에 밀려 식민지 확보에는 실패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협상국 측에 서서 전쟁을 수행하였으므로 이에 대한 보상으로 베르사유 조약을 통하여 독일령 뉴기니를 식민지로 삼았다.

식민지 개념으로서 보기 애매하나 1905년, 만주 진출을 노렸던 러시아와 여노전쟁을 치뤄 사할린섬 남부에 대한 영유권을 획득하였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발발 이후, 연해주 진출을 시도하였으나 경비 부족으로 실패했다. 이후 사할린섬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 이후 내지(內地)의 일부인 살합림도로 개편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각 식민지들의 독립 여론이 높았기 때문에 부여 측에서는 주민투표를 실시하였으며, 부여령 필리핀이 60.3%의 동의, 부여령 뉴기니가 82.8%의 동의로 독립하였다. 그러나 부여는 독립을 잘 이뤄낼 수 있게한다는 명분으로 독립준비위원회 기구를 설치하였고 이 기구가 신생 정부에 흡수되면서 현재까지 필리핀과 뉴기니 지역까지 부여의 영향력이 지대히 미칠 수 있게 하였다.

현재 부여에게 남아있는 해외 식민지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행정구역

부여황제국
도급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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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의 도를 나타낸 행정구역 지도

기초 행정구역으로 특별시, 현, 현급시가 존재하며, 특별시는 수도인 천경특별시에 단 한개 설치되어있다. 봉건제 국가이지만 행정구역 구성은 중앙정부의 업무이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144개의 현과 30개의 현급시가 설치되어져있다.

각 현과 현급시는 공작급 귀족들의 영지로 여겨진다. 가령 천경특별시의 지자체장은 천경공(天京公)인 태정령막군이다. 물론 세습작은 아니며 대부분의 지자체장 공작들은 일대귀족들이다.

한편 도급 행정구역으로는 도와 도급시가 있다. 도급시는 따로 존재하는 행정구역은 아니고 각 도의 주도를 뜻한다.

최고 단위의 행정 구역인 관구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데, 구성국을 나타내는 단위를 행정구역상 관구라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구의 경계는 구성국의 경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관구의 최고 공무원직은 책임장관이라고 한다.

책임장관은 각 관구, 즉 구성국의 왕작이 임명하며, 도지사와 현지사는 민선직이다.

정치

전제군주제, 군사 독재 국가로, 전통적으로 군부의 힘이 강력하였으며 문민 정치인들도 여럿 집권하였지만 대부분 군부가 정계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황제 개인의 힘 역시 매우 강력하며 부여라는 국가 자체가 그동안 실력 있는 황제의 장기 집권을 통해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온 측면이 크다. 서구식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매우 미미하며 정권의 탄압을 받고 있으므로 가까운 시일 내에 민주주의가 정착될 확률은 낮다.

1917년에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에게서 옥새를 건내받은 이후, 중화 황제국을 참칭하고 있다. 다만 중국 본토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며 영향력이 만주 지역에 그치고 있기 때문에 부여 외의 국가에서는 부여의 중화황제국 참칭에 회의적인 의견을 보인다. 이민족의 왕조이지 중화황제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장으로 된 헌법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불문헌법 국가였으나 1972년 헌법이 제정되었다.

황제

파일:대한제국 용보.png
부여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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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태조 태황제 광종 연황제 신종 융황제
제4대 제5대 제6대
영종 인황제 세종 선황제 인종 창황제
제7대 제8대
헌종 성황제 융정제
추존
시조 · 장조 · 고조 · 현조 · 세조
고조선 · 부여 · 원삼국 · 고구려 · 백제 · 가야
신라 · 탐라 · 발해 · 후삼국 · 고려 · 조선
황태자 · 상황 · 제후왕
융정제

중화황제국을 표방하는 국가인만큼 부여 황제 역시 중화 황제로 여겨지고 있다. 몽골의 카간을 겸하여 재위하는 동군연합의 황제이다. 또한 법에 따라 현인신(現人神), 즉 살아있는 신으로 간주되어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된다.

전제군주제 국가인만큼 부여 황제의 권한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정부 수반인 태정령막군을 임명한다는 점에 있어서, 황제의 의중이 곧 중앙 정치로 이어질 수 있기에 일반적인 군주제 국가에 비해 부여 황제는 전제군주적 정치 개입 권한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의회 해산권을 가지며, 국회 상정안과 헌법 재판 결과를 승인하거나 수정안을 의회 혹은 재판소로 돌려보낼 수 있다. 부여 황제군의 군통수권자이기도 하다.

