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트니코비아 연방군정청 Federal Military Administration in Karetnyko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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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정기 | 휘장 | |||||||||||||||||
행성가 | 없음[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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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트니코비아는 헤네피르 연방관구 아오라키 연방지구에 위치한 행성이다. 원래는 자치권을 보장받는 연방행성이었으나, 연방정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진압되어 자치권을 몰수당했다. 현재는 연방군의 군정청이 통치 중이다.
행성의 명칭은 20세기 초 지구 우크라이나 지역의 무정부주의 운동가였던 세멘 카레트닉의 이름에서 따왔다.
상징
연방군정청 깃발 | 연방군정청 휘장 |
위 깃발과 휘장은 모두 연방군의 것으로, 카레트니코비아 자체가 아닌 카레트니코비아 군정청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아나키스트 체제 당시 쓰이던 모든 깃발, 휘장, 노래 등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현재 공식적으로 카레트니코비아를 나타내는 상징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
아나키스트 체제 하의 카레트니코비아에 대해서는 아나키스트 카레트니코비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카레트니코비아는 9830년에 연방개척부 연방우주탐사본부에 의해 엘렉타-a 행성계의 일부로 처음 발견됐다. 엘렉타-a-3이라고 명명된 그 행성은 9982년부터 수 년에 걸쳐 개척부 식민지개척청에 의해 조사되었으며 9999년에 민간 개척 가능 행성으로 지정돼 파이오니어.gov에 등재되었다.
엘렉타-a-3이 속한 엘렉타-a는 무정부주의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과거 연방의 권위를 부정하던 이른바 '주권파'가 강세였던 아나키스트 집단들은 카스파 전쟁에서 상당수가 반란군인 카스파 동맹에 가담했다가 큰 피해를 입은 전적이 있다. 카스파 전쟁에서의 쓰라린 패배 이후 아나키스트들은 가급적 연방정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활동했지만, 전쟁이 끝난지 수백 년, 수천 년이 흐르면서 전쟁의 기억은 흐릿해져 갔다. 이에 많은 청년 아나키스트들이 연방의 이른바 '부르주아 민주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아나키스트 행성을 개척하자고 주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나키스트 집단 내에서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여론이 생겨났다. 결국 아나키스트 집단들은 행성 개척을 결정했고, 개척 대상으로 꼽힌 행성계 중 하나가 바로 엘렉타-a였다. 여러 아나키스트 집단들은 가용 자금력의 상당량을 동원해 여러 행성들을 개척했고, 10897년에 엘렉타-a-3에는 아나키스트들이 세운 행성 최초의 정착지가 들어섰다. 해당 행성을 최초로 개척한 아나키스트들은 전우주시대 아나키스트 혁명가 중 한 명이었던 세멘 카레트닉의 이름을 따, 엘렉타-a-3을 카레트니코비아Karetnykovia로 명명했다.[4]
아나키스트들은 카레트니코비아를 개척해나가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기계의 도움으로 대기를 조성하고, 바다와 호수를 만들었으며, 식물과 동물을 퍼트렸다. 그와중에도 수많은 아나키스트 이상주의자들이 카레트니코비아로 이주해 행성의 빈 땅을 메꿔나갔다. 기본적으로 소규모 농촌공동체를 이룬 현지 주민들의 생활은 일견 목가적이기까지 했기에, 옛 농촌생활을 동경하는 몇몇 반동적 보수주의자들도 카레트니코비아에 호감을 보이거나 심지어는 이주를 하기도 했다. 인구가 억 단위에 이르자, 행성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카레트니코비아 인민대표자대회는 카레트니코비아와 같은 행성계의 행성들도 개척해 행성계 정체를 아나키즘적 공동체로 구축하기로 결의했다. 이에 따라 117세기부터는 인근 행성에 개척단을 보내 정착지를 건설했으며, 카레트니코비아와 같은 코뮌 기반의 체제를 건설했다.
