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本敎, “뻔”교)는 티베트 지역에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에 티베트족들이 신앙하였던 일종의 전통 종교로서, 흑교(黑敎)라고도 하며 “뻔”(本)이라는 티베트 말을 한어(漢語)로 음역(音譯)하여 ‘발교’(鉢敎, “뽀”교) 또는 ‘분교’(笨敎. “뻔”교)라고도 한다. 본교는 원시 사회단계에서 발생하여 이후 도교샤머니즘의 요소를 흡수하고 서기 8세기 이후에는 티베트 불교인 라마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일부 불교 경전을 본교의 경전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본교의 신앙

본교는 토착적인 샤머니즘의 일종으로, 우주간에 무수한 영혼이 존재하여 그 발동에 따라 세상의 길흉화복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정령에 대해 기도를 드리고 이를 위로함으로써 양재초복(禳災招福)을 꾀한다. 정령은 나무 ·돌 ·조가비 등에 의존하는 데서 제물숭배(諸物崇拜)의 관념이 생겨났다. 따라서 정령이 인간에게 의사를 표시하는 데는 무승(巫僧)을 매개로 한다고 믿어져 무승 예언의 사상이 성행한다.

본교는 하늘, 땅, 물, 불 및 설산(雪山) 등이 자연과 조상 및 수호신을 숭배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며, 주문을 외우고, 축귀(逐鬼)를 하며 점술(占術)과 무속적인 푸닥거리를 행한다. 본교의 주요경전으로는 《기초보고(基礎寶庫)》, 《고산보고(高山寶庫)》, 《순결보고(純潔寶庫)》, 《총보고(總寶庫)》 및 《행보고(行寶庫)》등 다섯 개의 ‘보고’(寶庫: ‘경전’을 의미)가 있으며 주요 저작으로는 《십만용경(十萬龍經)》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티베트족(藏族)의 본교(本敎) (중국 소수민족 연구, 2007. 6. 30.) 본교는 하늘, 땅, 물, 불 및 설산(雪山) 등이 자연과 조상 및 수호신을 숭배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며, 주문을 외우고, 축귀(逐鬼)를 하며 점술(占術)과 무속적인 푸닥거리를 행한다. 본교의 주요경전으로는 《기초보고(基礎寶庫)》, 《고산보고(高山寶庫)》, 《순결보고(純潔寶庫)》, 《총보고(總寶庫)》 및 《행보고(行寶庫)》등 다섯 개의 ‘보고’(寶庫: ‘경전’을 의미)가 있으며 주요 저작으로는 《십만용경(十萬龍經)》이 있다.

역사

티베트의 전설에 의하면 교조를 툰파 셴라프라 하고, 전지자(全智者)가 인격적으로 현화(現化)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서부 티베트의 샨순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최초의 신탁(神託)을 행하였다.

첫 번째 단계는, ‘원시적인 본교’를 의미하는 ‘독본’(篤本) 시기로서, 본교가 발생한 초기인 섭기찬보(聶棄贊普) 통치시기에 광범위하게 성행하였으며 경전(經典)도 없이 자연물과 하늘, 지상, 지하 삼계(三界)의 신을 숭배하고 조상신에 대한 제사와 길흉화복에 대한 점치기, 축귀(逐鬼) 등을 주요 활동으로 하였다. 이 시기에 본교의 신직자인 본사(本師)가 점차 전문적인 직업으로 정착되면서 부자(父子) 또는 숙질(叔侄) 간에 전승되었다.

두 번째 단계는, ‘외부에서 전래된 본교’를 의미하는 ‘흡본’(恰本) 시기로서, 지공찬보(止貢贊普) 통치 시기부터 성행하기 시작하였다. 이전 단계의 본교에서 신직자인 ‘본사’(本師)가 나쁜 일(凶煞)을 다스리는 능력이 미약하였는데, 외부에서 세 명의 본사(本師)가 당시 토번(吐藩) 지역에 들어와 나쁜 일을 다스리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면서 본교는 외지 무교(巫敎)의 요소를 흡수하게 되었으며 교파(敎派)를 형성하고 일정한 이론과 종교 의식을 갖추게 되었다. 티베트 문자로 기록된 《홍사(紅史)》에 따르면, 당시 본교는 9대 교파로 나누어졌다.

이 시기는 본교가 매우 성행하여 사람들의 일상생활 각 분야에도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통치자의 중대한 결정을 좌우하기도 하였으며 본교의 무사(巫師)는 신분이 높았으며 정치에 참여하고 각종 제사와 서약, 장례 등을 주재하였다. 티베트 문자로 기록된 문헌 기록에 의하면, 네치첸포부터 트리통제첸에 이르기까지 27대의 통치자에 걸쳐 본교는 국정에 영향을 미쳤으며 갈수록 그 세력이 커져 왕실은 본교의 권력을 회수하려고 하였지만 본교 무사(巫師)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어쩔 수 없이 본교의 위세가 지속되었다.

세 번째 시기는, ‘믿음을 바꾼 본교’를 의미하는 ‘각교’(覺敎) 시기로서, 서기 7세기경 송첸감포가 티베트 고원을 통일하고 강력한 토번(吐藩) 왕조를 건립하였으며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의 각 나라와 교류를 강화하면서 각종 종교가 티베트 지역에 전래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는 본교에 대하여 불만을 갖고 있던 토번 왕실로부터 각별한 환영을 받았으며 대대적으로 지원을 받아 포교되었다.

이에 대하여 본교의 신자들은 저항을 하였지만 모두 불교 세력에 의해 패하였다. 치송데첸 통치시기에는 왕명으로 본교 신자들에게 불교로 개종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으며 이에 불복하는 적지 않은 본교 신자들이 참수당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원래의 본교는 변화될 수밖에 없었고, 본교는 생존을 위하여 불교 경전을 대거 본교의 경전으로 채택하였으며, 또한 일부 불교의 의식을 흡수하는 동시에 원시 본교의 내용과 의식(儀式)을 유지하였다. 즉 기본적으로 불교화된 형태로 본교가 변모한 것이다. 오늘날 본교 사원과 신직자들의 복장은 모두 라마교와 거의 비슷하여 좀처럼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티베트족(藏族)의 본교(本敎) (중국 소수민족 연구, 2007. 6. 30.)


불교신앙이 전해지면서 그 세력을 빼앗기고 불교의 교리와 신앙 형식의 영향을 받았으나, 한편 통속신앙 면에서는 불교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본교의 수행이론을 설명한 경전으로서 십만백룡, 십만흑룡, 십만반룡의 3부가 있다.