적장자가 황제가 되는 일이 거의 없을정도로 황실 내부에서의 권력 투쟁이 극심하다. 반정을 일으켜 황제를 죽이고 황위를 찬탈한 경우도 역사상 이나 된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황실 요인들이 암살되는 일이 잦고, 또는 황권 강화를 위해 황제가 직접 환국을 주도하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황제가 죽더라도, 대외적으로는 후계자가 정해질때까지 정치적 안정을 위하여 사망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국민적으로 황제의 지지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억압적인 독재 및 황실에 대한 무비판적인 태도가 만연함에도 불구하고 국민적인 불만은 높지 않다. 청년층들 사이에서는 황제를 지나치게 숭상해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있지만 소수이며 이마저도 40대 위로 올라가면 90% 이상의 시민들이 황실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부여에서 황실을 모독하는 발언을 하면 경찰에게 잡혀가기 이전에 시민들에게 얻어 맞는 경우가 더 많다.

미국 대통령과 더불어서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직책이다. 부여가 전세계적으로 미치는 영향력 때문에 아시아의 황제 혹은 제2세계 진영의 황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황실 모독법

부여에는 독자적으로 황실 모독법(lese-majesty)이라고 불리는 형법 18조가 존재한다. 18조의 내용은"황제, 황비, 황태자 및 상황을 비방하거나 위협한 자는 최소 3년에서 최대 20년까지 형이 선고될 수 있다"로, 이 형법에 따라 부여 내에서 황실을 모욕하는 사람들에게는 살인범에게나 구형될법한 20년형이 선고 될 수 있다.

또한 부여는 범죄를 가중하여 처벌하므로, 단순한 형법 18조 뿐만 아니라 공화주의, 공산주의 등의 이적사상을 금지하는 형법 26조, 반역 행위에 대한 처벌을 담은 형법 73조, 그리고 군통수권자인 황제의 명을 어기는 명령불복종에 대한 처벌을 다루는 형법 263조에 따라 최대 사형까지도 가능하다. 실제로 매년 30여명의 정치범들이 황제 모욕을 이유로 처형당하며 국제 인권 기구의 추산에 따르면 그 수는 매년 수백에서 수천에 달한다고 한다.

국내 언론사들은 대체로 황실의 소유이거나, 정부 기관의 소유이기 때문에 황실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싣는 것이 어렵지만, 그런 방식으로서 통제하기 어려운 해외 언론들은 황실을 비방했다고 여겨질시 추방 조치를 내리도록 되어있다. 또 뉴욕타임스나 파이낸셜 타임스 등 외신의 기사들이 부여판으로 나올때 황실에 비판적인 기사들은 사전에 가위질을 당한다.

제후왕


부여황제국의 제후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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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족 皇族
파일:대한제국 용보.png
부여 황제
융정제
황족
현율왕 상건왕 진청왕
육왕족 六王族

청왕

조선왕

일왕
애신각라씨 왕조
현양왕
이씨 왕조
강왕
본화씨 왕조
덕인왕

유구왕

만왕

북이왕
소씨 왕조
위왕
정씨 왕조
기헌왕
가씨 왕조
유천왕

왕작-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준남작으로 이루어진 7등작 구조중에서 가장 위에 있는 작위로, 부여를 이루는 구성국들의 영주이거나 황족의 친왕만이 받을 수 있는 최고위 귀족 작위이다.

청왕(淸王), 조선왕(朝鮮王), 일왕(日王), 유구왕(琉球王), 만왕(灣王), 북이왕(北夷王)이 6대 제후왕작(諸侯王爵)으로, 각각 대청국, 대조선국, 일본국, 유구왕국, 대만국, 북이국을 다스리는 영주이다. 이들은 자신의 영지인 각 구성국에 대하여 일정부분의 권리를 보장받지만, 기본적으로 부여 황제의 신하로서 황명(皇命)에 절대충성해야한다.

6대 제후왕을 제외한다면 왕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황제의 가까운 친인척들인 내친왕들로 한정된다. 황실전범상, 황제의 8촌 이상 촌수가 되는 황족은 내친왕에 봉해질 수 없다.

정부 기관


부여 황제 직속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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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주요 정부기관들은 부여 황제의 직속에 있다. 9대 직속 기관 아래에 여러개의 정부 부처가 있는 구조인데, 9대 직속 기관은 다음과 같다.

부여 황제의 직속에 있는만큼, 다른 국가에서의 정부 기관장과 달리 부여의 정부 기관장들은 부여 황제의 자문원정도의 역할 그 이상을 하지 못한다. 물론 이는 법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궁무청을 제외한 다른 정부 기관장들은 다른 국가들의 총리나 법관 등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중대한 일이라면 황제가 스스로 기관장의 역할을하여 사건을 직접 지휘하는 것이 가능하다.

흔히 9대 직속기관이라고 하지만, 부여 황제군을 합쳐서 10대 기관장이라고 하기도 한다.

