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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68운동'''{{small|(Protest of 1968)}}으로 촉발된 범세계적 사회, 민권 운동의 여파로 반민주적, 폭력적 방식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는 세력이 늘게 되자, '''네오파시즘'''{{small|(Neofascism)}} 계열의 극우파와 '''마르크스-레닌주의'''{{small|(Marxism-Leninism)}} 계열의 극좌파 세력이 주도하여 테러리즘을 자행했고, 이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납의 시대'''{{small|(Anni di piombo)}}로 불리었다. 이 시기 극좌파의 알도 모로 납치 사건과 극우파의 볼로냐 대학살은 정점을 찍었다.
한편 '''68운동'''{{small|(Protest of 1968)}}으로 촉발된 범세계적 사회, 민권 운동의 여파로 반민주적, 폭력적 방식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는 세력이 늘게 되자, '''네오파시즘'''{{small|(Neofascism)}} 계열의 극우파와 '''마르크스-레닌주의'''{{small|(Marxism-Leninism)}} 계열의 극좌파 세력이 주도하여 테러리즘을 자행했고, 이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납의 시대'''{{small|(Anni di piombo)}}로 불리었다. 이 시기 극좌파의 알도 모로 납치 사건과 극우파의 볼로냐 대학살은 정점을 찍었다.


베티노 크락시 재임 시기에는 이탈리아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산업 국가로 진입할 정도로 경제적인 회복을 누렸고, 일명 '지중해 좌파'의 선두주자로 평가받았으나 1992년 '''마니 풀리테'''{{small|(Mani pulite)}}라는 부정부패 척결 작업의 인물로 지목되어 튀니지로 망명을 가게 되었고, 이는 정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베티노 크락시의 취임 이후 이탈리아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산업 국가로 진입할 정도로 경제적인 회복을 누렸고, 크락시는 '지중해 좌파'의 선두주자로 평가받았으나 1992년 '''마니 풀리테'''{{small|(Mani pulite)}}로 인해 몰락하면서 정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결국 삼당 체제의 몰락으로 정계 개편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전진 이탈리아를 계기로 이탈리아의 정계는 '''중도우파 연합'''{{small|(Coalizione di centro-destra)}}과 '''중도좌파 연합'''{{small|(Coalizione di centro-sinistra)}}으로 나뉘어지게 된다.


결국 기독교민주당과 사회당은 몰락했고, 이탈리아 공산당은 좌파민주당으로 개편되면서 정계 개편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주도로 전진 이탈리아라는 정당을 만들어 정계에 뛰어든다. 이후 이탈리아의 정계는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중도우파 연합'''{{small|(Coalizione di centro-destra)}}과 로마노 프로디가 이끄는 '''중도좌파 연합'''{{small|(Coalizione di centro-sinistra)}}으로 나뉘어지게 된다.
그리고 2008년 대침체의 여파로 베를루스코니 내각은 큰 타격을 입었고, 2011년 사임한다. 정국의 주도권은 다시 민주당 주도의 중도좌파 연합으로 넘어갔으며, 2013년 총선 직후 좌우파를 모두 아우르는 대연정 정부를 출범시켰다. 신임 당대표인 마테오 렌치는 2014년부터 상원 폐지와 개헌 등의 조치를 내걸었고 국민투표에도 부치기도 하였으나 2016년 12월 4일 부결되어 좌절하고 만다.
 
2008년 대침체의 여파로 베를루스코니 내각은 큰 타격을 입었고, 2011년 사임한다. 정국의 주도권은 다시 민주당 주도의 중도좌파 연합으로 넘어갔으며, 2013년 총선 직후 좌파, 우파를 모두 아우르는 대연정 정부를 출범시켰다. 신임 당대표인 마테오 렌치는 2014년부터 상원 폐지와 개헌 등의 조치를 내걸었고 국민투표에도 부치기도 하였으나 2016년 12월 4일 부결되어 좌절하고 만다.


그리고 시리아 내전의 여파로 난민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극우 세력의 득세와 난민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불러오게 된다. 당시 북부 지역주의 정당에 가까웠던 북부동맹은 2018년 총선을 앞두고 마테오 살비니를 앞세워 전국 정당으로서의 개편을 단행했고, 포퓰리즘 성향의 오성운동도 2013년 총선을 기점으로 기성 정치의 대안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두 정당은 2018년 총선에서 연정을 이뤄내며 이탈리아 사상 최초로 극우정당이 집권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시리아 내전의 여파로 난민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극우 세력의 득세와 난민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불러오게 된다. 당시 북부 지역주의 정당에 가까웠던 북부동맹은 2018년 총선을 앞두고 마테오 살비니를 앞세워 전국 정당으로서의 개편을 단행했고, 포퓰리즘 성향의 오성운동도 2013년 총선을 기점으로 기성 정치의 대안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두 정당은 2018년 총선에서 연정을 이뤄내며 이탈리아 사상 최초로 극우정당이 집권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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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유로존 탈퇴로 인해 발생한 경제 타격은 물론, 사회공화국에 대한 찬반 여론, 시민 자유 제도의 퇴보화,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 등 멜로니 내각에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있던 탓에 국정을 운영하기 힘들어지자 결국 멜로니 총리는 2025년 3월 17일 내각 총사퇴를 선언, 4월까지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하려던 야권 3당은 극우 내각의 총사퇴로 향후 국정 운영을 주도할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유로존 탈퇴로 인해 발생한 경제 타격은 물론, 사회공화국에 대한 찬반 여론, 시민 자유 제도의 퇴보화,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 등 멜로니 내각에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있던 탓에 국정을 운영하기 힘들어지자 결국 멜로니 총리는 2025년 3월 17일 내각 총사퇴를 선언, 4월까지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하려던 야권 3당은 극우 내각의 총사퇴로 향후 국정 운영을 주도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후 멜로니 후임으로 취임한 지안루카 이안노네는 선거 유세에서 '총리직 폐지'라는 공약을 내걸자 강성 극우 유권자들의 결집을 불러오게 되고, 당 명칭도 '사회공화당'으로 바꾸며 위기를 모면하는데 성공했다. 민주당에서는 엔리코 레타의 뇌물 수수 의혹, 오성운동에서는 마테오 렌치의 망언, 전진 이탈리아에서는 소속 의원들의 성추문 파동으로 삼당의 지지율에 큰 타격을 입었고, 결국 9월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공화당-동맹당 연립이 과반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이후 멜로니 후임으로 취임한 지안루카 이안노네의 등장으로 강성 극우 유권자들의 결집을 불러오게 되고, 당 명칭도 '사회공화당'으로 바꾸며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데 성공한다. 민주당에서는 엔리코 레타의 뇌물 수수 의혹, 오성운동에서는 마테오 렌치의 망언, 전진 이탈리아에서는 소속 의원들의 성추문 파동으로 삼당의 지지율에 큰 타격을 입었고, 결국 9월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공화당-동맹당 연립이 과반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총선 다음 날 전임 일 카포인 노르디오가 사임을 표명하여 공석이 되었고, 정부 수반인 총리는 끝내 폐지 투표에서 최종적으로 과반을 넘겨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이안노네는 제2대 일 카포로 추대되었으며 현재까지 이탈리아를 이끌고 있다.
총선 다음 날 전임 일 카포인 노르디오가 사임을 표명하여 공석이 되었고, 정부 수반인 총리는 끝내 폐지 투표에서 최종적으로 과반을 넘겨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이안노네는 제2대 일 카포로 추대되었으며 현재까지 이탈리아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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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남아있는 유명한 사회 문제 중 하나로, 남북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라 극심한 지역 갈등을 겪고 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명한 사회 문제 중 하나로, 남북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라 극심한 지역 갈등을 겪고 있다.


역사적으로 남북은 리소르지멘토 이전까지만 해도 정치적 동질감이 없을 정도로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통일 이후 남부 지역에서는 무력 통일로 인한 반발로 브리간타조{{small|(Brigantaggio)}} 반란이 일어났고, 이에 통일 왕국이 이들을 진압하는데 국력을 소모해야만 했다.
역사적으로 남북은 리소르지멘토 이전까지만 해도 정치적 동질감이 없을 정도로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통일 이후 남부 지역에서는 무력 통일로 인한 반발로 브리간타조{{small|(Brigantaggio)}} 반란이 일어났고, 이에 통일 왕국이 이들을 진압하는데 국력을 소모해야만 했다. 통일 왕국의 남부 의석 역시 그 지주들이 차지하기도 했다.
 
심지어 양시칠리아 왕국 시절 국가 주도로 육성해놓은 남부의 공업 시설들이 사르데냐-피에몬테의 저관세 조치로 경쟁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보호 무역, 곡물세 등 각종 정책이 남부에 불리하게 돌아가며 북부와의 격차가 더 커지게 된다. 북부 지역은 이 정책을 통해 유럽 유수의 공업지대로 성장했고 남부는 경제에 타격을 입는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남부 농민들이 강제 징집되어 전선에 끌려갔으나 이탈리아 왕국군의 부실함과 남부 농민들의 민족 의식 무지가 결합되어 카포레토 전투에서 패한 후 토지 분배를 약속했다. 그러다 무솔리니의 집권 이후 군비 증강을 통해 나폴리와 타란토가 발전하여 도시 격차가 점차 줄어들긴 했는데, 사회 구조와 남부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 문화 ==
== 문화 ==

2022년 10월 3일 (월) 13:14 판


A WARSAW FICTIONAL PROJECT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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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이탈리아 사회공화국
Repubblica Sociale Italiana
국기
국장
Avanti, Fratelli d'Italia!
전진하라, 이탈리아의 형제들이여!
국가 조비네차
국화 데이지
역사
  이탈리아 통일 1870년 10월 2일
  베니토 무솔리니 집권 1922년 10월 31일
  이탈리아 사회공화국 수립 1943년 9월 23일
  공화국 전환 국민투표 1946년 6월 2일
  이탈리아 공화국 헌법 시행 1948년 1월 1일
  이탈리아 공화국 폐지 2025년 1월 1일
  이탈리아 사회공화국 재수립 2025년 1월 2일
지리
수도 겸
최대 도시
로마
면적 301,340㎢
접경국 바티칸, 산마리노,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인문 환경
인구 전체
57,403,681명명(2026년)
비율
(민족)
이탈리아인 97.7%
외국인 2.3%(2026년)
밀도 190.4명/㎢(2026년)
출산율 1.33명(2026년)
언어 공용어 이탈리아어
공용 문자 라틴 문자
종교 국교 로마 가톨릭교회
비율 가톨릭 82.1%
개신교 2.1%
무종교 14.1%
이슬람 0.6%
기타 1.1%(2026년)
행정 구역
레조네 20개
프로빈차 107개
코무네 8,132개
정치 및 체제
정치 체제 명목상:
공화국, 의원내각제, 양원제, 다당제