총력전의 발발과 함께 카레트니코비아는 큰 시련을 맞게 된다. 연방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을 추구하던 여러 아나키스트 행성들은 외부와의 무역도 최소화하고자 했고, 점차 연방의 다른 부분들과는 단절되었다. 이로 인해 카레트니코비아 측은 총력전의 발발이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초동 대처도 미흡했다. 심지어 처음에는 적과의 전쟁이 연방이 카레트니코비아의 인민과 민주주의를 탄압할 구실을 만들기 위해 꾸며낸 일이라고 판단했다. 임시대회를 연 인민대표자대회는 다른 많은 아나키스트 행성들과 마찬가지로 연방의 동원령 선포를 거부하고 군사위원회를 구성해 혹시나 있을 연방군의 침공에 저항하려 했다. 이들이 연방정부의 최후통첩을 거부하자 연방정부는 이를 반역행위로 규정하고 연방조정부 공관을 철수시킨 후 각 행성에 진압군을 파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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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압군이 카레트니코비아 인근에 도착한 것은 11167년 2월 20일(연방표준시)이었다. 진압군이 제아무리 연방군의 2선급 부대였다고 해도 변변찮은 군함도 없는 카레트니코비아 인민수비대의 군사력을 압도했다. 진압군 사령관인 콘스탄티노비치 압크센텝스키 육군대장이 카테르니코비아 측에 항복 요구를 타전했지만 카레트니코비아 측은 반응하지 않았다.[5] 그러자 카레트니코비아의 하늘에서는 무수한 궤도폭격과 상륙군이 쏟아져내렸다. 군사적 전문성도 부족했던 군사위원회의 지휘를 받은[6], 무장도 훈련도 변변찮은 인민수비대는 진압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몇 주 만에 진압군은 행성의 주요 거점을 모조리 점령했고 카레트니코비아 연방군정청을 수립해 군정을 실시했다. 인민대표자대회와 군사위원회는 붕괴했고, 소수의 인민수비대원들은 산과 숲으로 도주해 게릴라전을 펼쳤지만 대부분 진압군과 전향자들에 의해 소탕당하고 말았다.
반란이 진압된 후의 카레트니코비아는 순식간에 후진행성으로 굴러떨어졌다. 연방군의 폭격으로 대부분의 산업, 농업 인프라가 파괴되었으며 행성 주민들의 민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군정청이 산업기반을 복구하는 중이지만 예산 부족으로 지지부진하다. 절반 이상의 행성주민들이 군정청의 배급으로 연명하고 있으며, 배급량마저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절망한 몇몇 주민들은 군정청을 붕괴시키고 옛 아나키스트 체제를 복원하려는 흑색테러 조직에 가입하거나, 외세에 대한 적개심과 혐오감에 빠져 극우 민족주의자로 흑화하기도 한다. 반면 눈치 빠른 지도자들은 초창기부터 연방군에 협조해 군정청에서 한 자리씩 얻어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연방군에 재빠르게 항복한 몇몇 인민수비대 고관들은 옛 동지들에게 총부리를 돌린 공로로 '영지'를 하사받아 군정청의 비호를 받는 봉건군벌Feudal Warlords이 된 경우도 있다. 봉건군벌에 대해서는 후술.
사회
군정청이 들어선지 8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사회분위기는 뒤숭숭하다. 찢어질듯한 가난과 군정청의 철저한 억압으로 인해 사회 전반적으로 패배주의와 비관주의가 짙게 깔려있다. 특히 옛날부터 사회 기저에 자리잡은 이강적이고 평등주의적 사고관과, 그와는 정반대인 시궁창같은 현실의 깊은 괴리감이 그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카레트니코비아의 문화 역시 지대한 타격을 입었다. 중앙의 관료와 엘리트, 자본가 계층은 내심계스러운 생활을 영위하며, 내심계의 관습, 미적 기준, 식문화를 추구한다. 지방의 토호 계층은 귀족주의적인 시류가 보이며, 봉건군벌 계층에서는 전우주시대 봉건제적 정치체제를 구축하고 무인군주를 동경하는 세태가 관측된다. 반면 도시 빈민은 군정청의 배급으로 하루하루 연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동적이고 소시민적인 특성이 두드러진다. 농촌은 그나마 옛 생활양식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비교적 흔해서 이른바 '가난한 자유민'이라고 불린다.
인구
카레트니코비아의 인규는 2억 명으 조금 넘으며, 아나키 체제 시절보다 다소 줄었다. 반란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막대한 인명피해와 더불어, 군정기 이래로 이어져온 식량난과 높은 실업률 및 영아사망률 때문이다. 기대수명은 약 72세로, 연방정부의 텔로미어 복구제 지원을 거부하던 아나키 시절의 94세보다도 심각하게 퇴보한 수치다. 이는 의료 서비스의 악화와 영양부족 때문이다. 동시에 연방정부의 텔로미어 복구제 지원을 부패한 관료와 봉건군벌이 횡령한 결과이기도 하다.