내각

틀:역대 부여 태정령막군

다른 군주제 국가와 달리 총리가 정부 수반이 아니다. 정부 수반은 황제가 직접 임명하는 황제의 호위 책임자 겸 제후 공작[5] 작위인 태정령막군(太政領幕君, Commander-in-Chief of the Great Council of State / Prime Minister[6])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총리에 속하는 직위인 각료의장(閣僚議長)이 정부수반의 지위에 있지만, 각료의장직을 태정령막군이 역임하기에 태정령막군이 정부수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983년 이후 국회에서 개헌을 통하여 내각총리대신 직위를 폐지하고 이를 각료의장직으로 대체한 후, 태정령막군이 각료의장직을 대행하게 함으로서 그나마 있던 허수아비 총리도 없어졌다. 따라서 자유민주당 등의 야당은 태정령막군직 폐지 후 의회에서 선출하는 총리직을 부활시키는 것을 공약으로 삼는다.

태정령막군의 임기는 정해져있지 않으며 황제의 의지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평판이 좋다면 얼마든지 정부수반의 위치에 있는 것이 가능하다. 태정령막군은 정부 내각을 조각할 권한을 가지지만, 임명권과 해임권은 황제에게 있고 황제는 일부 장관의 임명을 거부할 권리도 충분히 가진다.

태정령막군이 되기 위하여는 최소한 백작 이상의 귀족이어야한다는 특징이 있으며, 군에서 5년 이상 복무한 소장 이상 계급의 군인이어야한다. 태정령막군은 자동적으로 육해공군의 원수이다.

의회


부여황제국 국회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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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홍선규 태정령막군 내각
(2020.02.05 ~ )
황제 폐하의 여당

제정당
428석 · 419석
신임과 보완

제국협회[귀]
93석 · 0석

제정결사[귀]
66석 · 0석

부여국민당
13석 · 36석
황제 폐하의 야당

자유민주당
68석 · 121석
기타 야당

동아사회당
0석 · 44석

신진보협회[귀]
28석 · 0석

헌정정치회의[귀]
20석 · 0석

소수민족동맹
0석 · 8석

민주평등당
2석 · 3석
기타 귀족원 회파
14석 · 0석
무소속 10석 · 19석
재적 귀족원 742석 · 평민원 650석
귀. 귀족원 교섭 단체

부여 평민원부여 귀족원으로 나뉘어진 양원제 국가이다. 귀족원이 상원, 평민원이 하원의 역할을 맡으며 평민원 의원에는 신분 제한이 없지만 귀족원 의원은 남작 이상의 귀족만이 역임할 수 있다. 귀족원의 정원은 정해져있지 않으며 자신이 사임하기 이전에는 종신직이다. 한편 평민원은 임기가 4년이며, 정원은 650석이다.

정원 650석중 그중 황제 임명직인 50석을 제외하면 전원 민선직이다. 600석의 민선의석중 487석은 한 지역구에서 한 국회의원을 뽑는 소선거구제로, 108석은 비례대표 의원으로 선출하며 5석은 소수민족 할당 의석이다.

귀족원 내에서는 정당 당적을 가지고 활동하는 귀족들도 많지만, 일부 의원들은 회파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극우파에 가까운 제국협회에서 중도파인 신진보협회까지 계파는 매우 다양한데, 그중에서는 제국협회(극우 / 친융정제), 제정결사(중도우파 / 친융정제), 신진보협회(중도파 / 귀족 내 개혁파), 헌정정치회의(우익 / 반융정제)가 4대 회파이다.

정당

우익 정당인 제정당이 평민원 650석중 70%에 달하는 456석을 차지하고 있는 일당우위정당제의 국가이다. 민선 의원에서는 그나마 자유민주당, 부여국민당 등의 다른 정당들이 선전하지만 제정당 자체의 지지율이 높기 때문에 민선 의석수로도 밀린다. 관선 의석으로는 당연히 압도적인 의석을 보유하고 있고, 비선출직인 귀족원에서도 742석중 과반 이상인 428석을 확보하고 있다.

보혁 구도가 많은 다른 의원내각제 국가들과는 달리 보수 양당제에 가깝다. 제1야당인 자유민주당은 일단 중도좌파 성향 리버럴 인사들도 많지만 기본적으로는 보수자유주의 중도우파에 가까운 포퓰리즘 정당으로 분류된다. 부여국민당 역시 우익 정당이며 야당중에서는 동아사회당만이 뚜렷한 반황실, 좌익의 색체를 띄고 있다. 하지만 황실의 지지도가 매우 높은데다가 정부 차원에서 좌익 정당을 탄압하는 부여 내에서 동아사회당과 같은 진보파 공화주의 정당이 설 자리는 많지 않다.