사실상:
일당 우위 정당제, 전체주의, 권위주의, 파시즘[1][2]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101위(2026년) 혼합적인 체제
국가 원수
(일 카포)
지안루카 이안노네
원내 여당 사회공화당
연립 동맹
야당 민주당, 온건당, 공화인민당, 오성운동, 전진 이탈리아
쥐트티롤 인민당, 신북부동맹, 이탈리아 군주당
군사
자국군 이탈리아군
세부 군대 육군 이탈리아 육군
해군 이탈리아 해군
공군 이탈리아 공군
충원방식 징병제(전시 징병제, 예비군 포함)
통수권자 지안루카 이안노네(일 카포)
경제
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전시 계획 경제)
명목 GDP 전체 $2조 2,386억 2,875만 1,638 / 세계 6위
1인당 38,998 달러 / 세계 30위
GDP PPP 전체 $2조 9,135억 2,382만 9,155 / 세계 11위
1인당 50,755 달러 / 세계 31위
무역 수입 $3,793억 4,504만(2026년)
수출 $5,411억 1,695만(2026년)
외환보유고 $1,109억 3,765만
신용 등급 Moody's BBB-
S&P Baa3
Fitch BBB+
공식 화폐 리라(₤, ITL)
외교
국제 연합 1955년
기타 및 단위
도메인 .it
국가 코드 380, ITA, IT
전화 코드 +39
법정 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01:00
도량형 SI 단위

개요

이탈리아 사회공화국(Repubblica Sociale Italiana), 약칭 이탈리아(Italia)남유럽지중해의 반도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장화와 똑같이 생긴 모양의 반도를 지배하고 있으며 지중해, 아드리아해와 접한다. 수도이자 최대 도시는 로마로, 한 때 로마 제국의 중심지로서 고대 유럽 문화의 핵심이자 라틴 문자의 발상지로 불린다. 프랑스, 모나코, 스위스,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와 육지상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고, 반도 안에서는 바티칸산마리노와 접해 있다.

G20G7 참가국이자 유엔 가입국이다. 명목 GDP 기준 세계 7위, PPP 기준으로 세계 11위이며 국방비 기준 세계 9위이다.

상징

국호

언어별 명칭
이탈리아어 Repubblica Sociale Italiana
Italia
그리스어 Ιταλική Κοινωνική Δημοκρατία
Ιταλία
독일어 Italienische Sozialrepublik
Italien
라틴어 Res Publica Socialis Italica
Italia
러시아어 Итальянская Социальная Республика
Ита́лия
롬바르드어 Republega Sociala Italiana
Itàlia
베네토어 Repiovega Sociałe Itałiana
Itałia
사르데냐어 Repùblica Sotziale Italiana
Itàlia
영어 Italian Social Republic
Italy
프랑스어 République sociale italienne
Italie
일본어 イタリア社会共和国
イタリア
한국어 이탈리아 사회공화국
이탈리아
중국어 義大利社會共和國 혹은 意大利社会共和国
義大利 또는 意大利
한자 음차 伊太利(이태리)

공식 국호는 이탈리아 사회공화국(Repubblica Sociale Italiana)이다. 이탈리아란 어원은 기원전 5세기 경 시라쿠사의 안티오코스에 따르면 본래 이탈리 사람들이 살던 칼라브리아 지방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과거 신화에 따르면 헤라클레스가 도망친 소를 찾으러 시칠리아를 거쳐 칼라브리아 남부까지 왔다가, 이 곳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이 그들만의 언어로 소를 비툴루스라 불렀기에 비툴루스라고 불렀다는 유래가 있다. 이 외에도 이탈루스 왕자의 이름에서 따왔다거나 칼라브리아 지방의 사람들이 수소에 대한 토테미즘을 가지고 있었다는 설도 존재한다.

로마 제국 시기에는 이탈리아라는 의미가 알파인 지역으로 확장되었고, 기원전 1세기 무렵 사비네족과 같은 이탈리아 반도 내 여러 부족들을 이탈리아인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이탈리아는 지리적 의미로 쓰였다가 리소르지멘토를 계기로 민족적인 함의를 지니게 되었으며 1861년 통일 국가의 이름을 이탈리아 왕국으로 지었다.

현 국호인 이탈리아 사회공화국은 1943년 나치 독일 시기 이탈리아 북부에 세워진 동명의 괴뢰국에서 사용된 바가 있다. 그런 이유로 이탈리아 국민들 사이에서는 파시즘과 연관이 있어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정식 국호가 된 것은 2024년 10월 국민투표를 통해 이루어졌다. 따라서 1943년에 수립된 이탈리아 사회공화국과 혼동하지 않도록 명칭을 살로 공화국이라 칭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국호 변경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국기

일 트리콜로레
Il Tricol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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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 정보 ]
지위 공식 국기
제정 시기 1848년
1948년(이탈리아 공화국)
제작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국기 비율 2:3

이탈리아의 공식 국기는 일 트리콜로레(Il Tricolore)로, 각각 초록, 하양, 빨강이 세로로 배치된 삼색기로 구성되어 있다. 1848년 제정되었고, 1948년부터 현재까지 이탈리아의 공식 국기로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와 비슷한 자유, 평등, 우애나 각각 이탈리아의 삼림과 국토, 알프스의 눈과 평화, 애국과 열혈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탈리아가 통일을 시작할 당시에는 삼색기에 사보이아가의 문장을 삽입한 것을 군기로 채택했다가 1861년 국기로 채택되었고, 1946년에는 군주제가 폐지되면서 기존의 사보이아가 문장을 삭제한 현재의 국기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국기는 1796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탈리아를 정복할 당시, 이탈리아 반도를 프랑스의 종속국으로 삼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프랑스의 종속국인 치살피나 공화국의 국기로 사용되었으며, 초록은 밀라노 민병대, 하양과 빨강은 밀라노 공국의 국기에서 따온 것이다.

국가

조비네차 / 젊음
Giovinezza

[ 국기 정보 ]
지위 관습상 국가(國歌), 이탈리아의 형제들의 당가(비공식)
제정 시기 1924년 - 1944년(국가 파시스트당의 당가)
1943년 - 1945년(살로 공화국의 국가)
2025년 - 현재(이탈리아 사회공화국의 국가)
미상(이탈리아의 형제들의 비공식 당가)
작사가 살바토르 고타

이탈리아의 공식 국가는 조비네차(Giovinezza)로, 이탈리아어로 젊음, 혹은 청춘을 의미한다. 이전에는 1946년 제정된 마멜리 찬가(Inno di Mameli)를 79년 동안 사용하고 있었으나, 사회공화국 체제가 들어선 후 다시 조비네차를 공식 국가로 지정하게 되었다. 대신 마멜리 찬가는 이탈리아의 준국가로 취급한다.

조비네차는 1924년 창당한 국가 파시스트당의 당가로서 사용되고 있었으며, 1943년부터는 살로 공화국의 공식 국가로 지정되었다.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를 당가로 사용한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치하의 독일과는 달리, 이미 왕정의 국가인 왕의 행진곡(Marcia Reale)이 있었기 때문에 국가로 승격되진 않았으나, 국왕을 대표하는 곡이 군사 퍼레이드 외에는 사용되지 않게 됨으로서 사실상의 국가로 취급받는다.

그 전의 국가인 마멜리 찬가는 리소르지멘토 운동이 한창이었을 때 널리 보급되었던 노래이고 왕정이 들어선 후에도 일종의 애국가로서 불려졌었으며, 주세페 베르디는 1862년 개최된 런던 국제 박람회를 위해 칸타타인 여러 민족의 찬가(Inno delle Nazioni)에 이 곡의 선율이 사용되었다. 마멜리 찬가의 또 다른 이름인 이탈리아의 형제들(Fratelli d'Italia)은 훗날 집권 여당이 되는 동명의 이름이 된 상태이다.

이 외에도 국내에서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라 부르는 날아라, 생각아(Va, pensiero)라는 준국가 지위의 노래가 있지만, 사회공화국 전후로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역사

이탈리아의 역사
Storia D'It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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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2년 에트루리아 고대 그리스
삼니움
페니키아
로마 왕국 고대 카르타고
로마 공화국
로마 제국
서로마 제국
오도아케르 왕국
동고트 왕국
동로마 제국
랑고바르드 왕국
프랑크 왕국 베네벤토 공국
이탈리아 왕국 아말피 공화국
신성 로마 제국
962년 ~ 1861년 중세 이탈리아 왕국 구성국
사보이아 백국 · 밀라노 공국 · 파르마 공국 · 모데나 공국 · 피사 공화국 · 시에나 공화국 · 피렌
체 공화국 · 토스카나 대공국 · 제노바 공화국

이탈리아 왕국 외 주요 세력
베네치아 공화국 · 교황령
시칠리아 왕국
나폴리 왕국
프랑스 왕국
스페인 왕국
사보이아 공국
사르데냐 왕국
스페인 왕국
합스부르크 제국 프랑스령 로마 공화국
치살피나 공화국 양시칠리아 왕국
프랑스 제국
리구레 공화국
이탈리아 왕국
오스트리아 제국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
로마 공화국
1861년 ~ 이탈리아 왕국
이탈리아 제국
연합군 점령하 이탈리아 이탈리아 사회공화국
이탈리아 왕국
이탈리아 공화국
이탈리아 사회공화국
상세 정보
고대 Antica

이탈리아는 지금으로부터 85만 년 전부터 지중해성 기후와 비옥한 땅을 바탕으로 성장해갔으며, 포강을 중심으로 여러 부족들이 발전을 거듭하였다. 그 중에서 최초의 패권을 잡은 문명이 에트루리아인데, 포강을 북쪽으로 하여 로마가 있는 라티움까지 영역을 확장시켜 지배를 계속했다. 남부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나폴리, 폼페이, 시칠리아가 위치해있었다.

