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국무총리대신 |
[ 펼치기 · 접기 ] |
대한제국 제17-18대 국무총리대신 김종필 金鍾泌 | Kim Jong-pil | |
---|---|
출생 | 1926년 1월 7일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 | |
사망 | 2018년 6월 23일 (향년 92세)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김종필내각국무총리묘소 |
재임기간 | 제17대 국무총리대신 |
1991년 5월 21일 ~ 1994년 5월 20일 | |
제18대 국무총리대신 | |
1994년 5월 20일 ~ 1995년 7월 7일 | |
[ 펼치기 · 접기 ] |
개요
생애
1960년 이범석을 따라 경자정변에 가담한 근황파 청년 장교 중 한명이였다. 이후 한국독립당에 입당하여 정계에 입문하였고 고향인 부여군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다. 이후 이범석의 최측근이 되었고 궁내대신과 중앙정보조사담당 특명대신 등을 지내며 정권의 2인자로서 활약했다. 1971년에는 한국독립당 부총재직을 맡고 1973년에는 부총리에 임명되며 대한제국 경제개발 5개년정책과 대덕연구단지, 세종 신수도 계획 등을 지휘하였다.
1980년 경신혁명으로 인해 친정시대가 종식되고 이범석이 사임하여 위기에 빠진 한국독립당의 당수가 되었고, 신민당 돌풍 속에서도 텃밭이였던 이북지역과 수도권지역을 지켜내며 당을 정비하였다. 1991년 강경대 치사 사건이 일어나 전국적인 광분이 일어나자 김영삼 내각을 규탄하여 정권 교체 여론을 이끌어냈고, 이후 열린 총선에서 한국독립당의 승리를 이끌어 총리가 되었다. 총리가 된 이후 1993년 대전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1995년에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시키는 등의 성과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경제 성장의 부작용으로 인해 성수대교 붕괴 사고,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 등의 산업재해 및 안전불감증에서 촉발된 인재가 다수 발생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김종필 내각은 "사고 내각"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하였다. 결정적으로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일어나자 이러한 규탄이 심해졌고, 내각 지지율도 급락하게 된다. 결국 김종필 역시 국무총리대신직에서 사임하여 정치적 후계자였던 이회창에게 총리직을 넘겨준다.
총리직 사임 이후로도 충청권의 대부이자 한독당의 원로로서 정치 활동을 계속하였고, 여전히 정계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4년 자신이 신민당의 내분 및 분당을 이용하여 설계하였던 노무현 국무총리대신에 대한 내각 불신임안이 민의원과 참의원을 통과하자 범국민적인 반발이 일어나 전국적인 반대 시위가 일어나는 등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되었다. 결국 내각 불신임 이후 열린 총선에서 한국독립당은 참패하고 본인도 44년만에 선거에서 낙선하게 되어 정계를 은퇴하였다.
정계 은퇴 이후 2018년 6월 23일에 숙환으로 인해 향년 9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
1960 | 제6대 민의원 선거 | 부여군 | 한국독립당 | 34,789표 (49.8%) | 당선 (1위) | 초선 |
1963 | 제7대 민의원 선거 | 38,675표 (50.3%) | 재선 | |||
1967 | 제8대 민의원 선거 | 45,810표 (62.5%) | 3선 | |||
1971 | 제9대 민의원 선거 | 49,999표 (68.2%) | 4선 | |||
1975 | 제10대 민의원 선거 | 69,961표 (91.1%) | 5선 | |||
1977 | 제11대 민의원 선거 | 57,589표 (67.5%) | 6선 | |||
1980 | 제12대 민의원 선거 | 60,731표 (65.7%) | 7선 | |||
1982 | 제13대 민의원 선거 | 63,967표 (66.9%) | 8선 | |||
1985 | 제14대 민의원 선거 | 62,358표 (62.5%) | 9선 | |||
1987 | 제15대 민의원 선거 | 65,292표 (66.4%) | 10선 | |||
1991 | 제16대 민의원 선거 | 67,462표 (67.4%) | 11선[1] | |||
1995 | 제17대 민의원 선거 | 68,952표 (68.1%) | 12선[2] | |||
1998 | 제18대 민의원 선거 | 61,331표 (58.5%) | 13선 | |||
2002 | 제19대 민의원 선거 | 61,638표 (55.6%) | 14선 | |||
2004 | 제20대 민의원 선거 | 부여군·청양군 | 54,919표 (47.8%) | 낙선 (2위) | [3] |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
한국독립당 | 1960 - 2018 | 정계 입문 정계 은퇴 사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