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

Enzo2015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2월 22일 (월) 20:51 판

제1차 세계 대전 1914.7.28. - 1915.7.9.
프랑스인 소요 1916. ~ 1917.
제3차 발칸 전쟁 1916.9.22. ~ 12.12.
플로레알 27일의 쿠데타 1917.5.16. ~ 5.18.
제2차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1918.
캅카스 내전 1918.10.10. ~ 11.4.
포르투갈 왕정복고 1919.1.8.
수에즈 사태 1919.4. ~ 5.
인도 독립 1919.10.7.
대영제국 붕괴 1919.11. ~ 12.
오스만 전쟁 1920.4.11. ~ 11.3.
러시아 내전 1921.1.8. ~ 1928.10.3.
힌두 장교 쿠데타 1921.7.7. ~ 7.20.
네덜란드 혁명 1922.11.10. ~ 12.5.
네덜란드 코뮌 1922.12.5.
프랑스 코뮌 혁명 1923.5.1. ~ 7.9.
카이세리 쿠데타 1925.8.8.
아나톨리아 선포 1925.8.10.
프레사 델 포타레 1924.4.6.
리우 왕당파 혁명 1924.11.15.
포르투갈-브라질 1924.11.17.
1월 쿠데타 1925.1.2.
세르비아 전쟁 1924.2.1. ~ 1925.10.10.
오스트리아-헝가리 내전 1925.7.12. ~ 1925.10.10.
헝가리-세르비아 전쟁 1925.10.10. ~ 1926.1.10.
에르데이 전쟁 1925.12.20. ~ 1926.3.21.
빈 조약 1926.1.18.
검은 금요일 1926.4.6.
피우수트스키 쿠데타 1928.6.30.
폴란드 제2공화국 선포 1928.7.3.
프랑스 제4공화국 선포 1929.5.18.
안트베르펜 혁명 1929.8.1.
벨기에 내전 1929.8.21. ~ 9.14.
강철 조약 체결 1930.1.11.
베오그라드 동맹 1930.3.13.
제4차 발칸 전쟁 1931.6.29. ~ 11.18.
비아리스토크 점령 1932.11.11.
비아리스토크 합병 1932.11.24.
스페인 내전 1933.7.7. ~ 1935.12.4.
튀르키스탄 침공 1933.8.8. ~ 1933.11.10.
10월 쿠데타 1934.10.10.
폴란드-리투아니아 선포 1934.12.7.
군부동맹 1935.8.2.
리가 사건 1936.1.18.
제2차 세계 대전 1936.3.4. ~ 1941.9.18.
포니아토프스키 사건 1942.12.8. ~ 19.
마아양가 사건 1942.10.2 ~ 20.
이스라엘 건국 1943.4.6.
에게 해 학살 1944.2.19. ~ 4.10.
10월 3일 사건 1944.10.3.
핀란드 내전 1944.10.3. ~
빌냐 소요 1945.6.6. ~ 9.
발트 민족 무장사건 1945.6.7. ~ 1946.1.7.
벨라루스 서부 사태 1945.6.7. ~ 1947.
9월 쿠데타 1945.9.5.
발트 병합 1947.1.18.

제1차 세계 대전
Erster Weltkrieg
날짜 1914년 7월 28일 - 1915년 6월 18일
장소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결과 동맹국의 승리
평화 조약
교전국
지휘관
병력
동맹국 협상국

약 4,500,000명
약 3,500,000명
파일:Flag of Ottoman (An Der Sonne).svg 약 900,000명
약 300,000명
총 9,200,000명

약 8,000,000명
약 6,000,000명
약 5,500,000명
약 950,000명
약 120,000명
약 65,000명
약 300,000명
총 21,000,000명

피해
동맹국 협상국

사먕자: 약 600,000명
부상자: 약 1,400,000명
실종자: 약 100,000명
: 약 2,100,000명

사망자: 약 720,000명
부상자: 약 2,800,000명
실종자: 약 80,000명
: 약 3,500,000명

제1차 세계 대전 전구

제1차 세계 대전(독일어: Erster Weltkrieg, 영어: World War I)은 1914년 7월 28일부터 1915년 6월 18일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하여 벌어진 세계 대전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세계 대전(독일어: Weltkrieg)이라 불렸으며, 미국에서는 유럽 전쟁(영어: European War)이라 불렀다. 약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양측 합하여 3천만명 가까이 되는 병력을 동원하여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전쟁이였으며, 사상자 또한 양측 합하여 5백만명에 달하였다.