에트루리아는 카르타고와 연합해 그리스를 견제했다가 로마의 반란으로 무너져, 곧 도시 국가들 간의 동맹 체제로 변하게 되었다. 이후 이 지역을 로마가 차지함에 따라, 유럽 전체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중심지이자 발상지가 되었다.

476년 서로마 제국이 붕괴되고 이탈리아는 북부, 중부, 남부로 갈라졌는데, 후에 독자적인 지역 문화를 구축해 갔다. 그 와중에도 고트족과 랑고바르드족 같은 이민족들이 이탈리아를 공격해왔으며, 특히 북부 이탈리아는 가장 많은 공격을 받아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낸다. 그나마 중부와 남부는 로마 황제였던 유스티니아누스 1세 휘하의 명장이었던 벨리사리우스와 나르세스의 활약으로 안정을 되찾았지만 북이탈리아는 프랑크 왕국의 세력 확장을 보낸 시기에서야 안정을 되찾았다.

한편 이탈리아를 장악한 랑고바르드족은 랑고바르드 왕국을 세워 이탈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장악했다. 랑고바르드 왕국은 이후에도 로마를 장악하려다 교황인 하드리아누스 1세의 요청으로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에 의해 항복을 받으며 몰락했다. 게르만족의 일부였던 랑고바르드는 훗날 롬바르디아(Lombardy)가 된다.

중세 Mediovo


프랑크 왕국이 셋으로 분열된 이후에는 중프랑크 제국이 로타링기아를 서·동프랑크로 넘겨준 뒤 이탈리아 왕국이 되었다가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된다. 그 중 베네치아 공화국은 지중해의 지배자라 불릴 만큼 제노바 공화국과 함께 무역을 지배했으며, 북부 이탈리아에 위치한 다른 나라들도 막대한 부와 국력을 가지며 성장하게 된다. 로마 제국의 중심지다 보니 14세기 후반부터 16세기 후반까지 문예 부흥 운동인 르네상스(Renaissance)가 이루어지며 예술과 문화 전반에 걸쳐 고대 로마와 고대 그리스의 재인식, 재수용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세력을 확장해나간 주변 강대국들과는 달리, 이탈리아 반도는 수많은 도시 국가를 가지고도 통합적인 세력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한계에 부딪치며 영향력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또 게르만족들이 이탈리아를 지배하는 과정에서 도시 간의 극심한 문화 갈등이 일어난데다가 교황과 황제 간의 다툼도 계속되었기 때문에 통합을 할 수 없었던 것도 원인이 되고 있다.

후에 합스부르크가의 카를 5세에 의해 대부분의 도시 국가들이 합스부르크에 복속되었고, 나머지 지역들도 프랑스나 스페인 등의 강대국에게 지배를 받는 등 독자적인 영향권이 상실되었다. 30년 전쟁 시기에는 더욱 극심해졌는데, 개신교와 기독교 간의 전쟁이 이탈리아에도 번지면서 사실상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근대 Contemporanea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는 합스부르크의 영향력을 받은 이탈리아를 정복하게 되고, 이 시기 북부에서는 치살피나 공화국이라는 괴뢰국이 세워지며 프랑스와 함께 합스부르크와 대립했다. 1802년에는 이탈리아 공화국이 되어버리더니 1805년에는 이탈리아 왕국으로 국호를 바꾸며 자신을 이탈리아의 왕으로 칭하게 된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 후 점차 프랑스까지 밀려났고, 이탈리아도 곧 대프랑스 동맹의 도움으로 해방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이탈리아는 사보이아가의 사르데냐, 보르본가의 파르마와 양시칠리아, 합스부르크 방계의 토스카나와 모데나, 그리고 오스트리아 직할의 롬바르디아-베네치아로 재편되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세력 균형은 오래 가지 못했는데,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발생한 자유주의 운동이 전 유럽에 퍼지면서 혁명 이전으로 되돌아가자는 빈 체제에 항거하는 운동이 일어났고, 이는 1848년 1월 시칠리아의 독립으로 촉발된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가 기다리고 있었다.

1859년 프랑스와의 연합을 이룬 사르데냐의 주도로 오스트리아를 격파해 롬바르디아 지역과 토스카니 등 여러 도시 국가를 차지하기 시작하고, 이후 주세페 가리발디의 도움으로 양시칠리아 왕국을 합병했다. 사르데냐 왕국은 티롤 남부, 베네토, 교황령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을 통일시키고 1861년 3월 17일 이탈리아 왕국(Regno d'Italia)이라는 통일 왕국을 건설했고, 이후 베네토와 교황령까지 흭득하며 리소르지멘토를 마무리한다.

세계 대전 시기 Guerra Mondiale


통일 이후 이탈리아는 리비아, 소말리아를 합병하고 에티오피아를 공격하는 등 식민지 확장에 힘을 기울였으며 20세기 초에는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와 함께 삼국 동맹(Triple Alliance)를 결성하여 영국-프랑스-러시아 주도의 삼국 협상(Triple Entente)에 대항하였다. 두 세력 간의 갈등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지만, 이탈리아는 1915년이 되어서야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제1차 세계 대전이 협상국의 승리로 끝나면서 이탈리아도 자연스레 승전국이 되었는데, 보상은 고작 배상금 일부와 남부 티롤, 이스트리아 반도를 얻은 게 전부였다. 전후 이탈리아 내 자유주의 세력은 급속도로 약화되었고, 좌파의 이탈리아 사회당과 이탈리아 공산당, 그리고 우파의 이탈리아 인민당이 대형 정당이 되었다.

심지어 전시 체제로 상승하던 공업력과 고용력도 유지할 수 없는 탓에 국민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는 전투 파쇼를 이끌어내 파시스트 이탈리아(Italia fascista)를 수립했고, 무솔리니는 국가 파시스트당을 이끌어 일당 독재와 함께 스파치오 비탈레(Spazio vitale)라는 이름 하에 팽창 정책을 추진했다.

1933년부터는 아돌프 히틀러 치하의 나치 독일과 우호적인 관계를 진전시키게 되었는데, 이는 1936년 방공 협정과 1939년 5월 체결된 강철 조약을 거쳐 추축국(Axis Powers)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로 제2차 세계 대전을 촉발시켜 다시 한번 전 세계를 전쟁의 포화 속에 뛰어들게 된다.

이탈리아는 1940년부터 추축국 대열에 합류하였는데, 아프리카 전역에서 선전하는 것을 빼면 그다지 활약하지 못하였고 곧 연합군의 반격으로 위기를 맞는다. 1943년 연합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한 직후로 무솔리니가 실각하고 바돌리오가 이끄는 신임 내각이 연합국과의 항복을 받아내자, 독일은 북이탈리아에 살로 공화국(Repubblica di Salò)이라는 괴뢰국을 만들어 항전했다. 그러나 연합군의 끈질긴 공세로 독일이 항복함으로써 끝이 난다.

전쟁 이후 이탈리아는 이스트리아 지역과 식민지들을 잃어버렸으며 1946년에 이루어진 공화제 전환 국민투표의 결과로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수립된다.

현대 Moderna


냉전 시기인 1949년에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에 가입했고, 마셜 플랜(Marshall Plan)의 도움과 원조를 통해 1960년대 후반까지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1957년에는 유럽 경제 공동체(European Economic Community)의 창립 회원국이 되었고, 훗날 유럽 연합(European Union)으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한편 68운동(Protest of 1968)으로 촉발된 범세계적 사회, 민권 운동의 여파로 반민주적, 폭력적 방식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는 세력이 늘게 되자, 네오파시즘(Neofascism) 계열의 극우파와 마르크스-레닌주의(Marxism-Leninism) 계열의 극좌파 세력이 주도하여 테러리즘을 자행했고, 이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납의 시대(Anni di piombo)로 불리었다. 이 시기 극좌파의 알도 모로 납치 사건과 극우파의 볼로냐 대학살은 정점을 찍었다.

베티노 크락시의 취임 이후 이탈리아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산업 국가로 진입할 정도로 경제적인 회복을 누렸고, 크락시는 '지중해 좌파'의 선두주자로 평가받았으나 1992년 마니 풀리테(Mani pulite)로 인해 몰락하면서 정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결국 삼당 체제의 몰락으로 정계 개편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전진 이탈리아를 계기로 이탈리아의 정계는 중도우파 연합(Coalizione di centro-destra)중도좌파 연합(Coalizione di centro-sinistra)으로 나뉘어지게 된다.

그리고 2008년 대침체의 여파로 베를루스코니 내각은 큰 타격을 입었고, 2011년 사임한다. 정국의 주도권은 다시 민주당 주도의 중도좌파 연합으로 넘어갔으며, 2013년 총선 직후 좌우파를 모두 아우르는 대연정 정부를 출범시켰다. 신임 당대표인 마테오 렌치는 2014년부터 상원 폐지와 개헌 등의 조치를 내걸었고 국민투표에도 부치기도 하였으나 2016년 12월 4일 부결되어 좌절하고 만다.

그리고 시리아 내전의 여파로 난민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극우 세력의 득세와 난민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불러오게 된다. 당시 북부 지역주의 정당에 가까웠던 북부동맹은 2018년 총선을 앞두고 마테오 살비니를 앞세워 전국 정당으로서의 개편을 단행했고, 포퓰리즘 성향의 오성운동도 2013년 총선을 기점으로 기성 정치의 대안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두 정당은 2018년 총선에서 연정을 이뤄내며 이탈리아 사상 최초로 극우정당이 집권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이탈리아를 덮치면서 위기를 맞는다. 2020년 주세페 콘테 총리는 3월부터 5월 간 격리 정책을 추진하여 전파 속도를 늦추려 하였으나, 인권 침해라는 비판과 더불어 약 3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기록해 불명예를 안겼고 심지어 경제적 타격에 직면했다.

