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 Erster Weltkrieg by Ern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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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국가 | 8대 열강 국가 | 주요 국가 | 국제 연맹
[ 8대 열강 국가 및 주요 국가 목록 ]
8대 열강 국가 EUR 대영 제국, 독일 제국, 이탈리아 왕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스페인 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 → 프랑스 제3제국
AME 미합중국
RUS 러시아 제국 ↔ 소비에트 연방
ASI 일본 제국
주요 국가 EUR 불가리아 제3제국, 포르투갈, 헝가리 왕국
AME 멕시코 제3제국
ASI 대한 제국, 오스만 제국, 중화민국, 중화 소비에트
사건
내정 | 외교 | 전쟁 | 인물 | 경제 | 사회
[ 주요 사건 및 전쟁 목록 ]
주요 사건 Evt 대양함대법, 안슐루스, 세계대공황, 해군 군축 조약
ACf 만주 사변, 루거우차오 사건, 할힌골 전투, 이탈리아의 알바니아 침공, 9월 폴란드 위기
DCf 7월 위기, 룩셈부르크 위기
주요 전쟁 BFW 제3차 발칸 전쟁, 제13차 러시아-튀르크 전쟁, 적백 내전, 오스트리아-헝가리 내전, 러시아 내전, 제4차 발칸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스페인 내전
FWW 제1차 세계 대전 (서부 전선, 동부 전선, 대서양 전역, 지중해 전역, 태평양 전역, 북아메리카 전역, 북아프리카 전역, 아시아 전역)
IWP (미정)
군사
군대 | 계급 | 편제 | 훈장 | 무기
[ 주요 국가의 무기 목록 ]
7대 육군 FWW 독일 제국 육군 / 러시아 제국 육군 / 프랑스 육군 / 미합중국 육군 / 영국 육군 / 이탈리아 왕국 육군 / 일본 제국 육군
SWW 독일 황립육군 / 프랑스 대육군 / 미대륙군 / 러시아 제국 육군 / 영국 육군 / 이탈리아 왕국 육군 / 일본 제국 육군
6대 해군 FWW 영국 왕립해군 / 독일 황립해군 / 미합중국 해군 / 일본 제국해군 / 프랑스 공화국 해군 / 이탈리아 왕립해군
SWW 영국 왕립해군 / 독일 황립해군 / 프랑스 제국해군 / 이탈리아 왕립해군 / 미합중국 해군 / 일본 제국해군
8대 열강 국가
1939: Erster Weltkrieg by Ernst
대영 제국
독일 제국
이탈리아 왕국
일본 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
오헝 제국
소비에트 연방
미합중국
프랑스 제3제국
스페인 제국
러시아 제국
대륙 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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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국명: 대일본제국
大日本帝國 (だいにっぽんていこく)
 국가: 기미가요
君が代 (きみがよ)
 표어: 5개조의 서약문
五箇条の御誓文
 수도: 도쿄
(북위 35° 41′ 동경 139° 46′)
   기타정보
 화폐: 엔 (¥)
 국가코드: JAP, JP
   인문환경
 인구: 97,770,000명
 민족: 야마토족, 한민족, 한족, 류큐족 등
 출산율: 3.77 명
 도시화율: 37.7 %
 인구밀도: 144.8 명 / km²
 공용어: 일본어
 국민어: 일본어
 지역어: 한국어, 중국어, 불어, 영어
 공용문자: 한자, 가나 문자
 국교: (사실상) 국가신토
 군대: 일본제국군
   정치
 정치체계: 전제군주제 (1868-1890)
입헌군주제
 입법부: 제국의회
 주요정당: 대정익찬회
동방회
 천황: 메이지 덴노 (1868-1912)
다이쇼 덴노 (1912-1926)
쇼와 덴노 (1926-1989)
고세이 덴노 (1989-)
 내각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 (1885-1901)
사토 에이사쿠 (1964-)
8대 열강

대일본제국
대일본제국
大日本帝國
1868년 – 현재
국기 국장

 1 개요 1 개요

일본 제국(일본어: 大日本帝國 다이닛폰테이코쿠[*]}})은 1868년메이지 유신으로 성립되었으며,‘부국강병’과 ‘존산흥업’의 기치를 내걸고 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산업화와 군사화를 거쳤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탈바꿈하며 강대국으로 떠올랐고, 청일전쟁, 의화단의 난, 러일 전쟁,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중국을 제치고 거대한 식민 제국을 경영하였다. 허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과도한 군비지출과 경제 악화로 일본 내부에서도 군국주의, 민족주의, 전체주의의 광풍이 강해지기 시작하였다. 전간기 동안 식민지에서 중국인말레이 민족을 대상으로 노역을 강제하고, 샤먼 대학살과 같은 온갖 잔혹 행위를 저질렀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은 동맹국에 가담하였으나 패전하고,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광대한 영토를 상실하면서 강대국의 지위를 상실했다.

