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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제국
Empire Français
Imperium Francicum
국기 국장
Liberté, Ordre Public
자유, 공공 질서
상징
국가 Chant du départ
출발의 노래
국조
독수리
국수
위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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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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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파리
최대 도시
파리
면적
2,100,000km2 (본토)
2,381,741km2 (제국령 알제리)
접경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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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150,358,700명 (본토)
34,700,000명 (알제리)
185,058,700명 (전체)
밀도
41.29명/km2
인종
프랑스인 76.3%
아랍-베르베르인 16.4%
기타 유럽인 4.1%
기타 인종 3.2%
출산율
1.53명 (2020년)
평균 수명
45세
기대 수명
82세
공용어
프랑스어, 아랍어 (알제리)
지역어
네덜란드어, 카탈루냐어
공용 문자
라틴 문자, 아랍 문자 (알제리)
종교
국교
국교 없음 (정교 분리)
분포
기독교 47.5%
이슬람교 10.4%
기타 종교 5.3%
무종교 37.8%
군대
프랑스 제국군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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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옹
21개
데파르드망
159개
외부 영토
8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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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대의민주제, 입헌군주제, 준연방제
민주주의 지수
8.64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 원수 (황제)
뤼시앵
정부
요인
총리
조르주 블루아
상원 의장
크리스포트 발랑스
하원 의장
브누아 몽토방
중앙재판소장
미카엘 타르브
알제리
행정장관
갈리아르 드 뤽상
여당
프랑스 사회당
연립 여당
프랑스 공산당
신임과 보완
알제리 민족해방전선, 기독교민주당, 생태민주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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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GDP
(PPP)
전체 GDP
12조 3,989억 3,290만 (3위)
1인당 GDP
$67,000
GDP
(명목)
전체 GDP
$10조 1,782억 2,850만 (3위)
1인당 GDP
$55,000
무역
수입
$9,349억 7,700만
수출
$8,003억 2,100만
신용 등급
무디스 Aa1
S&P AA
Fitch AA
화폐
공식 화폐
유럽연합 유로 (€)
ISO 4217
EUR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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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GMT+01:00
도량형
SI 단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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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교현황
조선국 최초 수교 1883년
대한민국 수교 1948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교 1973년
UN 가입
1945년
주한대사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서소문로 43-12
ccTLD
.fr
국가 코드
FR, FRN, FRA, 250
전화 코드
+33
여행 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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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여행주의보
전지역 (코로나 19)

개요

프랑스 제국(프랑스어: Empire Français)은 서유럽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상세

러시아 다음으로 유럽에서 영토가 넓은 국가이자, 가장 인구가 많고 국력도 가장 강력한 유럽 유일의 초강대국이다. EU 회원국중 경제적으로 발달해있으며, 동시에 영향력이 가장 강력한 국가이다. 현재 국가 경제 규모는 미국과 중국에 이은 3위이며, 냉전 시기부터 자유진영의 가장 대표적인 강대국중 하나였다. 군사력 역시 강력하여 미국, 러시아, 중국에 이은 세계 제4위의 군대 규모를 보유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유럽 내의 손꼽히는 강대국중 하나였다. 프랑스의 기원은 서프랑크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동로마제국 및 신성로마제국과 패권 다툼을 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급격하게 치고 올라온 영국, 독일과 국력 경쟁을 하였으며 19세기 초반 제1차 및 2차 유럽전쟁을 통해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을 영향력 하게 두게 되었다.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이후 1945년까지는 독일의 재부흥으로 영향력을 잠깐 상실하긴 했음에도 1950년대 이후 정부의 강력한 경제 재건 정책과 독일의 분할 등으로 현재까지 유럽 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나라로 굳건히 남아있게 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영국과 함께 산업혁명 초기부터 일찍이 공업화된 국가중 하나였고 지금까지도 미국과 함께 가장 대표적인 초강대국으로 분류된다. 동시에 프랑스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을 통해 가장 먼저 대의민주제도를 받아들인 나라이기도 했으며, 자코뱅이나 지롱드 등 근대 정치의 기본이 되는 사상과 정당, 인물들이 줄지어 나와서 현대 정치의 발상지로도 불린다. 또한 인접 국가들이 많다보니 여러 국가들의 문화를 흡수하여 음악, 미술,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예술 문화가 발전해, 소프트 파워 순위에서 1위 혹은 2위를 언제나 차지한다.

프랑스는 현재 EU의 회원국이며, UN의 상임이사국이자, NATO의 회원국이다. 국제통화기금 투표권은 2위고 금보유고는 세계 1위다.

상징

국호

프랑스어 Empire Français
라틴어 Imperium Francicum
아랍어 Al'iimbiraturiat Alfaransia
카탈루냐어 Imperi Francès
네덜란드어 Frans Rijk
영어 French Empire
한국어 프랑스 제국
독일어 Frankreich, Französisches Reich
스페인어 Imperio Francés

프랑스어로는 "프헝스"에 가깝게 발음한다. 한국어 명칭은 France를 그냥 영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불란서 혹은 법란서라는 음차도 있고 줄여쓸때는 프 혹은 불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는 "법국"이라고 한다.