치안
군정청의 치안유지 활동 중에 광범위한 인권침해와 탄압이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시민들은 악인들의 끔찍한 범죄와 경찰의 무분별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경찰의 심문 중에 용의자를 상대로 각종 고문이 자행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방 치안대와 군벌 사병에 의한 치안활동은 군정청의 통제 밖에 있습니다. |
연방조정부 주카테르니코비아 영사관 레베 카에루 영사의 보고 |
카레트니코비아의 치안은 안 좋기로 유명하다. 수도인 압크센텝스코그라드에서도 범죄가 만연하며, 일몰 후에는 몇몇 안전지대를 제외하고는 외출이 아주 위험하다. 이에 도시 시민들은 구역 단위로 자경단을 만들어 자체적으로 범죄를 예방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다만 주요 도시들은 최근 들어 경찰의 통신도청과 드론을 활용한 감시활동으로 범죄가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 군정청의 직접통제 하에 있는 도시들의 치안은 군정청 산하의 경찰국이 담당한다. 경찰국은 현지 청년들을 고용해 인력을 충당하고 았으며, 경찰관은 하늘을 뚫을 듯한 실업률 때문에 인기가 아주 높은 직종이다. 하지만 경찰조직의 부패와 폭력, 고문 등으로 인해 경찰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곱지 못하다.
소도시나 농촌에서는 지역 유지가 지휘하는 지역 치안대가 치안활동을 담당한다. 하지만 치안대는 말이 치안대지 실제로는 토호의 사병 집단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전문성이 매우 떨어진다. 이로 인해 농촌 지역은 치안상태가 도시 지역 뺨칠 만큼 좋지 못하며, 지역민들에 의한 집단린치나 명예살인 등이 빈번하다. 한편 봉건군벌의 지배 하에 있는 지역은 각 봉건군벌이 자체적으로 치안문제를 해결한다. 군정청의 지시에는 협조적인 지역 치안대와는 달리 봉건군벌의 치안활동은 군정청이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카레트니코비아의 치안을 위태롭게 흠드는 주범으로는 한낱 경범죄자들이 아니라, 범죄자들이 뭉쳐서 만든 카르텔이다. 이들은 실버 파우더 등의 마약과 불법 무기류를 유통하며, 군정청이나 친군정청 세력의 행정력이 닿지 않는 일부 지역을 실질적으로 통치한다. 뿐만 아니라 옛 아나키스트 체제의 잔당은 BRA의 지원을 받아 숲과 산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며 군정청을 괴롭히고 있으며, 반외세 감정을 등에 업은 극우 파시즘 세력까지 출몰해 테러를 저지르고 다니는 중이다. 군정청은 주둔 연방군을 동원해 진압하고는 있지만 병력 부족으로 인해 성과가 신통치 못하다.
행정구역
카레트니코비아 연방군정청은 총 15개의 관구District를 두고 있는데, 각 관구는 옛 아나키스트 체제 시절 있었던 최상위 행정구역인 주Province를 여러 개씩 통합해 만든 행정구역이다. 각 관구의 장은 관구사령관이며, 보통 육군소장이 보임된다. 관구사령관은 군정사령관의 제청에 의해 연방군관구 사령관이 임명한다. 원주민 관료가 임명되는 민정부장과 연방군 준장이나 대령이 보임되는 군정부장이 관구사령관을 보좌한다.
관구 밑에는 수십 개의 현Prefecture이 있다. 현은 현의 모든 지역에서 현의 행정중심까지 하루 안에 도달할 수 았는 거리로 구성되어, 기존에 사용되던 행정구역인 코뮌집합Communal Collectivity과는 완전히 다른 경계로 그려졌다. 각 현의 장인 현장은 소속된 관구의 관구사령관에 의해 임명이 제청되어 군정사령관이 임명한다. 현장에는 보통 지방 유력자나 토호가 임명된다. 치안유지를 위한 병력이 부족한 군정청은 현 단위의 치안과 징세는 지방 유지에게 맞긴다. 현장에 임명된 토호는 현의 치안을 유지하고 세금을 징수해 상위기관에 상납하는 대가로 현장직의 유지와 세습, 그리고 군정청의 비호를 받는다.