 2 역사 2 역사

1911년에 성립된 제2차 사이온지 내각은 행정 및 재정의 정리와 감세를 추진하는 긴축(緊縮) 정책을 추진하였다. 중국에서 민주주의자와 공화주의자들이 신해혁명을 일으켰으며 혁명을 해서 공화국을 세우는 것을 본 일본에 사는 사람들 중 일부는 민주주의에 대한 바람이 커져갔지만, 제국 육군한반도에 주둔시킬 제국 육군 제2사단의 증설을 정부에 강하게 요구하였고, 정부는 내각회의를 거쳐 이를 거부하였다. 이에 대하여 제국육군대신 우에하라 유사쿠가 사표를 내는 사건이 벌어져 제2차 사이온지 내각이 총사직하고, 1912년 12월 21일 뒤를 이은 제3차 가쓰라 내각천황을 앞세워 의회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의회를 경시한다는 비난을 받았다.[1] 그러자 미노베 다쓰키치, 입헌국민당이누카이 쓰요시, 입헌정우회오자키 유키오 등이 중심이 되어 족벌(族閥)의 타파와 헌정옹호를 내건 호헌 운동(일본어: 護憲運動 고켄운도[*])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가쓰라 다로와 이하 내각이 성립 50일만에 퇴진하는 다이쇼 정변(호헌운동으로 무너졌으므로 권력자들의 정변이 아니라 혁명이다.) 발생하였다.

유럽에서 발칸반도흑해 주위로 여러 분쟁이 진행되는 동안, 대일본 제국에서는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1911~25년)로 경제호황을 누렸다. 한편, 러시아 혁명(1917년)에 뒤이어 일어난 러시아 내전(1917~22년)에서 일본은 러시아 백군을 도와 7만 2천여명의 병력을 시베리아에 파견하였고, 영국, 프랑스, 독일과 같은 서구열강의 지원군과 함께 극동 지역에 녹우크라이나 공화국을 수립하고 일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곧 제2차 러시아 내전(1924~26년)에서 백군이 정권을 장악함에 따라 녹우크라이나 공화국이 러시아 제국 관할로 흡수되면서 연해주 일대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크게 감소되었다.

이러한 시베리아 침략 활동에서 일본은 제1차 러시아 내전 중, 일본의 자본주의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미국·영국에 이은 강국으로 상승, 내전 기간 동안 러시아 백군에게 조달한 군수품 명목으로 연해주와 만주 일대의 이권을 열강들에게 인정받음으로써, 일본은 경제 불황과 재정 위기를 모두 극복하고 값싼 공장제 상품을 아시아 지역으로 수출하여 잠깐의 무역 이익을 취했지만 오래지 않아 유럽 국가들의 생산력의 비약적 성장으로 인하여 수출이 평년과 같이 대폭 축소되면서 무역이 적자로 전환하고 1923년 9월 1일에 일어난 간토 대지진으로 인해 게이힌 지역의 상공업 지대가 초토화되면서 다시 불황이 찾아온다. 곧이어 발생한 제2차 러시아 내전으로 연해주 이권이 사실상 와해되고 러시아 내전에 지나친 개입으로 인한 군비지출 등 불황이 한층 더 심화되자, 극우 보수 세력과 청년 장교층은 국민들의 불만 감정을 앞세워 암살 및 쿠테타를 일으키게 되었고, 일본의 민간 의회 정부는 전복되었다. 일례로 1930년 11월, 만주 침략에 반대 입장을 가졌던 하마구치 오사치 총리는 우파 청년 사고야 도메오(佐郷屋留雄)의 총에 맞아 부상을 당했다. 중국에 대한 제국주의 무력침략이 시작되어, 1931년 9월에 관동군의 주도로 만주사변을 일으켜 와카쓰키 레이지로 내각(1931년 4월 14일 ~ 1931년 12월 13일)의 제어를 무시하고 만주 전역을 점령하여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던 선통제 푸이를 꼭두각시로 앞세워, 만주국을 건국하였다.