프랑크 왕국에서 기원했다. 프랑크족의 땅이라는 뜻의 라틴어 Francia에서 유래했으며, 많은 유럽 언어에서도 Francia를 변형한 말을 쓴다. 고대 게르만어에서 Frank는 "자유"라는 뜻이었고, 따라서 프랑스라는 국명은 자유인의 땅이라는 것이 된다.

고대 그리스어로는 갈리아라고 했고 지금도 몇몇 민족주의자들은 프랑스를 갈리아라고 칭한다. 이는 로마 지배 전에 프랑스에서 살고 있던 켈트 민족인 갈리아족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프랑스 내에서는 체제에 따라 "제1제국" "제2제국" "제3제국"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지만 이는 공식화된 표현이 아니며, 국호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라틴어 국호도 공식 국호로 인정받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다.

국기

삼색기
La Tricolore
지위 공식 국기
채택일 1794년 2월 15일
비율 2:3

#002654(파랑), #FFFFFF(하양), #CE1126(빨강)으로 이뤄진 삼색기를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어로는 La Tricolore(라 프리톨로르)라고 불리우며 1790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사용되었다. 배색과 색깔의 순서는 정부 형태에 따라 몇번 바뀌었지만 현재 상태로 굳어진 것은 1794년 2월 15일 공식 지정되면서이다. 1790년 혁명정부가 사용하던 깃발은 빨강-하양-파랑 순서였는데, 1794년 이를 파랑-하양-빨강으로 바꾸었다. 각각의 색은 자유, 평등 그리고 우애를 상징한다. 자유 평등 우애는 자코뱅 혁명정부 시기 프랑스의 표어였으며 현재에도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표어다.

삼색기가 지정되기 전에는 왕실 문양이 그려진 파랑-노랑 배색기나, 혹은 하얀색 깃발을 사용하였지만, 현재는 일부 극우 성향 복고주의자들을 제외하면 사용되지 않는다.

국장

프랑스의 국장
지위 공식 국장

프랑스의 국장은 보나파르트 왕가의 국장이기도 하다.

국가


출발의 노래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때부터 국가로 사용되어왔다. 기존에는 라 마르세예즈가 국가로 조금 더 널리 불려져왔었으나 지나치게 호전적이라는 이유로 출발의 노래로 국가가 바뀌었다. 하지만 일부 급진적인 시민들은 라 마르세예즈를 더 선호하기도 하고, 출발의 노래와 함께 거의 공동 국가 취급을 받는다. 동시에 라 마르세예즈는 왕정에 반대하는 정치 집회에 단골로 사용되어 공화파를 대변하는 곡으로도 여겨진다.

한편 출발의 노래는 공식 국가로서 왕당파와 제국, 그리고 보수파를 대변하는 국가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이 노래를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어쨌든 이 노래는 공식 국가로서 불려지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 사이에서는 라마르세예즈의 인기가 더 높고 실제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알제리는 시민의 70.3%가 이 노래에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 200년간 불러온 국가에 대한 애착 때문인지, 프랑스 전체에서 출발의 노래 대신 라마르세예즈가 국가가 되어야한다는 의견은 29.4%에 그쳤고 현상 유지 여론이 50%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표어

공식 표어는 Liberté, Ordre Public (자유, 공공 질서)이다. 하지만 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자유, 평등, 우애) 역시 마찬가지로 많이 사용된다. 현대에 들어서는 사실상 두개가 모두 표어로 받아들여진다. 자유 평등 우애는 로베스피에르가 쓴 말이고 실제로 로베스피에르 혁명 공화국 정부에서 사용되었다. 이 때문에 나폴레옹 시절에는 "자유, 공공 질서"로 바뀌었지만, 1800년대 후반 들어 노동자들의 사회적 참여가 활발해지며 로베스피에르 재평가론 붐이 일었고, 이에 따라 1900년대 초반 프랑스 정부는 Liberté, Ordre Public 뿐만 아니라 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 역시 국가의 공식 표어로 인정했다. 다만 사용 빈도는 Liberté, Ordre Public이 조금 더 많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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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트 왕국
프랑스 왕국 아키텐 공국
노르망디 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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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국
근대 프랑스 혁명 정부
프랑스 제1제국 (보나파르트 제국)
프랑스 제2제국
독일 점령기 파리 코뮌
프랑스 제3제국
현대 프랑스 제4제국
프랑스 제5제국

고대 프랑스는 갈리아의 일부였으며, 로마 제국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정복당한 후 로마의 일부였다. 481년 프랑크 왕국이 설립되었으며 486년 갈리아 지방을 정복했다. 다른 게르만족 국가들은 제대로 된 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멸망하였지만, 프랑크 왕국은 히스파니아 지방으로 쳐들어 온 이슬람 제국을 무찌르고 교황청과 협조하여 안정적인 체제를 만들었다. 카롤루스 대제가 죽고 프랑크 왕국이 분열되어 987년 위그 카페 대관을 통해 위그 왕조가 세워져 프랑스 왕국이 건국되었다.

