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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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쟁'''({{llang|en|14 years war}})은 2320년부터 2334년까지 괴뢰 국가, [[루네바스]]가 [[사르타디움 공화국|사르타디움]]에 '''제 1차 반란의 본래 의의와 고향을 탈환당하고 쫓겨난 것에 대한 격노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전쟁이다. 초반에는 사르타디움의 군대가 준비가 되지 않된 것에 더불어, [[루네바스]]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몇 개월만에 사르타디움 국군이 전쟁 준비를 끝냈고, 이 둘은 바다 그리고 하늘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이 전쟁은 9년쯤 지나자, 전쟁은 이제 소모전의 양상을 띄우기 시작했고, 결국 2334년, [[사르타디움 공화국|사르타디움]]과 [[루네바스]]와 협상을 진행하여 종전이 맺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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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 2460년 3월 27일 ~ 2474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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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전1 교전국1 = [[사르타디움 공화국]]
| 교전1 교전국2 = [[루네바스|루네바스 제국]]
| 교전1 지휘관1 = 헬릭스 워싱턴
| 교전1 지휘관2 = 알렉산더 니콜라이쇼프
| 교전1 병력1 = 총 4999만 851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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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4년 전쟁'''({{llang|en|14 years war}})은 2460년부터 2474년까지 괴뢰 국가, [[루네바스]]가 [[사르타디움 공화국|사르타디움]]에 '''각종 분야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정당한 시위를 진압당하고도 모자라 고향을 탈환당하고 쫓겨난 것에 대한 격노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전쟁이다. 초반에는 사르타디움의 군대가 준비가 되지 않된 것에 더불어, [[루네바스]]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몇 개월만에 사르타디움 국군이 전쟁 준비를 끝냈고, 이 둘은 바다와 육지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이 전쟁은 9년쯤 지나자, 전쟁은 이제 소모전의 양상을 띄우기 시작했고, 결국 2474년, [[사르타디움 공화국|사르타디움]]과 [[루네바스]]와 협상을 진행하여 정전이 맺어졌다.
 
 
==제 5차 세계대전?==
당장 세계라고 해도 사르타디움 공화국과 루네바스 제국 밖에는 없으나, 두 국가의 영토로 보나 인구 수로 보나, 사실상 거의 총력전에 가까운 수준이었기 때문에 일부에선 이 전쟁을 두고 제 5차 세계대전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배경==
공화국 초대 대통령이 선출된 2425년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매우 불안했던 시기였고, 분명 좋은 점도 있었지만 안 좋은 점이 너무 많아서 되려 장점을 죄다 가릴 정도였다.
 
가장 큰 문제는 새로이 탄생한 유전자 돌연변이의 문제였다. 테라포밍 과정 중 발견한 플리우스 에너지는 인류 문명에게 큰 도움을 주었지만, 이 신생에너지는 새로이 탄생한 신생아들의 유전자 조직에 영향을 끼쳤다. 이 유전자 돌연변이는 체질에 따라서는 신생아의 외형을 기존의 인간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게 만들었다. 때문에 2420년에 처음으로 탄생한 유전자 돌연변이는 사회에서 수 많은 경멸과 혐오의 시선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었다. 이 유전자 돌연변이의 어미는 아이를 감싸다 혐오범죄에 의해 결국 죽게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전자 돌연변이 신생아의 수가 늘어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인류는 기존 인간의 모습을 한 구세대와 인간과는 다른 모습을 한 신세대로 구분짓게 되었다. 하지만 혐오범죄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차 늘어나게 되고, 2425년에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이 문제가 좀 나아지려나 싶었지만 해결되는건 좀처럼 없었다. 건국 초기라 경찰의 공권력도 매우 약했고, 시민들에게 믿을 것은 그들 자신밖에 없었다.
 
2445년,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지고 태어난 신세대가 차츰 성인이 되면서 여러 도시에서 신세대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멈춰달라는 시위가 일어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구세대의 기득권 세력과 무력충돌이 일어나게 되고, 사상자가 여러 명이 발생하게 된다. 이 소식이 공화국 영토 전 방면에 퍼지자 구세대들에 대한 격노로 시위대 중 과격파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러다보니 처음엔 인종차별에 대한 시위로 시작했던 것이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빈부격차, 치안 문제 등 수 많은 문제에 대해 그동안 앓고 있었던 이들이 거리로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이 때 즈음에는 더이상 구 세대건 신 세대건, 시위의 목적은 인종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변질되어 있었다.
 