특수행정구역으로 자치령Autonomous Territory가 있는데, 이는 봉건군벌이 다스리는 영역을 말한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의 '봉건군벌' 항목 참조
정치
연방군정청은 본 행성 전체와 그 모든 시민의 통치에 대한 일체의 권한을 행사한다. 그 기한은 행성이 안정화되어 다시 연방주체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자격을 갖출 때까지로 한다. |
연방군정청 제 1호 포고령, 초대 연방군정사령관 콘스탄티노비치 압크센텝스키 연방군 육군대장 |
카레트니코비아는 현재 연방군의 군정 하에 있다. 행성자치의 원칙에 따라 각 연방행성에 부여되어야 하는 자치권이 일시 정지되어 있으며, 연방민주재단도 연방민주지수를 평가하지 않고 있다. 연방법상 언젠가 군정청을 해체하고 행성정부를 수립해 자치권을 반환해야 하지만,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전혀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현재 카레트니코비아의 최고통치기관은 카레트니코비아 연방군정청Federal Military Administration in Karetnykovia이다. 군정청은 카레트니코비아의 행정권을 행사하며, 행성법령을 반포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입법권을 동시에 행사하는 행정부로 정의내릴 수 있다. 군정청은 연방군과 연방군관구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행성을 임시로 통제할 책임이 있다. 군정청의 수반은 군정사령관이며, 국가원수 겸 정부수반이다. 과거에는 육군대장이 군정사령관에 보임됐지만 11230년부터는 육군중장이 보임되고 있다. 현임 제16대 군정사령관은 존 하지 연방군 육군대장이다. 군정사령관은 부사령관과 수석장관의 보좌를 받는다. 부사령관은 사령관이 부재중일 시 사령관의 책무를 대행하며, 해군 혹은 공군 소장이 보임된다. 수석장관은 현지 관료 중에서 임명되며, 군정청 실무자 중 최고위 직책이다. 그 밑에는 각 부서를 관할하는 장관들이 있으며, 이들도 대부분 현지 관료 중에서 임명된다.
비록 군정청에 독립된 입법부는 없지만, 추후 입법기구로 재편할 예정으로 만을어진 과도입법회Transitional Legislative Assembly라는 조직이 군정청 산하에 존재한다. 과도입법회는 결의권과 감사권은 있지만 입법권은 없다. 과도입법회는 총 345인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그중 230명은 간선제로, 115명은 제한적 직선제로 선출된다. 과도입법회는 권한 자체도 매우 제한적인데다가 군정청이 원하지 않는 인물은 의원에 당선될 수 없기 때문에 군정청의 거수기에 불과한 상태다. 군정청이 당적을 보유한 사람의 의원직 수행을 금지하여 원내에 정당은 하나도 없지만[7],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비공식 회파는 여럿 존재한다.
현재 군정청 조직 중 주민들의 직선제로 구성원이 선출되는 조직은 단 하나도 없으며, 따라서 민주적인 민의 표출 방법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이에 과도입법회를 민주적 선거를 통해 구성되는 실질적인 입법부로 개편해 군정청의 통치에 민의를 반영하자는 연방조정부 측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재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군정청 측은 지금 즉시 민주적 의회를 조직하면 극단주의자들이 의회를 장악하여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며, 반연방 세력의 분쇄가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
진압작전 중 연방군과 인민수비대 사이의 격렬한 전투, 그리고 연방군 함선의 궤도폭격으로 인해 경제 인프라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이후 군정청의 주도로 재건 및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는 있지만 혹도가 아주 느리다. 그마저도 대부분의 복구는 수도인 압크센텝스코그라드에 집중되어 있다. 압크센텝스코그라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절반 이상의 시민이 군정청의 배급에 의존한다.
농촌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기본적으로 자급자족 시스템 하에 돌아가는 농촌경제를 거지고 있기에 생활 자체는 나름 안정적이지만, 지방 유지나 봉건군벌의 수탈, 그리고 낮은 생산성으로 안해 가난한 건 매한가지다.
군사
현재 카레트니코비아에 존재하는 무력집단은 크게 세 가지다. 중앙군에 해당하는 연방군, 지방 유지의 치안대, 그리고 봉건군벌의 사병이 바로 그들이다.
연방군은 아카니스트 반란 진압과 함께 카레트니코비아에 주둔하게 되었다. 진압작전 당시에는 3개 야전군 약 70만 명의 대병력을 보유했었우나, 반란 진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후에는 상당수가 행성을 떠나 현재는 3개 군단 약 16만 명만이 행성에 주둔해 있다. 무장 수준은 3대 무력집단 중 가장 뛰어나지만, 지나치게 적은 병력으로 인해 행렁 전역에서 날뛰는 반정부 테러리스트들과 반란군들을 제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로 인해 군정청은 치안대와 봉건군벌 사병을 키워주게 되었다.
치안대는 지역 유지의 사병집단이다. 무장은 대부붘 보잘것 없는 수준이고 잘 조직화되어 있지도 않지만, 카레트니코비아의 말단 치안조직이다. 이들은 연방에 빌붙어 자리를 세습하는 지방 현장의 지휘를 받으며, 현의 치안을 유지하고 반란군의 소규모 침입에 대응한다. 반면 봉건군벌의 사병은 봉건군벌의 개인적 성향이나 영지 경제력에 따라 그 규모와 훈련 수준, 그리고 무장의 정도가 들쑥널쑥하다. 이들은 봉건군벌의 지시를 받는 사병집단이며, 반란군을 재압하기 위해서 연방군과는 독립적으로 작전을 펼치기도 한다.
