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청 황제
[ 펼치기 · 접기 ]
양청 초대 황제
憲武帝
헌무제
묘호 없음
시호 정세충영헌무황제
(正世忠營憲武皇帝)
출생 1883년 2월 12일
청나라 직예성 북경
사망 1953년 6월 2일 (70세)
하남소비에트 하남성 정주시
능묘 경릉(敬陵)
재위 청 감국섭정왕
1910년 5월 2일 ~ 1939년 12월 31일
양청 황제
1940년 1월 1일 ~ 1953년 6월 2일
[ 펼치기 · 접기 ]
아이신기오로(愛新覺羅, ᠠᡳᠰᡳᠨ ᡤᡳᠣᡵᠣ)
자이펑(載灃, ᡯᠠᡳ ᡶᡝᠩ)
부모 부친: 조문왕 애신각라 혁현
친모: 소복진 유가씨
형제 이복형 덕종 광서제
배우자 효정황후 구왈기야씨
문귀비 텅자씨
자녀 말제외 3남 7녀

개요

하늘이 청나라를 저버렸구나! 청나라의 명이 다하였구나!
(天棄淸! 淸命絶!)
헌무제가 신안대전에서 패한뒤 내뱉은 탄식

양청 초대 황제이자, 청나라의 2대 순현친왕. 광서제의 선양으로 청나라가 실질적으로 멸망한 뒤에도 각지의 친황실 세력을 이끌어 중국 섬서, 감숙, 사천 일대에서 청조를 재건한뒤 초대 황제가 되었다. 이후 서조남민북공(西朝南民北共)[1]를 구호로 내걸고 천하삼분지계를 이룩하려 하였으나 신안대전에서 공산군에게 참패한뒤 본인은 반란군에게 교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유능했던 인물이고 국가의 기반을 닦은 명군이었으나 전투 하나로 몰락하여 최후를 맞이한 군주라는 점에서 전진 세조 부견에 비교되기도 한다.

생애

각지의 복벽파 세력(특히 감숙, 섬서, 사천, 호북, 하남성 지역의)을 이끌고 청조 재건에 힘썼다. 이후 조카인 한국 만주왕으로 있던 베키투를 청 황제로 추대하려 하였으나 그가 훙하자 주위 신료의 설득에 직접 청 황제 자리에 올랐다.

  1. 서부의 청나라, 남부의 중화민국, 북부의 중국 공산당이 가른다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