초대 대통령은 이러한 많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시스템들을 도입했지만, 그 정책들은 미진하거나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인구는 수도권으로 밀집되는 형태로 이어지지만 사회적 문제들은 해결하지 않은 상태로, 수도권의 인구 밀도는 점차 늘어나게 된다. 결국 이러한 문제를 그냥 두고 보지 못한 시위대 측은 2450년 마지막으로 수도 아리스트란도에서 대규모 시위를 열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공권력과 무력충돌이 일어나게 되고, 과격파들에 의해 폭력행사까지 벌어진 이 시위는 결국 진압당하게 된다. 그런데......
 
시위대 세력은 초대 정부에 의해 결국 남쪽의 어느 섬으로 추방당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신분을 따질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추방에 동참하는 형태로 대거 몰려 나가게 되는데, 10년 사이에 엄청난 속도로 사르타디움과 동등한 수준으로 기술력을 성장시킨 루네바스 제국은 사르타디움 공화국에게 기습적으로 선전포고를 내리게 되고, 제 4차 세계대전까지 거친 인류는 또 한 번 14년이나 전쟁을 치르게 된다.
 
사르타디움의 입장에서는 그들은 반란군이나 다름없었다. 이 둘은 당연히 대립 관계에 놓였으며, 특히 루네바스는 자신들의 고향인 사르타디움의 영토를 회복해야 한다는 '영토 탈환 운동'을 진행 중에 있었다. 이 둘은 점점 상황이 나빠지면서 가끔식 무력도발이 자행되는 수준에 도달하였고, 결국 루네바스 제국이 항상 주장하던 '영토 탈환 운동'을 실현할 때가 왔다는 명분으로 2460년 3월 27일, 사르타디움 공화국에 기습공격을 감행하고 그것으로 선전포고를 끝마쳤다.
 


==전개==
==전개==
===발발 배경===
===전쟁 초반===
곡창지대를 제외한 모든 도시의 변두리에선 부랑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아리스트란도 주의 주지사는 이러한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여러 시스템들을 도입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고 그로 인해 변두리에 있는 부랑자들의 불만이 쌓이고 쌓이다 결국 폭발하여 그들은 주지사를 몰아낼 목적으로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언론 등을 통해 반란의 범위가 확산되다가 결국 진압당해 그들은 원래부터 이러한 정권에 불만이 있었던 기술자, 연구원을 비롯하여 여러 고학력자 인력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된다. 그곳이 바로 제 2대륙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임시적으로 중규모 캠프를 만들어 살아가기 시작했고 테라포밍의 기술에 동원되었던 기술자와 연구원 등등이 아리스트란도 주에서 가져온 부품들로 중장비를 만들어 테라포밍 작업에 들어갔다. 시간이 꽤 지난 후 그들이 선언한 국가가 바로 [[루네바스]]이다.
사실 사르타디움은 전쟁을 예견하지 못했다. 만일 한다 하더라도 지금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하였는데 덕분에 전쟁이 시작된 직후 초반에 아주 극심한 타격을 입게된다. 초반의 전세는 해상전으로 진행되었다. 제 1차 방어선에서 사르타디움 국군의 함대가 루네바스 국군과 교전을 치렀고, 이들이 해상전을 치르는 사이 그들은 본인들의 영토에 대규모 폭격이 가해질 것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고 결국 치열한 공방전 끝에 해안가에 위치한 도시 하나가 '''터만 남을 정도로 완전히 평탄화되었다.''' 루네바스 제국군은 공화국군이 무장과 체계를 제대로 정립시키지 않은 이 시기를 틈타 제 1차 방어선을 무력화시키고, 수많은 전략물자와 함께 사르타디움 공화국 본토에 상륙하게 된다.
 
교전지역이 처음에는 남해안, 두 번째는 해안가, 세 번째는 내륙 지방의 시가지 전투였다. 사실 이건 누가 보나 어마어마하게 심각한 문제인데, 당장 미국의 두배나 되는 땅덩이를 가진 사르타디움 공화국을 상대로 이 정도까지 밀어붙였다고 한다면 공화국 정부 입장에서는 '''목에 칼이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군사적 피해는 두말할 것도 없고, 민간인 피해는 상상조차 할 수도 없이 나왔을 것이다.
 