1453년 백년전쟁에서 영국을 상대로 승리하였고 1500년에 이르면서 인구만 15,000,000명에 이르는 갈리아 내륙 대부분의 프랑스의 치하에 들어갔다. 16세기에는 칼뱅 개혁교회 신자들의 수가 증가하였으며 더불어 30년 전쟁 승리로 본격적인 전성기에 맞이하였으나, 17세기와 18세기에 들어서 상공업에 종사하던 개혁교회 신자들이 이탈하며 세수가 줄어들었다. 또한 루이 14세, 루이 15세 등 여러 제정 군주들이 세율을 확대한 것에 많은 하층민들이 분노를 품고 18세기 말 혁명을 일으켜 왕정을 폐지하고 자코뱅 혁명정부를 결성했다.

그러나 자코뱅 정부 역시 지나친 폭정으로 인해 민심을 일었고 자코뱅당이 실각한 이후 지롱드를 비롯한 각종 세력이 난립하는 와중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정권을 뒤엎고 황제가 되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유럽 각국과 전쟁을 벌여 제1차 대유럽 전쟁에서 러시아를 정벌하여 승리하였으며, 몇년 뒤인 1830년대 중반에도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다른 국가들을 무너트리고 제2차 대유럽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제2차 대유럽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보나파르트 왕조 체제가 굳어졌고 정치적으로 안정되었으나 동시에 정치적으로 박해를 받던 자코뱅파들은 신흥 사상으로 떠오르던 사회주의 사상과 결합하여 1850년대 프랑스 공산당을 결성하였다. 또한 1848년 각지에서 벌어진 노동자 총파업 역시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프랑스는 산업혁명의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내부에서 혼란이 증폭되었다. 결국 이로 인해 1871년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예상치 못하게 프로이센에게 패하게 되었다.

보불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공산혁명 등 여러 사건을 겪었지만, 1880년대 들어서는 노동자 참정권, 여성 참정권 등 여러 근대적 시민 권리를 인정하여 정치적 안정을 되찾았고 또한 공업 발전과 식민지 경영을 통해 1830년대 못지 않은 큰 부흥기를 맞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군은 독일군을 무찌르고 전쟁에서 승리하였으며 이때 루르 지역의 땅을 가져가 큰 공업지대를 손에 넣었다.

대공황 때에는 식민지 블록 경제로 경제 위기를 벗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에게 연패해 파리에서 30km 떨어진 곳까지 밀린 적은 있었지만 이때도 마찬가지로 독일군을 꺾고 승리하였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는 EU 창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 명실상부한 초강대국의 지위에 올랐다. 1968년 파리에서 노동자들과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는 등 사회적인 혼란이 완전히 사라진건 아니지만, 1970년대 이후 프랑스는 인권적으로든 사회적, 경제적으로 모두 점차 발전하였다.

행정구역


프랑스의 레지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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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레지옹
지도 번호 레지옹 주도 번호 레지옹 주도
1 일드 프랑스 파리 12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마르세유
2 브르타뉴 13 에드 프랑스 밀란
3 페이드라루아르 낭트 14 제네바 제네바
4 노르망디 루앙 15 노르드 리탈리
5 오드 프랑스 16 코르시카 아작시오
6 그랑테스트 스트라스부르 17 카랄론 바르셀론
7 부르고뉴프랑슈콩테 디종 18 바스크 빌바오
8 상트르발드루아르 오를레앙 19 레나니 알르망 디셀도르
9 누벨아키텐 보르도 20 왈롱 브뤼셀
10 옥시타니 툴루즈 21 플랑드르 페이 바 로테른
11 오베르뉴론알프 리옹 22 프랑스령 알제리 알제르

22개의 레지옹과 그 산하의 데파르트망으로 나뉘어져있다. 레지옹은 광역자치단체고, 데파르트망은 기초자치단체이다. 그 밑에 캉통과 같은 작흔 행정구역이 수천개 있지만, 중요한건 레지옹데파르트망이다. 레지옹과 데파르트망의 행정 수반은 주민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한다. 또한, 레지옹과 데파르트망의 수장은 상원 의원으로 지명되기도 한다.

프랑스는 명목상으로는 단일국가이나 사실상 연방국가나 다름 없다고 평가받는데 이는 레지옹이 가지는 많은 권한 때문에 그러하다. 레지옹은 독자적으로 예산을 세울 권리를 가지며, 주의회를 구성하고, 중앙정부의 법률을 보류할 권한을 가진다. 때로는 중앙정부가 레지옹의 권한을 위배한다고 판단하면 상원의원에 위헌 제기를 하여 법안을 철회시킬 수도 있는 등 프랑스 내에서 레지옹이 가지는 권한은 절대적이다.

반면 데파르트망의 경우는 작은 도시나 지역을 대표한다는 점 외에는 특별한 권한을 가지지 않는다.

프랑스령 알제리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는 외부영토이나, 사실상 레지옹으로서 간주되며 프랑스 본토와 동등한 권한을 누린다.