이후 마리오 드라기가 총리에 취임해 코로나19 대응, 경제 회복에 주력했으나, 2022년 발생한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우크라이나로의 군사적 지원과 난민을 수용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오성운동의 주세페 콘테와 갈등하면서 끝내 총리 불신임 의사를 보이며 거국내각이 붕괴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2022년 7월 15일 드라기 총리는 사임했다.

사회공화국 성립 이전 Prima della costituzione di RSI


2022년 9월 25일 치러진 총선에서는 조르자 멜로니가 이끄는 극우정당인 이탈리아의 형제들이 원내 1당을 가져갔고, 뒤이어 민주당이 2당을 가져가면서 중도우파 연합의 승리가 확실시되었다. 이에 국민들은 극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제3당으로 추락한 살비니의 동맹과 연정 협상을 가지게 되었고, 전진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도 대서양 동맹 노선을 유지한다는 조건으로 연정 참여를 선언했다.

멜로니는 범중도·좌파 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총리로 선출되었으며, 살비니는 부총리 겸 내무부장관에 앉히게 되었다. 이어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이 사임을 표명하자, 그 뒤를 이어 지난 대선 후보였던 카를로 노르디오가 조기 대선을 거쳐 선출되었다. 이렇게 형제당, 동맹당, 전진 이탈리아 주도의 보수 내각이 출범하게 되었다.

역사상 두 번째로 극우 정당이 집권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제 사회는 만약 이탈리아가 친러로 돌아서거나 최악의 경우 EU, NATO 탈퇴까지 고려한다면 타격이 클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었지만, 멜로니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인도적 지원을 강화하고, 무관용 원칙으로 합법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동맹당, 전진 이탈리아와의 합의안이 의회를 통과시켜 우크라이나 지원에 주력하였다.

종전 이후 멜로니는 난민 캠프를 강제 해산시키거나 이슬람,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오지 못하도록 국경 통제를 더욱 강화시키고, 낙태법과 시민결합제도의 폐지를 추진하는 등 대대적인 사회 개편에 나섰으며, 백신 접종 전면 중단, 마스크 사용 제한 해제와 같은 방역 완화 정책을 펼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중도우파 연합을 이끌었던 전진 이탈리아와 갈등하게 되었고, 2023년 7월 연정을 탈퇴하였다.

2024년 7월 2일, 멜로니는 새로운 국정과제의 목표로 위대한 이탈리아를 위한 계획(Un progetto per una grande Italia)을 발표하였다. 주요 골자는 헌법 개정유럽 연합 탈퇴인데, 동맹당과 형제당은 동시에 EU 탈퇴와 유로존 탈퇴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멜로니는 헌법 개정안을 상원과 하원에 제출하였으나 개헌선의 3분의 2 이상을 얻지 못해 국민투표 실시가 확정되었다.

범좌파·온건보수 세력은 국민투표 반대를, 전진 이탈리아에서도 반대를 외쳤지만 강경파와 온건파 간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오성운동 역시 민주주의가 침해되지 않아야 한다며 중립을 택했다. 이를 두고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초반 반대 여론이 50%를 넘겼다가, 극우층의 결집으로 찬성 여론이 오차범위 내에서 추격하고 있으며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찬성 여론이 반대 여론을 앞지르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51.48%의 찬성율로 이탈리아의 EU·유로존 탈퇴와 헌법 개정이 더욱 앞당겨졌고, 다음 날 리스본 조약 50조 발동안을 EU에 전달하며 EU와 탈퇴 협상을 가지기로 하였다. 그 사이 토스카나와 로마에서는 EU 탈퇴 반대 시위가 열렸고, 의회에서는 야권 3당[3]의 주도로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하였다. 집권 여당에서도 멜로니의 유로존 탈퇴 행보를 두고 온건파들과의 갈등도 극심해지고 있다.

12월 3일 유럽 연합과 이탈리아 측에서 협상이 타결돼 최종적으로 유로존 탈퇴에 서명함으로써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유럽 연합을 탈퇴한 나라가 되었다. 탈퇴 이후 전국 곳곳에선 멜로니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크리스마스에서는 약 130만 명이 참여하며 역대 최다 규모를 기록했다. 그러나 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시위에 참여했던 유명인을 포함해 6만 명의 사상자와 4만 명 이상의 체포자가 나왔다.

2024년 12월 30일, 카를로 노르디오 대통령은 신헌법 채택과 국호 변경에 대한 선포식의 준비가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으며, 총리 관저인 키지궁(Palazzo Chigi)에서 개최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였다. 공식 발표 직후 카라비니에리(Carabinieri) 산하 근위기병대가 주둔하면서 경비가 더욱 강화되었는데, 이를 두고 국민들은 선포식을 비판하는 운동에 나서고 있다. 한편으로는 아예 이웃국가로 이민을 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항만과 항공 시설이 잠시 동안 마비되기도 했다.

사회공화국 성립 이후 Dopo la costituzione di RSI


2025년 1월 2일, 멜로니 총리는 키지궁에서 열린 선포식에서 마침내 이탈리아 사회공화국의 재수립을 선포했다.

당시 2~30만 명의 지지자가 모여있던 포폴로 광장에서는 멜로니 총리의 연설에서 환호하는 분위기로 채워졌으며 이는 미디어 매체와 SNS 등지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를 떠나는 이민자 수는 약 30만 명 이상으로, 사회공화국 수립 후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지에서 이탈리아인 이민자 수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이다.

선포식 이후 노르디오 대통령이 가지고 있던 국가원수의 직함은 '일 카포'로 명명되었으며 멜로니는 그대로 총리직을 수행한 후 선거를 통해 후임 총리를 선출하겠다고 밝혔다. 마테오 살비니는 부총리직을 계속 유지했다가 2025년 2월 8일 부총리직을 사퇴했다. 더불어 이탈리아 국가와 국장, 그리고 모토가 전면 수정되어 기존의 국가였던 '마멜리 찬가'는 '조비네차'로 국가가 교체되었다.

다만 유로존 탈퇴로 인해 발생한 경제 타격은 물론, 사회공화국에 대한 찬반 여론, 시민 자유 제도의 퇴보화,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 등 멜로니 내각에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있던 탓에 국정을 운영하기 힘들어지자 결국 멜로니 총리는 2025년 3월 17일 내각 총사퇴를 선언, 4월까지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하려던 야권 3당은 극우 내각의 총사퇴로 향후 국정 운영을 주도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후 멜로니 후임으로 취임한 지안루카 이안노네의 등장으로 강성 극우 유권자들의 결집을 불러오게 되고, 당 명칭도 '사회공화당'으로 바꾸며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데 성공한다. 민주당에서는 엔리코 레타의 뇌물 수수 의혹, 오성운동에서는 마테오 렌치의 망언, 전진 이탈리아에서는 소속 의원들의 성추문 파동으로 삼당의 지지율에 큰 타격을 입었고, 결국 9월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공화당-동맹당 연립이 과반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총선 다음 날 전임 일 카포인 노르디오가 사임을 표명하여 공석이 되었고, 정부 수반인 총리는 끝내 폐지 투표에서 최종적으로 과반을 넘겨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이안노네는 제2대 일 카포로 추대되었으며 현재까지 이탈리아를 이끌고 있다.

지리

지리적으로는 지중해로 뻗어진 장화 모양의 반도와 알프스 이남 평야, 시칠리아와 사르데냐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탈리아 반도는 주변 발칸 반도 사이에 위치한 아드리아해, 시칠리아와 알바니아, 그리스 사이에 있는 이오니아해, 사르데냐와 코르시카 사이에 있는 티레니아해, 북부 코르시카·이탈리아 북서부 사이에 위치한 리구리아해와 접하며 약 8,000km를 넘는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반도에는 아펜니노산맥이라는 긴 산맥이 놓여져 있고, 북서쪽에서 알프스산맥과 맞닿아 있다.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포-베네치아라는 충적 평원이 있어 포강과 여러 산맥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지류로 흘려보낸다. 포강 외에도 테베레강, 아디제강, 아르노강 등 다른 강들이 존재하고,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호수인 가르다호같은 빙하호가 형성되어 있다.

알프스-히말라야 조산대 중에서도 유라시아판과 아프리카판의 경계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아펜니노산맥, 시칠리아를 중심으로 지진이 활발히 일어난다.

인문 환경

민족

이탈리아는 이탈리아인(Gio italiani)라는 라틴계 민족 다수가 거주하고 있는데 2026년 추산으로 약 5,500만 명이 거주하고 있고, 이민자들이나 타국의 이탈리아인을 모두 포함하면 1억 4,500만 명이 넘는다. 다만 이탈리아 내에서는 각각의 지역 색이 강하기 때문에 이탈리아인의 정체성이 크게 강조되지 않으며, 스스로를 지역인으로 부른다.

외모 역시 남북의 차이에 따라 다르다. 북부의 경우 갈색머리에 밝은 갈색 눈이 많고, 남부는 그리스인의 영향으로 북부보다 단신이거나 암갈색 눈, 검은 머리가 많다. 살렌토에서는 노르만족의 영향으로 금발이 많지만, 갈색에 가까운 어두운 머리를 가진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유럽 국가들 중에서 높은 출산율과 결혼율을 가졌으나 그 후부터 출산율이 급락하여 인구대체선을 밑돌기 시작, 2010년대부터는 출산율이 1.3명까지 떨어지며 매년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인구 감소를 이유로 최근에는 북아프리카 출신 아랍인들이나 중남미 출신들의 이민 인구를 받아들이며 인구를 최대한 유지하고 있다.