공산주의 및 공화주의 정당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1980년대까지만해도 군부에 저항적인 야당들이 대다수 활동했지만, 횡빈사태 이후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공화파에 가까운 사회당도 공식 당론으로는 황실 개혁을 요구하지 공화주의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 중소공의 지원을 받는 몇몇 공산주의 게릴라가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세는 미미하다.

민주화 운동

경제

수도 천경특별시의 모습

명목 GDP 2위, PPP GDP 1위의 세계 최대 경제 대국중 하나로 동아시아 내에서 독보적인 위치의 경제적 주도권을 쥐고 있다. 단순한 경제권으로만 보자면 동아시아 전체를 자국의 경제적 영향력 하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보다 경제적으로 더 탄탄하다.

국가사회주의적인 계획 경제를 표방하고 있으나 1950년대 이후 경제 정책에서 시장주의를 일부 수용하면서 현재는 혼합경제에 가깝게 변했다. 1960~80년대의 고도 성장기 이후로는 기업이 가지는 권한이 강력해져, 국영 기업이 아닌 사적 기업들이 대거 설립되었으며 일부 공기업의 민영화도 이뤄졌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민영 기업의 사업에도 국가가 관여하며 군수 산업, 전자 산업 등 대부분의 산업에 있어서 국가가 기업에게 아래로 명령을 강제 하달하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민영 기업임에도 몇몇 국책 사업에 연관되는 일이 잦으며, 부여에서의 민영 기업이라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의 반쯤 공기업이라는 농담도 있다.

이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유수의 대기업들이 부여에 본사를 두고 있는 것은 매우 낮은 법인세율 때문인데, 부여 정부는 국책 사업에 기업이 무상적인 봉사를 하도록 강제하는 대신 법인세율을 낮추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식으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부여의 법인세율은 1.5%로 거의 조세회피처 수준이며, 아일랜드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낮은 국가로 분류된다.

낮은 법인세율로 여러 기업들이 본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실제 국민소득에 비해 국민소득이 높게 책정된다는 지적이 있다. 부여의 명목 국민소득은 6만 6천달러 수준으로, 동아시아 최대 수준이지만 실제 국민소득은 이의 2/3정도인 4만 1천~4천불 정도로 추정된다.

기업

통화

사회

전제군주제 사회의 특성상 어느정도 경직되어져있는 편이며, 유교 성리학적인 사상이 바탕이 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에 비하여 보수적이다. 여성 인권을 비롯하여 서구적인 기준으로 인권이 잘 지켜지지 않는 나라중 하나이지만, 21세기 이후 선진국화라는 명목 하에 일부 악습을 퇴치하였기에 이슬람 국가들과는 달리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히 이뤄지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다른 선진국들에 비하여 여성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란 어려우며, 고위 공직자들중에서 여성의 비율도 10%에 미치지 못한다.

전세계에서 사형을 가장 활발히 집행하는 국가중 하나로, 매년 500여명[7]의 마약사범, 살인사범, 정치사범들이 처형당한다. 대체로 약물 사형이 많지만 일부 흉악범들은 전통적인 교수형이나 총살형으로 사형을 집행한다. 당연히 국제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유럽연합으로부터는 일정한 경제 제재를 당하고 있다.

신분제

7등작으로 나뉘어져있는데, 왕작, 공작, 남작, 백작, 자작, 남작 그리고 귀족은 아니지만 귀족급으로 여겨지는 준남작이 그것이다. 이들은 세습 귀족과, 세습이 아니라 당사자만 귀족 대우를 받는 일대 귀족으로 나뉘어져있는데 일대귀족이 되는것도 어렵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세습 귀족의 수가 더 많다.

3억명의 인구중 약 2%에 달하는 621만 7,430명이 남작 이상의 귀족으로 분류되어있으며, 그중 세습 귀족은 572만 7,104명이다. 준남작까지 포함할 시 그 인구는 800만 이상으로 늘어난다.

사회 최고위층에 있는 인사들로, 차등적인 투표권을 가질 뿐더러 고위 공직자과 기업인의 대부분이 귀족들이기 때문에 선진국중에서는 드물게 혈통적인 특권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일반적인 형사법이 적용되지 않는 계층이며 독자적인 법률로 죄를 심판받는다.

민족

부여는 시민민족주의 국민국가로, 자국의 국민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여기고 있다. 따라서 부여 내에서 혈통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며 통치 이념중 하나인 동아시아협화론에 따라 오히려 각 민족들의 권리 주장은 분열이나 다름 없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세부적으로는 구 청나라 출신의 만주계, 조선 출신의 조선계, 일본 출신의 일본계가 다수를 점하고 있으며, 중국에서 넘어온 한화계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들은 대다수가 부여의 문화에 동화되었기 때문에 구분하기 어려운 편이고 자신들조차 정확한 민족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 공문서에서 민족란을 기입할때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이름을 쓰는 일이 빈번하다.