약 1년 동안의 기간 동안 세계는 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동맹국영국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협상국으로 양분되었다. 전쟁의 발발 원인이 된 유럽 지역 외의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가 있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또한 전쟁의 영향에 휩싸였다.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독일과 그 주변국들의 충돌이였으나, 직접적으로 전쟁을 발발시킨 것은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사라예보 사건이다. 사라예보 사건으로 인해 빌헬름 2세 아래에서 팽창 정책을 실시하던 독일과 기존 강대국들 간의 충돌이 전쟁으로 도출되었다.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하면서 발발하였다. 독일슐리펜 계획에 따라 벨기에를 침공, 영국이 참전하였으며,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동프로이센갈리치아-로도메리아를 공격하였다.

국경 전투에서 프랑스영국의 군대를 격파한 독일대후퇴에서 적은 피해로 지속해서 협상국에게 피해를 누적시켰고, 마른 전투에서 승리 후 파리를 포위, 영국 대륙 원정군5군을 전멸시킨다. 영국 대륙 원정군의 전멸 이후 영국은 항복 논의가 시작되었으며, 프랑스 또한 보르도 시위우익 공세로 인해 마찬가지로 항복 논의가 시작되 영국의 항복 이후 뒤를 이어 항복하였다. 서부 전선이 종료됨에 따라 독일의 5개 육군단이 모두 동부 전선으로 향해 실레지아 공세, 로도메리아 공세, 백루테니아 공세, 드네르프 공세을 통해 민스크키예프까지 진군 함에 따라 러시아 또한 항복하게 된다.

전쟁 이후 독일9월 계획을 성공적으로 실현하여 벨기에와 동유럽 신생국들을 속국으로 삼았으며, 경제 공동체인 중앙유럽 동맹을 설립하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발칸 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증가시켰으며, 오스만은 멸망해가던 국가의 운명을 조금 더 늦츨 수 있었다. 이탈리아는 적은 피해로 많은 이득을 취했으나, 정작 그들이 원하던 발칸 반도에 대한 영향력과 아프리카 식민지에 대한 확장이 이루어지지 않아 동맹국과의 갈등을 낳았다. 프랑스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때와 같이 잠시동안 혁명에 휩싸였으며, 러시아 또한 제2차 러일전쟁을 계획하던 중 반란으로 인해 내전에 휩싸였다. 영국의 범세계적 헤게모니는 무너졌으며, 일본은 동아시아의 헤게모니에 대한 팽창이 잠시 수그러들었다.

배경

정치 및 군사적 동맹

제1차 세계 대전으로 가는 길

독일 통일 이후 유럽은 독일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주도하는 평화를 맞이한다.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삼제 동맹을 체결하였으며, 발칸 반도 문제로 삼제 동맹이 해체되었음에도 러시아와는 재보장 조약을 맺어 오스트리아-헝가리러시아의 분쟁에서 개입하지 않으며 상호 불가침을 이루었다. 삼제 동맹의 해체 이후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독오 동맹을 이루었으며, 이탈리아가 합류하면서 삼국 동맹이 되었다.

빌헬름 2세독일의 황제로 즉위하고 오토 폰 비스마르크를 해임하면서 독일은 팽창주의적 외교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다. 빌헬름 2세재보장 조약의 갱신을 거부하였고, 러시아독일의 견제를 위해 프랑스러불 동맹을 체결하였다. 영국 또한 독일의 식민지 정책에 대해 견재하며 프랑스영불 협상을 맺었으며, 이후 러시아와의 영러 협상이 체결되었다.

군비 경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이후 독일은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통해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룩한다. 빌헬름 2세 이전 독일은 식민지 개척 대신 국내 산업 육성을 선택하면서 높은 기술력과 공업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높은 기술력과 경제력, 공업력을 통해 빌헬름 2세알프레트 폰 티르피츠가 지휘하던 독일 황립해군의 육성을 목표로 한다. 총 5차례의 함대법을 통해 해군력을 늘려나가 영국과 군비 경쟁에 돌입하였다. 독일-영국 해군력 경쟁은 주변 유럽 국가들의 군비 증강에도 영향을 주어 1908년부터 1913년 사이 유럽 국가들의 군비는 50%가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발칸 반도 문제

오스만이 몰락함에 따라 발칸 반도는 권력의 공백이 발생하였고, 오스트리아-헝가리러시아 간의 패권 경쟁이 이루어졌다. 오스트리아-헝가리1878년의 베를린 조약으로 공동통치령이 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점령하여 보스니아 위기가 발생한다. 범슬라브주의를 주창하며 발칸 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증가시켜나가던 러시아세르비아 등은 크게 반발하였다. 1912년이탈리아-튀르크 전쟁의 영향으로 제1차 발칸 전쟁이 발발하였으며, 전후 영토 분할을 두고 제2차 발칸 전쟁이 발발하였다. 세르비아는 두차례의 발칸 전쟁의 승리로 인해 더욱 공격적인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주창하게 된다.