소수 민족으로는 슬로베니아인, 프랑스인, 오스트리아인이 주로 나타나고, 유대인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언어

이탈리아의 언어
Lingua di It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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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어
이탈리아어
어군 분류
이탈리아달마티아어
사르데냐어
오크로망스어
갈리아로망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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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토어
(피우메 · 트리에스테)

이탈리아 중부
이탈리아어
(지역 이탈리아어)
토스카나 방언
(피렌체)
코르시카어
(갈루라)
사사리어
중부 이탈리아어
(마르키지아노 · 사비노 · 로마네스코)
유대이탈리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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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데냐어
(캄피다노 · 로구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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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어
알게로 방언

오크어
비바로-알파인 방언
(망통)
니사르트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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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오스타 방언

프랑코프로방스어
발도탱 방언

페이타노어
첼레제어
갈리아이탈리아어
레토로망스어
동부 로망스어군
알바니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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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구리아어
브리가 방언
제노바 방언
인테멜리오 방언
모나코 방언
로야 방언

롬바르디아어
남부 롬바르디아어
(브리안조우(칸츠) · 부스토레냐노
코마스코레코(코마스코 · 라게 · 발라시나 · 레코)
밀라노 · 티치노(오솔라노) · 바레시노
남서부 롬바르디아(파비아 · 노바라 · 크레마)
스파셀)

동부 롬바르디아어
(베르가모)

에밀리아로마냐어
에밀리아 방언
(볼로냐 · 파마산)
로마냐 방언
(포를리)

기타
피에몬테어
(유대피에몬테어)
바실리카타갈리아이탈리아어
시칠리아갈리아이탈리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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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토로망스어
프리울리어
라딘어
(카도리노 · 포르네스 · 노르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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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로망스어군
카스텔메자노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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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브레쉬어
아르브레쉬어
(바카리조알바니아어)
남슬라브어군
그리스어
독일어
기타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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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어
브르다 방언
가일 방언
내크란스카 방언
이스트라 방언
카르스트 방언
나티소네 방언
레시안 방언
토레 방언

세르보크로아티아어
슬라보몰리사노 방언
트리에스테 세르비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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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그리스어
칼라브리아그리스어
그리코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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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어
킴브리어
모체노어
남부 바이에른어

기타 독일계 방언
오스트리아 독일어
발차 독일어
이디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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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수어
롬어

이탈리아는 공식적으로 이탈리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현대의 표준 이탈리아어는 토스카나 지방의 피렌체 방언을 기초로 두며, 2026년 추산으로 원어민 약 7,000만 명이 주로 사용한다. 다만 이탈리아어 외에도 지역마다 다른 방언을 사용하는데, 여러 방언들은 현대 이탈리아어와 함께 속라틴어(Vulgar Latin)에서 파생된 것이지만, 표준 이탈리아어와는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방언들도 많다.

시칠리아, 사르데냐 지역에서는 사르데냐어나 시칠리아어가 사용되며, 볼차노(쥐트티롤) 지역은 역사적으로 영향을 받아 독일어가 다수를 차지한다. 발레다오스타에서는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둘 다 사용하는 이중언어의 비율이 높다. 이 외에도 세르비아어, 슬로베니아어, 크로아티아어, 알바니아어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행정 구역

이탈리아 사회공화국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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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시 (Città metropolitana)
로마
Roma
밀라노
Milano
베네치아
Venezia
피렌체
Firenze
토리노
Torino
나폴리
Napoli
제노바
Genova
볼로냐
Bologna
팔레르모
Palermo
바리
Bari
카타니아
Catania
칼리아니
Cagliari
레조칼라브리아
Reggio Calabria
메시나
Messina
(Regione)
피에몬테
Piemonte
리구리아
Liguria
롬바르디아
Lombardia
베네토
Veneto
에밀리아로마냐
Emilia-Romagna
토스카나
Toscana
움브리아
Umbria
마르케
Marche
아부르초
Aburzzo
몰리세
Molise
캄파니아
Campania
풀리아
Puglia
바실리카타
Basilicata
칼라브리아
Calabria
라치오
Lazio
자치주 (Regione Autonomia)
시칠리아
Sicilia
사르데냐
Sardegna
발레다오스타
Valle D'Aosta
트렌티노알토아디제
Trentino-Alto Adige
프리울리트리에스테
Friuli Trieste

이탈리아는 레조네(Regione), 프로빈차(Provincia)·치타 메트로폴리타나(Città Metropolitana), 코무네(comune)로 구성되어 있다.

광역 행정구역인 레조네는 20개의 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중 프리울리트리에스테, 트렌티노알토아디제, 발레다오스타, 사르데냐, 시칠리아는 자치 레조네(regione autonoma)에 해당한다. 자치 레조네는 1948년 특별법으로 도입된 것으로 일반 레조네보다 더 많은 자치권을 가진다. 레조네는 다섯 그룹으로 묶이게 되는데, 각각 북서부, 북동부, 중부, 남부, 도서 지역으로 나뉘게 된다. 이는 통계의 목적을 위해 나눈 것으로, 유럽 연합이 고안한 통계학적, 거시경제학적인 지역 표준인 통계지역단위명명법(Nomenclature of Territorial Units for Statistics)을 따른다.

레조네는 총 107개의 프로빈차로 나뉘어진다. 93개는 일반 프로빈차로 분류되는데, 나머지 14개는 1990년에 도입된 《이탈리아 지방자치법》에 따라 치타 메트로폴리타나이며, 따라서 수도인 로마는 치타 메트로폴리타나로 분류된다. 여기서 프로빈차는 8,132개의 코무네로 나뉘는데 시에 해당한다.

정치

이탈리아의 정치
Politica di It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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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인식지수
언론자유지수
민주주의 지수
69점 / 2026년, 세계 25위 39.72점 / 2026년, 세계 169위 4.39점 / 2026년, 세계 101위
정치 체제(사실상)
입법부
선거 제도
일당 우위 정당제, 전체주의, 권위주의(파시즘) 국가의회(하원) / 국가원로원(상원)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상·하원) / 소선거구제(상원)

이탈리아는 명목상 의원내각제,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사실상 권위주의, 전체주의적인 공화국 체제에 가깝다. 1946년 왕가를 몰아낸 이탈리아는 1948년부터 2025년까지 공화국 헌법을 채택한 이래 공화국이었지만, 사회공화국 헌법의 공포와 함께 사회공화국이 수립되면서 기존 공화국 체제가 폐지되고 현재까지 이 형태로 국가가 유지되고 있다. 공화국 헌법이 유지될 당시 139조에는 '공화정체는 헌법 개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으며, 사회공화국 헌법에서도 139조를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상세 정보
역사 Historia

1946년 공화국이 수립됨과 동시에 치러진 이탈리아 총선에서 알치데 데 가스페리가 이끄는 기독교민주당이 우위를 접하게 되고, 피에트로 네니의 사회당과 팔미로 톨리아티의 공산당이 각각 2, 3위를 차지함으로써 1994년까지 삼당 우위 체제로 운영되었다.

공산당은 제2당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당시 시대 상의 영향인지 각종 기성 정당들의 견제를 받았는데, 미국 역시 공산당을 견제하면서 한동안 어느 당과 연정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에 1956년에는 농민 계급을 포용하는 새 강령을 채택하고, 엔리코 베를링구에르 서기장 취임 이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사실상 포기하고 유럽공산주의를 받아들이기도 했으나 1976년 총선에서는 안타깝게도 2위를 유지했지만 독자 개헌저지선을 확보했다. 기민당의 알도 모로는 공산당과의 연립을 시사하며 일명 역사적 타협(Compromesso storico)이란 결과를 만들어냈지만 알도 모로의 죽음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사회당은 1946년 총선 이후부터 제3당의 위치로 자리잡았지만, 1948년 기민당 내각에서 퇴출되는 바람에 잠깐동안 공산당과 선거 연합을 맺기도 하였다(대중민주전선). 1956년 헝가리 혁명을 계기로 공산당과 의견 차가 발생하였고, 1966년에는 통합사회당(Partito Socialista Unificato)란 이름으로 민주사회당과 연합했지만 상당히 부진했다. 1976년 새로운 지도자가 된 베티노 크락시는 1983년 총선에서 총리가 되며 '지중해 좌파'의 선두주자라는 평을 받곤 했다.

기민당은 인민당에서 개편된 이후로 1981년까지 연달아 집권해온 수권 정당 중 하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기독교인이라면 이 당에 투표를 하라는 의무가 존재했고, 또 1970년대 이전까지 이탈리아의 다수가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장기 집권을 할 수 있었던 요인이 컸다. 어쨌든 기독교민주당은 당이 해체 수순을 밟을 때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으며 비록 1983년에 내각이 좌파 세력으로 넘어간 후에도 여전히 건재한 당세를 가지게 되었다.

이런 삼당 체제의 붕괴를 가져온 것은 다름 아닌 마니 풀리테로, 이 사건으로 인해 이탈리아에는 대규모 정계 개편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공산당은 좌파민주당으로, 사회당은 해산된 후 이탈리아의 사회주의자들로, 기민당은 좌파와 우파가 당을 따로 차리면서 삼당 체제를 이끈 세 정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과정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중도우파 연합, 로마노 프로디가 이끄는 중도좌파 연합의 등장은 이탈리아 정계의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시간이 흘러 2013년 제3세력으로 부상한 오성운동과 중도우파 연합에 속해있던 북부동맹(동맹)이 2018년 총선에서 대약진을 이루었고, 이를 통해 연립 내각이 추진되며 이탈리아 역사상 처음으로 극우 내각이 들어선다. 하지만 2019년 8월 붕괴되었고, 이후 민주당과 연정을 맺었지만 마테오 렌치가 이끄는 생동하는 이탈리아가 탈퇴하면서 주세페 콘테 내각은 붕괴한다.

콘테의 후임으로 취임한 마리오 드라기는 5개의 정당과 함께 거국내각을 형성하여 코로나 사태를 모면하려 했지만 2022년 총선을 앞두고 오성운동의 보이콧, 그리고 조르자 멜로니가 이끄는 이탈리아의 형제들의 약진으로 걷잡을 수 없이 위기를 맞았으며 결국 드라기 총리의 사퇴로 조기 총선이 실시된다. 선거 결과 멜로니가 이끄는 이탈리아의 형제들은 제1당으로 부상하였고, 이로 인해 형제당은 마테오 살비니의 동맹당, 베를루스코니의 전진 이탈리아와 보수 연정을 맺었다.