반면 대만 원주민들과 아이누족, 일부 유대인 및 러시아계 부여인들과 기타 외국인들은 외양이나 생활 환경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다른 민족이라는 의식이 존재하는 편이다. 그 외에 자신들의 정체성이 뚜렷한 만주계, 조선계, 일본계들의 인구까지 합치면 이들은 부여 인구의 약 8~10%정도의 인구를 차지하고 있으며, 소수민족동맹이라는 작은 정당을 통하여 활동한다.

언어

조선어가 공식적인 언어로 지정되어있다. 조선어는 조선의 고유 문자인 조선글과 한자로 작성된다. 국민들의 대다수가 조선어를 할 수 있으며 제1언어로 사용하는 인구의 비율도 80% 이상이다.

만주 지역의 만주어, 일본 열도의 일본어 등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비율이 높지 않다. 그럼에도 정부 차원에서 어느정도의 배려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제2언어로 만주어나 일본어를 사용하는 비중은 꽤 된다.

한화계들은 주로 만다린을 사용하며, 기타 중국어 방언을 사용하기도 한다. 러시아어, 몽골어 등도 소수 언어이다.

문화

동아시아 협화론이라는 사상에 따라, 시민민족주의가 추구된 국가인만큼 만주, 대만, 조선, 일본 등 다양한 동아시아 문화권의 문화가 섞여 독특한 문화를 구축하였다.

언론

언론 자유지수는 45.22로, 전세계 131위이며 국력에 비해 언론 자유 지수가 낮은 국가이다. 진보 성향의 언론들은 사실상 허용되지 않으며 허용되더라도 황실에 비판적인 기사를 실을 수 없다. 또한 법에 따라 언론사를 개인이 소유할 수 없다. 언론사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정부 기관과 정당, 그리고 황실 정도로 국한되기 때문에, 소액 주주들로 결성되는 독립 언론과 같은 것은 불법전단으로 분류되고 있다.

종이 신문이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전 국민의 60%정도가 종이 신문을 구독해두고 있다. 1920년대 창간된 두 민족 정론지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압도적인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동아일보가 비교적 온건한 자유주의의 스텐스를 취하고 있다면, 조선일보는 강성 친황파와 보수파의 입장을 대변한다.

TV 언론은 거의 모두 부여 황제 개인의 소유로, 황실의 입장을 대변하는 언론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문화방송이 진보파의 의견을 대변하고 있지만 이 역시 친황파 언론이다.

종교

공식적으로 국교는 정해져있지 않으나, 제국 신도(帝國神道)라고 불리는 종교가 국가 사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제정 일치 사회이다. 제국 신도는 종교라고 볼 수도 있고, 사상 혹은 사회 규범이라고 볼 수 있는 애매한 개념이다. 동아시아의 불교, 도교에서 큰 영향을 받았고 민속 종교를 기반에 두고 있기 때문에, 종교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종교라고 보지 않는 시각도 있다. 본래 제국 신도는 정형화된 개념이 아니었으나 1900년대 황실이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각지의 민속 신앙들을 결합하여 다듬어 현재의 제국신도를 만들어냈다.

전국민의 90% 이상이 제국신도의 신자로 분류되지만, 공식적으로 신도는 종교가 아닌 사상이기 때문에 종교로서 집계하지 않는다. 따라서 부여 최대의 종교는 공식적으로 불교이다. 전 국민의 35%정도가 불교를 믿고 있다. 그 외에는 15%의 유교, 10%의 도교 신자가 존재하며 제국신도로 통합되지 않는 독자적인 민간신앙을 믿는 사람들의 수도 상당하다.

한편 기독교는 수가 2%정도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세가 약하다. 이는 부여 황제를 현인신으로 여기는 제국신도와 이를 거부하는 기독교가 정치적인 충돌을 빚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정부 차원에서 막강한 탄압을 받았고, 1950년대 이후 조직이 말살되다시피 했고 지금 존재하는 2%의 기독교 신자들도 대부분은 러시아 국경 지대에 거주하는 정교회 신자들이다.

음악

아이돌 음악이 유명한 나라이다. 부여의 아이돌을 통틀어 K-pop이라고 하기도 한다.

국제적으로 록 음악과 헤비 메탈은 너바나의 해체와 랩 메탈의 쇠락 이후 점차적으로 메인스트림에서 밀려나는 추세이지만, 부여에서만큼은 여전히 록 음악이 아이돌 음악에 녹아들면서 록 음악의 세가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 아이돌 음악 외에도 애니메이션 산업으로 유명한 나라가 부여인만큼, 애니메이션 OST로도 여러 록밴드들이 짭짤한 수입을 올린다.

세영산, 산울림, 시나위, 부활과 같은 옛 밴드들도 상업적, 평론적으로 좋은 평을 받고 있다.