그러나 만주국에 대한 중화민국을 비롯한 세계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군부는 서구 열강으로부터 외교적 고립을 정부에 압박, 일본은 사실 상 고립 외교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누카이 쓰요시 내각(1931년 12월 13일 ~ 1932년 5월 16일)이 만주에서 일본군을 철수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1932년 5월 15일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를 암살, 후임으로 군인 출신의 사이토 마코토가 수상(1932년 5월 26일 ~ 1934년 7월 8일)이 되어 '군·정·관에 타협을 통한 거국일치'를 표방함으로써 정당내각은 단절되고, 군부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이토 마코토 내각 이후에도 육군 내의 여러 계파의 도전은 계속되어 급기야 1936년 2월 26일 청년 장교들이 내대신, 대장대신 등을 암살한 2·26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에서 군부의 영향력은 막강해져 히로타 고키 내각 때 군부대신의 현역제가 부활, 사실상 군부가 내각을 좌우하게 되었다. 또 히로타 고키 내각은 화베이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1937년 7월 루거우차오 사건을 일으켜 그 구실로 중화민국을 선전포고 없이 공격하는 중일 전쟁을 일으켰다. 처음에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은 전쟁의 범위를 확대시키지 않고자 하였지만 곧 전쟁은 화중 지역으로 확대되었고, 12월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을 점령하여 난징과 그 주변에서 무차별 학살을 자행하였다. 한편 국내에서는 전시 체제의 장기화에 대비하여 1938년에 국가총동원법을 제정, 일본 열도 내 뿐만이 아니라 한반도 식민지에서의 군부의 경제적 수탈에 기여하였다.

이렇게 중·일 전쟁이 장기화 될 무렵 독일 제국이탈리아 왕국, 일본과 삼국 동맹을 체결했으며, 1939년제2 제정 러시아폴란드를 공격한 것을 빌미로 선전포고하여,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다. 처음에 일본은 유럽의 전쟁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방하였으나, 프랑스·벨기에독일 제국에게 점령당하던 1940년에 독일·이탈리아·일본은 군사동맹을 맺고, 1940년에는 프랑스와 영국이 가지고 있던 동남아시아의 식민지들을 빼앗기로 하는 남진 정책을 취하기로 결정하였다. 미국은 이에 반발하여 석유 등 중요한 전쟁물자에 대해 수출을 금지하여 일본을 경제적으로 압박하기로 결의하였다. 일본은 처음에 미국과의 원만한 교섭을 통하여 이를 해결코자 하였으나 협상이 제대로 진전되지 못하자 고노에 후미마로제2차 내각은 퇴진하고 대신 통제파도조 히데키 내각이 조직되어 1941년엔 일·러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1941년 12월 1일 개전을 결의하고 같은 해 12월 8일 미국 해군이 주둔하던 하와이 진주만을 급습하고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군에 선전포고하여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였다.

 3 정치 3 정치

독일계 입헌주의에 영감을 받아 군주권이 강력한 독일·프로이센 헌법을 기초로 헌법 초안을 제정하였고 이에 따라 입헌군주정의 모습을 띄면서 군주인 천황의 권한이 강력한 전제군주정의 모습이 강하다.

 3.1 천황 3.1 천황

대일본제국의 천황
제122대 제123대 제124대 제125대
메이지 (明治)
(1868-1912)
다이쇼 (大正)
(1912-1926)
쇼와 (昭和)
(1926-1989)
고세이 (興成)
(1989-)

일본제국 헌법에는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한다.”라고 규정되었다. 일본제국 헌법 체제에서 천황의 지위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의 의사에 기초한 만세일계의 지위이다. 따라서 천황은 신성불가침의 존재였으며, 천황의 존엄을 침해하는 행위는 불경죄로 의율하여 중하게 처벌한다. 또한 천황은 천황대권으로 불리는 광범위한 권한을 가지고, 모든 통치권을 총람하는 존재였다. 즉 국가의 모든 작용을 통괄하는 권한을 가진다.

일본에는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이라는 격언이 있는데, 이는 천황의 절대권을 의미한다. 일본 황실의 계보가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존속되었다고 주장하는 의미로 만세일계(萬世一系)라는 말이 있다. 일본 제국 때에는 세계의 만방이 모두 천황의 지배하에 있다는 팔굉일우(八紘一宇)라는 이념이 천황제 파시즘황국사관의 근본사상이 되었다.

일본제국 헌법에서 처음으로 천황의 호칭이 ‘천황’으로 통일되었다. 그러나 외교 문서 등에서는 ‘일본국 황제’가 많이 이용되었으며, 국내의 공문서에서도 종종 사용되었다. 표기는 통일되어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는 ‘천자님’(天子様)으로 불리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육해군의 통수권을 가졌다는 의미에서 ‘대원수’라고도 불렸다.