그러다 2023년 7월 전진 이탈리아가 연정을 탈퇴하고, 유럽 연합과 유로존 탈퇴, 그리고 사회공화국 수립이라는 큰 파장을 일으키며 야당의 비판을 받았으나 멜로니의 후임인 지안루카 이안노네의 등장으로 기성 정당들이 타격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부정부패와 비리 악재가 겹쳐 조기 총선에서 패배하는 결과에 직면했다. 이안노네 시기 명칭을 바꾼 '사회공화당'은 극우 정당 사상 역대 최다 의석을 보유함으로써 극우 연립 내각의 장기화에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우파 자유주의 성향의 온건당과 좌파 자유주의 성향 공화인민당, 그리고 동맹당 내 분리독립파가 이탈하여 탄생한 신북부동맹의 등장도 총선의 약진을 불러일으켰다.

일 카포 Il Capo


현 이탈리아의 국가원수이자 통수권자, 정부 수반의 직함은 일 카포(Il Capo)[4]로, 이탈리아의 국가 통합과 이탈리아 헌법의 수호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사실상 행정부라고 봐도 무방하며 사회공화국이 들어선 후 기존 대통령 직무를 계승하였다. 임기는 종신이며, 총리직 폐지 후에는 사실상 기존 내각의 기능을 가지기 때문에 강력하게 중앙집권화된 것이 특징이다.

기존 대통령과 총리, 내각의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일 카포가 입법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내각을 성립시킬 수 있으며, 내각 해산도 스스로 할 수 있다. 법안 서명권, 법률 효력을 갖는 국가원수령 공포권, 일반 국민투표 소집권, 의회 해산권, 외교사절단 접수 및 파견권, 조약 비준권, 자국군 통수권, 전쟁 선포권, 영전수여권, 사면권 등 다양한 권한을 가진다.

일 카포는 주로 키지궁에서 업무를 보거나 머무르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 홍보와 일 카포 관련 보도를 주로 내보내는 퀴리날레궁이 주도하고 있다.

입법부 Potere legislativo



이탈리아 국회의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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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루카 이안노네 일 카포 체제
(2025년 10월 5일 ~ 현재)
여당

사회공화당
73석 · 207석
연립 여당

동맹
48석 · 58석
야당

민주당
24석 · 39석

온건당
18석 · 36석

공화인민당
14석 · 30석

오성운동
10석 · 16석

전진 이탈리아
8석 · 6석

쥐트티롤 인민당
2석 · 3석

신북부동맹
2석 · 1석

이탈리아 군주당
1석 · 1석
정원 200석 · 400석
좌측은 국가원로원(상원) 의석 수, 우측은 국가의회(하원) 의석 수

이탈리아의 입법부는 형식적으로 양원제를 채택하기 때문에, 하원을 담당하는 국가의회(Assemblea Nazionale)와 상원을 담당하는 국가원로원(Senato Nazionale)으로 나뉜다. 국가의회는 몬테치토리오궁(Palazzo Montecitorio), 국가원로원은 마다마궁(Palazzo Madama)을 의사당으로서 사용하며, 정수는 상원 200석, 하원 400석으로 총 600석으로 2020년 국민투표를 통한 의원 정수 축소를 2022년에 반영한 것이다.

국가의회는 400석 중 137석이 소선거구제, 245석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선출되며 나머지 8석은 해외 거주지별 불구속명부식 비례대표제로 선출된다. 상원과는 달리 전국구 비례대표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봉쇄조항은 3%이다. 반면 상원은 74석이 소선거구제, 122석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선출되며 역시 나머지 4석은 하원과 동일하다.

입법부는 입법권과 예산 심의·승인권을 가지지만 과거 대통령과 총리가 분산된 시절에는 내각을 신임하거나 불신임하는 권한, 대정부질의, 대통령 선출권이 존재해 있었다. 특히 상원에서는 6명의 상원의원을 가르키는 '종신 상원의원' 제도가 존재했는데 이는 각 계층의 존경을 받는 명명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통령이 직접 지명한다고 한다. 이 제도는 2026년 폐지되었다.

최근 실시된 선거는 2025년 9월 22일에 치러진 조기 선거로, 이 선거에서 여당인 사회공화당이 상원 73석, 하원 207석을 보유하였고, 상원 48석, 하원 58석을 가진 동맹당과의 연립 내각이 성사되었다.

사법부 Potere giudiziario


이탈리아의 사법부는 법무부 소속으로 운영되며 법무부 소속 자문 기구이자 최고 지휘 체계인 최고사법평의회(Consiglio Superiore della Magistratura)는 일 카포와 대법원장, 경찰총장이 각각 6명, 의회에서 선출된 8명의 변호사를 포함한 총 26인을 선출하여 임명시키거나 승진, 배치하여 사법 체계를 담당한다. 법무부는 법원의 사무와 임금 지급을 포함한 행정 업무를 담당한다. 선출직들은 4년 단임의 임기를 수행하며, 연임이 불가하다.

법원의 경우 세 단계의 심급을 통해 재판을 치르게 하는 삼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민·형사재판에서 1심의 경우 일반법원(Tribunale)을 포함해 치안판사법원(Giudice di Pace), 노동재판소(Giudice del Lavoro), 가정재판소(Tribunale per I Minorenni), 범죄재판소(Corte d’Assise)에서 열리고, 항소 시에는 일반법원(Tribunale)을 포함해 공소재판소(Corte di Appello)와 범죄공소재판소(Corte Assise di Appello)가 재판을 진행한다. 3심부터는 최종심인 대법원(Corte Suprema di Cassazione)에서 진행하며 상고 시 재판의 진행이 성립된다.

행정재판의 경우 유일하게 삼심제가 아닌 이심제로 운영되는데, 1심인 지방행정법원(Tribunale Amministrativo Regionale)에서 항소를 신청하면 그 다음부터는 최종심인 국사원(Consiglio di Stato)에서 재판이 열리는 방식이다.

그리고 사법부 중에서 독립기관 형태를 가지는 사법기관은 사회공화국 헌법재판소(Corte costituzionale della Repubblica Sociale Italia)가 유일하다. 헌법재판소는 양원합동회의, 법무부에 의해서 각각 7명씩 선출되며 위헌법률심판, 권한쟁의심판, 탄핵심판, 국민투표허용성심판을 담당한다. 1948년 설립된 이래로 현재까지 절대적인 중립을 지키고 있는 사법기관이며 법무부 소속으로 운영되는 최고사법평의회의 개입을 받지 않는다.

검찰은 이탈리아 사법 체계에서 또 다른 기능이기도 하지만 법무부 소속으로 운영된다. 검찰총장이 검찰의 수장을 맡지만, 최고사법평의회의 의장직을 맡거나 선출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독립성은 여전히 강력하기 때문에 여야 정치인들의 압력을 받고도 수사와 기소를 할 수 있다. 다만 사법부 소속이던 검찰과는 달리 법무부에 속해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완전히 독립되기 어려워졌다.

정당 Partiti politici


2026년 기준 이탈리아의 원내 정당들은 다음과 같다.

사회공화당 / Partito Repubblicano Sociale (우파 - 극우)
이탈리아의 집권 여당, 실질적인 뿌리인 이탈리아 사회운동(Movimento Sociale Italiano)과 이탈리아의 형제들(Fratelli d'Italia)의 후신 격 정당
국민보수주의, 이탈리아 내셔널리즘, 사회보수주의(주류)[5], 국수주의, 네오파시즘(비주류)[6], 베를루스코니주의[7]
2013년 멜로니를 포함한 보수 정치인들에 의해 창당 → 2022년 총선 후 첫 집권
지안루카 이안노네 취임 후 당명을 '사회공화당'으로 변경, 조기 총선서 승리

동맹 / Lega (우파 - 극우)
이탈리아의 연립 여당으로, 본래 명칭인 북부동맹(Lega Nord)으로도 잘 알려짐
강경 보수주의, 포퓰리즘, 반세계화, 국민보수주의, 분리주의, 지역주의[8]
파다니아(Padania)의 분리 독립을 촉구하는 정당으로 시작 → 이후 2018년 총선 앞두고 전국정당화
오성운동과의 연정 파탄, 드라기 거국내각 참여를 거쳐 현재 형제당과의 연립 내각으로 참여


민주당 / Partito Democratico (중도좌파 - 좌파)
이탈리아의 야당으로, 구 중도좌파 연합(Coalizione di centro-sinistra) 소속
기독교 좌파, 사회민주주의, 사회자유주의, 녹색 정치
공산당 후신 좌파민주당(Democratici di Sinistra)과 중도 연합 라 마르게리타(La Margherita)의 합당으로 출범, 한 때 이탈리아 정계를 주도
2018년 총선 기점으로 연달아 패배 → 사회공화국 전후 반정부 세력 이끌었으나 2025년 총선에서도 패배하여 당세 악화

온건당 / L'Moderati (중도우파)
이탈리아의 야당으로 새로운 중도 정치 세력을 자처
기독교 민주주의, 자유보수주의, 친유럽주의
사회공화국 수립 후 위기에 빠진 중도·온건 세력들의 단일화 논의 → 우리와 온건파(Noi moderati) + 전진 이탈리아 탈당파 주축으로 결성
창당 후 조기 총선에서 약진에 성공, 제4당 자리에 오름

공화인민당 / Partito Repubblicano Popolare (중도좌파)
이탈리아의 야당으로, 자유주의 중도좌파 성향을 표방하고 있다.
사회자유주의, 공화주의, 친유럽주의
사회공화국 수립 후 위기에 빠진 중도·온건 세력들의 단일화 논의 → 생동하는 이탈리아(Italia Viva) 포함 6개 정당 주축으로 결성
창당 후 조기 총선에서 약진에 성공, 제5당 자리에 오름

오성운동 / Movimento 5 Stelle (빅 텐트)
이탈리아의 야당으로, 2009년 베페 그릴로에 의해 창당
진보적 의제를 수용하나 포퓰리즘, 반세계화, 유럽회의주의, 반이민을 표방(빅 텐트)
2013년 총선서 제3당 돌풍, 2018년 총선서 오성-동맹 연정 성사 → 그러나 연정 붕괴, 민주당과 연정 합의
드라기 내각 이후 2022년 총선서 참패, 이후 반정부 세력 주도했으나 조기 총선 후 제6당으로 추락