서막

사라예보 사건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폰 외스터라이히 대공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인 사라예보를 방문하였다. 세르비아의 과격 민족주의 단체인 흑수단의 지원을 받는 청년 보스니아의 6명의 암살자들은 대공의 차량 행렬이 지나갈때 폭탄을 투척하였다. 수류탄은 프란츠 페르디난트 폰 외스터라이히 대공이 탄 차량을 터트리지 못하고 주변 군중이 부상이 입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프란츠 페르디난트 폰 외스터라이히 대공이 부상자들이 입원한 병원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도중 암살자 중 한명인 가브릴로 프린치프에 의해 암살당하였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폭력 사태

사라예보 사건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정부는 크로아티아인과 무슬림 보스니아인들을 부추겨 세르비아인에 대한 폭력 사건을 발생시켰다. 사라예보 반세르비아 폭동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뿐만 아니라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심지어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주요 대도시에서도 발생하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정부는 세르비아인 5,500명을 수감하고 송환하였으며, 이슬람교가 지배적이던 지역에서는 민병대가 형성되어 세르비아인들에 대한 폭력을 발생시켰다.

7월 위기

사라예보 사건 이후 한달 동안 유럽은 전쟁의 위협에 긴장하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독일과의 논의 끝에 세르비아에게 최후통첩을 보낸다. 오스트리아-헝가리세르비아가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을 최후통첩에 담았으며, 이는 발칸 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시도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독일의 의도에 따라 세르비아는 최후통첩을 거절하였으며, 이에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세르비아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세르비아에게 전쟁을 선포하자, 러시아는 부분 동원령을 내리게 된다. 이후 러시아는 총동원령을 내렸고, 이에 독일은 이를 해제할 것을 최후통첩으로 보냈다. 러시아는 이에 응답하지 않았고, 8월 1일, 독일러시아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독일프랑스에 대해서도 어떠한 군사적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최후통첩으로 보냈으나, 프랑스는 이에 대답하지 않았고, 8월 3일, 프랑스에게도 전쟁을 선포한다.

진행 과정

서부 전선

벨기에 침공

벨기에 침공

독일1905년에 계획된 슐리펜 계획에 따라 벨기에를 경유하기를 원하였다. 독일벨기에에게 군사통행권을 요청했으며, 프랑스 또한 17번 계획에 따라 벨기에에게 군사통행권을 요구한다. 그러나 벨기에는 두 국가의 요구 모두 거절하였으며, 벨기에의 독립을 영국이 보장하고 있었다.

8월 4일, 독일벨기에를 침공한다. 이는 벨기에의 독립을 보장하고 있던 영국의 참전을 불러왔다. 8월 5일에 시작된 독일-벨기에 국경의 리에지에서 전투가 시작된다. 독일리에지에 위치한 요새에 벨기에군을 포위하고는 파죽지세로 벨기에 내부로 진입하였다. 포위는 계획보다 한참 길게 유지되어 8월 16일이 되어서야 종료되었다. 이로 인해 독일프랑스의 이른 저항에 부딫쳐야 했다.

8월 14일, 벨기에레온 드 비트 드 할렌하셀트디스트로 향하는 독일을 막기 위해 할렌에서 게오르크 폰 데어 마르비츠가 이끄는 독일군을 공격한다. 독일은 쉽게 할렌을 점령하였으나, 여러 오판을 통해 벨기에가 승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할렌 전투 하나만으로는 독일의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였다. 할렌 전투에서 패배한 뒤에도 독일은 계속해서 벨기에 내부로 밀고 들어갔다. 8월 20일, 벨기에의 요새가 위치한 나무르에 도달한 독일군은 요새를 포위한후 포격을 가한다. 벨기에군을 지원하기 위해 진군한 프랑스군샤를루아에서 독일에 의해 격파당하여 진격을 저지당한다. 포격에 의해 나무르의 요새는 파괴되었고, 이후 8월 24일에 항복한다. 나무르독일의 진격을 일시적으로 저지함으로써 협상국에게 시간을 제공해주었다.

국경 전투

대후퇴

파리 전투

우익 공세

종전

동부 전선

동프로이센 침공

렘베르크 전투

프레미셀 포위전

바르샤바 전투

슐레지엔 공세

로도메리아 공세

백루테니아 공세

드네르프 공세

남부 전선

세르 전투

드리나 전투

코루바라 전투

아프리카 전선

토골란트 전역

동아프리카 전역

카메룬 전역

남서아프리카 전역

기타 전선

캅카스 전역

오세아니아 전역

대서양 해전

지중해 해전

인도양

결과

전후

사상자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