군사

부여의 대외 전쟁·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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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폐하의 군대의 기갑부대

공식 명칭은 황제 폐하의 군대(His Majesty's Armed Forces)이다. 공식적으로는 부여 황제의 사군(私軍)으로 황제의 개인적인 용도를 위하여 사용되는 군대이나, 실질적으로 황제는 부여의 국체(國體)이므로 황제 폐하의 군대가 부여의 군대의 역할도 대신하고 있다.

세계적인 군사 대국으로, 미군과 거의 비등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다. 국방비 지출로는 GDP 대비 세계 1위이자, 총 액수로도 세계 1위이고, 순수 국방력은 미군에 이은 2위로 여겨진다.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불곰 사업으로 소련의 무기들과 주요 국방 연구진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비약적인 군대 성장을 이루었다. 부여가 전통적으로 군사정을 유지해왔다는 점 역시 부여의 강성한 군사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징병제 국가이다. 19세 이상에서 29세 이하의 남성들은 군 복무가 의무화되어있으며, 복무 기간은 15개월에서 20개월이다. 국가 안보에 따라 25개월까지 연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전시에는 45세까지의 인원이 징병되며, 45세 이상 및 18세 미만은 비전투인력으로 분류되어 후방에서 전쟁을 지원한다. 전체 병력 규모는 350만명 가량이다.

베트남 내전, 미얀마 내전 등 아시아 지역의 주요 전장에서 전쟁에 개입하고 있다. 최근에는 게릴라전을 수행하는데에 애로사항이 많기 때문에, 지역의 반군이나 정부군을 지원하는 경우가 더 많은 편이다. 또한 아시아 지역의 패권이 전반적으로 부여에 의존적이기 때문에 부여도 굳이 전쟁에 참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해외 정규군과의 전쟁 역시 사실상 없어진 상태로, 굳이 따지자면 2001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측에 참전해 미국과 교전한 것이 전부이다. 이 역시 국가간 전면전으로는 번지지 않았다.

세계 최대의 핵 보유국이다. 부여는 1956년 독자적인 핵 개발에 성공하였으며, 소련 붕괴 이후 다수의 핵 기술자들이 부여로 넘어옴에 따라 더욱 비약적으로 핵무기 산업이 발전하였다. 최근에는 군축으로 인하여 핵무기 수를 차차 줄여나가고 있으나 그럼에도 미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 극동집단안보기구의 가입국에는 전원 핵우산을 제공하고 있다.

기술

부여 황제의 준급 직속기관으로 황립과학기술원이 존재하며, 내각원과는 별도의 예산을 책정받는 독립적인 기구이다. 1992년까지는 내각원 소속의 과학기술부였으나 이후 과학기술원으로 독립하여 황제 직속 기관으로 개편되었다.

미국, 영국, 독일 등과 더불어 세계 과학 기술을 선도하는 국가중 하나이다. 특히 로봇 기술이 크게 발달하였으며, 1990년대 이후로는 소련 출신의 과학자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하여 우주 기술에 있어서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입자가속기가 위치한 국가이다. 대청국 길림도에 위치한 동아시아입자물리연구소(East Asian Organization for Nuclear Research; EAONR)가 그것이다. 연구소 자체는 1964년 설립되어 역사가 길지만, 입자가속기는 1995년부터 2007년까지 러시아와 부여 정부의 합작을 통하여 건설되었다.

2000년대 이후 동맹국인 러시아와는 꾸준히 군사 기술, 우주 기술 면에 있어서 활발한 교류를 하는 중이다.

우주

1990년대 이전까지는 국력에 비하여 우주 기술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965년 세계 국가중 3번째로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인 것에 불과하다.

우주 기지는 부여가 독자적으로 건설한 송원우주센터가 있지만,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규모 면에서도 크지 않은 편이기 때문에 중소규모의 비행체를 날릴 때 쓰고 있다. 러시아와 부여가 우주 기술에 있어서 협력하고 있기 때문에, 대규모의 우주 프로젝트는 대부분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를 대여하여 사용한다.

에너지

원자력과 화력이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부여는 입지상 수력, 풍력, 태양렬 발전 등이 미국과 같은 나라에 비해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많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2022년 현재, 전체 에너지 비중의 45.4%는 화력, 40.6%는 원자력으로 두 에너지가 총 86%에 달하는 비중이다.

그럼에도 2010년대 이후 꾸준히 신재생 에너지의 연구가 이어졌기에 현재 재생 에너지의 비중은 2002년 1.7%에서 2022년 14.0%로 크게 늘어난 상태이다. 그중 가장 비중이 높은 발전은 조력 발전과 파력 발전이다. 풍력 발전 역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에는 재생 에너지의 단가가 많이 싸졌기 때문에 일반 가정집에서도 태양렬 발전과 같은 재생 에너지를 더욱 선호하기도 한다.