전진 이탈리아 / Forza Italia (중도우파)
이탈리아의 야당으로, 구 중도우파 연합(Coalizione di centro-destra) 소속
기독교 민주주의, 중도 자유주의, 국민보수주의 / 자유보수주의, 대서양주의, 친유럽주의
1994년 창당 이래 세 차례 총선에서 승리 → 2009년 당 해산, 그러나 2013년 재창당
2018년 총선 거쳐 형제-동맹-전진 '보수 연립' 결성, 그러나 연정 탈퇴 → 조기 총선서 당세 약화

쥐트티롤 인민당 / Südtiroler Volkspartei (중도)
이탈리아의 야당으로, 1919년 독일어 협회(Deutscher Verband)를 실질적 전신으로 함
지역정당이란 점에서 지역주의를 표방하나 다수의 중도우파와 상당한 사회민주주의자가 존재
2차 대전 종전 직전 창당, 1996년까지 기독교민주당과 연정
이후 중도좌파 연합에 합류 → 2022년 총선 기준 사실상 탈퇴

신북부동맹 / Neo Lega Nord (우파)
이탈리아의 야당으로, 반(反)살비니 성향이 강한 지역주의 정당
"파다니아를 분리독립시키는 것"을 당의 원칙으로 삼음
동맹의 친이안노네 행보에 반발하여 분리독립파 이탈
정당 창당 후 2025년 총선에서 약진, 그러나 동맹당이 이를 부정함

이탈리아 군주당 / Partito Monarchico Italiano (우파)
이탈리아의 야당으로, 우파 군주주의 정당의 정통성 계승
군주주의를 표방하며 FERT를 당의 표어로 사용
2025년 총선서 처음으로 원내 입성 성공
사보이아가의 지지를 받음


재건공산당 / Partito della Rifondazione Comunista (극좌)
이탈리아의 정당으로, 이탈리아 공산당(Partito Comunista Italiano)을 계승
공산주의, 트로츠키주의
1991년 공산당의 분열, 그 중 급진 세력이 주축이 되어 창당
2008년까지 원내 정당, 그 후에는 원외로 활동하다가 사회공화국 전후 활동 금지 및 감시 대상으로 지정

경제

사회

인구

2026년 기준 이탈리아의 인구 수는 57,403,681명으로 2022년 인구 수(60,262,779명)보다 4.6% 감소하였다. 이탈리아는 최근 들어 저출산과 고령화로 심각한 문제를 앓고 있으며,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30.7%로 일본 다음으로 가장 높으며, 출산율은 1.33명이지만 여전히 불안하게 유지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인구 감소율은 -0.8%로 현재진행형이며, 이미 2021년부터 -0.23%의 인구 감소율을 보임으로써 서서히 진행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외국인 수는 650만 명인데 최근 들어 미등록 이민자를 무관용 원칙으로 내쫒거나 자국 내 인종 차별, 정치적 상황에 따른 여행 기피와 같은 요인으로 외국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인구 감소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탈리아의 인구 감소는 남부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북부 지역에는 공업 도시가 있어 경제적으로는 남부보다 더 발전되어 있지만 반대로 남부는 몇몇 도시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공업 시설이 없기 때문에 지역 사회가 붕괴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한편 사회공화국이 들어선 후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고질적인 문제점 뿐만이 아닌,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한 이민이 새로운 인구 감소의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사회공화국이 수립될 당시 이웃나라로 이민을 가는 인구 수는 약 30만 명 정도로 알려졌는데, 이안노네가 일 카포로 취임한 후 이민자 수가 약 80만 명으로 급증하였다. 이안노네 일 카포는 자국민을 이웃나라로 탈출하지 못하도록 국경 지대 내 경비를 강화하기로 결정하였다.

종교

2026년 기준 이탈리아의 국민 80% 이상이 가톨릭을 믿고 있으며 14%는 아무런 종교를 믿고 있지 않는다.

당장 가톨릭의 총본산인 바티칸이 로마 시내에 위치할 정도로 매우 독실한 나라 중 하나이다. 따라서 가톨릭에 따라 보수적인 면을 가지고 있고, 지방이 분권화되어 있어 다양한 종교 관습이 남아 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보통 교회에서 치러지며, 로마 가톨릭에서 이혼이 인정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민법에 따라 이혼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다.

가톨릭은 1929년 베니토 무솔리니 치하에 의해 국교로 지정되었다. 국교로 지정될 당시 국가에서는 종교 교육을 의무적으로 가르치고, 종교 기관에 대해 국가적인 재정 지원을 받았기도 했는데, 1978년부터 국교 지위가 상실되어 2026년까지 이어졌다. 2027년 11월 8일 이탈리아 정부는 가톨릭교회가 다시 국교로 지정되었다고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국교 지위를 회복하였고, 이와 함께 종교 교육과 예배를 의무적으로 실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때문에 무종교인들과 기타 종교인들은 반발하고 있지만, 정부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해선 안된다고 말하면서 이들에 대한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교통

이탈리아 지형 특성상 꽤 긴 육지를 가진 반도국가이다 보니, 당연히 철도와 도로가 발달되어 있다. 현재 이탈리아의 플래그 캐리어는 ITA 항공으로, 스카이팀 회원사이다. 최대 철도 사업자는 트렌이탈리아(Trenitalia)로, 고속열차인 레 프레체(Le Frecce)와 도시간 급행열차인 인터시티(Intercity), 지역열차인 레조날레(Regionale)로 나뉜다. 레 프레체는 다시 프레차로사(Frecciarossa; 붉은 화살), 프레차르젠토(Frecciargento; 은화살), 프레차비앙카(Frecciabianca; 흰 화살)로 나뉘는데, 등급으로는 프레차로사, 프레차르젠토, 프레차비앙카 순이다.

이 외에도 민간 철도 사업자인 NTV가 운영하는 이탈로(.italo), 텔로(Thello), 치르쿰베수비아나(Circumvesuviana) 같은 사철이 존재한다.

최초의 교통은 1839년 양시칠리아 왕국 시절 나폴리와 포르티치를 이루는 총 7.25km의 긴 노선을 자랑하는 철도가 그 시초이며, 리소르지멘토 후에는 1905년 국유철도인 페로비에 델로 스타토(Ferrovie dello Stato Italiane)가 설립되어 지금의 트렌이탈리아(Trenitalia), 레테 페로비아리아 이탈리아나(Rete Ferroviaria Italiana)를 소유한 지주회사로 거듭난다. 1958년부터 이탈리아 정부의 전용도로의 건설을 추진함으로써 1970년대 말까지 각 도로망이 건설되었는데,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 지대를 연결하는 몽블랑 터널(Traforo del Monte Bianco)도 이 때 만들어졌다.

해안에서의 교통은 지중해 무역으로 유명한데, 베네치아가 가장 대표적이다. 베네치아는 아드리아해에 위치해 있지만 해상 무역에 유리하였기에 9세기부터 12세기 동안 유럽 무역의 중심지이자 해상 제국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나폴리, 트리에스테, 제노바 등 여러 항구 도시들이 존재하여 해안 교통을 담당하고 있다. 항공 교통에서 이탈리아에는 총 네 개의 국제공항이 위치해 있고, 국영 항공사인 ITA 항공이 자리잡고 있다.

이혼

이탈리아는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가톨릭의 영향으로 이혼이 불법화된 사실이 있으며, 이탈리아 민법에서는 이혼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1970년 12월 이혼법이 제정되기는 했으나 이혼법의 취지는 부부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아닌 이혼을 방지하겠다는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이혼법으로 인해서 한번 이혼할 경우, 3년 간의 숙려 기간을 거친 후 1년 동안 부부였던 양 당사자가 결혼 생활을 유지할 의사가 없음을 명백히 법원에서 밝혀야 관계가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녀가 있을 경우 남편에게는 양육비를 전액 부담해줘야 하기 때문에 가혹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2018년에는 양육비를 공동부담의 원칙으로 하여, 고액의 수입을 가진 쪽이 더 많이 부담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으나, 여성단체의 반발로 법안이 계류된 사례가 있으나 사실상 폐기되었다.

부정부패

사회공화국 전후로 '제2의 마니 풀리테'를 기획한 적이 있고, 부정부패 척결에 힘을 쓰기 시작했는지 예전에 비해 부정부패를 근절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여전히 유럽 선진국 중에서 심각하다는 의견이 많다. 이탈리아의 부패인식지수는 2008년을 기점으로 10년 가까이 40점 대에 머물렀으나 이후 50점 대로 올라갔으며 2026년 조사 기준으로는 60점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이 부패하다고 느끼는 국민이 대다수인 것을 보면 완전히 청렴한 국가로 가기에는 한참 멀었다.

마니 풀리테

한편 이탈리아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자 만든 유명한 사건이 바로 마니 풀리테(Mani pulite, 깨끗한 손을 의미)인데,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이뤄진 일명 부정부패 척결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다수의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의 비리를 밝혀내어 약 6,000명 중 2,993명을 체포하는 등 약 40년 간 이어진 삼당[9] 체제를 몰락시키는데 큰 공헌을 하였지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와 등장과 훗날 성장하게 되는 극우정당의 등장의 단초를 마련함으로써 완전히 부패 척결에 이르지 못한 의의와 한계가 있다.

지안루카 이안노네는 제2대 일 카포가 된 이후로 2026년 국정연설에서 마피아와 마약 밀수 조직을 뿌리뽑겠다며 '제2의 마니 풀리테'를 공식화하기로 결정했다. 정부의 의도로는 지하 마피아 및 마약 밀수, 그리고 각종 비리와 연관이 있는 기업들과 정치인들을 구속시켜 부정부패 정화와 사회 혼란을 잠재우고, 이탈리아 사회 전반을 안정화시키려는 목적으로 보이며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방법과 사안, 그리고 명칭이 정해지지 않았다.

