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 이영혜 (푸른 오얏꽃2):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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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 이영혜
조선 제31대 국왕
대한조선국 제4대 국왕
성상 이영혜 |
聖上 李領慧
2021년(소흥 16년) 여름, 이화궁에서.
대한조선국 국왕
재위 대한조선국 공주
1976년(건양 12년) 1월 12일 ~ 2005년(소흥 원년) 7월 19일
조선 제32대 국왕
2005년(소흥 원년) 7월 20일 ~ (재위 중)
대한조선국 제4대 국왕
2005년(소흥 원년) 7월 20일 ~ (재위 중)
대관식 2005년(소흥 원년) 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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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자 익종
내각총리대신 노민영
이명일
박주혜
문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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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존호 경현양명화정예열(敬賢量明和定睿悅)
영혜(領慧)
아명 청람(淸濫)
태림(泰臨)
군호 현안공주(賢安公主)
연호 소흥(蘇興)
신상정보
출생 1972년(건양 8년) 6월 8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내부 직속 병원
왕조 조선 왕조
가문 전주 이씨
부모 부왕 익종 이섭, 모후 원영왕후 박주찬
형제자매 2남 2녀 중 장녀
오빠 창평대군 이철(현재 평민)
여동생 정효공주 이민
남동생 은화대군 이진석
배우자 국서 양우석
자녀 건흥태자 이현
현경공주 이정은
기타 친인척 창덕궁가, 인경궁가, 덕수궁가
학력 왕립연희초등학교
왕립연희중학교
덕성여자고등학교
왕립연희대학원(사회과학과 박사 수료)
신체 156cm
종교 개신교

개요

조선의 제32대 국왕이자, 대한조선국의 제4대 국왕이다. 익종 이섭원영왕후 박주찬의 장녀이다. 공주 시절 칭호는 현안공주(賢安公主). 문장은 오얏꽃이며, 연호는 소흥(蘇興)이다. 현재 재위 중이므로 조선인들 사이에선 성상 폐하(聖上 陛下), 줄여서 성상이라 불린다.
한국사 역사상 4번째 여왕으로, 신라의 진성여왕 이후 1,100년 만에 등장한 여성 군주이다. 2005년(건양 41년) 익종이 붕어하고 오빠인 창평대군이 즉위해야 했으나, 창평대군이 미혼모인 강다은과의 혼인을 위해 왕위를 포기했다. 이후 궁내부 추밀원의 심의와 국민 투표를 통해 2005년 7월 25일에 이화궁 중화전에서 전통 방식으로 즉위식을 치르고 대한조선국의 여왕이 되었다. 도예에 관심이 많아 서초구 소재 예술원의 명예 회장을 맡기도 했고, 일본을 비롯한 12개국에서의 서훈 내역이 있다.
국민 투표를 통해 왕이 된 특이한 케이스의 군주이기도 하다.

생애

어린 시절

1972년(건양 8년) 6월 8일 16시 47분, 익종과 원영왕후 사이 2남 2녀 중 장녀로 종로구에 위치한 궁내부 직속 병원에서 태어났다. 생후 12일에 익종이 영혜(領慧)라는 평민식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의 뜻은 '지혜를 거느리다." 그 이후 관례상 청람(淸濫)이라는 아명이 정해졌는데, 태조부터 익종까지의 왕들은 관례상 아명을 먼저 짓고 휘를 지었다. 그러나 성상은 일반 국민들처럼 일반적인 이름을 제일 먼저 가진 최초의 군주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덕혜공주 이후로 처음으로 내정가에서 가진 딸아이라 익종 부부와 왕실은 물론 국민들의 많은 관심을 받으며 자랐다.
무난하게 왕립 연희초·중을 졸업하며 1976년(건양 12년) 공주에 책봉되었다.

청소년 시절

현안공주는 조신하지 않고 행동이 자유분방했는데, 그런 행동을 좋게 보지 않는 국민들도 있었다. 한 성격하는 그녀는 왕실의 교육이 체질에 맞지 않아 왕립연희고등학교를 다니지 않고, 서울특별시 소재 덕성여고에 다녔다. 공주가 민간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바람에 익종 부부가 궁을 나서야 했고, 1989년(건양 25년) 덕성여고의 입학식은 가장 성대한 학교 입학식으로 조선인들의 기억에 남았다. 익종 부부는 이때 공주에게 "백성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말아라. 그리고 백성의 뜻과 의지를 마음에 세겨라."라는 충고를 했다고 한다. 왕족을 민간 고등학교에 보내니 태상왕 부부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진
1990년(건양 26년), 친구들과 찍은 사진

그러나 태상왕 부부의 걱정과는 달리 공주는 교우관계도 원만했고, 당시 친구들의 인터뷰에 의하면 반에서 항상 활기차고 분위기 메이커였다고 한다. 또한 공주는 한국사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고, 항상 한국사 내신 1등급을 차지하던 아이였다고 한다. 또한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했다고 하는데, 조선의 왕족이 민간 고등학교에서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의 언어를 선택한 것은 당시 큰 이슈가 되었다.
일부 국민 여론이 공주의 행동을 좋게 보지 않았고, 심지어 그녀가 하교하고 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느 노인이 다가와 "현안공주 아웃! 군주제 폐지! 대한민국 만세!"라고 외친 사건도 있었다 한다.

가족관계

여담

대중 매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