외교

중국을 제외한다면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가 우호적이며, 중국마저도 경제적으로 주종관계에 있기 때문에 부여의 외교적 영향력은 아시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봐도 된다. 1990년대 이후 인도 등 몇몇 국가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들과 아프리카 지역들이 부여의 영향권 하에 편입되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남미와 유럽으로의 확대를 추구해온 미국과 부여는 일종의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핵심 동맹국


극동집단안보기구 회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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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집단안보기구의 로고

극동집단안보기구라는 이름으로 동맹국들을 관리하고 있다. 가입국들의 대부분이 경제, 정치, 군사적으로 부여에 종속되어있고, 그만큼 부여의 핵심적인 동맹국들로 여겨지고 있다. 극동집단안보기구 외의 국가들과도 각종 조약을 통해 동맹 관계를 맺고 있다. 1990년 소련의 해체 이후, 동유럽을 제외하면 구 2세계 국가들을 대부분 자국의 영향력 하에 흡수하였기 때문에, 현재 부여와 부여의 동맹국들은 제2세계 국가로 불린다. 또한 부여와 동맹을 맺고 있는 국가들은 화이트팀[8]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여몽관계

애초에 몽골이 건국된 배경부터 부여의 속국, 위성국 성격이었으며 현재도 부여의 황제가 몽골 카간을 동군연합하여 재위하기 때문에 두 나라의 관계는 주종관계에 가깝다.

몽골 인민당 등 일부 정당은 독립과 자주화를 주장하지만 몽골인들에게 있어서는 부여와 동맹을 맺어야한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부여가 과거 보르지긴 왕조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준데다가 1970년대의 경제 발전을 지원하였기 때문이다. 또 몽골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화민국이라는 거대 국가가 있는 점도 몽골인들이 자주화를 바라지 않는 이유이다.

여러관계

부여의 최대 친선 국가중 하나로, 군사, 경제, 정치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파트너 국가이다. 과거 소련 시절에는 진보, 공산주의 진영 탄압을 국시로 삼았던 부여와 러시아의 관계가 비우호적이었으나, 소련 붕괴 후 러시아에서 경제 위기가 일어났을 때 부여가 많은 도움을 줬기 때문에 1990년대 후 양국의 관계는 동맹 관계이다. 또 부여의 자본이 러시아 극동 지역으로 진출하였고, 점진적으로는 러시아가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부여가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기 때문에, 러시아를 향한 서방 세계의 제재가 무용이 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미국 정부 내에서는 부여에 대한 제재 논의가 있었으나 현실적으로 미국보다도 더 큰 경제권을 가진 부여를 제재할 시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 속에 무산된 바 있다. 사실상 부여가 러시아의 뒷배가 되어주고 있기 때문에, 양국의 친선 관계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여강관계

몽강의 설립 배경 자체가 중국 내전 당시 중국의 만주적 및 회족 등의 보호를 목적으로 한 부여의 내전 개입이었기 때문에, 몽강은 부여의 속국이자 위성국, 그리고 동맹국으로서 부여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중국 정부는 동투르키스탄이나 몽골의 독립 자체는 인정하고 있으나, 몽강은 자국의 영토로 간주하고 독립을 승인하지 않기 때문에 안보상으로라도 몽강은 부여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몽강은 병력 15만 규모의 군 외에 7만 병력의 부여군 역시 자국에 주둔시키고 있다.

여돌관계

동투르키스탄은 몽강, 몽골, 투바와는 달리 독자적인 힘으로 독립한 국가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종 관계 의식은 흐리다. 동투르키스탄이 지리적으로도 부여에서 먼데다가, 문화적으로도 이슬람 국가여서 동질성이 적다는 이유도 한몫 한다. 하지만 부여 정부가 동투르키스탄의 경제 발전과 세속화에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양국의 관계는 돈독한 동맹국 관계이다.

가상 적국

여미관계

두 나라는 단순한 적대적 관계에 있는 것을 넘어서 라이벌 관계로 여겨지고 있다. 1940년대 이후 부여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부여를 지원했지만, 1960년대 각종 팽창 정책을 통해 부여가 미국의 영향력을 밀어내고 중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들을 자국의 영향력 아래에 편입하자 미국 측에서는 소련보다도 부여를 우선적인 가상 적국으로 여겼다. 이런 추세는 1990년대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가 부여의 영향권 안에 편입되고 중국 역시 부여의 자본 침투로 사실상의 속국화가 이루어지자 더욱 빨라졌다.

2000년대 이후로는 미국보다는 부여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분석이 있다. 부여가 아시아 지역의 패권을 장악한 것과는 달리 남미나 유럽에서는 반미 성향의 정부가 자주 집권하며 미국의 영향력을 종종 무력화시킨다는 것이다. 다만 부여 역시 중국 정치를 완벽하게 통제하지는 못하고 있으므로 미국이나 부여나 비등하다는 반론도 있다.