만약 마니 풀리테가 재개될 경우 검찰의 독립적인 권한을 이용해 야권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을 타파시킬 수 있어 여당 세력에 크게 유리하지만, 여당에서도 비리 및 마피아 결탁으로 의심되는 의원들이 상당히 많기에 타격이 갈 가능성이 있다. 상당수는 아예 검찰을 주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견제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마피아

이탈리아는 마피아(Mafia)라는 범죄 조직이 존재하며, 주로 남부 지역 내지는 시칠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다. 다만 예전과는 달리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나폴리에서는 마피아의 근거지가 초토화되는 등 갈 곳을 잃은 상태이다. 결국 이들은 할 수 없이 자국 경찰을 피해 지하나 외국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탈리아 마피아는 라 코사 노스트라(La Cosa Nostra), 은드랑게타('Ndrangheta), 사크라 코로나 우니타(Sacra Corona Unita), 카모라(Camorra)라는 4대 대형 마피아 조직과 이 조직 다음으로 규모가 넓은 마피아 조직들이 존재하는데, 코사 노스트라는 팔레르모 일부 지역과 미국 등지에서, 은드랑게타는 칼라브리아, 사크라 코로나 우니타는 풀리아, 카모라는 캄파이나에 거점을 둔다.

마피아는 20세기 초부터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장한데다 미국에서도 마피아 활동이 판을 치기도 했으나 무솔리니 치하이던 시절에는 강력하게 탄압받았고, 이에 지하 활동을 펼치거나 미국으로 도망가 활동을 지속했다. 2차 대전 이후 마피아는 우파 정치 세력과 기독교와 손을 잡고 공산주의 대항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1963년에는 카라비니에리 소속 헌병 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 제1차 마피아 항쟁(Prima Guerra di Mafia)이 발생하여 약 2,000명이 체포되었다.

1970년대 말, 헤로인 무역 사업에 대한 지배권 및 이권 분쟁으로 코를레오네시(시칠리아 마피아)와 팔레르모 세력 간의 내부 항쟁이 발생하였고, 결국 1981년부터 약 4년 동안 대규모 항쟁을 벌였다(제2차 마피아 항쟁(Seconda Guerra di Mafia)). 심지어 코를레오네시는 마피아에 비판적인 언론인이나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는 가 하면 경찰, 판사 등 가차없이 살해하며 악명을 떨쳤다.

결국 참다 못한 이탈리아는 '반마피아법'을 제정하며 견제에 나섰고, 더불어 1984년부터 1987년까지의 대재판(Maxiprocesso)은 마피아 조직으로서는 큰 타격을 입었다. 마피아는 1992년 대재판을 주도했던 지오반니 팔코네와 파올로 보르셀리노를 암살하면서 맞섰으나 이탈리아 전역과 시칠리아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 살바토레 리이나를 포함한 최고위급 간부들이 검거되거나 투옥되었고, 정부의 총공세에 당해낼 수 없었던 마피아의 세력은 급격히 줄어든다.

한편 마니 풀리테로 시칠리아 마피아가 집중된 것과는 달리 본토 세력들은 운 좋게 수사를 피해갔으며, 2000년대 이후에는 카모라와 은드랑게타를 중심으로 본토 마피아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들 조직은 마약 밀수·밀매 뿐만 아니라 가짜 음식 제조, 난민 밀입국에 집중하고 있으며 코로나19가 창궐할 당시 남부 시민들에게 음식과 생필품을 나눠주며 시민 구호를 외치고 있다.[10]

그러나 2023년 12월부터 정치권 사이에서 마피아 재소탕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 수면 위로 떠올랐고, 멜로니 총리와 살비니 부총리를 중심으로 남부 지역을 범죄 청정 지역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마피아 재소탕을 강력하게 추진하도록 했다. 이에 마피아 세력들은 자신들의 조직이 탄압당할 것을 우려하여 지하 활동을 이어갔지만, 2025년 2월부터 은드랑게타를 시작으로 사크라 코로나 우니타에 대한 강력한 소탕 작전을 개시했다. 이로 인해 은드랑게타의 두목이 정부와 교전 중 사망했고, 정부 추산 약 6,500명이 구속되거나 수감되었다. 또 사형제가 적용되었기 때문에 수감된 다수가 교수형에 처하기도 했다.

대대적인 마피아 소탕은 일 카포 후임인 이안노네 때도 이어졌는데, 이번에는 대형 조직인 카모라와 코사 노스트라를 목표로 하여 군 병력과 미사일까지 동원한 무장 소탕을 시작하여 조직 분쇄에 힘을 쓰고 있다. 나폴리에서는 카모라의 근거지가 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초토화되었으며, 쓰레기 무단 투기를 일삼는 마피아 조직원들과의 총격전 끝에 대다수가 체포되는 등 끈질긴 교전이 계속되고 있다. 또 이안노네는 상술했듯이 지하 마피아와 결탁한 기업 및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제2의 마니 풀리테'를 기획하면서 마피아 소탕에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현재 이탈리아의 범죄율은 0.3%, 10만 명 당 살인율은 0.26%로 사회공화국 수립 이후 급격히 감소했고, 대대적인 마피아 소탕과 사형제 부활, 그리고 강력한 경비 체계에 대한 영향이 크다. 정부는 2030년이면 완전한 범죄 청정국이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으며 남부 이탈리아인들도 정부의 치안 정책에 만족하고 있는 모양이다.

인종 차별

사회공화국 수립 이후에도 이탈리아의 인종 차별은 만연하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무슬림이라 부르는 이슬람권에 대한 인종 차별이 심각하고, 이와 더불어 유대인에 대한 차별도 꽤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동양인이나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도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이탈리아는 1980년대부터 이민을 수용하기 시작하였고, 이 때 들여온 민족이 루마니아인이었기에 인종 차별이 상대적으로 적었으나 유럽 난민 사태의 여파로 이탈리아에서는 난민 문제와 청년 실업까지 겹치며 심각한 인종 차별을 불러일으켰다. 도이체 벨레가 보도한 2015년 EU 차별 보고서에 따르면 동유럽 수준으로 배타성이 강하고, 무슬림, 유대인에 대한 거부감이 제일 크다고 나타났다. 이탈리아의 인종 차별 사건은 하루 이틀이 아니며, 2018년 극우 연정이 집권한 후에도 인종 차별 사건 사례가 족족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가 창궐한 후에는 동양인 인종 차별이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인에 대한 인종 차별은 더욱 심각한데, 그 이전까지만 해도 이탈리아 상점들이 중국산 물품들을 들여오는 상인들에게 쥐여짜고 있다고 불평하였으며 중국인들이 자국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일이 전부였으나 급기야 2020년 중국계 이탈리아인에 대한 인종 차별 사건이 발생하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사회공화국 시기에는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데, 당장 인종 차별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른 정치인이나 기업가가 수십 명 가까이 되지만 정작 이들을 법적으로 처벌하지 않고 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국민 상당수는 인종 차별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으며, 인종 차별 발언을 한 정치인들을 비판하고 있다. 관광업에 종사하는 이들 역시 외국인 인종 차별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하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 외국인 차별과 여행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면서 이탈리아에는 인종 문제가 고질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데, 정부는 오히려 자국 우선주의와 이민 무관용 정책을 통해 인종 차별과 이민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지역 감정 및 남북 문제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명한 사회 문제 중 하나로, 남북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라 극심한 지역 갈등을 겪고 있다.

역사적으로 남북은 리소르지멘토 이전까지만 해도 정치적 동질감이 없을 정도로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통일 이후 남부 지역에서는 무력 통일로 인한 반발로 브리간타조(Brigantaggio) 반란이 일어났고, 이에 통일 왕국이 이들을 진압하는데 국력을 소모해야만 했다. 통일 왕국의 남부 의석 역시 그 지주들이 차지하기도 했다.

심지어 양시칠리아 왕국 시절 국가 주도로 육성해놓은 남부의 공업 시설들이 사르데냐-피에몬테의 저관세 조치로 경쟁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보호 무역, 곡물세 등 각종 정책이 남부에 불리하게 돌아가며 북부와의 격차가 더 커지게 된다. 북부 지역은 이 정책을 통해 유럽 유수의 공업지대로 성장했고 남부는 경제에 타격을 입는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남부 농민들이 강제 징집되어 전선에 끌려갔으나 이탈리아 왕국군의 부실함과 남부 농민들의 민족 의식 무지가 결합되어 카포레토 전투에서 패한 후 토지 분배를 약속했다. 그러다 무솔리니의 집권 이후 군비 증강을 통해 나폴리와 타란토가 발전하여 도시 격차가 점차 줄어들긴 했는데, 사회 구조와 남부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문화

군사

각주

  1.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제한된 권위주의 국가에 가깝기에 이를 단순 파시스트 국가로 보기에는 어렵다. 다만 전문가들은 사회공화국이 베니토 무솔리니의 정치적 신념을 최대한 수정하여 민주적으로 이행했지만 이를 통치의 기반으로 삼지는 않았다고 하여 유사 파시즘 국가로 보기도 한다.
  2. 서방 언론에서는 이탈리아 사회공화국의 재수립을 두고 '파시즘의 부활'이라고 칭하였으며, 서방 세계에 우호적인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이탈리아의 체제 전환 소식에서 이를 인용하기도 했다. 허나 멜로니 총리는 이탈리아의 파시즘화를 부정하고서, 서방 세계가 이탈리아를 '파시즘'으로 취급하는 것을 싫어했으며 "우리는 이탈리아가 예전의 어두운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며 말한 바가 있다.
  3. 민주당, 전진 이탈리아, 오성운동을 의미한다.
  4. 다른 말로는 네오두체(Neoduce)라고 하는데, 일 카포의 권한이 너무 막강해서 이탈리아 왕국의 두체(Duce)와 닮았기 때문에 지어진 부정적 별명이다.
  5. 이안노네, 멜로니가 이 쪽에 가깝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안노네가 네오파시즘 정당인 카사파운드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어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반면 멜로니는 여기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온건한 부분이 있다.
  6. 네오파시즘 정당인 삼색기의 불꽃 출신들이 대다수이다.
  7. 형제당 시절 존재하던 비주류 세력이었지만, 사회공화국 전후로 대다수가 이탈하였으며 이안노네 시절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8. 현재는 신북부동맹(구 분리독립파)의 주요 이념으로 쓰인다.
  9. 당시 이탈리아 정치권은 기독교민주당, 사회당, 공산당이 주도하였으며, 이 사건 이후 대대적인 정계 개편이 이루어지게 된다.
  10. 이는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과 상당히 비슷한데, 실제로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Jalisco New Generation Cartel, CJNG)은 코로나 사태 당시 멕시코 시민들을 구호하기 위해 음식과 생필품을 나눠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