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중 하나의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관리자. 문서를 고치려면 이메일 인증 절차가 필요합니다. 사용자 환경 설정에서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이메일 주소 인증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개요 == [[한청전쟁 (푸른 오얏꽃2)|한청전쟁]]에서 승리한 [[대한제국 (푸른 오얏꽃2)|대한제국]]이 서울 조약을 통해 청나라에게서 남만주 일대를 할양받게 되자 러시아와 일본, 영국의 3국이 대한제국에 외교적 압력을 행사한 사건. == 전개 및 결과 == 만주로 남하하려는 러시아 제국의 니콜라이 2세는 그곳에서 [[대한제국 (푸른 오얏꽃2)|대한제국]]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대한제국의 팽창을 경계하는 일본 제국과 영일동맹을 맺고 있던 영국<ref>당시 영국과 러시아는 그레이트 게임을 진행 중이었지만, 극동의 신흥 세력을 경계한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일치했다.</ref>을 끌어들여 서울 조약 체결에서 6일이 지난 1892년 4월 23일 각국 대사들과 함께 대한제국 외무차관에 외교적 압력을 행사한다.<br><br> 삼국의 압력에 직면한 대한제국 정부는 크게 세가지 방안을 검토한다. 첫번째는 지금 당장 연해주의 영유권을 구실 삼아 러시아와 일전을 벌이자는 것. 하지만 [[한청전쟁 (푸른 오얏꽃2)|한청전쟁]]으로 국력의 소모가 너무 컸기에 이 의견을 지지하는 쪽은 거의 없었다. 두번째는 곧바로 반납하는 것이었고 세번째는 회담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었는데 남만주 일대를 청에 돌려주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냥 돌려주면 영 모양새가 안 서니 일단 회담을 연 뒤에 여기서 돌려주는 방식을 채택하자는 주장이 우세했다. 하지만 외상 [[윤영익 (푸른 오얏꽃2)|윤영익]]이 "회담을 벌이면 다른 문제가 제기되어 얻은 것도 놓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두번째 안이 채택된다.<br><br> 결과적으로 볼때 러시아 제국의 압력에 부담을 느낀 [[대한제국 (푸른 오얏꽃2)|대한제국]]이 어쩔 수 없이 간도를 제외한 영토를 다시 청나라에 반환한 것이다. 한국 대중과 [[대한제국 황립군 (푸른 오얏꽃2)|대한제국군]]은 러시아 제국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일본 제국에게 반감과 분노를 지니게 되었으며, 특히 1898년에 러시아 제국이 여순, 다련을 점령하여 군항으로 활용하게 되자 분노와 불만은 극에 달했다. 대한제국의 반러·반일 여론은 [[한독동맹 (푸른 오얏꽃2)|한독동맹]]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고, 이는 [[한·러 연해주 영토 분쟁 (푸른 오얏꽃2)|연해주 분쟁]], [[한일 건함경쟁 (푸른 오얏꽃2)|한일 해군력 경쟁]]의 계기가 되며 [[제1차 세계 대전 (푸른 오얏꽃2)|제1차 세계 대전]]에서 폭발한다. <references /> 삼국간섭 (푸른 오얏꽃2)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