미군 vs. 부여군은 자주 거론되는 떡밥이며, 진짜로 싸워보기 이전까지는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는 싸움으로 여겨진다. 2001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에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을 지원했던 부여군과 미군이 간접적인 교전을 치뤘는데, 전면전까지는 번지지 않았다.

여영관계

1961년, 피지를 둘러싼 영국과 부여의 양국간 영토 분쟁이 발생한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피지의 자치권을 요구한 원주민 세력을 부여가 지원하면서 양국간의 외교적 문제로 번진것. 국제 여론상 영국이 불리하였던데다가 부여의 무력 시위가 거셌기 때문에, 영국은 어쩔 수 없이 주민투표로 피지를 부여에게 양도하였다. 이후로 양국은 가상 적국의 관계에 있다.

영국이 1997년 홍콩을 반환할때 어느 나라에 반환할 것인지에 대해 외교적인 분쟁이 일어난 적이 있다. 영국은 청나라로부터 99년간 홍콩 신계 지역의 영유권을 임대받았는데, 청나라가 붕괴되면서 중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은 중화민국 정부가, 청나라 황실은 부여황제국 정부가 계승하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조약적인 해석에 있어서 문제가 많았고 국제사법재판소까지 갔는데 결과적으로는 양국 정부가 공동통치하는 특수행정구역으로 남게 되었다.

그 외의 관계에 있어서 영국은 군주제 국가이지만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있는 관계로 부여를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과 부여의 지리적인 거리가 먼만큼 상호간의 견제는 많지 않다.

여중소공 관계

중소공에 대해서는 극도로 부정적인 입장이다. 우선 미승인국인데다가, 부여 내에서 각종 게릴라 활동을 펼치면서 공산주의 조직을 지원까지 한다는것이 그 이유이다. 중소공에서는 부여를 타도해야할 전제 국가로 여기고 있으며, 만주와 일본 지역의 독립 운동을 지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중소공이라면 이를 갈고 있는 중국 정부와는 중소공에 대하여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중관계

동아시아 내에서 중국의 영역을 표시한 지도
■ 부여와 그 동맹국
■ 중국
■ 중소공

부여와 중국의 관계는 동맹국도, 적대국도 아닌 애매한 관계에 있다. 양국 정부가 티격태격할 때가 많더라도 양국 국민간 사이가 나쁘지 않은데다가 무엇보다 경제적 교류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으나 양국민간의 사이가 괜찮고 문화적인 교류도 활발하기 때문에 미국과는 달리 중국은 부여의 잠재적인 파트너 국가로 여겨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경제적으로 부여와 중국은 주종관계에 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부여에 대해 그렇게 협조적이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경제적 영향력 때문에 큰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고 이 때문에 중국을 부여의 속국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여와 중국의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것은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장장 50여년에 걸친 중국 내전을 부여가 조장, 이간질하면서 질질 끌어, 중국의 잠재적인 성장 가능성을 없애버린데다가 지금도 종종 부여의 주요 대기업들이 문어발식 사업으로 아직 경제적인 기반이 탄탄하지 못한 중국의 경제 근간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문제 역시 큰데, 일단은 민주공화정을 지향하는 중국과 달리 부여는 종교적인 전제군주제 국가이기 때문에 양국은 사상적인 이유로 양국을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내륙에서 활동하는 게릴라 레지스탕스 조직인 중국 공산당은 부여의 공산화를 지원하는 입장에 있으며, 부여와 중국 정부 모두에게 있어서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에 양국은 중국 공산당 진압을 위해 군사적으로 연합하고 있다.

대중매체에서

각주


  1. 부여의 황제는 신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성을 가지지 않는다.
  2. 특히 소련의 반발이 강력하였다.
  3. 나우루, 마셜 제도, 캐롤라인 제도, 마리아나 제도를 합쳐 태평양 자치령을 구성하고 있다. 팔라우는 1982년 주민투표로 독립.
  4. 2차 세계 대전 이후 획득한 유일한 식민지로, 1962년 영국 정부가 부여 정부에게 양도하였다. 이후 1975년 독립 투표가 실시되었으나 정부 측에서 주민 여론이 신경을 썼기 때문에 50.7% 대 49.3%라는 근소한 차이로 부결되어 현재에 이른다. 현재는 피지 자치령이라는 이름으로 구성되어있다.
  5. 일반적으로 천경특별시의 제후로 여겨진다.
  6. 너무 길기 때문에 보통 Prime Minister라고 한다.
  7. 인구 규모가 비슷한 미국은 11명에 그친다.
  8. 부여의 국기 색이 하얀색임에서 착안한 것이다. 친미 국가들은 블루 팀이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