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중 하나의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관리자. 문서를 고치려면 이메일 인증 절차가 필요합니다. 사용자 환경 설정에서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이메일 주소 인증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class="infobox" style="text-align: center" width="20%" align="right" ! colspan="4" style="background:#AE0B31; color:#FFFFFF;" |<big>'''야마다 나가마사'''</big><br>({{llang|ja|山田長政}}) |- | colspan="4" style="background:#FFFFFF; color:#5D5D5D;" | [[파일:YamadaNagamasa.jpg|230px|가운데|]]'''야마다 나가마사의 초상화''' |- | colspan="4" style="background:#AE0B31; color:#FFFFFF;" | 인물 정보 |- | colspan="2" style="background:#FFFFFF; color:#5D5D5D;" | 본명 | style="text-align: center;" | <small> 야마다 나가마사<br>(山田長政) |- | colspan="2" style="background:#FFFFFF; color:#5D5D5D;" | 별칭 | style="text-align: center;" | <small> 남방의 영웅<br>(南方の英雄) |- | colspan="2" style="background:#FFFFFF; color:#5D5D5D;" | 생몰연도 | style="text-align: center;" | <small> 미상 ~ 1630년 7월 11일 |- | colspan="2" style="background:#FFFFFF; color:#5D5D5D;" | 재위 기간 | style="text-align: center;" | <small> 아유타야 왕조의 '''쿤'''<br>(1626 ~ 1628)<br>[[타이난 개척청]]의 초대 '''칸쵸'''<br>(1628 ~ 1630) |} '''야마다 나가마사'''({{llang|ja|山田長政}})은 [[타이난]]의 인물이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의 [[스루가 국]](駿河国)에서 태어나 [[오쿠보 다다스케]](大久保忠助)의 가마꾼으로서 활동했으나 주인선(朱印船)을 타고 지금의 [[태국]]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태국에서 "방 이푼"이라 불리는 니혼마치(日本村)에서 [[기이 규에몬]]을 통해 재능을 인정받아 두각을 드러내어 일본과 아유타야 왕조간의 무역을 주선했으며, 이후 태국을 에스파냐로 지켰다는 공로로 국왕이었던 송탐(ทรงธรรม)에게 일본인 거주지의 영주로서 활동하였으나, 왕위 계승 과정에서 야마다 나가마사의 세력을 두려워 한 이들이 그들을 해외로 추방시키기 위해 핍박을 가하였고, 그는 니혼마치의 일본인들을 이끌고 [[보르네오 섬]]의 정착하여 [[타이난 개척청]](対南 開拓廳)의 칸쵸(館長)가 되어 정착지를 건설하던 중 1630년에 현지인들과의 전투 중 전사하였다. ==이력== 야마다 나가마사는 현재 [[시즈오카 현]] 중앙부 지역의 구 명칭인 [[스루가 국]](駿河國)에서 태어났다. 원래는 [[누마즈 번]](沼津国)의 번주였던 [[오쿠보 다다스케]](大久保忠助)의 가마꾼이었으나, 1611년 경에 [[주인선|슈인센]](朱印船)을 타고 현재의 태국으로 넘어갔다. 슈인센은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에 쇼군으로부터 해외 통상 허가증인 슈인조(朱印狀)를 발급받아 외국과 교역하던 배를 말한다. 당시 태국의 도시인 [[아유차]]의 동남부에 일본인 거류지인 "방이푼"(日本町)이 있었고, 이곳에 다수의 일본인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기이 규에몬]](紀伊右衛門)이라는 사람을 리더로 하여 샴 정부의 우대를 받고 있었다. 나가마사도 그곳에서 재능을 인정받아 점점 두각을 드러냈고 규에몬에 이어 니혼마치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는 태국 사절이 일본을 방문할 때 부하를 파견하여 막부 요직자들에게 책이나 선물을 바치는 등 양국의 국교 친선을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자신도 상선을 직접 일본에 파견하여 무역을 했다. 나가마사는 1626년 태국의 고위직에 올라 외교 및 무역 활동을 했으며, 에스파냐를 격퇴하고 태국의 왕위 계승과 관련해 일본인을 이끌고 반란군을 진압, 왕자를 즉위시키기도 했다. 그 후 왕족 중 한 명이 나가마사를 제거할 목적으로 그를 [[리고루]] 태수로 임명했고, 시종을 시켜 그를 독살하려 했으나 이를 눈치 챈 나가마사는 휘하의 측근들과 니혼마치의 일본계 거주민들을 이끌고 [[보르네오 섬]]으로 이주하였다. 이른바 [[동도전출]](東島轉出)이었다. 이후 남아있던 니혼마치의 거주민들도 아유타야 왕조의 핍박으로 차례차례 넘어오게 되었다. 보르네오 섬 중서부에 정착한 그는 해안가를 중심으로 새로운 촌락과 정착치를 건설하기 위하여 [[타이난 개척청]](対南 開拓廳)을 수립하고 스스로 칸쵸(館長)로서 일본인 정착민들을 통솔하였다. 그러다가 정착지를 확장하던 과정에서 [[브루나이 술탄국]]과의 충돌이 일어나자 이들과의 전투가 발생하였고, 이러한 전투에서 그는 결국 보르네오 병사들의 화살을 맞고 전사하고 말았다. ==사후== [[타이난 개척청]]의 초대 칸쵸로서 지금의 [[타이난]]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며, 그의 사후 [[야마다 왕가|야마다 가문]]이 칸쵸를 세습하다가 [[타이난 왕국]]을 수립하게 되었다. 그는 지금도 타이난의 건립자로서 평가받고 있으며, 그의 무용담은 여러 형태로 각색되어 전해지고 있다. 한편, [[일본]]에서도 과거 2차 세계대전 당시 남진 정책 과정에서 그를 "남방 진출의 영웅(南方 進出の 英雄)"으로 미화하고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도 하였다.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Lang (원본 보기) 틀:Llang (원본 보기) 틀:일반 기타 (원본 보기) 모듈:Langname (원본 보기) 모듈:Langname/data (원본 보기) 야마다 나가마사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