사르타디움의 입장에서는 그들은 괴뢰 국가이자, 반란군이었다. 이 둘은 당연히 대립 관계에 놓였으며, 특히 루네바스는 자신들의 고향인 사르타디움의 영토를 회복해야 한다는 '영토 탈환 운동'을 진행 중에 있었다. 이 둘은 점점 상황이 나빠지며 가끔식 무력도발이 있는 수준까지 도달하였고 결국, 루네바스 공화국이 항상 주장하던 '영토 탈환 운동'을 실현할 때가 왔다는 명분으로 2320년 8월 15일, 사르타디움 공화국에 기습공격을 감행하고 그것으로 선전포고를 끝마쳤다.
==아리스트란도 공방전==


===전쟁 초반===
==제 1차 네르스필레 해전==
사실 사르타디움은 전쟁을 예견하지 못했다. 한다 하더라도 지금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하였는데 덕분에 전쟁이 시작된 후인 초반에 아주 극심한 타격을 입게된다. 초반의 전세는 해상전으로 진행되었다. 제 1차 방어선에서 사르타디움 국군의 함대가 루네바스 국군과 교전을 치렀고, 이들이 해상전을 치르는 사이 그들은 본인들의 영토에 대규모 폭격이 가해질 것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고 결국 치열한 공방전 끝에 해안가에 위치한 도시 하나가 박살났다.<br>
루네바스 공국군은 그 기세를 틈타 제 1차 방어선을 무력화시키고, 수많은 전략물자와 함께 사르타디움 공화국 본토에 상륙하였다.<br>
교전지역이 처음에는 남해안, 두 번째는 해안가, 세 번째는 루네바스 공국군 본인들이 박살낸 해안가 도시에서의 시가지 전투였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도 금방 사라지는데 성공하였다. 2개월만에 전쟁 준비를 마친 사르타디움군은 해안 방어와 방공 시스템을 강화하였고, 해군 병력의 대부분을 남해안에 집결시킴에 따라서, 이제 좀 제대로 된 교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br>
특히나 사르타디움 반격의 상징이자 전쟁의 터닝포인트인 해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제1차 네르스필레 해전'이다.
===제 2차 네르스필레 해전===
===제 2차 네르스필레 해전===
<blockquote>2331년 9월 5일에 개전한 이 해전은 14년 전쟁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해전이라 할 수 있다. 사략선이자 엄연히 군용급 함선인 모리건 호<ref> <big>이후 해군에 정식으로 인양되나 몇 년 안가 침몰당한다.</big> </ref> 외 사르타디움 소속 구축함 4척과, 루네바스 소속 제 1, 제 2 함대가 참전한 이 해전에서, 양측 둘 다 전력을 다해 엄청난 규모의 전투를 속행하였고, 단 5척의 구축함으로 아군 구축함 3척의 손실로 루네바스 상륙군의 중요 보급선과 3개 함대를 다수 격침시킨 이 해전은, 직후 전선에 뒤늦게 합류한 해군 덕분에 사르타디움 해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훗날, 이 해전을 이끌었던 제임스 쿡 제독은 대통령 궁에 동상으로서 우두커니 서있다. 병력 차가 심했던 만큼, 이 해전이 갖고 있는 상징적 의미는 매우 큼을 알 수 있다.</blockquote>
2471년 9월 5일에 개전한 이 해전은 14년 전쟁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해전이라 할 수 있다. '''사르타디움 소속 구축함 4척'''과, '''루네바스 소속 제 1, 제 2 함대'''가 참전한 이 해전에서, 양측 둘 다 전력을 다해 엄청난 규모의 전투를 속행하였고, '''단 5척의 구축함'''으로 '''아군 구축함 3척의 손실'''로 '''루네바스 상륙군의 중요 보급선과 2개 함대를 다수 격침'''시킨 이 해전은, 직후 전선에 뒤늦게 합류한 해군 덕분에 사르타디움 해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훗날, 이 해전을 이끌었던 제임스 쿡 제독은 대통령 궁에 동상으로서 우두커니 서있다. 병력 차가 심했던 만큼, 이 해전이 갖고 있는 상징적 의미는 매우 큼을 알 수 있다.