외부 영토

프랑스 제국의
외부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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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현재까지 식민제국을 경영하고 있는 몇 안되는 나라지만 1960년대 이후로는 프랑스 식민지들이 사실상 독립 형태로 프랑스에 예속되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도 베트남이나 세네갈 등의 나라에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하지 않고, 또 조세도 프랑스 본토와 전혀 다른 법으로 적용된다. 말이 식민지지 사실상 자치령인지라 거의 다른 나라고, 단지 프랑스의 기본적인 법률만 따를 뿐이다. 미국-푸에르토리코와 비슷한 관계이다. 다만 프랑스 외부영토에는 명목상 총독도 존재하고, 자치 의회 선거를 치루지면 프랑스 본토의 정당이 출마해서 다수의 의석을 차지하기도 하는 등 완전한 외국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외부 영토는 독자적으로 의회를 구성하며, 프랑스 국왕의 지배는 받지만 정부 수반을 따로 선출하며 프랑스 총리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또한 외부 영토 자치 의회에서는 독자적인 법률을 통과시켜 이를 외부 영토 내에 적용시킬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프랑스 내각 하의 기관인 외부영토 담당부와 프랑스 상원에서 합헌 결정을 거쳐야한다.

몇몇 나라들은 독립을 요구하기도 했고 실제로 아프리카의 수많은 식민지들이 2차대전 이후 독립하였다. 베트남의 경우에는 독립전쟁에서 패함에 따라 프랑스의 식민지로 복귀했고 알제리 역시 마찬가지다. 베트남의 경우에는 독립 여론이 40% 이상이지만 여전히 잔류 여론이 더 많은데, 프랑스에서도 좌파 정권이 오래 집권하면서 식민지들의 편의를 많이 봐주고 베트남, 세네갈 등이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준지라 독립 여부와 상관 없이 베트남 등 다른 식민지 주민들이 프랑스에 가지고 있는 감정은 매우 호의적이다.

프랑스 외부 영토의 인구 총합은 153,333,360명으로, 프랑스 전체 인구의 절반이 조금 안된다. 다만 프랑스 통계청은 1960년대 이후로 알제리를 제외한 다른 해외 영토의 인구를 자국 인구에 포함시키지 않고 대신 외부 영토 인구로 따로 계산하고 있다. 이는 프랑스 본토와 다른 프랑스 외부 영토만의 고유한 세무 및 국회의원 선출 방법 때문이다.

프랑스령 알제리는 사실상 프랑스와 동화되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외부영토지만 사실상 레지옹의 하나로 다름 없게 취급되고 따라서 지방자치 권한 역시 독자적인 법률을 만들고 적용할 수 있는 다른 외부영토에 비해 적다. 알제리 내에서도 이에 대한 불만이 조금 있는데,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은 알제리의 권한 확대를 주장하는 정당이다.

정치

황실


프랑스 제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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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입헌군주제 국가로서 황제가 국가원수이다. 1789년까지는 전제군주제였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황제 즉위까지는 공화제였으며 이후로는 꾸준히 입헌군주제를 유지해왔다. 현재 국왕은 뤼시앵으로 보나파르트 황가의 8번째 황제다.

프랑스는 오랜 기간동안 군주제를 유지했지만 왕가는 자주 교체되었다. 제대로된 첫번째 왕조는 카페 왕조였고 이후 발루아 왕조로 바뀌었다. 전성기 때에는 브루봉 왕조였다. 1789년 대혁명으로 브루봉 왕조가 폐위된 이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황제에 오르면서 보나파르트 왕조의 시대를 열었다. 보나파르트 왕조는 현재 유럽의 가장 대표적인 황가로서, 스페인을 비롯한 여러 유럽 입헌군주제 국가의 왕조이다. 이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벌인 제1차 대유럽 전쟁의 영향이다. 한편으로 이탈리아나 그리스, 러시아 등 보나파르트 황가가 지배했던 몇몇 나라는 혁명이나 전쟁으로 공화제로 체제가 바뀌기도 했다.

프랑스 황가는 전국민적인 존경을 받는 왕가이며 특히나 초대 황제인 나폴레옹 1세는 현재까지 많은 존경을 받는 황제다. 특히나 노년층을 중심으로 황가에 대한 지지가 높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프랑스 대혁명 정신에 위배된다면서 보나파르트 황가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꾸준히 있어왔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공산당은 당 강령으로 왕실 폐지를 주장했었으며, 1950년대 노선 변화 이후에도 여전히 황가의 권리 축소를 주장하고 있다. 생태민주당이나 알제리 민족해방전선 같은 더욱 급진적인 진보 정당들은 공화제 전환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몇몇 친공화적, 반왕정적 의견들을 수용하여 프랑스 황실의 권한은 다른 여러 입헌군주제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줄어들고있다. 과거에는 의회해산권, 군사통솔권, 총리해임권을 가졌었으나, 현재 군사통솔권은 형식적인 권리로 제한되었고 의회해산권은 1968년 상원해산권으로 국한되었다가 1994년 이마저도 빼앗겼다. 총리해임권은 진작에 1930년대부터 반민주적이라는 이유로 폐지된지 오래이다.

이렇듯 반황정파 국민들이 많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실은 여전히 프랑스 국민들에게 매우 상징적이고 존경받는 존재다. 황실 폐지 요구 여론은 언제나 30%를 넘기지 못하며 60% 이상의 국민들이 황실을 지지해, 영국만큼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왕실 체제를 자연스러운 문화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또한 문화적 자부심이 강력한 프랑스 내에서 보나파르트 황가는 프랑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지지를 받는 측면도 있다.