반란군
카레트니코비아에서 활동하는 반군은 크게 세 부류다. 자유인민평의회, 공산당, 그리고 애국전선이다. 이 세 조직은 서로 협력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하며 이합집산을 반복하고 있다.
자유인민평의회 Free People's Council
구 아나키스트 체제의 잔당으로, 군정청을 분쇄하고 아나키 체제를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들은 전연방적인 반정부 태러단체인 BRA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란군 중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과 조직 그리고 대중적 지지를 가지고 있다.
카레트니코비아 공산당 Communist Party of Karetnykovia
스탈린주의를 신봉하는 극좌 조직이다. 이들은 아나키 체제가 분권형 제도의 나약함과 취약성 때문에 붕괴했다고 보고, 집산주의와 중앙집권을 통한 스탈린주의적 체제를 구축하고자 한다.
카레트니코비아 민족전선 Karetnykovian Natuonal Front
카레트니코비아 민족주의에 기반한 극우 파시즘 집단이다. 주로 한때 아나키 체제를 지지했던 이들로 이루어진 애국전선은 '외세'인 연방정부와 군정청을 행성에서 일소해 카레트니코비아 민족의 해방을 달성하고자 한다.
자연
봉건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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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군벌 / Feudal Warlords
봉건군벌은 연방군의 카레트니코비아 반란 진압과정에서 나타난 특수한 형태의 군벌형태이다. 반란 당시 카레트니코비아 인민수비대는 연방군 진압부대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인해 무너져내렸고, 점조직화되어 행성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인민수비대의 몇몇 고위 지휘관들은 연방군에게 항복하고, 심지어는 아예 연방군의 편에 서서 한때 동지였던 인민수비대를 공격하기도 했다. 인민수비대를 소탕해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연방군은 카레트니코비아에 군정청을 설치했는데, 당장 총력전 중 대규모 병력을 후방에 둘 수 없었던 연방군은 반란 진압에 투입된 병력 대부분을 철수시켜 최전선에 재배치했다. 군정청은 남아있는 소수의 연방군과 현지 경찰만으로는 행성 전체의 치안을 유지할 수 없었기에, 연방군에게 투항하고 협조한 옛 인민수비대 지휘관들에게 '자치령'이라는 이름으로 '영지estate'를 '분봉'하여 통치와 치안을 아웃소싱했다. 이것이 봉건군벌의 시작이었다.
봉건군벌이 된 옛 인민수비대 고위 장교들는 특별자치령 행성의 한 귀퉁이를 받아 그곳의 통치자가 되었다. 봉건군벌은 군정청에 세금을 납부하고 '영지'의 치안을 유지하며 군정청이 군사작전을 벌일 경우 병력을 파견하고 협조하는 의무를 진다. 그 대신 봉건군벌은 군정청으로부터 그 직위를 보장받으며, 영지 내에서 사실상 무한한 지치권을 얻었다. 봉건군벌은 자신들의 부하들에게 자신의 영지 일부를 분봉하여 통치를 위임하였고, 이런 과정이 몇 단계 반복되면서 마치 전우주시대의 봉건제와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로 인해 봉건군벌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것이다. 봉건군벌들은 '장군', '총독' 등을 자칭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으며, 대부분 자신의 직위를 자식들에게 세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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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 카레트니코비아 군정청 설립과 함께 폐지됨
- ↑ 원래 지명은 카레트니코그라드였지만 아나키스트 반란을 진압한 연방군 장성인 콘스탄티노비치 압크센텝스키의 이름을 따 현재와 같이 개칭되었다.
- ↑ Earthian languages /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아랍어 등 약 7천 개 언어
- ↑ 엘렉타-a-3은 최초 발견 당시 임의로 부요한 임시명칭이었다. 행성의 최초 개척자에게는 행성의 재명명권이 주어진다.
- ↑ 진압군이 항복요구 없이 곧바로 공격을 개시했다는 설도 있다.
- ↑ 다만 인민대표자대회는 군사적 전문성이 그나마 가장 뛰어난 이들을 임명한 것이다. 카레트니코비아는 군대를 혁명에 위협이 되는 집단으로 보았기에, 군사조직인 인민수비대조차 상비군이 아닌 동원예비군 개념으로 구성했다. 거기에다가 체계적인 장교 육성체계도 없었기에 카레트니코비아에는 전문적 고위 장교가 없었다.
- ↑ 원외에는 합법정당이 몇 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