===전쟁 후반과 정전===
===전쟁 후반과 정전===
개전 후 9년 정도 지나자 소모전의 양상을 띄우며, 양측 다 의미없는 전투를 하며 계속 피로에 찌들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이제는 두 공군 모두 피해가 상당히 컸기에 공군부터 수복하느라 공중전을 치르지 않아서 민간인의 피해의 정도가 급격히 낮아졌단 것이다. 그렇게 5년을 더 피로하게 전쟁을 하다가 결국 양측이 모여 협상<ref><big>협상이라 쓰고 협박이라고 읽는다. 실제로 이 당시 협상공간은 루네바스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플리우스 고에너지 빔포를 내장한 인공위성 '다모클레스'는 '''루네바스의 수도 지역에 빔포를 겨누고 있었다.''' 즉, 루네바스 측에서 본인들에게 불리한 조약이라고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수도를 포함한 반경 10km 내의 모든 것이 작살이 날 수 있었다!</big></ref>을 진행함에 따라, 2334년 12월 4일에 정전 협정이 체결된다.  
개전 후 9년 정도 지나자 소모전의 양상을 띄우며, 양측 다 의미없는 전투를 하며 계속 피로에 찌들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이제는 두 곳의 군 모두 피해가 상당히 컸기에 공군부터 수복하느라 공중전을 치르지 않아서 민간인의 피해의 정도가 급격히 낮아진 것이다. 그렇게 5년을 더 피로하게 전쟁을 하다가 결국 양측이 모여 협상<ref><big>협상이라 쓰고 협박이라고 읽는다. 실제로 이 당시 루네바스 제국의 대표단은 협상을 위해 지정 장소로 이동했지만 그 곳은 본토와는 멀리 떨어져있는데다가, 플리우스 고에너지 빔포를 내장한 인공위성 '다모클레스'는 '''루네바스의 수도 지역에 빔포를 겨누고 있었다.''' 즉, 루네바스 측에서 본인들에게 불리한 조약이라고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수도를 포함한 반경 10km 내의 모든 것이 작살이 날 수 있었다!</big></ref>을 진행함에 따라, 2474년 12월 4일에 정전 협정이 체결된다.  


하지만 정전 협정이 체결된 그 해에, 사르타디움 국민 대부분은 알지 못하는 추악한 현실이 있었다.
하지만 정전 협정이 체결된 그 해에, [[적성인외생명체|사르타디움 국민 대부분은 알지 못하는 추악한 현실]]이 있었다.


== 정전 협정 이후 ==
===정전 협정 이후===
2334년 12월 4일에 정전 협정이 체결된 이후, 루네바스의 반란군은 곧바로 퇴각을 명령받았으나 다수의 사단은 귀환을 거부하고 사르타디움이라는 적국의 영토 내에서 요새를 구축하고 민가를 약탈하는 등의 악행을 벌였다. 현재 사르타디움 영토의 일부 지역이 빈민가로 남아있는 이유는 그러한 행위들의 진상이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2474년 11월 5일에 정전 협정이 체결된 이후, 루네바스의 반란군은 곧바로 퇴각을 명령받았으나 절반 가까이 되는 사단들은 귀환을 거부하고 사르타디움이라는 적국의 영토 내에서 민가를 약탈하는 등의 악행을 벌였다. 현재 사르타디움 영토의 일부 지역이 빈민가로 남아있는 이유는 그러한 행위들의 진상이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정전 협정 이후로 사르타디움 정규군은 거의 20년 가까이 이들 잔당을 소탕하는데에 진땀을 흘렸다. 그들은 잔당이었으나 엄연히 '''정규군'''이었고, 때문에 소탕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전 협정 이후로 사르타디움 정규군은 거의 20년 가까이 이들 잔당을 소탕하는데에 진땀을 흘렸다. 그들은 잔당이었으나 엄연히 '''정규군'''이었고, 때문에 소탕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종전 선언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494년에 내려졌다.


===결과===
==결과==
'''영토에 변함이 없다!'''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두 국가 모두 피해만 있었을뿐, 큰 이득을 본 것이 없었다.
'''영토에 변함이 없다!'''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두 국가 모두 피해만 있었을뿐, 큰 이득을 본 것이 없었다.