나폴레옹 1세는 1804년부터 1838년까지 즉위했으며 나폴레옹 2세는 1870년까지 즉위했다. 나폴레옹 3세는 1873년까지, 조제프 1세는 1903년까지, 조제프 2세는 1932년까지 즉위했으며, 나폴레옹 3세나폴레옹 4세는 각각 1932년에서 1988년까지, 그리고 1988년부터 2012년까지 즉위했다. 나폴레옹 4세는 사망하지 않았으나 건강 악화를 이유로 2012년 왕위를 태자인 뤼시앵에게 물려주고 상왕으로서 퇴위했다. 뤼시앵은 2021년 현재까지 황제로 즉위하고 있다.

총리


프랑스 제국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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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POLEON I IMPERATOR ERA SCRIPTOR
초대
조르주 펭송
제2대
브누아 렝
제3대
아라 뇌베레이
NAPOLEON II IMPERATOR ERA SCRIPTOR
제3대
아라 뇌베레이
제4대
아돌프 루아
제5대
브라앙 뇌용
제6대
레오넬 메스메르
제7대
미셸 르플레
제8대
몽트 베탕쿠르
제9대
레옹 르 메릴
제10대
레몽 발라뒤르
제11대
에두아르 에로
NAPOLEON III IMPERATOR ERA SCRIPTOR
제11대
에두아르 에로
대행
에디트 페테르게르부아
제12대
미셸 보비니
제13대
누와지 메르디
제14대
세스텅 플라카르
제15대
미카엘 그루스
제16대
장 피에르 델마스
제17대
다니엘 퓌네스
LOSEPHVS I IMPERATOR ERA SCRIPTOR
제17대
다니엘 퓌네스
제18대
키르치크 로카르
제19대
피에르 맥키
제20대
몰리에르 갱스부르
제21대
귀스타브 르클레르
제22대
알랭 프르베르
제23대
피에르 돌토
제24대
프랑수아즈 노아
LOSEPHVS II IMPERATOR ERA SCRIPTOR
제24대
프랑수아즈 노아
대행
코르 쉬르뱅
제25대
프랑수아 드오트클로크
제26대
자크 드브레
제27대
프랑수아 드오트클로크
제28대
파트릭스 드 루몽
제29대
루이 샤를루아
NAPOLEON IV IMPERATOR ERA SCRIPTOR
제29대
루이 샤를루아
제30대
기오 페트릭스토간
제31대
르네 밀랑
제32대
사디 팔레르모
제33대
쥘 르브룅
제34대
벵상 두메르
제35대
엑상 발레도
제36대
장 산상드뉘베르
제37대
뫼조 애글레
제38대
샤를 리앙
제39대
아르투아르 렌
NAPOLEON V IMPERATOR ERA SCRIPTOR
제39대
아르투아르 렌
제40대
루앙 리모주
제41대
브장송 낭스
LUCIANVS IMPERATOR ERA SCRIPTOR
제41대
브장송 낭스
제42대
조르주 블루아
프랑스 황제 · 부총리 · 알제리 총독 · 알제리 정부수반

프랑스는 내각책임제 및 의원내각제 국가로서 총리가 내각과 정부를 이끈다. 프랑스의 총리는 사실상의 국가원수이자, 내각의 수장으로서 내각을 이끈다. 총리는 사실상의 군통수권자이자, 모든 레지옹을 이끄는 준연방제도의 수장이다. 법상으로 총리는 황제를 보조하는 역할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원수나 다름 없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총리는 하원에서 선출된다. 과거에는 상원에서도 선출되었으나 현재는 하원에서만 투표로 선출한다. 전체 재적 인수의 1/2 이상이 동의할 시 총리로 선출되는데 대체로는 다수당에서 총리가 배출된다. 다수당이 아니더라도 여러 당이 연정하여 과반을 넘으면 연정 정당에서 가장 큰 당의 당수가 총리가 될 수 있다. 총리가 급작스럽게 사퇴하면 부총리가 총리 대행을 맡는데, 이때 부총리는 대게 제2당의 당수이다.

총리는 내각 관료들을 임명하거나 해임할 권한을 가지며, 특별 담당 부처를 설립할 권한을 가지고, 평시에 군사권을 통솔하며, 레지옹의 수장으로서 레지옹의 정책들을 총괄한다. 또한 총리는 국회를 해산할 권한을 가진다. 의회 해산권은 1968년 황제가 하원 해산권을 잃으면서 총리에게만 할당된 권한으로 남게 되었다.

반면 하원에서 3/5 이상이 불신임에 동의할 시에 불신임 안건이 통과되어 총리는 즉각 권한을 잃게 된다. 이때 총리는 의회를 해산해 다시 총선을 치뤄 과반의 표를 얻고 총리직에 오를 수 있다. 1932년까지는 황제가 총리 해임권을 가졌지만 사실상 폐지되었고 1968년 개헌을 통해 최종적으로 황제의 총리 해임건이 사라졌다.

입법부


프랑스 국회의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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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블루아 내각
(2018 - )
여당

프랑스 사회당
42석 · 158석

프랑스 공산당
23석 · 50석
신임과 보완

생태민주당
3석 · 23석

기독교민주당
11석 · 19석

알제리 민족해방전선
5석 · 11석
야당

갈리아 민족당
42석 · 153석

보수인민당
13석 · 60석

프랑스 자유민주당
3석 · 14석

프랑스 전선
0석 · 9석
무소속 3석 · 3석
상원 145석 · 하원 500석

프랑스는 국회가 상원과 하원으로 이뤄져있는 양원제 국가이다.

