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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1|짐은 충실한 신민들 덕분에 끔찍한 [[아시아 태평양 전쟁|난세]]를 이겨내었고 종묘와 사직을 보존할 수 있었다. 이에 새로이 짓는 궁궐의 이름을 평안(平安)으로 하여 대한국과 온 백성이 자손만대에 이르기까지 평화롭게 번영하기를 기원하겠다.|세조실록 13권, 정화 3년(1948) 4월 5일 첫번째 기사}}
{{인용문7|짐은 충실한 신민들 덕분에 끔찍한 [[아시아 태평양 전쟁|난세]]를 이겨내었고 종묘와 사직을 보존할 수 있었다. 이에 새로이 짓는 궁궐의 이름을 평안(平安)으로 하여 대한국과 온 백성이 자손만대에 이르기까지 평화롭게 번영하기를 기원하겠다.|세조실록 13권, 정화 3년(1948) 4월 5일 첫번째 기사}}
평안궁은 [[황도특별시]] 자미구에 위치한 [[대한국 (동방)|대한국]] 황실의 두 정궁, 법궁이다. 평안궁과 동등한 지위에 놓인 궁궐은 서울에 위치한 경복궁뿐이며 양대 수도의 법궁 역할을 맡고 있다.
평안궁은 [[황도특별시]] 자미구에 위치한 [[대한국 (동방)|대한국]] 황실의 두 정궁, 법궁이다. 평안궁과 동등한 지위에 놓인 궁궐은 서울에 위치한 경복궁뿐이며 양대 수도의 법궁 역할을 맡고 있다.



2021년 10월 22일 (금) 21:45 판


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대한국 사적 132호
평안궁
平安宮 | Pyeongangung
소재지 황도특별시 자미원구 중앙로 1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궁궐
면적 1.9km2
지정년도 1994년 5월 17일
축조시기 1951년 2월 20일 ~ (현재)
별칭 미앙궁(末央宮)

개요

짐은 충실한 신민들 덕분에 끔찍한 난세를 이겨내었고 종묘와 사직을 보존할 수 있었다. 이에 새로이 짓는 궁궐의 이름을 평안(平安)으로 하여 대한국과 온 백성이 자손만대에 이르기까지 평화롭게 번영하기를 기원하겠다.
세조실록 13권, 정화 3년(1948) 4월 5일 첫번째 기사

평안궁은 황도특별시 자미구에 위치한 대한국 황실의 두 정궁, 법궁이다. 평안궁과 동등한 지위에 놓인 궁궐은 서울에 위치한 경복궁뿐이며 양대 수도의 법궁 역할을 맡고 있다.

면적은 약 1.9km2으로 자금성 궁궐 면적의 2.64배에 달하는 거대한 궁궐이며 현존하는 궁궐중 세계 최대 규모이다.[1]

1948년 세조가 장춘(현 황도으로 천도하기를 결정하면서 1951년 축조가 시작됐다. 궁의 전반적 구조는 세조 황제가 몸소 설계한 것이며 경복궁과 다르게 서양식으로 지었다. 다만 평안궁 축조는 너무 거대한 계획이었던 나머지 세조 치세에는 정전인 태녕전과 침전인 명정전만 완공됐고 선종 치세에 정문인 태화문[2]과 궁무성 청사가, 익종 치세에 대한한림원 본부와 몇개의 별궁이 완공되었으며 나머지는 선덕제 치세인 현재까지도 계획이 완료되지 않은채 꾸준하게 건설중이다.

2

그러나 1960년대 이후에는 황제들은 모두 평안궁에서 거주하며 국사를 돌보고 있어 경복궁은 법률상 법궁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종묘와 사직단은 여전히 경복궁 근방에 있어 중요성은 평안궁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1. 다만 어디까지나 자금성 ‘궁궐’에 비해 넓은 것이지 옛 자금’성’에 포함되는 외성 내부의 면적은 평안궁보다 훨씬 넓다. 어쨌든 ‘궁궐’의 면적 자체는 평안궁이 넓은 것이 맞지만.
  2. 후술하겠지만 명칭은 문(門)이지만 실제로는 궁무청 시위대 본부로 사용되는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