==피해==
전략적 병기와 군사적 피해에 대해선 사르타디움 해군의 피해가 가장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전세의초반은 지상전이 주류였으나 후반은 해상전이 주류였고, 공군이야 루네바스와 사르타디움과 비교하면 루네바스가 압도적으로 피해가 더 컸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사르타디움 공화국의 방어전략과 뛰어난 과학기술이 있었던 덕택이었다.
전략 물자 면에선 사르타디움 해군의 피해가 가장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전세의 대부분은 해상전이 주류였고, 공군이야 루네바스와 사르타디움과 비교하면 루네바스가 압도적으로 피해가 더 컸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사르타디움 공화국의 방어전략과 뛰어난 과학기술이 있었던 덕택이었다.


민간인의 피해가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처음 14년 전쟁이 치러진지 1개월 정도 지났을때, 사르타디움 영토의 남쪽 40% 정도 되는 영토가 시가지 전투, 대규모 폭격 등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고 그로 인해 사상자는 물론 실종자, 피난민 등 여럿 발생하였다.
민간인의 피해가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처음 14년 전쟁이 치러진지 1개월 정도 지났을때, 사르타디움 영토의 남쪽 40% 정도 되는 영토가 시가지 전투, 대규모 폭격 등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고 그로 인해 사상자는 물론 실종자, 피난민 등 여럿 발생하였다.
결국 인종에 대한 차별 철폐 시위가 시발점이 된 이 전쟁은 참혹한 피해를 낳게 되었고, 루네바스 제국이나 사르타디움 공화국이나, 전쟁을 직접 경험한 이들은 이 전쟁을 두고 평가하기를 '''목적 없는 잊혀진 전쟁'''이라고 평한다.

2023년 2월 6일 (월) 20:27 기준 최신판

14년 전쟁
The Fourteen Years' War / Empty War
[[파일:|]]
날짜
2460년 3월 27일 ~ 2474년 11월 5일
장소
미개발 구역을 제외한 거의 전세계[1]
결과
사르타디움 공화국루네바스 제국 양측의 괴멸적 피해
적성인외생명체의 발견
15차 십자군의 성립
교전국
사르타디움 공화국 루네바스 제국
지휘관
헬릭스 워싱턴 알렉산더 니콜라이쇼프
병력
총 4999만 8514명 총 4396만 7310명
피해 규모
총합 1,537만 7,400명 총합 1,054만 1,380명


개요

14년 전쟁(영어: 14 years war)은 2460년부터 2474년까지 괴뢰 국가, 루네바스사르타디움각종 분야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정당한 시위를 진압당하고도 모자라 고향을 탈환당하고 쫓겨난 것에 대한 격노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전쟁이다. 초반에는 사르타디움의 군대가 준비가 되지 않된 것에 더불어, 루네바스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몇 개월만에 사르타디움 국군이 전쟁 준비를 끝냈고, 이 둘은 바다와 육지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이 전쟁은 9년쯤 지나자, 전쟁은 이제 소모전의 양상을 띄우기 시작했고, 결국 2474년, 사르타디움루네바스와 협상을 진행하여 정전이 맺어졌다.


제 5차 세계대전?

당장 세계라고 해도 사르타디움 공화국과 루네바스 제국 밖에는 없으나, 두 국가의 영토로 보나 인구 수로 보나, 사실상 거의 총력전에 가까운 수준이었기 때문에 일부에선 이 전쟁을 두고 제 5차 세계대전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배경

공화국 초대 대통령이 선출된 2425년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매우 불안했던 시기였고, 분명 좋은 점도 있었지만 안 좋은 점이 너무 많아서 되려 장점을 죄다 가릴 정도였다.

가장 큰 문제는 새로이 탄생한 유전자 돌연변이의 문제였다. 테라포밍 과정 중 발견한 플리우스 에너지는 인류 문명에게 큰 도움을 주었지만, 이 신생에너지는 새로이 탄생한 신생아들의 유전자 조직에 영향을 끼쳤다. 이 유전자 돌연변이는 체질에 따라서는 신생아의 외형을 기존의 인간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게 만들었다. 때문에 2420년에 처음으로 탄생한 유전자 돌연변이는 사회에서 수 많은 경멸과 혐오의 시선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었다. 이 유전자 돌연변이의 어미는 아이를 감싸다 혐오범죄에 의해 결국 죽게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전자 돌연변이 신생아의 수가 늘어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인류는 기존 인간의 모습을 한 구세대와 인간과는 다른 모습을 한 신세대로 구분짓게 되었다. 하지만 혐오범죄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차 늘어나게 되고, 2425년에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이 문제가 좀 나아지려나 싶었지만 해결되는건 좀처럼 없었다. 건국 초기라 경찰의 공권력도 매우 약했고, 시민들에게 믿을 것은 그들 자신밖에 없었다.

