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전쟁 (푸른 오얏꽃2)

Agnarrsdottier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5월 14일 (금) 16:12 판
한일전쟁 · 신사왜란
Korean-Japanese War
韓日戰爭 · 辛巳倭亂
제2차 세계 대전의 일부
기간 1942년 5월 13일 ~ 1945년 8월 15일
장소 동해, 제주도, 영남지방, 쓰시마 섬, 규슈, 주고쿠 등
원인 표면적 원인: 4.20 복강 사건의 최후통첩을 대한조선국이 무시함
근본적 원인: 미일 전쟁으로 인한 일본 제국의 물자 충당, 일본 제국의 대륙 진출 야욕
결과 연합군의 승리
영향 대한조선국과 일본이 제1세계에 속하게 됨
독도 조약 체결
한일 양국 국민의 반감이 굳어지게 됨
교전국 연합국 추축국
대한조선국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령 인도
소련(1945. 8. 8-)
일본 제국
남중화국
지휘관 연합국 추축국
정부 수반
국왕 장조
내각총리대신 이범석
지휘부
합참대신 지청천
왕립육군참장 김홍일
왕립해군참장 손원일
왕립공군참장 노백린
작전사령관 최용덕
육군 지휘관
제1군 사령관 유동열
제2군 사령관 김종오
제3군 사령관 채형서
제5군 사령관 황학수
제6군 사령관 조경한
제7기동군 사령관 송호성
제8군 사령관 박진동
영남전선 총사령관 정한성
영남전선 사령관 윤덕신
부·마전선 사령관 임학규
구주전구 사령관 장준하
해군 지휘관
제1함대 제독 신성모
동해함대 제독 민시창
제2함대 제독 김영철
제주함대 제독 한지성
제3함대 제독 양승곤

연합국 지휘관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제33대 대통령 해리 S. 트루먼
제8군 사령관 로버트 아이첼버거
제1군 사령관 존 B. 콜터
제10군 사령관 에드워드 알몬드
제9군 사령관 프랭크 W. 밀번

국왕 조지 6세
제61대 총리 윈스턴 처칠
제62대 총리 클레멘트 애틀리
제27보병여단 지휘관 배질 오브리 코드
제29보병여단 지휘관 프랜시스 페스팅

공산당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
극동군 총사령관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제1극동전선군 사령관 키릴 메레츠코프
제2극동전선군 사령관 막심 푸르카예프
트란스바이칼전선군 로디온 말리놉스키
정부 수반
일왕 히로히토
제40대 총리대신 도조 히데키
제41대 총리대신 고이소 구니아키
제42대 총리대신 스즈키 간타로
육군 지휘관(임나원정군)
임나원정군 총사령관 스기야마 하지메
임나원정군 참모장 다카하시 단
제15방면군 사령관 이카가키 세이시로
제16방면군 사령관 고즈키 요시오
제17방면군 사령관 이하라 준지로
제18방면군 사령관 나카무라 고타로
제19방면군 사령관 가토 하쿠지로
제20방면군 사령관 시카타 료지
육군 지휘관(관동군)
관동군 총사령관 우메즈 요시지로
관동군 참모장 요시모토 사다카즈
제11방면군 사령관 야마다 오토조
제12방면군 사령관 가사하라 유키오
제13방면군 사령관 하타 히코사부로
해군 지휘관
임나방면함대 사령장관 요나이 미쓰마사
구사카 진이치
카하라 요시하라
후쿠도메 시게루
도즈카 미치타로

추축국 지휘관
황제 아이신기오로 푸이
총리대신 장징후이
궁내부 대신 아이신기오로 시치아
2집단군 총사령관 장징야오
병력 4,800,000명 이상
1,380,000명
150,000명
80,000명
50,000명
30,000명
12,000명
8,000명

총 6,510,000명

5,700,000명
20,000명
총 5,720,000명
피해 규모 940,000명 전사
1,002,000명 부상
4,000여 명 실종
민간인 38,000명 사망
120,000명 전사
310,000명 부상
200명 전사
500명 부상
1,950명 전사
2,700명 부상
6,000명 전사
7,290명 부상
1,200명 전사
2,780명 부상
1,850명 전사
2,540명 부상
930명 전사
1,230명 부상
1,060,000명 전사
1,200,000명 부상
5,000여 명 실종
민간인 50,000명 사망
2,500명 전사
4,000명 부상

개요

한일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선 중 하나로,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동해 일대와 영남 지방, 관서 지방을 무대로 대한조선국과 일본 제국이 벌인 전쟁이다. 넓게는 국민혁명군과 협동한 남중국 전선 및 잠수함을 통한 대한조선국의 태평양 활동을 포함한다.

​한일 전선 개전은 1942년 5월 13일 일본 제국 해군이 제주도에 위치한 조선 왕립 해군함대 기지를 기습 공격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일본군은 거제도와 진해를 공격, 부산 상륙 이후 파죽지세로 제주도와 경남 일대를 석권하고 대구, 울산, 순천까지 위협하였다. 그러나 구곡리 전투와 대한해협 해전의 패배를 기점으로 점차 하락세를 타며, 부산 공방전의 종결과 조선의 제주도 수복으로 한반도에서의 세력을 잃는다. 1944년 4월 일본은 조선의 반격으로 쓰시마 섬을 빼앗기고 본토 앞까지 내몰리게 된다. 그러나 조선에게만은 절대 항복할 수 없다며 비상식적인 행동을 거듭한 결과 한미연합군에게 후쿠오카 상륙이라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리고 조선군의 히로시마 대첩 승리, 미국의 오카야마·오사카 원폭 투하 직후 1945년 8월 15일 항복을 선언한다.

​전후 조선왕립육군, 공군, 해군은 냉전이 격화되고 중공이 팽창하기 전까지 잠시 아시아 최강의 자리를 지켰다. 특기할 점은 문명화된 지역에서 대결했던 유럽 전선과는 다르게, 역사적으로 긴 앙숙의 관계였던 한국과 일본은 야만인이라 칭해도 모자랄 정도의 비이성적 행동(포로 학대, 민간인 강간 및 살해, 문화재 파손 등)으로 인해 양국군은 박멸 식의 무자비한 전투를 벌였고, 2차대전 내에서도 상당히 처절했던 전장으로 손꼽힌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선량한 국민들이 큰 희생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