 3.2 내각총리대신 3.2 내각총리대신

내각총리대신국무대신의 수반이지만, 국무대신과 대등한 지위였다. 국무대신에 대한 임면권이나 지휘 감독권이 없었으므로 명문상의 권한은 약하지만, 기무주선권(천황에게 재가를 주청하는 권한과 재가를 선하(宣下)하는 권한)과 국무대신의 주천권(천황에게 임명을 주청하는 권한)을 가졌다.

 3.3 제국의회 3.3 제국의회

일본 제국 헌법에 의거해 입법권제국의회에 부여되었다. 제국의회는 법률의 협찬(동의)권을 가지며, 신민의 권리의무 등 법률의 유보가 있는 사항은 제국의회의 동의가 없이는 개정할 수 없었다. 또한 제국의회는 예산 협찬권을 가지며, 예산을 심의하고 감독한다. 중의원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3.4 내각 3.4 내각

 3.5 식민지 및 괴뢰국 3.5 식민지 및 괴뢰국

대일본제국의 식민지
대동아공영권 (大東亜共栄圏)
직속총독령 (直屬総督令)
조선 (朝鮮)
타이완 (台湾)
에츠난 (越南)
제국령 (帝国領)
가라후토 (樺太)
간토슈 (関東州)
니시오슈 (西奥州)[2]
홍콩슈 (香港州) *
훗켄슈 (福建州) *
카이난슈 (海南州) *
유키하라 (雪原)[3]
사사군도 (沙沙群島)[4]
남방식민령 (南方植民領)
마라이 헨쿄 (馬来 邊方)[5]
키타보루네이 헨쿄 (北坊流寧 邊方)[6]
조계지 (租界地) / 시나기 (四渚)
샹하이 (上海)
텐신 (天津)
코슈 (杭州)
소슈 (蘇州)
제국제휴령 (帝国提携領)괴뢰국
츄카민코쿠 에츠케이세이후 (中華民国粤桂政府)
다이신테코쿠/코신 (大淸帝国/後淸)
모코렌고지치세후/모쿄코쿠 (蒙疆国)
↑코세이군 (廣西軍)
↑에츠군 (粤軍)[7]
↑쵸쿠레 이닌토치료 (直隷 委任統治領)[8]
* : 내각총독 부임

 4 인구 4 인구

 5 경제 5 경제

 6 교육 6 교육

대일본제국의 제국대학
TOKYO
Imperial Univ.

東京帝國大學
KYOTO
Imperial Univ.

京都帝國大學
TOHOKU
Imperial Univ.

東北帝國大學
KYUSHU
Imperial Univ.

九州帝國大學
HOKKAIDO
Imperial Univ.

北海道帝國大學
KEIJO
Imperial Univ.

京城帝國大學
DAIHOKU
Imperial Univ.

臺北帝國大學
OSAKA
Imperial Univ.

大阪帝國大學
NAGOYA
Imperial Univ.

名古屋帝國大學
HOKURIKU
Imperial Univ.

北陸帝國大學
CHUGOKU
Imperial Univ.

中國帝國大學
SHIGOKU
Imperial Univ.

四國帝國大學
KANAI
Imperial Univ.

河內帝國大學
HONGKONG
Imperial Univ.

香港帝國大學
HUKUSYU
Imperial Univ.

福州帝國大學
KOUSYU
Imperial Univ.

杭州帝國大學
대일본제국의 관립대학
TOKYO
Commercial Coll.

東京商業大學
KOBE
Commercial Coll.

神戸商業大學
TOKYO
Technical Coll.

東京工業大學
TAKAO
Technical Coll.

高雄工業大學
RYOJUN
Technical Coll.

旅順工業大學
TOKYO
Arts & Sciences Coll.

東京文理科大學
KITAKYUSYU
Arts & Sciences Coll.

北九州文理科大學
SENSYU
Arts & Sciences Coll.

泉州文理科大學
NIGATA
Medical Coll.

新潟医科大學
OKAYAMA
Medical Coll.

岡山医科大學
CHIBA
Medical Coll.

千葉医科大學
NAGASAKI
Medical Coll.

長崎医科大學
KUMAMOTO
Medical Coll.

熊本医科大學
HIROSAKI
Medical Coll.

弘前医科大學
TOKYO
Medical Coll.

東京医科大學
KOGAKKAN
Theological Coll.

神宮皇學館大學

 7 각주 7 각주

  1. 연민수 1998, 244~5쪽.
  2. 일본령 발해만
  3. 일본령 남극
  4. 일본령 시사군도, 난사군도
  5. 말레이 보호령
  6. 북보르네오 보호령
  7. 광동 중심 월계군벌
  8. 직례성 위임통치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