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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세르비아 독립국(세르비아어: Независна Држава Србија / Nezavisna Država Srbija)은 1943년부터 1963년까지 존재했던 동남유럽 발칸반도 내륙에 위치한 권위주의 체제 국가이다. 독일 점령하 세르비아 군정청을 해체하고, 기존 구국정부 체제를 계승하는 형식으로 1943년 1월 28일 수립되었다.
역사
1943년 1월 28일, 독일 점령 당국은 기존의 세르비아 군정청을 해체하고, 세르비아 독립국의 성립을 승인하였다. 총리직은 이전 구국정부 수반이었던 밀란 네디치가 유임하였으며, 신정부는 반공·반유대 정책과 치안 유지를 독일과의 협력 아래 수행하였다.
이 시기 세르비아는 독자적 군사력 없이 국가수비대와 친정부 민병대에 의존하는 치안국가 형태를 띠었다. 고령의 네디치는 점차 실권에서 멀어졌고, 그 공백을 국민운동이 민정・이념・선전 부문에서 빠르게 대체하였다.
1951년 10월 9일, 밀란 네디치는 베오그라드 자택에서 의문의 추락사로 사망하였다. 이후 독일 민정총독부의 묵인 아래, Zbor 지도자 디미트리예 료티치가 총리직을 승계하였다.
류티치 정부는 정교회 교리와 국가주의적 이념을 결합한 체제 구축을 천명하였고, :신이 부여한 질서"를 정치 슬로건으로 채택하였다. 정권은 전국적으로 이념 교육, 사상 감시, 반체제 통제 체계를 확립하였으며, 명목상 독립국이었으나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심각하게 독일에 종속되었다. 정권 반대 세력은 주로 내무부 산하 국가수비대 및 주둔 SS 고문단의 협조 하에 탄압 및 숙청되었다.
이에 반발하여 일부 지식인, 성직자, 공산주의 계열 파르티잔 잔당, 자유주의자 등은 세르비아 민족해방전선(SNLF)을 결성하고 비밀리에 활동을 전개하였다.
1963년 10월 15일, 아돌프 히틀러의 사망 소식이 유럽 전역에 전파되면서 독일 내 계승 분쟁이 발생하였고, 이에 따라 독일의 대세르비아 통제력이 급격히 약화되었다. 다음 날인 10월 16일, SNLF는 베오그라드에서 디미트리예 류티치를 암살하고 무장 봉기를 선포하였다.
10월 17일, 당시 내무장관 겸 치안책임자였던 드라고미르 요바노비치는 국가비상령을 선포하고 권한을 인수하였으나, 급속히 확산된 민심 동요와 군 내부의 균열을 통제하지 못하였다.
이후 5일간 전국 주요 도시 및 농촌에서 봉기 세력이 확산되었고, 10월 22일에는 베오그라드를 포함한 전역에서 본격적인 무력 충돌이 발생, 세르비아 내전이 개전되었다.
당시 독일은 내정 혼란과 계승 문제로 군사적 개입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며, 세르비아 독립국은 수 주 내로 행정 기능을 상실하고 붕괴 상태에 빠졌다.
정치
기타
상징물
기 | 사용기간 | 쓰임 | 설명 |
---|---|---|---|
1943년 1월 28일 ~ 1943년 2월 5일 | 국기 | 건국 초기에 사용됨. | |
1943년 2월 5일 ~ 1963년 12월 16일 | 독립국부터 사용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