공식 명칭이 원로원(Sénat)인 상원의 역할은 독일 상원의 역할과 비슷하다. 프랑스의 상원은 중앙 의사 기구라기보다는 레지옹의 의사를 결정하는 시스템에 더 가까운데, 이 때문에 프랑스 상원에서는 소속 정당이나 회파보다도 소속 주가 더욱 중요하다. 레지옹에서는 6명이나 7명의 의원을 대표로 내보내며, 상원 의원은 레지옹의 주지사나 의원으로 이뤄진다. 또는 공직자가 아니더라도 레지옹 정부 혹은 레지옹 의회가 추천한 사람이라면 상원 의원이 될 수 있다. 21개 레지옹에서 6~7명씩 내보내는 것이 원칙이지만, 프랑스령 알제리는 헌법 개정을 통해 외부 영토임에도 사실상의 레지옹 취급을 받아 마찬가지로 상원 의원을 선출한다.

프랑스 상원의 표결은 레지옹 의원 별로 이뤄진다. 한 레지옹의 의원 6명 또는 7명이 전부 찬성했으면 그건 찬성표 한표로 간주되며, 전부 반대하면 반대한대로 반대표 한표로 집계된다. 총 22표가 모이는데 2/3의 레지옹이 동의한 의견으로 법안이 가결된다. 한편 6~7명중 2명 이상이 안건에 반대했을 경우에는 각자 합의에 이르러야하며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해당 레지옹의 표는 기권으로 처리된다. 상원 의원의 임기는 원칙상으로는 무제한이지만 관습적으로 5~6년이다.

한편 하원은 상원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가진 입법기구로서 법안을 통과하며 동시에 심사한다. 상원으로 올라가는 것은 각 레지옹에 관련된 사안 뿐이며 중앙 정부와 관련된 일은 하원과 하원 상임이사회에서 끝이 난다. 하원의 공식 명칭은 프랑스 국민의회(Assemblée nationale)이다. 하원은 총 50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전원 지역구 의원으로 선출된다. 국민의원들의 임기는 4년지만 의회 해산에 따라 그보다 더 줄어들 수도 있다.

하원에서 총리가 선출된다. 총리는 이론상 상원 의원 출신일수도 있지만, 1983년 이후 상원에서 총리 선출권이 사라진 이후에는 이런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하원은 총리의 선출권과 마찬가지로 해임권 역시 가지고 있어 불신임 투표에서 재적 500석의 3/5 이상 동의를 받을 시 총리를 쫓아낼 수 있다. 반면 상원은 총리의 선출권과 해임권 모두 가지고 있지 않고 단지 하원에 불신임을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하원은 정부 각료에 대한 심사와 국정 감사의 역할도 가져, 폴란드나 미국과는 달리 상원에 비해 하원의 힘이 무척이나 강력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상원 의원과 하원 의원의 겸직은 금지된다. 또한 한국과 마찬가지로 지역 단체장과 하원 의원의 겸직은 금지되지만, 상원 의원은 레지옹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레지옹의 주지사 혹은 주의원을 겸직하는 것이 허용되고 또 매우 흔하다.

정당 구도


보혁 양당 구도가 강한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프랑스는 거의 4.5당제에 가까운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프랑스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공산주의자(Communiste), 사회주의자(Socialiste), 민족주의자(Nationaliste) 그리고 보수주의자(Conservateur) 구도로 나뉘어있다. 각각이 프랑스 공산당과 사회당, 갈리아 민족당, 보수인민당이 대표하는 사상이다. 이 네개의 정당들은 1945년 이후 현재까지 1당부터 4당까지의 지위를 독식하면서 프랑스의 정치를 주물러왔다. 다만에 이중 프랑스 공산당과 프랑스 사회당이 좌파 연합으로 연정하는 경우가 잦고, 갈리아 민족당과 보수인민당은 우파 연합으로 자주 연정하여서 현재에 들어서는 사실상 2.5당제나 다름 없다는 말도 나온다.

프랑스 공산당은 유럽에서 가장 큰 공산당이며, 왠만한 동구권 공산당보다도 더 탄탄하고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또한 동구권의 해체 이후 몰락한 이탈리아 공산당 등 다른 나라의 공산당과는 달리 프랑스 공산당은 꾸준히 30석 이상의 의석을 얻었었고,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침체기를 겪었으나 리먼 사태 이후 20대들의 표를 흡수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프랑스 공산당은 10번이나 연립여당에 참여한 경험이 있고, 총리도 2명이나 배출했었다. 그러면서도 군주제 축소 주장이나 가톨릭 인정, 유럽공산주의 수용 등 유화적인 모습을 보여 정통 공산주의자들에게는 비판받기도 하지만, 현재까지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고 있고 때로는 급진적인 주장이 나오기도해 멸칭이 "크렘린의 장녀"다.