2445년,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지고 태어난 신세대가 차츰 성인이 되면서 여러 도시에서 신세대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멈춰달라는 시위가 일어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구세대의 기득권 세력과 무력충돌이 일어나게 되고, 사상자가 여러 명이 발생하게 된다. 이 소식이 공화국 영토 전 방면에 퍼지자 구세대들에 대한 격노로 시위대 중 과격파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러다보니 처음엔 인종차별에 대한 시위로 시작했던 것이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빈부격차, 치안 문제 등 수 많은 문제에 대해 그동안 앓고 있었던 이들이 거리로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이 때 즈음에는 더이상 구 세대건 신 세대건, 시위의 목적은 인종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변질되어 있었다.

초대 대통령은 이러한 많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시스템들을 도입했지만, 그 정책들은 미진하거나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인구는 수도권으로 밀집되는 형태로 이어지지만 사회적 문제들은 해결하지 않은 상태로, 수도권의 인구 밀도는 점차 늘어나게 된다. 결국 이러한 문제를 그냥 두고 보지 못한 시위대 측은 2450년 마지막으로 수도 아리스트란도에서 대규모 시위를 열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공권력과 무력충돌이 일어나게 되고, 과격파들에 의해 폭력행사까지 벌어진 이 시위는 결국 진압당하게 된다. 그런데......

시위대 세력은 초대 정부에 의해 결국 남쪽의 어느 섬으로 추방당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신분을 따질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추방에 동참하는 형태로 대거 몰려 나가게 되는데, 10년 사이에 엄청난 속도로 사르타디움과 동등한 수준으로 기술력을 성장시킨 루네바스 제국은 사르타디움 공화국에게 기습적으로 선전포고를 내리게 되고, 제 4차 세계대전까지 거친 인류는 또 한 번 14년이나 전쟁을 치르게 된다.

사르타디움의 입장에서는 그들은 반란군이나 다름없었다. 이 둘은 당연히 대립 관계에 놓였으며, 특히 루네바스는 자신들의 고향인 사르타디움의 영토를 회복해야 한다는 '영토 탈환 운동'을 진행 중에 있었다. 이 둘은 점점 상황이 나빠지면서 가끔식 무력도발이 자행되는 수준에 도달하였고, 결국 루네바스 제국이 항상 주장하던 '영토 탈환 운동'을 실현할 때가 왔다는 명분으로 2460년 3월 27일, 사르타디움 공화국에 기습공격을 감행하고 그것으로 선전포고를 끝마쳤다.


전개

전쟁 초반

사실 사르타디움은 전쟁을 예견하지 못했다. 만일 한다 하더라도 지금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하였는데 덕분에 전쟁이 시작된 직후 초반에 아주 극심한 타격을 입게된다. 초반의 전세는 해상전으로 진행되었다. 제 1차 방어선에서 사르타디움 국군의 함대가 루네바스 국군과 교전을 치렀고, 이들이 해상전을 치르는 사이 그들은 본인들의 영토에 대규모 폭격이 가해질 것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고 결국 치열한 공방전 끝에 해안가에 위치한 도시 하나가 터만 남을 정도로 완전히 평탄화되었다. 루네바스 제국군은 공화국군이 무장과 체계를 제대로 정립시키지 않은 이 시기를 틈타 제 1차 방어선을 무력화시키고, 수많은 전략물자와 함께 사르타디움 공화국 본토에 상륙하게 된다.

교전지역이 처음에는 남해안, 두 번째는 해안가, 세 번째는 내륙 지방의 시가지 전투였다. 사실 이건 누가 보나 어마어마하게 심각한 문제인데, 당장 미국의 두배나 되는 땅덩이를 가진 사르타디움 공화국을 상대로 이 정도까지 밀어붙였다고 한다면 공화국 정부 입장에서는 목에 칼이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군사적 피해는 두말할 것도 없고, 민간인 피해는 상상조차 할 수도 없이 나왔을 것이다.