프랑스 사회당은 민주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진보 정당이며 동시에 프랑스 최대 정당이다. 당원수로는 공산당에 밀리지만, 의석수는 1968년 이후 현재까지 무려 50년 넘게 1당 지위를 유지해왔다. 또한 19세기때부터 활동해온 유서깊은 정당이기도 하며, 레프 트로츠키를 비롯한 여러 인사들이 입당하기도 하였다. 사회당은 여전히 1960년대 후반의 좌파적인 기조를 유지해 스위스 사회당과 마찬가지로 반자본주의 성향을 띄었으며, 1990년대 들어 활발히 일어났던 제3의 길 역시 완강히 반대했던 강경 좌파 성향이었다. 1983년부터 1987년까지 잠깐 유화적 노선으로 바뀌어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기도 했지만 그뿐이었고 그 이후로는 현재까지 정통 좌파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갈리아 민족당은 1968년 68운동 이후 몰락한 보수인민당을 대체해 치고 올라온 보수 정당이다. 갈리아 민족당은 파시즘 성향의 인사들이 창당한 정당이었기에 우익~극우 노선을 띄었지만, 1960년대 초반 급격한 좌경화를 겪었고, 1968년 총선에서 처음으로 제2당이 된 이후에는 사회자유주의 성향의 인사들이 유입되어 1970년대 이후로는 중도~중도우파, 민족자유주의 성향이다. 민족주의 성향이라는데에서 기본적으로는 우파, 보수 성향이지만,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진보적인 성향을 띌때도 많다. 대표적으로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때는 오바마를 지지했고, 2020년 미국 대선때도 바이든을 지지해서, "이게 뭔 보수야?" 하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그러나 민족주의 성향은 강하기 때문에 2015년 난민 수용을 반대하고 난민 쿼터제도 반대하는 등 외교적으로는 확실한 보수 우파 성향을 보인다.

보수인민당은 정통 우파 계열로 1968년까지만해도 제2당이었고 1967년에는 제1당이 되기도 했지만 1968년 68혁명의 유탄을 맞고 처절하게 몰락해 현재까지 갈리아 민족당에게 2당 지위를 내주고 있다. 본래 보수인민당이 중도우파였고, 갈리아 민족당이 우파 성향이었지만, 1960년대 중후반 이후 이게 뒤집어져서 오히려 최근에는 보수인민당이 보수적인 성향을 띌때가 많다. 보수인민당은 동성애 권리 확대에 소극적이며, 신자유주의를 지지하고 더 많은 경제적 자유를 주장한다. 외교적으로는 갈리아 민족당보다는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해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였고 또 유럽연합을 경제 자유주의의 측면에서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기독교민주주의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 외에도 생태민주당, 알제리 민족해방전선, 자유민주당, 프랑스 전선 등 여러 군소정당들이 있지만, 이 4개의 메이저 정당을 제외하면 영향력은 미미하며 가끔 군소도시의 시장직을 차지하거나 연정 파트너로 참가하는 것 외의 영향력은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이들 정당이 캐스팅보트로서 장관 자리를 얻어내거나 또는 주장하는 바를 관철시키기도 하는데, 2019년 총선 이후의 사회당 내각에서 기독교민주당이 이런 방식으로 지분을 늘렸고 1980년 총선 이후 기독교민주당과 자유민주당이 같은 방식으로 장관직을 여럿 얻어낸 바 있다.

경제

프랑스는 현재 세계 3위의 경제 규모를 갖추고 있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중 하나다.

사회

교육

5-4-3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1학년부터 시작해서 7학년까지가 초등학교, 6학년부터 3학년까지가 중학교, 2학년부터 0학년까지 고등학교다. 0학년을 끝마치면 바칼로레아라는 입시 시험을 봐서 대학에 입학한다. 프랑스의 대학 진학률은 40%대 초반이다.

프랑스의 대학은 크게 에콜(직업전문학교), 그랑제꼴(특수대학교), 위니베르시테(정규대학교)로 나뉘어져있다. 더불어 교육 평준화가 이뤄진 나라이다. 1968년 68혁명 이후 소르본을 위시로 하던 학벌이 사라졌고 대학간 서열이 사라졌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말이 교육 평준화지 실질적으로는 엘리트주의적인 교육이 심한 국가로도 평가받는데 그랑제꼴에 입학하는 4%와 나머지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지적이 많다. 전후 프랑스 역대 총리중 2명을 제외하면 모두 다 그랑제꼴을 나온 것은 물론이며, 현재 프랑스 하원 의원 500명중 약 1/5에 달하는 96명이 파리정치대학을 나왔을만큼 학벌이 한국보다도 심한 편이다.

그래서 현재 보수인민당 같은 우파 정당들은 대학평준화 정책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위니베르시테나 에콜까지도 서열화하여 전문 인력을 더 많이 창출해야한다고 한다. 반면 프랑스 공산당은 아예 그랑제꼴을 폐지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프랑스 내 여론은 정확히 1/3씩 갈린다. 대학 서열화를 바라는 사람이 1/3, 완전 평준화를 바라는 사람이 1/3, 그리고 관심 없는 사람이 1/3정도 된다.

일단 대학에 입학하면 학사 과정 3년, 석사 과정 2년 그리고 박사 과정 3년으로 최대 8년간 대학교를 다니게 된다. 학사 과정에서 약 30% 정도의 학생들이 성적 미달로 출학당하기 때문에 졸업도 어려운 편이다. 대학교 3학년에 들어오면 왠만하면 다 졸업한다.

종교

 프랑스 제국 전체 종교 인구 조사 (2016)
비율
기독교
  
47.5%
이슬람
  
10.4%
불교
  
2.3%
힌두교
  
1.0%
기타
  
2.0%
무종교
  
37.8%
 프랑스 제국령 알제리 전체 종교 인구 조사 (2016)
비율
이슬람
  
56.3%
기독교
  
18.3%
불교
  
1.3%
기타
  
1.0%
무종교
  
23.1%

종교는 기본적으로 기독교가 우세이며, 그중에서도 가톨릭이 압도적인 우세를 보인다. 전체 기독교 신자중 비율은 개신교가 7.4%고 90.2%가 가톨릭 신자이다. 1800년대 중후반까지 국가가 공식적으로 가톨릭을 국교로 밀어줬고 현재도 정치인들이나 기업가들 같은 사회 고위직중 가톨릭 신자들이 많아, 앞으로도 가톨릭의 영향력은 꾸준이 유지될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의 영향력은 1900년대 초반에 비하면 현저히 줄어들었다. 종교 세속주의의 광풍에 더해, 1980~90년대 이후 프랑스 내에서 가톨릭 성직자들에 의한 아동 성추행 문제가 불거졌고, 사회적으로도 이슬람교나 개신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는 문화가 확산되었기 때문에, 1900년대 초반에 비하면 현재의 가톨릭은 매우 개방적이며 진보적이고 세속적인 모습을 보인다. 1950년대 프랑스 가톨릭교회가 "생활속의 가톨릭"을 강조한 이후 급격한 세속화의 물결을 타서 미국과 대비했을때 프랑스 가톨릭교는 성소수자나 여성에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세속화는 역설적으로 국민들이 가톨릭에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인식을 낮추게 만들어 아직까지 프랑스 내에서 가톨릭이 어느정도의 영향력을 끼치게 하고 있다.

가톨릭 외에 다른 종교들은 대부분 영향력을 잃는 추세다. 이슬람교는 알제리 식민지 본토 내에서조차 신도 비율이 60% 이하로 떨어져, 아랍권 내에서 가장 이슬람교 신자 비율이 적은 지역이 되었다. 이 때문에 이란이나 사우디 등 다른 아랍권 국가들은 프랑스령 알제리를 악마의 영토라며 혐오하기도 한다. 기독교는 꾸준한 신도 감소를 겪고 있으며 이는 성공회나 정교회 등 다른 기독교 분파 역시 마찬가지다. 동양 종교는 1960년대 히피 열풍을 타고 잠깐 20대들 사이에서 인기몰이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0년 현재는 1960년대와 비교했을때 불교 신자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동양 종교 신자의 비율이 급격히 감소했다. 불교는 그래도 완만한 상승세를 타고 있어 종교중에서는 유일하게 신도 비율이 늘어났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무종교인들의 비율이 매우 높아져, 2030년 경에는 무종교인 수가 기독교인 수를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

문화

음악

프랑스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 비해 클래식에 큰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현대 음악 역시 영국에 비해 상업적으로 성공한 아티스트들을 잘 배출하지 못했다. 프랑스 클래식 음악계는 체코나 러시아 같은 동구권에도 밀리는 수준인데 그나마 정부가 지원하는 파리 오케스트라는 수준급은 되지만 런던이나 빈, 베를린의 그것과는 비교할만한 대상이 아니다.

그래도 낭만주의 시대에는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여러 클래식 음악가들이 나왔는데, 대표적으로 클로드 드뷔시와 생상 그리고 조르주 비제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음악가들도 당시 사회에서는 묻혔고 현재까지도 프랑스는 클래식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

그나마 1960~70년대 몽땅 등 여러 샹송 가수들이 인기를 얻기는 했지만 대중음악에 있어서 프랑스는 매우 부진하였다. 1965년 프랑스 전체에서 팔린 앨범중 프랑스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17%였는데 이는 단일 음악가(비틀즈, 전체 72%)에도 밀린 것이었다. 1970년대에도 핑크 플로이드나 레드 제플린 등 이웃 영국 음악이 프랑스 음악계를 초토화하는 등 굴욕을 맛봤다. 거기다가 1980년대에는 옆나라 독일, 노르웨이, 스위스와 다르게 헤비 메탈 씬이 제대로 정착하지도 못해, 영국 미국은 물론 독일에게도 점유율에서 밀리곤 했다.

한편 1990년대 들어 다프트 펑크 등 여러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이 자국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어느정도의 음악성을 인정 받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현재 프랑스 내에서는 불어로 된 노래들이 인기가 있지만 이는 대부분이 해외 음악가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프랑스만의 음악이라는 개념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이 불어곡들마저 프랑스를 제외한 해외에서는 경쟁력을 갖추지는 못하고 있다.

자국 뮤지션들 중에서는 그래도 힙합이 인기가 많은 편이고 흑인들의 비율이 백인 래퍼들의 비율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실 이건 백인 록/팝 씬이 여전히 주류를 차지하는 영국을 제외하고서 서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는 특징이긴 하다.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