아리스트란도 공방전

제 1차 네르스필레 해전

제 2차 네르스필레 해전

2471년 9월 5일에 개전한 이 해전은 14년 전쟁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해전이라 할 수 있다. 사르타디움 소속 구축함 4척과, 루네바스 소속 제 1, 제 2 함대가 참전한 이 해전에서, 양측 둘 다 전력을 다해 엄청난 규모의 전투를 속행하였고, 단 5척의 구축함으로 아군 구축함 3척의 손실루네바스 상륙군의 중요 보급선과 2개 함대를 다수 격침시킨 이 해전은, 직후 전선에 뒤늦게 합류한 해군 덕분에 사르타디움 해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훗날, 이 해전을 이끌었던 제임스 쿡 제독은 대통령 궁에 동상으로서 우두커니 서있다. 병력 차가 심했던 만큼, 이 해전이 갖고 있는 상징적 의미는 매우 큼을 알 수 있다.

전쟁 후반과 정전

개전 후 9년 정도 지나자 소모전의 양상을 띄우며, 양측 다 의미없는 전투를 하며 계속 피로에 찌들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이제는 두 곳의 군 모두 피해가 상당히 컸기에 공군부터 수복하느라 공중전을 치르지 않아서 민간인의 피해의 정도가 급격히 낮아진 것이다. 그렇게 5년을 더 피로하게 전쟁을 하다가 결국 양측이 모여 협상[2]을 진행함에 따라, 2474년 12월 4일에 정전 협정이 체결된다.

하지만 정전 협정이 체결된 그 해에, 사르타디움 국민 대부분은 알지 못하는 추악한 현실이 있었다.

정전 협정 이후

2474년 11월 5일에 정전 협정이 체결된 이후, 루네바스의 반란군은 곧바로 퇴각을 명령받았으나 절반 가까이 되는 사단들은 귀환을 거부하고 사르타디움이라는 적국의 영토 내에서 민가를 약탈하는 등의 악행을 벌였다. 현재 사르타디움 영토의 일부 지역이 빈민가로 남아있는 이유는 그러한 행위들의 진상이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정전 협정 이후로 사르타디움 정규군은 거의 20년 가까이 이들 잔당을 소탕하는데에 진땀을 흘렸다. 그들은 잔당이었으나 엄연히 정규군이었고, 때문에 소탕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종전 선언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494년에 내려졌다.

결과

영토에 변함이 없다!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두 국가 모두 피해만 있었을뿐, 큰 이득을 본 것이 없었다.

전략적 병기와 군사적 피해에 대해선 사르타디움 해군의 피해가 가장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전세의초반은 지상전이 주류였으나 후반은 해상전이 주류였고, 공군이야 루네바스와 사르타디움과 비교하면 루네바스가 압도적으로 피해가 더 컸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사르타디움 공화국의 방어전략과 뛰어난 과학기술이 있었던 덕택이었다.

민간인의 피해가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처음 14년 전쟁이 치러진지 1개월 정도 지났을때, 사르타디움 영토의 남쪽 40% 정도 되는 영토가 시가지 전투, 대규모 폭격 등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고 그로 인해 사상자는 물론 실종자, 피난민 등 여럿 발생하였다.

결국 인종에 대한 차별 철폐 시위가 시발점이 된 이 전쟁은 참혹한 피해를 낳게 되었고, 루네바스 제국이나 사르타디움 공화국이나, 전쟁을 직접 경험한 이들은 이 전쟁을 두고 평가하기를 목적 없는 잊혀진 전쟁이라고 평한다.

  1. 사실 전세계라고 해도, 현재 성립된 국가는 사르타디움 공화국이나 루네바스 제국 말고는 없다.
  2. 협상이라 쓰고 협박이라고 읽는다. 실제로 이 당시 루네바스 제국의 대표단은 협상을 위해 지정 장소로 이동했지만 그 곳은 본토와는 멀리 떨어져있는데다가, 플리우스 고에너지 빔포를 내장한 인공위성 '다모클레스'는 루네바스의 수도 지역에 빔포를 겨누고 있었다. 즉, 루네바스 측에서 본인들에게 불리한 조약이라고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수도를 포함한 반경 10km 내의 모든 것이 작살이 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